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인 여자

박상미

가장
사적인 여자

박상미


박상미의 이름 앞에는 여러 호칭이 붙는다. 에세이 작가, 번역가, 갤러리스트. 누군가는 그녀에게 다양한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녀가 벌이는 일들이 비슷한 선 위에 있다고 느껴진다. 그녀에겐 사적인 하나의 맥락이 있다.

뉴욕과 서울의
이방인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과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중에서

5월에 뉴욕 생활을 담은 《나의 사적인 도시》가 나왔어요. 김민정 시인이 책으로 낼 것을 권유했다고요.
오랫동안 써왔던 블로그의 글을 정리해서 낸 거예요. 그전에도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항상 손을 못 댔어요. 그런데 김민정 시인이 700장 정도 분량의 글들을 일일이 긁어 출력해 온 거에요. 여기서 뭐라도 내자고 던져준 거죠.

《뉴요커》, 《취향》 등 전에도 집필하신 책이 있지만 이번 책은 일기를 묶은 책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내용도 훨씬 내밀하고요.
예술, 패션 등 소제목으로 분류할까 고민을 하다가 블로그에 올렸던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일기 형식이라 제가 살아온 날들이 그대로 보이는 지점이 있어서 기분이 희한하더라고요. 분명 기억이 나야 하는 건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조그만 꼬투리 하나로 큰 부분이 기억이 나기도 했죠

책의 서문에서 김민정 시인을 ‘사적인 친구’라 표현했는데 굉장히 우정 어린 말인 것 같았어요. 두 분은 어떤 사이인가요?
김민정 시인이 문학동네에서 청소년 문예지를 만들고 있을 때 글을 청탁하기 위해서 연락하게 되면서 인연이 이어졌어요. 좀 특이했어요. 메일이 왔는데 문학동네 김민정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 김민정이라 소개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책 선물을 정성스럽게 많이 보내줬어요. 외국에 살다 보면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애정 결핍이 생기거든요. 저한테만 그런 줄 좋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웬만하면 책을 박스로 보내는 통 큰 사람이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에 와서 만났고, 만나보니 참 좋아서 본격적으로 친해지게 됐어요. 전화통화만 몇 시간씩 하고 사적인 이야기도 다 하고, 가족 같아요. 제가 무슨 행사 하면 김민정 시인 어머니께서 음식도 해서 보내주시고 그래요.

첼시의 한 갤러리

작업실

1996년에 처음 미국에 가셨죠. 심리학을 전공하다가 미술을 배우러 간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미술에 계속 관심이 있었는데 심리학을 하게 된 거에요. 하던 걸 하려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뭘 해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삶이 계속 미술 쪽으로 기울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뉴욕은 정말 예술의 중심지였어요. 한국에서는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인식하는 분이 많지만, 전시 횟수나 모든 통계를 봤을 때 뉴욕이 압도적으로 높았죠. 

아무 준비도 없이 막연한 상태로 맞닥뜨린 뉴욕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언어도 배워야 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니 힘들었지만, 동시에 너무 좋았어요. 사실 뉴욕의 외관이 서울이랑 정말 다르게 생겼잖아요. 마천루들이 솟아있는 모습이…. 처음 뉴저지의 아는 분 댁에 있다가 거기서 지하철 타고 47번가 근처에 내려서 뉴욕을 봤을 때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이제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좋았어요. 

‘자라면서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인 가치의 전복이 일어날 수도 있는 장소’라고 뉴욕을 표현했어요.
뉴욕만 해도 중산층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있어요. 허름하게 살아도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이뤄내는 사람이 있죠. 무조건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게 아니라요. 물론 잘 먹고 잘살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천편일률적인 생각이 되고,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가치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에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필요해요. 어떻게 훌륭한 작가가 재테크나 큰 평수로 이사 가는 것만 생각하면서 글을 쓰겠어요. 뉴욕에선 건물을 지어도 예산에 맞춰서만 짓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건축물을 세우자는 의도가 있고, 누군가 그걸 위해 투자하고 예술가를 고용해요. ‘정말 멋있게 지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잘 먹고 잘사는 중산층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누구에게나 똑같은 걸 요구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죠

미국에 15년간 머물렀지만 때때로 이방인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겠죠.
제일 힘들었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떤 문화 안에 있을 때 어린 시절이란 건 총체적인 거거든요. 어린 시절에 봤던 티브이 프로그램, 살았던 곳, 읽었던 책, 정치적 인물,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건 거의 섞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런데 또 타지에서 15년간 살았다는 건 고향에서도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거예요. 제가 여기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잃어버린 것들이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젊은 시절을 보내진 못했죠. 그렇게 한 번 떠나서 살게 되면 그냥 평생 이방인으로 사는 거예요.

