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생각해본 여행의 물리학

홍콩. 나는 여기에 왜 또 온 것일까.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누군가와 함께 떠나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생각해 본 여행의 물리학

“거기는 꼭 다시 가보려고.” 세상에 좋은 장소는 널렸고, 나는 이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다시 가본 적은 없었다. 추억은 끄집어내어 볼수록 아름다워지고, 다시 짐을 챙겨 나서봤자 더 좋은 추억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치하게도, 나에게 여행이란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박제해 버리고픈 첫사랑 같은 것일지도. 그래서 곧 홍콩에 도착한다는 잡음 섞인 안내 방송이 들릴 때까지도, 비행기 다리가 둔탁하게 홍콩 땅 위에 부닥칠 때까지도 의아했다.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여행지, 홍콩. 나는 여기에 왜 또 온 것일까.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막차를 놓친 새벽, 몽콕Mongkok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지만 걱정보다 감탄이 먼저 튀어나왔다. 새벽이 이렇게 더울 수도 있다니.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고 산다지만, 7월의 홍콩은 어떤 변이를 거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살기 힘든 곳 같았다. 앉을 만한 곳을 찾아 걷다 보니, 길 한복판에 뜬금없이 놀이터가 나왔다. 좁은 부지에 미끄럼틀만 쓸데없이 높은 놀이터. 그 괴상한 생김새가 마치 홍콩의 축약판같이 느껴져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파른 산기슭에 빼곡하다 못해 기이하게 꽂혀 있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그 사이로 갑갑할 만큼 낮은 지붕이 얹어진 육교들. 수직과 수평의 극단적인 고도 차에서 나는 고산증을 앓는 사람처럼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이 놀이터는 나 같은 홍콩 초보자들을 위해 마련된 트레이닝 코스가 아닐까?

홍콩에 오시면 사물의 크기에 대한 당신의 인지 체계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인지 체계를 홍콩에 맞추기 위한 초보 코스입니다. 놀이터가 더는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면 홍콩으로 이동하세요. 

더위 때문에 나는 머리가 이상해지고 있었고, 홍콩 아저씨는 배를 반쯤 깐 채로 시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열대야가 계속되는 서울의 한강 둔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이곳은 몽콕. 강바람은커녕 낮 동안 한껏 가열된 대기는 미동도 없다. 흰 메리야스 위로 아저씨의 동그랗게 솟은 배가 오르내리며 떨어뜨리는 땀 줄기,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홍콩의 7월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2월이다. 덜 덥겠지. 이것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홍콩에 가게 된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서

일주일 내내 비는 내릴 것 같다가 내렸고, 그칠 것 같다가도 내렸다. 홍콩은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던 친구의 말이 계획적인 골탕으로 느껴졌다. 비로 모자라 천둥 번개가 치고 빌딩들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 날 밤. 흰 양말이 투명해지고 발가락 끝이 차가워지자 그만 외로워졌다.

“H, 어디야? 저녁 같이 먹을래?” “응. 침사추이 역 9번 출구에서 보자.”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놓고 비행기 티켓을 뒤적이던 중 H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물한 살에 H를 알게 되었고, 지금 나는 스물여덟 살이다. 횟수로는 칠 년이었지만, 그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삼년간 그를 보지 못했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까지는 쉽게 구부리다가 새끼손가락에서 잘 세어지지 않는 그런 기간이었다. 그는 수업때문에 홍콩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니 나의 휴가 일정과 그의 홍콩 일정이 우연히도 꼭 맞물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우리 홍콩에서 볼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 사랑스러운 친구와 웃고 떠드는 시간이 여행지라는 장소와 만난다는 그 조합을 나는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맛있는 갈비탕과 신선한 샐러드를 함께 비벼 먹으라는 것 같달까. 갈비탕도 샐러드도 아닌데 이상하게 배만 불러오는 그 포만감이 좋을 리가 없다. 편식을 하는 심정으로 여행지와 친구를 가능한 한 멀리 떨어뜨리려 했던 나의 다년간의 노력이 아주 작은 우연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니 실로 오랜만이다. 여행지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는 일은.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약속 시각보다 30분 늦을 것 같다는 H의 문자를 본 것은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역 앞 스타벅스에서였다. 한 시간… 주변이라도 돌아볼까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금세 달아났다. 쌀쌀한 바람을 맞아 몸은 식은 죽 덩이 같았다. 에스프레소 더블샷에 설탕 두 봉지를 털어 넣고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홍콩의 스타벅스에서는 하루 20분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 H와 문자를 몇 개 주고받고, 페이스북에 사진 몇 장을 올리고 나니 화면은 알 수 없는 중국어(아마 와이파이를 더 쓸 수 없다는 내용) 페이지에서 더는 넘어가지 않았다. 우산을 접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산을 써도 머리가 젖는 날씨라니. 이보다 더 처량한 게 또 있을까. 

