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만드는 사람

박가공

가 구
만드는 사람
BAKGAGONG

길종상가. 그가 관리하는 상가 이름이다. 취미는 사진 찍기. 701호 사진관도 그의 차지다. 204호 인력사무소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사람 역시 그다. 그럼 101호에서 가구를 만드는 저 사람은 정체가 뭘까. 도대체 상가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걸까?

INTERVIEW 박가공 박길종

521호 길종상가 관리사무소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이해하려면 ‘길종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길종상가는 2010년 겨울,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 선보이게 된 온라인 상가예요. 홈페이지를 하나 선물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다가 편의상 제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고 구체적인 구상을 하게 된 거죠. 낙원상가나 세운상가같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극장과 카바레, 아파트, 시장, 이런저런 상점들이 함께 들어있는 공간 말이에요. 길종상가에 입주한 상점들은 현재 제가 운영하는 ‘가공소’와 ‘인력사무소’, ‘사진관’이 있고, 식물과 조명, 소품을 취급하는 ‘다있다’와 시각 작업물을 만드는 ‘영이네’도 있어요. 홈페이지를 보면 하나하나 폴더명이 있는데 그게 각 상점들의 간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굳이 ‘상가’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있나요?
상가 안의 상점은 언제나 바뀔 수가 있잖아요. 무엇이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상가의 모든 상인들이 서로 수평적인 입장에서 무언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종종 ‘길종상가’라는 이름 때문에 저를 대표나 운영자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희는 그런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다있다’를 운영하는 김윤하와 ‘영이네’의 송화백 그리고 저는 서로를 상가 안에서 함께 작업하는 상인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처음에 상가를 만들고 구성원들이 함께 무언가를 계획할 때만 해도 서로의 가치관이나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항상 잘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공동 작업을 할 때 더 시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결과물이 새롭고 재미있게 나오는 거죠. ‘이 친구는 이걸 좋아하는구나.’, ‘이 친구는 이걸 잘하지.’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역할을 분담하며 만족스러운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아요.

실제 상점을 만들기도 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간판을 내리고 다시 홈페이지만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온라인을 통해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게 실제 물건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만나서 어떤 프로그램을 계획할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 작업의 특성상 외부 활동이 잦아서, 운영 시간동안 상주해 있기가 어려웠어요. 물건을 가져다 파는 일이라면 오프라인 매장이 유리할 수도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2년 정도 운영하다가 다시 온라인 활동에 집중하기로 한 거예요. 다만 어떤 공간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는 대여하는 방식으로 장소를 확보해요.

오프라인 공간이 없어져서인지 예전 ‘듣말마(듣거나, 말하거나, 마시거나)’나 ‘직업학교’ 같은 체험 프로그램 소식이 사라졌어요.
작년 봄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잠시 쉬는 중이에요. 저희 각자의 작업을 병행하며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를 하는 일이 조금 벅차기도 했고요. 하지만 ‘코트대전’이나 ‘3, 4, 옷’ 같은 내부 행사나 외부 전시 활동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상가가 생기고 초반에는 다양한 매체에서 길종상가를 소개했는데, 그 뒤로는 소식이 뜸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궁금했어요.
이미 다룰 만큼 다 다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매체에서는 한 번 소개하고 나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죠.

101호 가구 만드는 가공소

각자의 작업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가공소가 대표적인 작업이에요. 주문을 받아서 가구를 만드는 일이죠. 초반에는 나무를 사용한 가구를 제작해서 목공소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금속이나 여타의 재료들도 많이 사용해서 가공소라고 이름을 바꿨어요. 사실 박가공이라는 이름도 그때부터 시작된 거고요.

가공소를 하기 때문에 박가공인가요?
박길종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상가의 대표로 인식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표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박가공이라고 이름을 지었죠. 그런 가공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요. 조금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이름 같은 건 최대한 쉽게 지으려 해요. 홈페이지 카테고리나 제가 만드는 가구의 이름도 기억하기 쉽도록 하는 게 우선이고요.

그러고 보면 가구를 만들 때도 ‘멋 부리는 것’을 거부하고 쉽고 편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거의 ‘쓸모’ 위주의 제품을 만드는 식으로요.
아무래도 주문제작 위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우선적으로 고객이 요청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려 해요. 고객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능과 디자인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하는 거죠. 사실 가구를 만들 때 기능에만 신경 쓰려 했다면 굳이 고객이 저를 찾지도 않겠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 가구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기성품을 만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미리 만들어놓은 제품에 번호를 매겨놓고 그중에 고르게 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요. 일단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집을 방문해서 가구가 놓일 장소나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고, 어떤 의도로 제품을 사용하려는지 고객과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다 보니 매번 다른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단 하나뿐인 가구죠.

일일이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기존 제품을 조금씩 변형하는 식으로 만들면 보다 많은 제품을 만들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저는 매번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작업하는 방식이 좋아요.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그걸 헤쳐나가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는 편이죠.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작업 스타일이 반영된 셈이네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단순히 장사를 하려는 느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작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고요.
싫어하지는 않고요. 다만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나 사장이나, 굳이 호칭을 정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길종상가를 처음 만들 때 정했던 운영방침이 있는데,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것들을 토대로 무언가를 실행하자는 거였어요. 어떤 단어나 이론에만 빠져서 그 안에서만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 같았거든요. 예술성이나 돈, 또는 재미의 비중을 묻는다면 딱히 어느 쪽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에 이걸로 떼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도 아니었고 단지 홈페이지가 있는데 활용해보자, 하는 생각이 컸던 거니까요. 지금도 딱히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그때 마음은 어땠나요?
그때도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했죠(웃음).