세계가 다 타향이네요.
네, 정말 세계가 다 타향이에요. 여기도 속하지 않고, 저기도 속하지 않고. 뉴욕에 가면 장소는 익숙하지만 살아가려면 힘든 점이 있겠죠. 여긴 모든 게 좀 낯설긴 하지만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니까 살갑게 느껴지고요. 가끔은 내가 이 장소에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어디 살았는지 헷갈리고 그래요. 사실 어디 있건 내 세계가 있다면, 그것이 고향이건 타향이건, 그냥 일정 거리를 둔 장소인 거죠. 어디에 가도 나랑 완벽히 일치하는 문화라는 건 없어요. 한국 사람이라서 한국이 편한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죠. 그러다가 다른 문화에 가면 조금 더 잘 사는 사람들이 있고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더 잘 맞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향은 타향이죠.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는 건 단단한 힘처럼 느껴져요.
아직 구축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웃음). 글쎄요. 생각한다는 것은 물살에 저항해 가는 거라는 말을 하잖아요. 저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봐요. ‘너는 지금 네 얘기를 하고있는 거야? 남의 얘기를 따라가는 거야? 흥미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거 맞아?’ 지루하다는 건 남들이 한 얘기를 또 하는 거거든요. 내가 이해해서 내 방식으로 이야기한 것도 중요하고, 실제로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죠. 사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매 순간 그런 질문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나에게 충실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내 생각이라는 게 생기고, 조금씩 덜 흔들리게 돼요. 나라는 사람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 게 나이 먹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단어를 손 위에 올려놓고
비비고 굴려보면서

설터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단어를 손 위에 올려놓고 비비고 굴려보면서 느껴보려 한다. 그 단어가 최선의 단어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쓰인 단어와 표현들의 독창성을 살리면 한국말이 죽고, 한국말을 살리면 설터가 죽었다. 매일매일 희열이고 고역이었다. 그 현기증 나는 순간들이 인생처럼, 긴 오후처럼 지나갔다.

–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역자 후기 중에서

번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뉴욕에서 공부를 2년 정도 하다 보니 미술사라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때쯤 번역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이런 책 못 읽었는데 정말 좋다. 한국에 소개하면 어떨까?’ 왜 그런 사명감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혼자만 읽고 좋아하지(웃음). 예전부터 번역본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여러 번이라,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 문법도 공부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기획서를 만들어 좋아하는 출판사 몇 군데에 책에 대한 소개와 샘플 번역을 함께 보냈죠. 너무 신기하게 답이 오더라고요. 제가 제안한 첫 번째 책은 출판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기획서에 대해선 좋은 답이 왔어요. 다른 것도 해보라는 제안도 받았고요. 그러면서 번역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소설 번역도 같은 방식이었나요?
그즈음이 예술 서적 번역에 흥미가 가라앉던 시기였어요. 제가 좋아서 번역한 책은 상관없지만 대부분 정보 전달하는 내용이 많다 보니 재미가 덜 했거든요. 소설은 저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번역을 제안해주셨어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번역이나 제 글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고, 소설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떨리는 작업이었겠지만 줌파 라히리 소설의 역자 후기에서는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이 느껴졌어요.

줌파 라히리가 이민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고, 항상 책에 그런 주제로 글을 쓰다보니 비슷한 지점이 많아요.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았으니까요. 눈물이 날 때도 몇 번 있었어요. 미국에서는 이민자가 많기 때문에 흔한 소재긴 한데, 그중에서도 줌파 라히리는 인도를 배경으로 했고, 글도 좋아서 각광을 많이 받았죠. 신기하게도 줌파 라히리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가 제임스 설터에요. 다 연결되어 있네요, 의도한 것도 아닌데.