그가 오기로 한 시간을 10분 남겨 두고 카페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고, 비를 피해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채소 코너, 정육 코너, 생필품 코너를 두 번씩 돌고 나서야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것도 살 게 없어서 사과 몇 알을 샀다. 딱히 사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여행지만 가면 꼭 한 번씩 사게 된다. 아마 너무 흔해서일 거다. 너무 흔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 사과는 신기하게도 어디에나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물었을 때 ‘사과’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어디에도 없다. 이상한 일이다. 사과는 일상 같은 게 아닐까. 어디에나 있는데 아무도 가장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저마다 손안에 꼭 쥐고 있는. 사과 한 알을 아작아작 씹으며 역 앞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과의 뼈마디가 드러나고 손가락 끝이 끈적해져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으면 문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여기가 미국이라면 나는 테러범으로 몰릴 수도 있겠지? 수상한 동양인 여자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계속 체크하면서 30분이 넘도록 역 앞을 서성인다. 손에는 사과 폭탄을 들고. 푸흐흐, 방귀 같은 웃음이 실없이 새어 나왔다. 수상한 동양인 여자가 혼자 웃는다. 테러범이 아니고 그냥 미친 사람일지도 모른다. 저건 그냥 흔한 사과일지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감시하는 미국인 요원 두 명을 상상하며 사과 한 알을 또 꺼내 물었다. 것 봐, 그냥 사과잖아. 나를 테러범으로 지목한 의욕 넘치는 요원은 머쓱한 얼굴을 한다. 머릿속에서 미국인 요원들이 퇴장하고 한참이 지나서도 H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역 안까지 불어오는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

“희선아!” 뒤를 돌자 땀과 비를 줄줄 흘리며 H가 뛰어오고 있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과 미안하다는 말이 뒤섞여 그는 작은 짐승이 흐느끼는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를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화를 낼 기운이 없었고, 이상하게 화도 나지 않았다. 뜨끈한 김을 내뿜는 그의 몸이 내 몸에 닿고 나서야 내 몸이 아주 차갑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포옹은 뜨겁다기보다 얼얼하다는 것도. 그와 나의 체온이 비슷해지고, 얼얼함이 선선해지자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재생되었다. ‘기억’이라기보다 ‘재생’이었다. 실수로 들어선 시골 마을 회관에서 아주 좋아했지만 스토리는 모조리 잊어버린 옛날 영화가 상영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장면을, 베를린 203호의 현관문이 열리고, 차갑게 깜빡이던 계단 보조 등이 집 안의 전구 빛으로 달짝지근하게 물들어가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이미 오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5월의 베를린은 쌀쌀했고 뜨듯한 지하철 안에서 깜박 잠이 든 것이다. 아이스크림 통을 정리하던 아르바이트생은 영업이 끝났다는 손짓을 했다. 베를린에서 묵고 있는 집의 주인, 카우치서퍼* G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9시였다. 그는 아마 조금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갔을 것이다. 나도 그의 집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이 ‘사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집에 돌아갔다’는 자명한 사실을 못 들은 척 나는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현실 부정이었는지 오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사실’이 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불이 꺼지고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왔다. 그는 나에게 독일어로 무슨 말을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중앙역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있을 사람처럼. 길 맞은 편 가게들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어둑한 건물들 틈새로 고양이 두어 마리가 빼꼼히 보이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나면 사라졌다. 정말 고양이들이 저기에 있었나? 나는 계속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내가 정말 ‘그’를 기다리고 있나? 아니면 유령을? 나는 유령의 친구가 되어버렸나?

