그는 종이에 ‘용기’라고 두어 번 적더니 “오늘은 업무 끝!” 하고 호탕하게 외치며 회의실에서 나가버렸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생각했다. 왜 ‘용기’일까. 꽉 찬 5년 차, 나는 지금도 종종 상무님의 질문을 떠올린다.
회사에서는 ‘용기’의 무게가 다르다. 회사란 용기보다 ‘실적’ 같이 숫자로 정의되는 가치가 더 중요한 곳이니까. 하지만 직장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시간과 의미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곳에서야말로 용기는 필요하다. 회사 생활에서 용기가 필요한 세 가지 순간을 되짚어봤다. 그리고 나는 이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 나는 늘 나만의 장소에 찾아가 무엇인가를 먹었다.
첫 번째,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 회사는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성공과 실패, 실적을 중요하게 여긴다.주어진 과제를 능숙하게 해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큰 성취감을 얻는 나는, 새로운 과제를 받으면 늘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서 그저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회사 밖으로 나가 커피를 사 마신다. 맛있는 커피를 공짜로 제공하는 사내 카페가 있지만, 회사 안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용기 한 잔이 그곳에는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 성의를 담아 내린 커피 한 잔.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에 도전할 때, 성실하고 확실한 노동이 담긴 커피 한 잔이 나에게 용기가 되었다.
두 번째,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순간 회사 생활이 ‘버티는 시간’으로 얼룩질 때가 있다. 왜 버티는지도 모르지만,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착각한 시간. 한계를 느끼고 회사에 휴직계를 내던 날, 회사 화장실에서 한 판 울고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회사 앞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정말이지 1분도 회사에 있기 싫은 날도, 드라마처럼 퇴직서를 던져볼까 고민했던 날도, 일단 버텨보자고 마음먹은 날도 그 식당을 찾았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장님이 계신 가게 창가에 앉아 꾸역꾸역 샐러드를 입에 밀어 넣으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생각났고, 그럼 다시 돌아갈 용기가 생겼다. 어떤 약보다도 나를 괜찮게 하는, 그곳은 내 영혼의 밥집이었다.
세 번째, 동료에게 용기를 주고 싶을 때는 작고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는다. 사르르 녹는 초콜릿, 버터 향이 올라오는 마들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쿠키. 불황일수록 디저트 산업이 호황인 이유는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바로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회사 생활을 지켜보면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용기 내듯이, 누군가 용기가 필요할 때 나누어 먹는 소소한 행복은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된다.
나는 용기의 원천을 음식에서 찾는다.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기 때문일까. 뜨거운 커피 한 잔,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 샐러드 한 접시에 용기를 얻었다. 이처럼 용기의 원천은 우리 주위에 있다. 기억하고 찾는 자에게만 주어질 뿐. 용기가 필요한 오후, 그날의 상무님을 떠올리며 공책에 ‘용기’라고 두어 번 적어본다. 나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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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영수증
Youtube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고백이지만 노는 것만큼이나 일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생활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 오후 네 시가 되면 남은 하루를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의 영수증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싶은 직장인에게 작은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