제임스 설터는 직접 소개한 작가라고요.
번역을 한번 해보니까 다른 작가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처음으로 소개한 거죠. 제임스 설터는 제 친구의 친구였어요. 제 친구는 시인이었고, 설터는 훨씬 연배가 높았지만 둘이 절친한 사이였어요. 저는 뉴욕에 있을 때 늙은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정서도 한국 사람이랑 닮은 부분이 많아서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이었죠. 영어도 천천히 말해서 좋았고요(웃음). 

소설가를 직접 만난 게 번역하실 때 도움이 되었나요?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별히 번역할 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목소리나, 뉘앙스를 떠올리면 ‘이 사람이 이런 걸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될 때가 있어요.

제임스 설터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젊어서 만났다면 정말 사랑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멋있는 분이에요. 처음 뵈었을 때도 70대 중반 정도였는데, 범접할 수 없는 분이었죠. 말 한마디 허투루 하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지성과 감성이 실려있어요. 물론 까칠할 때도 잦고요. 그런 분들은 책을 읽어서도 배우지만 만남으로서도 뭔가를 얻는 것 같아요. 그 시인 친구도 친한 친구지만 설터를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냥 위대한 작가인 거예요.

만났을 때 긴장하게 하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불편하고 싫은 것만은 아니죠.
맞아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주는 느낌인 것 같아요. 저는 앞에선 말도 잘 못하고 늘 버벅거렸어요. 물론 제 번역에 대해선 성실하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설터는 ‘조그만 아시안 여자가 무슨 번역을 하겠다고? 게다가 내 책을?’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설터는 나를 한 번도 믿어주지 않았어요(웃음). 그러다 한국에 와서 《가벼운 나날》 번역으로 메일을 주고받을 때 ‘네 메일을 읽어보니까 번역도 잘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죠. 

한국어판 나오고 나서도 나눈 이야기가 있나요?
잘 팔린다고 하니 좋아하셨고요(웃음). 뉴욕에서 몇 번 만날 뻔 했는데 엇갈렸어요. 그때 이번에 못 만나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마음이 아파요. 하루 차이로 엇갈려서 비행기 표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바꾸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제임스 설터 책은 특히 표지가 인상적이에요. 혹시 직접 제안한 건가요?
그렇죠. 그림을 그린 던컨 한나도 제 친구인데, 제임스 설터랑도 마주친 적이 있더라고요. 두 분이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책을 이렇게 만든다고 얘기도 하셨대요. 던컨과 설터 사이에는 교집합도 있어요. 던컨은 화가지만 엄청난 다독가고, 문학적인 사람이거든요. 문학 행사에 자주 가고, 아내도 출판사에서 일하고요. 그림에서도 내러티브가 느껴지잖아요. 영화의 한 장면, 소설의 한 장면 같고. 그런 게 잘 맞지 않았나 싶어요.

번역자가 표지를 제안하는 게 의례적인 일은 아니죠?
원래는 번역하는 사람이 표지까지 관여하진 않죠. 그런데 마음산책에서는 항상 저에게 표지에 관해 의견을 구해요. 미술을 했고, 《뉴요커》를 출간할 때부터 제 책에 나오는 그림을 사용해서 표지로 썼으니까요. 줌파 라히리 표지를 그린 에이미 베넷도 제가 선정한 작가예요. 줌파 라히리의 책이 에이미 베넷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던컨 한나는 잘한 것 같아요. 그 그림을 모은다고 사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젯밤》과, 《가벼운 나날》에서 나오는 여자들과 던컨 한나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과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제임스 설터와 던컨 한나는 여자를 볼 때 올드패션드old-fashioned하면서 도 페미니즘에 그다지 물들지 않은 독특한 그들만의 시각이 있어요. 섹시하다는 점에서 겹쳐요.

번역할 때 마주치는 작가들의 단어는 일상의 단어와는 다르게 모호할 때가 있지 않나요? 번역하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하나요?
진짜 안되면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사실 대답해줄 수 있는 친구는 거의 없어요. 문학 작품이기 때문에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은 대답해줄 수 있지만, 영어가 모국어이고 대학을 나왔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은 더 나은 표현이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계속 내버려 둬요.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요. 한 달 만에 뚝딱 번역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작품을 다 보고 다시 읽었을 때 통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단어들인가요?
영어에 ‘Flirt’라는 말이 있어요. 관심이 있어서 눈웃음도 흘리고, 남보다 친절하고, 섹슈얼한 뉘앙스가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요즘은 썸이란 말을 많이 쓰긴 하지만 그건 좀 광범위하잖아요. Flirt는 ‘이 예술가는 작업을 할 때 죽음과 Flirt를 한다’라는 문장처럼 다른 식으로도 많이 쓰여요. 나중에 이렇게 번역이 어려운 말들을 좀 모아보려고 해요. 

