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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疏鬱
FOOD
소울푸드
소울疏鬱은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풀어헤친다’는 뜻으로, 언뜻 보면 소울soul과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가 있다. 풀어헤친다, 그 얼마나 시원한 말이던가.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세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소울疏鬱푸드는 무엇인가요?”
음식을 즐겨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음식을 즐겨 ‘쓰는’ 푸드칼럼니스트 그리고 그저 음식을 즐겨 ‘먹는’ 에디터가 선택한 세 가지 음식은 너무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인생이 고급스러운 스테이크 같을 수 없는 법. 짜고, 맵고, 달기까지 한 길거리 떡볶이를 닮은 게 우리의 진짜 삶인지라 가식이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했다. 무엇이 됐건 가식은 더부룩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불편할 뿐이다.
RECIPE + ESSAY 글 이혜인
토요일 라면이 아니라면
재 료 라면, 계란, 대파, 엄마
1. 끓는 물에 수프를 넣고 3분 정도 기다린다.
2. 면을 넣고 중불에서 3분 정도 끓인다. (중간중간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공기가 스며들게 한다.)
3. 계란을 넣지만, 노른자를 피해 흰자만 풀어준다.
4. 대파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는다.
5. 계란이 반숙이 될 정도만 익히고, 큰 그릇에 쏟는다.
6. “벌써 다 불었어, 이것아! 나와!”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면 방에서 나온다.
7. 그럼에도 불지 않은 탱탱한 라면을 먹으면 끝.
TIP
자작한 국물이 남았다면 밥을 넣고 약불에서 눅진하게 끓인다. 밥알들이 잘 풀어지도록 숟가락으로 젓는다. 마지막으로 김가루를 솔솔 뿌리면 맛있는 죽이 완성된다.
언젠가부터 ‘소울’이란 단어는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울푸드, 소울메이트, 소울뮤직 등… 그렇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보니 진정성이 떨어졌달까. 본래 영혼이라는 뜻에서 ‘영혼’이 없어진 셈이었다. 에디터라는 사명감에 근사한 요리에 대해 써보겠다는 다짐도 잠시, 고민 끝에 고른 음식은 ‘라면’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한없이 가벼운 느낌을 주는 음식이지만 라면처럼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진하고 자극적인 국물과 입안으로 호로록 빨려 들어오는 면발에 진심으로 감동받곤 한다. 또 라면에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그 맛도 다양해지니, 먹을 때마다 입에서 ‘흐어~ 크으~’ 와 같은 감탄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다. 시원하게 먹고 싶으면 김치를, 담백하게 먹고 싶으면 대파를, 느끼하게 먹고 싶으면 치즈 한 장을 넣으면 라면의 맛은 백스테이지의 모델들이 의상을 갈아입는 것처럼 금세 휙휙 바뀐다. 어떻게 끓여도 맛있는 게 라면이지만,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예찬한다. 학생 때 토요일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먹는 라면의 맛은 특별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노른자의 동그란 모양은 유지하되 흰자는 풀고, 대파가 송송 들어간 라면은 정말 별거 없었지만 맛있었다. 그날의 모습들이 생생히 기억되는 것도 어쩌면 맛보다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모르겠다.
기억하건대 엄마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언니에게 면을 많이 덜어주었고, 내게는 무식하게 큰 국자로 국물을 떠주었다. 그리고 찬밥 한 덩이를 푹 말아주었다. 우리 세 모녀는 모종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토요일 점심을 보내곤 했다.고작 인스턴트 라면 몇 봉지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맛보게 해준 것이다. 그 시절 라면의 맛을 찾기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금방 포기했다. 나를 둘러싼 여러 조건이 크게 변화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졸업한 지 꽤 됐고, 회사에 다닌 후 토요일 하루를 잠으로 가득 메우기 바빠서 점심을 거르기 일쑤였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내게 엄마도 더 이상 라면을 권유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서운했지만, 엄마에게 토요일 열두 시와 한 시 사이에 라면을 끓여달라고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날의 라면은 내 머리 한구석에, 콧속 어딘가에, 마음 한쪽에 잠든 기억이 되어버렸다.
최근 엄마의 베스트 음식은 불고기가 되었다. 평소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은연중에 맛있다고 한 말이 시발점이었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꼭 보는 단골음식이다. 엄마는 사골도 아닌 그 음식을 끊임없이 고아 식탁에 올렸다.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의 불고기가 괴롭다는 듯이 한탄한다. 그런데 사실, 엄마의 요리를 흉보면서도 슬그머니 엄마의 사랑을 자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음식은 맛이 없을지언정 따뜻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그 따스한 맛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딱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역시 불고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좋지 않을까……
글쓴이 이혜인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항상 찾아다닌다. 그 원초적인 욕구를 풀기 위한 노력은 잠들기 전에도,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업무 중에도,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계속된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는 만큼, 입에도 먹고 싶은 걸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 좋은 말도 나온다는 게 나의 개똥철학.
