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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MBC 사람들
가장 가까운
방송국
포항MBC 사람들
여러 지역에서 모인 친구들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때면 꼭 한 번씩 엇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그거 안 나왔는데!” ‘글로벌’이나 ‘세계화’,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교과서에서 더욱 친숙하던 그때,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텔레비전을 보며 자랐다. 목적지가 경주로 정해지고 난 뒤, 나는 문득 경주를 위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우리 집 텔레비전 채널은 딱 네 개였다. KBS, MBC, TJB, EBS. 케이블 채널이 들어오지 않는 작은 농촌 마을이었기 때문에 채널 수가 참 소박했다. 여기에서 나의 고향을 짐작하는 사람도 있겠다. TJB는 대전, 충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지역 민영방송이다. 그러니까 어릴 적 나에게는 SBS가 아닌 TJB였다.
지방에 산다는 건 여러 문화적 혜택과 멀어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서울 친척 집에서 보던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멀어진다는 의미가 더 컸다. 월요일 밤의 <야심만만>이나 금요일 밤의 <이홍렬쇼> 대신 특집 다큐멘터리를 한다는 예고편이 나오면,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대체 그 재미있는 걸 왜 ‘잘라먹냐’고 불평을 하곤 했다.
나에게 경주를 떠올리는 건 추억을 더듬는 일이었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보던 지역 방송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경주의 방송국을 취재하기로 했다. 그때의 불만이 남아 “지역 방송국은 왜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방영해주지 않았나요?”라고 묻고자 한 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찾아간
포항MBC
구글에서 ‘경주 방송국’을 검색하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 여기서 ‘아무’는 경주에 위치한 지상파 방송국을 의미한다. 조금 더 찾다 보니 경주에 자리한 방송국은 없지만, 대신 KBS포항방송국, 포항MBC, 대구에 위치한 TBC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경주로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포항MBC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그곳에서 만든 경주 관련 다큐멘터리 <경술국치 백년, 석굴암 백년의 진실>을 보던 참이었다. 취재차 경주에 도착하고 이틀 뒤인 2월 2일, 그리하여 나는 포항행 기차를 탔다.
경주에서 기차로 30여 분, 그리고 차로 10여 분 정도 달리면 포항MBC가 보인다. 상아색 건물과 주차장 한쪽에 심어진 야자수가 왠지 정겹다. 포항MBC는 MBC의 지역 방송국 중에서도 중간 규모에 속한다. 지하 1층을 포함, 총 5층 규모의 건물에는 두 개의 텔레비전 스튜디오와 여섯 개의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서 백여 명의 사람이 우리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트로트 예능인 <트로통>과 토크 프로그램 <톡톡 동해인>을 포함, 포항MBC에서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비율은 전체의 14퍼센트 정도. 이는 방송법상으로 정해진 비율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체 프로그램은 전파를 타고 포항, 경주, 영덕, 울진, 울릉도로 송출된다. 지역 방송국에서 한 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지역성이다. 걸쭉한 포항 사투리를 떠올리며, 이곳에서 지역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항MBC를
만드는 사람들
3층 편성제작센터로 가는 계단에서 만난
김욱한 편성제작센터장
어느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이 나갈지를 결정하는 편성책임자이자 뉴스를 제외한 포항MBC의 방송물들의 총책임으로서 제작국장의 역할을 한다.
“저는 PD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가 제일 좋았습니다. 15년 전 <남산>이라는 4부작 다큐를 만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경주’ 하면 불국사나 첨성대를 떠올렸는데, 경주의 정수는 남산이거든요. 그걸 한 번도 다큐로 다룬 적이 없었어요. 1년 반 촬영하고 제작했는데,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포항MBC는 도시 규모나 방송사 규모에 비해서 다큐멘터리가 전국적으로 강세예요. 또 울릉도가 우리 방송 권역이지 않습니까. 매년 독도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8월 15일 광복절을 기점으로 내보냅니다. 일반 프로그램도 많이는 못 만들어도 누가 보더라도 인정하는 방송이에요. 품질이나 대외 수상이나, 그런 면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지상파 방송들이 힘들어졌는데, 지역 지상파는 더 힘들어졌어요. 활로를 찾아서 예전의 명성은 아니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방송을 제작할 수 있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1층 뉴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서영보 엔지니어
8년 차 엔지니어인 그는 넓게 아는 사람이다. 오디오, 비디오 등 담당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는 큰 방송국에 비해 조명, 비디오 컨트롤 등 그가 부조정실에서 담당하는 것은 많다.
“저희가 특집을 기획해서 음악 방송이나 주말에 나가는 프로그램을 자르면 게시판에 불이 나요. 재미있는 프로그램 할 시간인데 왜 그걸 자르고 재미도 없는 이런 것들을 방송하냐고 많이 글을 올리시죠. 그런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어요. 규정에 맞춰서 방송하다 보니 자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죠. 또 어떤 분들은 지역 방송을 조금 더 해달라고 하는데, 그것도 예산과 연결된 문제라…. 저희의 어떤 프로그램을 추천한다기보다, 애정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현업에 있으니까 알고 이렇게 얘기하지,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예전에는 방송국에서 송출하지 않으면 시청자가 볼 수 없는 구조였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실시간으로 볼 방법이 너무 많으니까요.”
3층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전경석 PD
지역민들의 삶을 다루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 열린세상>을 담당하는 PD다. <라디오 열린세상>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6시 5분에 시작해 한 시간 동안 전파를 탄다.
“지역에서 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 자연재해를 보도할 때 사명감이 남다른 건 당연한 거예요. 왜냐하면 그냥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 하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12일 경주에 엄청난 지진이 있었잖아요. 경주에는 월성원전이 있어요. 그 부분에 있어서 경주는 물론 포항, 울산 등 영남권 주민들이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죠. 그냥 ‘지진이 났어요.’ 하는 게 아니에요. 정확한 진앙지부터 진폭 관계, 앞으로 있을 여진 등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방송으로 전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일하면서 제일 좋고 뿌듯할 때는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달해 그걸 듣고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에요. 그리고 저희 코너 중에 ‘김씨 아재’라고 있어요. 4분 정도 되는 짧은 코너인데, 포항 사투리로 사회를 풍자하는 거예요. 이런 건 저희밖에 할 수 없어요.”
방송국을 나와
다시 경주로 향하며
생각해보면 ‘우리’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우리 동네에서 열리는 복숭아 축제를 소개한 뉴스를 볼 때면 ‘복숭아 아가씨’에 도전한 친구의 얼굴이 나올까 더욱 유심히 지켜봤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부를 때였으니 익숙한 거리가 화면에 잡히면 내가 아는 길이 나왔다며 그렇게 엄마를 불러댔다. 방송국을 나오며 우리만 아는 우리 이야기, 그리고 이를 담은 프로그램은 한정판 레고와 다름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중히 아끼고 애정을 보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포항MBC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를 추천해달라는 나에게 전경석 PD는 말했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가면 제일 쉽게 접하는 게 뉴스일 거예요. 텔레비전을 통해서 뉴스를 접할 텐데, 어떻게 보면 유명하거나 많이 알려진 앵커와 기자는 아니죠. 하지만 지역에서 지역의 소식을 위해 발 빠르게 뛰는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뉴스가 참 좋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일상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지역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숙소로 돌아와 경주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봤다. 다음 날 어제의 경주가 조금은 달라 보였다.
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