정신을 차리고 나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행히도 주말에는 지하철이 24시간 운행했고, 지하철에서 내려 몇 번이나 길을 잃고 나서야 G의 집 앞에 도착했다. 새벽 2시,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지만 공기가 찢기는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땅콩버터 토스트를 입에 문 G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데 회로가 뒤엉키고 배터리까지 간당간당한 고물 기계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에게 몸을 기대자마자 묵직한 졸음이 쏟아졌다. 따로 잘 곳이 마땅치 않아 한 침대의 양 끄트머리에 붙어 위태롭게 잠을 자던 우리는 그날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의 품에서는 고소한 집 냄새가 났다.

특별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 나는 전 일정을 취소하고 G를 따라 나섰다. 여유가 많은 카우치서퍼들은 가이드를 자처하고 유명 관광지를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의 그는 달랐다. 아침부터 밑바닥이 헤진 실내용 슬리퍼를 만지작거리며 방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방으로, 그는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그는 전 여자친구의 집 우편함에 슬리퍼를 넣어 두려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손발이 찬 그녀는 슬리퍼가 없으면 집 안을 잘 돌아다니지 못했고, 이것은 그녀가 특별히 좋아했던 슬리퍼라며. 그녀의 집은 그의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치는 내내 그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 없었다. 그는 얼마나 많이 이 길을 오고 갔을까. 그래서 언제쯤 그는 이 길을, 풍경을 외우게 되었을까. 지금 그는 다시 오지 않을 이 길을 새기고 있는 걸까 지우고 있는 걸까. 나는 이따금 슬리퍼를 꼭 쥔 그의 손등을 간지럽혔다. 그러면 그는 나를 보고 살짝 웃다가 다시 창밖을 봤다. 

그녀의 아파트 우편함은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유리문 안에 있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이대로 멀뚱히 서 있다가는 그녀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파트를 둘러싼 나무 울타리 뒤로 몸을 숨긴 채 그녀가 아닌 누군가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 다행히도 한 아저씨가 그녀가 사는 동 안으로 들어갔고, 재빨리 그의 뒤에 붙은 G는 우편함 안에 슬리퍼를 넣을 수 있었다. 무슨 대단한 작전에 성공한 양 우리는 깔깔거리며 아파트 지역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그가 다니는 대학교에 가서 학식을 먹었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서 너와 상관없는 일로 하루를 다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사실 괜찮은 게 아니라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 그런 말은 쑥스러우니까. 

G를 만난 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사정을 나에게 말했고, 나는 사실 쓸데없어 보이는 그의 행동에 동참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그를 대하고 싶었다.

*카우치서퍼 Couch Surfer
자신에게 남는 시간이나 공간을 여행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여행자 커뮤니티, 카우치서핑(couchsurfing.org)의 멤버를 부르는 말

생각해 본
여행의 물리학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은 어떤 논리를 갖고 움직이는 것일까? 무엇이 너와 나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반걸음, 한 걸음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가까워졌을까? 가끔 그 밤들을 생각한다. 으레 부지런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여행에서 두 발을 멈췄던 그 밤, 가장 정적이었던 두 시간을. 그때 사실 나는 가장 크게 움직이고 있던 게 아닐까. 너와 내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모순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침사추이의 스타페리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홍콩 섬 중앙역으로 돌아오면서 H와 나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고, 홍콩의 야경을 감탄도 없이 지나쳤다. 오늘 하루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이 축축하고 한기가 드는 홍콩을 버텨냈고, 이제 같은 곳에서 조금 더 가까이 앉아 아주 게걸스럽게 저녁을 먹을 것이다.

1인분의 여행

구희선 지음 | 북노마드 | 224쪽
한때, 여행에세이만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손이 가지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연히 함께 서점에 간 이가 이 책을 쥐어줬을 때도 사실 시큰둥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 장 들춰보다 마음이 묘하게 움직여 결국 오랜만에 여행 책을 집으로 들였다. 그녀의 담백한 문체에는 특별한 기운이 있는 듯 하다. 글 사이의 눅눅한 흑백사진들은 그 덤덤한 기운을 배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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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선아

글 구희선 사진 구희선 이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