RECIPE + ESSAY 글 김희은
뽀빠이 부르게스타
재 료 시금치 한 단, 올리브 오일 5큰술, 견과류, 소금, 후추
1. 시금치를 씻어서 손으로 듬성듬성 찢어 믹서에 담는다. (믹서, 핸드믹서, 절구 모두 오케이!)
2. 견과류와 올리브 오일을 넣어 부드럽게 간다.
3. 기호에 맞게 소금, 후추도 섞는다.
4. 바게트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팬에 노릇노릇 굽는다.
5. 바게트 위에 먹고 싶은 만큼 시금치 페스토를 바른다.
6. 오일 없이 살짝 볶은 견과류를 올려 먹는다.
TIP
남은 페스토가 있다면 소독한 유리병에 페스토를 덮을 만큼의 올리브 오일을 부어 냉장보관 한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내리기까지 세 정거장을 남기고 살짝살짝 배가 고파온다. 가만히 부엌의 풍경을 떠올려 보지만 꺼내서 뚝딱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없다. 귀찮은 마음에 저녁거리를 대충 사 들고 가자니, 이미 점심으로 먹은 찌개의 자극적인 조미료 맛이 혀와 위를 점령해 버린 탓에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다. 다듬고, 썰고, 볶고 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던 찰나에 냉장고 안에 있던 ‘시금치 한 단’이 생각났다.
지난 겨울에 이사를 오면서 ‘봄이 되면 바질 화분을 들이고, 바질페스토를 해먹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화분을 들이겠다는 다짐은 사라져 갔고, 바질페스토 또한 살금살금 내게서 멀어졌다. 컴퓨터의 즐겨찾기에는 <화분 분갈이하는 법> 페이지가 추가되어 있었지만,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는 동안 그것을 열어 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세 계절을 보내고 겨울이 된 지금, 다시 푸릇푸릇한 바질페스토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바질, 그것은 여전히 우리 집에 없는 상태였고,
그리하여 생각한 대안이 시금치였다. 서둘러 집 앞에 있는 빵집에서 바게트 하나를 샀다. 바게트에 대해 말하자면 여기저기 안 어울리는 데가 없어 나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음식이다. 어느 쪽에 붙어 있어도, 무게 잡고 있지 않아도, 멋이 있고 맛이 있다. 그런 바게트를 한 쪽 팔에 끼고 시금치페스토의 맛을 상상하면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쓸 일이 없어 고이 잠든 믹서에 시금치랑 해바라기씨 듬뿍, 올리브 오일, 약간의 소금을 담아 드르륵드르륵 갈았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정해진 레시피는 아니다.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요리가 언제나 정석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이의 부엌에 각종 허브라든가 잘 숙성된 치즈 같은 생소한 재료들이 갖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방법은 조금 엉성해도 맛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라고 뻔뻔스레 동의를 구해본다.청량한 오븐 소리가 빵이 알맞게 구워졌음을 알렸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바게트를 꺼내 페스토를 듬뿍 발랐다. 잘 말린 방울토마토나 치즈 한 조각 정도 올려주면 더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어정쩡하게 남아 갈 곳 없이 방황하던 아몬드 몇 알을 올려서 모양이라도 내본다.
색이 어찌나 예쁜지, 요리에서 잘 찾아보기 힘든 채도 높은 초록색이다. 시금치 페스토 부르스게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며 사진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내주었는데, 친구는 먹는 게 맞느냐며 그림 같다고 했다. 그만큼 색연필로 꾹꾹 눌러 색칠한 것처럼 선명한 색이었다.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이 음식과 잘 어울리는 영화를 한 편을 틀었다. 맞다. 당신의 예상 그대로 영화 ‘뽀빠이Popeye’다. ‘siguemchi is bbobbai’는 여전히 내게 적용되는 공식이므로 야유는 거둬주길. 지금 내 앞에 있는 시금치 요리는 뽀빠이 입에 넣어주고 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글쓴이 김희은
식탐과 비례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키미’로 어라운드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녀와 닮은 그림 속 인물과 음식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RECIPE + ESSAY 글 이주희
우울할 때의 극약 처방 감자튀김
재 료 감자, 얼음, 오일, 소금, 파슬리가루, 파르메자노 치즈Parmigiano Cheese
1. 감자는 원하는 굵기와 길이로 자른다. 맥도날드의 프렌치프라이보다 조금 더 가느다란 굵기도 좋다. 하지만 더 굵게는 썰지 말 것. 바삭함과 그 안의 부드러운 정도가 균형을 이루는 게 좋다.
2. 얼음을 넣은 찬물에 담가 전분을 뺀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까지 시간이 되는 대로 냉장고에 넣어 둔다.
