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쓰는 마음

그렇게 작사가가 될까

가사를 쓰는 마음

그렇게 작사가가 될까

누구나 뭐든지 쓸 수 있다면, 내가 가사를 쓸 수도 있을까?

가사를 써보기로 했다

자신의 언어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직업 중 작사가는 조금 특별하다. 혼자 시작했지만 결코 홀로 완성할 수 없고(멜로디와 이 노래를 불러줄 가수가 필요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려한 사람들이 화자로 등장하니 덩달아 화려한 직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사가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갖고 무작정 가사를 써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책을 샀다. 내가 산 책은 김이나 작사가가 쓴 《김이나의 작사법》. 책날개에 쓰인 2015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2만여 명의 회원 중 저작권료 수입 1위라는 프로필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작사법’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작사가가 무언가 알려줄 것 같았다. 나는 작사가가 되는 법이 아니라 작사하는 법이 궁금했다. “싱어송라이터가 자기만의 화풍을 가진 화가라면, 상업 작사가는 누군가가 꾸어낸 꿈을 토대로 밑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자다.” 싱어송라이터가 될 자신은 없으니 단 한 곡일지언정 상업 작사가를 목표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목표만 거창할 뿐 막상 가사를 쓰려니 한 줄을 써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곡 없이 가사를 쓰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책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캐릭터를 만들고 발음을 디자인하기 전에, 그냥 이 벽 앞에서 뒤돌고 싶었다. 그때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왜 우린 처음을 두려워하죠? 하루하루가 그 날로선 처음이고 아침마다 새롭죠. 똑같은 날을 두 번 살진 않는데 아침에 깨는 걸 두려워하지 않죠. 왜죠?” 그래, 가사를 쓰자.

무엇을 쓸까?

먼저 소재를 생각했다. 이왕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좋아하는 가사를 쓰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차트에 오른 100곡을 차례로 들었다. 사람들이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첫째로 재생되는 곡은 이별 얘기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다음 곡의 소재는 인스타그램. 음, 나는 트위터를 소재로 해볼까? ‘리트윗으로 보게 된 너의 소식, 잘 지내니?’ 이건 아닌 것 같다. 다음은 청춘이 소재다. 그리고 사랑, 사랑, 이별, 이별…. 김이나 작사가는 책에서 “수십 년 넘은 가요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소재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이다. 다양한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공통분모로 꿸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사랑과 이별 앞에 선 남녀의 감정이기 때문일 테다. (중략) 결국 문제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소재가 아니다. 이걸 어떤 화법으로 풀어내느냐가 곡의 개성을 좌우한다. 가사 속의 캐릭터는 화자(가수)의 성격, 환경, 성별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지는 한 명의 가상인물이다.”라고 했다. 작사계의 《수학의 정석》이며 《성문종합영어》가 아무리 그렇다고 말해도, 사랑과 이별은 아닌 것 같았다. 흥미도, 어떠한 화자가 될 자신도 없었다. 아무리 내가 싱어송라이터가 될 떡잎조차 없는 사람이라지만 하나 정도는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청춘이다

한 장면이 생각났다. 사실 가사를 쓴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베프’ C와 나는 힙합 팬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와 통학을 하던 C는 종종 등교 시간에 만나 함께 계단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꼈다. 저녁 시간에 운동장 트랙을 돌며 또 이어폰을 나눠 꼈다. 때로는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을 랩으로 적어 함께 불렀다. (당시 〈고등래퍼〉 같은 프로그램이 없었던 게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 한쪽의 계단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듣던 장면. 이때의 이야기를 쓰면 괜찮은 게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나는 줄 몰랐지만 가장 빛났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 어쩌면 이때는 다른 형태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학창 시절을 추억하는 가요도 꽤 많다. “기억해 복도에서 떠들다 같이 혼나던 우리 둘”로 시작하는 f(x)의 ‘Goodbye Summer’나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 같은 곡들. 나는 20대 중반의 여성 화자가 등장하는, 구체적으로는 나처럼 여고를 졸업한 여성 화자가 졸업 후에 그때를 회상하는 가사를 쓰고자 했다. 마음속으로는 10대와 20대의 경계에 있는, 그러니까 몇은 졸업을 했고 몇은 아직 고등학생인 여자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며 썼다.

이 짧은 가사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했던가. 내가 보낸 학창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르도록 구체적인 상황을 그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교복을 벗고 어른이 되면 좋은 것만 있을 줄 알았는데 지친 퇴근길에서는 자꾸 추억만 떠올린다. 그리고, 가사는 정말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작사가의 말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밑줄 그은 문장, 그리고 거기에 덧붙인 생각

발음을 다루는 법, 포인트를 주는 법, 서사를 끌어가는 법, 리듬을 살리는 법… 그 눈이 트이면서부터 진짜 작사라는 걸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노래 한 곡에도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단순히 상황이나 감정만 나열해서는 안 된다. 가사는 나의 감정의 배수구가 아니다.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많이 듣고 분석하라. 내 맘에 드는 가사만 놓고 보지 말고, 히트를 친 데다 롱런하는 곡이 있다면 왜 그 가사가 좋은 건지, 왜 그 가사를 작곡가나 제작자가 선택한 건지 파고들어라.

f(x)의 ‘Electric Shock’가 발매된 2012년을 기억한다. 이런 가사도 있구나, 이것이 신인류의 언어일까? 제목처럼 약간의 쇼크도 받았다. 이 곡의 작사가인 서지음 작사가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사행시를 넣어달라는 기획사의 요청이 있었고 결국 살아남은 단어가 ‘전기충격’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작사가의 일이고, 이것이 좋은 가사일 것이다.

전 전 전류들이 몸을 타고 흘러 다녀
기 기 기절할 듯 아슬아슬 찌릿찌릿
충 충 충분해 네 사랑이 과분해
격 격 격하게 날 아끼는 거 다 알아


– f(x), ‘Electric Shock’ 중에서

나는 작사 작업을 앞두고 가장 먼저 곡의 분위기를 파악한 뒤, 이 캐릭터 설정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중략) 캐릭터를 설정하는 요소들은, 너무 사소하고 사적이지는 않게, 하지만 살아 있는 ‘인물’이 느껴지도록 디테일하게 깔아두는 것이 관건이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을 때 특히 더 곡의 캐릭터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의상과 춤 등 무대 구성 또한 곡의 화자가 할 것 같은 모습으로 꾸미기 때문이다. 캐릭터에서 곡의 개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캐릭터를 통해 퍼포먼스를 구현하기도 하니 이 캐릭터의 콘셉트를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수도 있겠다.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이라는 말을 나는 이 책에서 눈에 못이 박이도록 언급할 것이다. (중략) 작사가의 일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곡을 최대한 살리는 발음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렇다,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이다! 게다가 모든 가사는 ‘원곡의 분위기와 성격’을 우선시하여 써야 한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도 작사가도 아닌 이상 데모(제작자에게 들려주기 위한 용도의 음원)를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책에서는 외국곡에 가사를 붙여보는 연습을 하고 가사를 완성하면 멜로디에 맞춰 불러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개사는 추천하는 방법이 아니니 잘 못 알아듣는 외국곡의 음절 수를 추정해 밑그림을 그리고 가사를 써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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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