러시아어 통역사인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에 살다가 일본에 갔을 때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런 관념과 감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어색한 건 우리에게 그런 말이나 생각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영어로 하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데 한국말로 하면 희한하게 들릴 때가 많죠. 사실 완벽한 번역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번역이면 번역 맛이 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너무 한국말로 자연스럽거나 너무 토착적으로 들리면 오역인 것 같아요. 미국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약간의 낯섦과 함께 들려야 하는 거죠. 전라도 사투리처럼 구수할 정도로 한국말다운 표현은 삼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적인 취향에서 시작된 일

“한때 ‘난 취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어요. 그 말에는 자아가 만들어내는 사소한 위계들을 넘어 세상에서 마주치는 의미들을 차별 없이, 진정하게 받아들이자는 의도가 담겨 있었죠. 하지만 내 생각엔 그 반대가 맞다고 생각해요.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서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동안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그리고 취향이란 그 사람의 감성의 풍향계라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지표 같은 거라는 얘기죠.”

– 박상미, 《취향》 빌 벤튼과의 인터뷰 중에서

《취향》이라는 책, 뉴욕에서 만난 에드워드 호퍼나 제임스 설터, 스콧 슈만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토마스 파크 갤러리를 연 건 참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맞아요. 저는 예술과 항상 같이 있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영세해서 프라이빗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지만, 저도 언젠가 여유로워지면 오픈 갤러리로 운영하고 싶어요.

전시 기획도 직접 하고 작품 설명도 하신다고요.
네. 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열어요. 그런데 좋아한다고 해서 작품을 다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이 판매되는 것도 신경 써야 해서 할 일이 많죠.


예술품을 갤러리에서 보는 것과 직접 사서 집에서 소유하며 보는 건 다를 것 같아요.
갤러리의 작품들은 작가에게 가거나 팔릴 작품들이잖아요. 집에 걸어놓는 작품들은 계속 같이 갈 거니까 의미가 다르죠. 애착이 가는 걸 사게 되고, 그리고 소유하게 된 작품은 더 사랑하게 되는 측면이 있어요

처음 구매한 예술품은 어떤 건가요?
스테파나 매클루어의 <대화: Bookface ACAD 10pt: Courier 96 12pt>라는 작품이에요. 덩어리 같은 두 개의 형태가 있는데, 단순해 보이지만 타자기의 금속 활자 88개를 떼어내서 각각 88번씩 위에 떨어트린 거예요. 각각의 폰트가 7744번 찍힌 거죠. 폰트가 다른 두 개의 원이 대치하는 상황이라고 할까? 대화를 통해 의사가 소통된다는 느낌과 막혀 있다는 느낌을 함께 주는 것 같아요. 아무리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모두 폰트가 다른 존재들인 거죠.


예술품은 가격이 어떻든 참 사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목상을 두고 오래 망설인 적이 있었거든요. 결국 못 샀는데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요.
예술품은 항상 무리예요. 구두 하나 사는 것보단 늘 비싸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걸 덜 써요.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나도 할 순 없어요. 그럼 파산하지(웃음).

바깥에서 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화려한 것 같은데요.
예술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저는 뚜벅이인데요, 뭐. 집도 없 고, 차도 없고. 갤러리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 힘들어요, 보통. 저는 항상 내일 망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웃음).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들은 아티스트 못지 않아요. 예술병에 걸려서 헤어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인간들(웃음). 힘든 게 눈에 보이지만 좋으니까 하는 거예요.  