수입은 어떤가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은 안 해도 될 정도? 부유하지는 않지만 제가 정해놓은 기준 안에서 월세 내고 먹고살 정도는 돼요. 욕심이 큰 편이 아니라서.

사실 온라인으로만 보자면 ‘아, 이 사람이 재미있는 작업들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실제 제품을 의뢰하려면 막막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격이 정찰제가 아니라서 감을 잡기가 조금 애매하거든요. 홈페이지에 명시한 ‘적절한 금액’이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그게 조금 어려운 문제인데요. 같은 책상 디자인을 만들더라도 재료에 따라서 가격이 확 달라지기도 해요. 거기에 만드는 시간, 배송비용 등도 고려해야 하죠. 그건 항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맞춰가야 할 부분이에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주문제작 가구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아서 종종 금액 부분에서 이견이 생기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일반 가구보다 주문제작 가구가 저렴하지 않겠느냐 하시는데, 쉽게 생각해서 기성제품이라고 한다면 똑같은 가구를 대량으로 만들 때 기대할 수 있는 비용절감을 놓치게 되죠. 맞춤양복과 기성양복의 가격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거기에 디자이너로서의 가치도 포함되는 거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만약에 어떤 사진을 가져와서 똑같이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다면 저는 정중히 거절을 해요. 그건 굳이 제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작업이고, 오히려 목공소에 의뢰를 하면 저보다 더 잘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디자이너로서 기획 구상부터 디자인, 배송까지가 온전히 저의 몫인 거죠.

계속해서 다른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려면 창의적인 생각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연습은 어떻게 하나요?
의뢰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번 다른 디자인이 떠올라요. 우선 기능이 다르니까요. 일단 어떤 구조가 떠오른 다음에는 기존의 디자인보다 얼마나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죠. 그 외에도 SNS를 통해서 소통하기도 하고, 전시나 영화 등을 보면서도 디자인을 봐요. 길을 다니면서도 늘 주변을 보고, 어떤 상점에 가도 인테리어를 먼저 살펴보게 되고요. 사실 책에서 보는 것보다 직접 적용한 사례들을 보면 사이즈나 비율, 비례감 같은 것들이 더 와 닿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저는 항상 최근의 작업들만 생각하고, 지나간 건 그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에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과거의 작업들을 보면 ‘아, 이때 이런 게 있었지.’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거죠. 최근에는 만화책 전용 책장의 반응이 좋았어요. SNS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같은 제품을 원하시는 고객도 많았죠.

예전에는 리사이클 아티스트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나요?
사실 그 부분에서는 오해가 많았어요. 저는 그걸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예전에 《이태원 주민일기》라는 책에서 했던 기획이었는데, 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을 새로 리폼해서 가구로 만드는 작업이었죠. 하지만 그건 책을 위해 일시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어요. 그게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다 보니까 마치 제가 리사이클링 작가, 폐품 아티스트라는 이미지로 알려지게 됐던 거예요. 그런 타이틀이 흥미를 끄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제가 친환경적인 사람이라거나 지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자 그런 일을 계획한 건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리사이클링 작업 때문에 유명해졌는데 도리어 그게 발목을 잡은 셈이네요.
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인터뷰를 진행하더라도 리사이클 이야기는 싣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잖아요. 지금은 덜 하지만 한동안 많이 고민됐던 부분이었죠.

204호 간다 인력사무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시죠? 사진관이나 인력사무소 말이에요.
사진관은 취미로 하는 일이고요. 인력사무소는 재미삼아 하는 거고요. 같은 말인가(웃음).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 인력사무소를 한다는 게 조금 낯선데요.
처음에 상점을 만들 때 제가 해왔던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다 보여줄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가구를 만드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사진을 찍는 것도 다 마찬가지였고요. 그 외에도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당시가 20대 후반이었고, 남들보다 독립을 일찍 한 편이어서인지 제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들의 고민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들이 처한 난처한 일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잘 없잖아요. 그게 비단 ‘전기세 내는 방법’ 같은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사를 돕기도 하고 무언가를 설치해주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오늘도 어떤 분께서 아픈 여자친구에게 대신 약을 사다줄 수 있느냐고 의뢰를 했는데, 일정이 꽉 차서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죠.

인력을 제공한 대가는 어떻게 받나요?
원래는 물물교환을 했어요. 도움이 됐다고 느낀 만큼 자발적으로 대가를 지불받는 거였죠. 소중한 책을 받기도 하고, 삼겹살을 얻어먹기도 했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아무거나’ 달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출장비 명목으로 약간의 돈을 받아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른 스케줄이 있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돈벌이가 아니라 재미로 하는 일이죠.

원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좋아하나요?
그보다는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해요.

그럼 앞으로 새로 계획하는 게 있다면요?
일단 지금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게 첫 번째고요. 앞으로의 큰 계획은 잡지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관심 있는 걸 살려서 집과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20~30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직은 생각만 하는 단계지만요.

마지막으로, 각 상점에 들어가는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거요? 아무 의미 없어요. 그냥 좋아하는 숫자 적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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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