만나기 전 좋아하는 물건을 골라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런 게 없다고 하셔서 좀 놀랐어요.
제가 《취향》 같은 책을 썼으니 그런 게 되게 많을 것 같잖아요. 사실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저는 그냥 미술 작품, 예술품이 좋아요. 사용하는 물건은 눈에 거슬리지만 않으면 돼요. 거슬리는 건 갖다 버리고요. 좋아해서 아끼는 물건은 별로 없어요. 책은 내용은 좋지만 표지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기 많은데 책이 여러 권 있는 풍경은 참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서재를 보면 개인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고 책에 쓰셨는데, 박상미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책들은 뭘까요?
음, 항상 가까이 두고 펴보는 책들은 있어요. 로베르트 무질의 《Precision and Soul》은 항상 꽂아둬요. 정확성과 영혼이라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책을 펼치지도 않고 제목만 보면서 ‘음, 그래. 그거야.’ 하는 거죠. 보르헤스의 에세이도 항상 옆에 두는 책인데 하난데, 최근에 나온 《보르헤스의 말》도 참 좋더라고요. 《Bouroullec drawing》라는 화집에서는 여기 나온 드로잉의 형태를 따서 테이블 매트를 만들기도 했고요. 가지고 있는 책들이 기획의 모티브가 될 때도 있고, 편집이나 사진 구성을 참고하기도 해요. 책 자체는 그냥 물건으로서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집에도 가면 항상 책이 쌓여 있어요. 참고용으로 쌓아두는 것도 있고, 선물 받았는데 바로 책꽂이에 꽂아버리면 잊어버리니까 쌓아두는 것도 있고, 보고 싶은 책은 아니라도 한동안은 곁에 두고 같이 살아요.

보여주신 책들이 다 좋아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작가님은 언제 한 개인과 사적인 취향을 나누게 되는지 궁금해지네요.
취향이 같으면 처음부터 나눌 수 있겠지만 얘기를 하다가 발견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요. 예술을 보는 지점이 비슷하면 금방 가까워지죠. 제가 미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그런 게 되던 친구들이었죠.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그 순간이 더디게 왔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가끔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다 보면 퇴색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 말은 하고 싶은데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할 때도 있어요.
진정으로 공유가 되는 사람은 그 공유를 통해 더 넓어지게 돼요. 저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는데, 좋아하는 곳에 데려갔는데 영혼 없이 ‘좋네요~ 좋네요~.’ 하면 나만의 것이 없어지는 생각도 들죠(웃음). 반면 ‘여기는 참 좋네요. 그런데 저기는 가보셨어요?’ 이런 식으로 취향을 파악하고 내가 좋아할 장소를 예측해주는 사람도 있죠. ‘이 사람한테는 얘기하고 싶어.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라는 게 나중엔 감각적으로 느껴지실 거예요. 그리고 공유 안 해야 될 때도 있는 거예요. 나만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게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진 않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글도 쓰고, 갤러리도 운영하고, 작가들 만나고. 부족한 대로 지금이 되게 좋아요. 지금처럼만 계속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몰랐는데 목 뒤에 타투가 있네요. 무슨 뜻인가요?
초현실주의의 주요 개념이 된 로레아몽Laureamont의 시구예요. ‘수술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아름다운Beau comme la rencontre fortuite sur une table de dissection d’une machine à coudre et d’un parapluie’ 2011년 겪은 교통사고로 몸에 흉터가 많이 생겼어요. 어깨 위 보이는 흉터 근처에 하나의 인위적인 흉터를 더함으로써 극복해보려 했죠.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타투숍에 갔는데 타투를 하는 남자도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잘생기고 착한 푸에르토리컨이었는데 흉터가 있기에 타투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흉터는 아름다운 거라면서요. 참, 타투의 글씨는 던컨 하나의 필체예요. 제가 타투숍에서 폰트를 본 결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던컨에게 손 글씨를 부탁했어요. 덕분에 특이한 타투가 되었네요. 이 경험 자체가 저에겐 큰 치유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 타투가 좀 인기가 있기도 하고요(웃음).

그녀에게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내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좋아하는 것을 늘 곁에 두고, 때로는 격렬하게 붙잡았던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초연함 같은 것이었다. 세계를 다 타향이라 망설임 없이 말하면서도 곧 미간을 찌푸리며 “힘들어요.”라며 웃는 것처럼 그날 나눈 대화는 서늘하고 따뜻했다. 그녀처럼 옹골찬 시각을 갖고 싶어 사적인 질문도 해댔지만, 아직 이 미묘한 온도 차를 가진 사람의 눈을 통해 보고 싶은 게 더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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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 헤어 순수 김선우 메이크업 순수 최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