3. 피넛 오일과 카놀라 오일을 섞어도 좋고 마트에서 파는 튀김용 오일을 써도 괜찮다. 온도가 150도 정도가 될 때까지 가열한다. (150도라면 천일염 한 알을 넣었을 때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아주 천천히 올라오는 정도.)
4. 감자를 물에서 건져 페이퍼타올에 올리고 잘 털어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기름에 넣는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온도가 낮아서 튀김을 망친다. 3분 정도 튀겨준 다음 건져낸다.
5. 감자는 페이퍼타올 위에 올려두고 이번엔 불을 올려 180도 정도로 기름의 온도를 맞춘다. (천일염 한 알을 넣었을 때 표면에서 1cm 정도 들어갔다가 바로 떠오르면 180도 근처이다.)
6. 시간을 좀 더 들일 수 있다면 튀긴 감자를 냉동실에 넣어 30분 정도 얼렸다가 다시 튀겨 볼 것. 확실히 다르다.
7. 180도의 기름에 감자가 먹음직스러운 색이 날 때까지 2분 정도 튀긴다.
8. 꺼낸 감자를 큰 볼에 넣고 소금과 함께 지금 막 간 파르메자노 치즈와 파슬리가루를 뿌려준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맛을 원한다면 트러플 오일도 좋은 선택이다. 튀길 때 로즈마리 한 가지를 넣고 함께 튀기면 로즈마리향이 나는 프렌치프라이가 된다. 간단한 감자튀김이지만 변형은 무궁무진하다.
TIP
감자튀김을 찍어 먹을 소스 역시 무궁무진하다. 케첩이나 마요네즈, 갈릭 아이올리도 좋지만, 질 좋은 소금이나 몰트비네거를 이용해 영국식으로 먹어도 맛있다.
며칠 전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식당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나만큼이나 그 집 음식을 사랑하는 친구는 전식으로 나온 빠떼Pâté를 얇게 썬 바게트에 듬뿍 바르고 코니숑Cornchon 한 조각을 작게 잘라 그 위에 올린 후, 그걸 한입에 다 넣고 우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신은 없는 게 틀림없어. 난 빠떼 같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걸 느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맛있고 행복한 음식이 몸에는 좋지 않다니, 그게 바로 신이 없다는 증거 아니겠어?”
그래, 신은 없거나 혹시라도 있다 해도 인간을 미워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 증거를 찾으러 청담동의 프렌치 식당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다. 우리 동네 맥도날드에도 있으니까. 갓 나온 바삭하고 따끈하고 짭짤한 감자튀김을 상상해보라. 어쨌거나 맛있고 몸에 안 좋은 감자튀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보다 우리를 더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소울疏鬱푸드,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는 음식에 관해 글을 쓰며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감자튀김을 떠올렸다. 심지어 이것이 소울Soul푸드에 관한 원고였다 해도 감자튀김을 들고 나왔으리라. 바삭하면서 안은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으로, 나를 백 퍼센트 만족시켜주는 음식은 이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감자튀김은 당신의 우울함을 날려주기는커녕 더 심하게 하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우울할 때에는 채소나 과일 같은 걸 먹어야지, 정제된 탄수화물과 지방을 먹으면 오히려 더 신경계에 좋지 않다고 수많은 건강 칼럼은 말한다. 하지만 대체 기분도 안 좋은데 누가 그런 걸 먹고 싶어 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 정말 싱싱하고 푸릇푸릇하고 밝고 발랄해요. 마치 당신이 어리고 아름다웠을 때처럼 말이죠. 깔깔깔’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 떨어지는 셀러리나 로메인, 빨간 체리토마토 한 접시를 이럴 때 봤다간, 마치 잘못 데쳐 축 처지고 누런 시금치 꼴을 한 나와 비교되어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셀러리에 얼굴이 있었다면 그 뺨을 한 대 치고 싶어질 거다.
그렇기에 나는 감자튀김을 먹겠다. 우리가 우울할 때는 대부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발버둥 쳐봐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묘수가 나한테 한 가지도 없을 때 우울함의 바닥을 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먹는 음식이 감자튀김이다.
“이 몸에 안 좋고 맛있는 망할 놈의 감자튀김. 내가 너를 먹겠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 내 혓바닥과 몸이라도 마음대로 망치는 자유를 누리겠단 말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으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대단한 기세로 커다란 볼에 프렌치프라이를 가득 담아 포크 따윈 던져버리고 손가락 두 개를 쪽쪽 빨아가며 입안에 쉼 없이 쑤셔 넣는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속 시원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프렌치프라이를 제대로 하는 집을 찾기 힘들다. 차라리 금방 나온 맥도날드나 버거킹의 감자튀김이 나을 경우가 많다. (갓 나온 프렌치프라이로 달라고 말하는 걸 망설이지 말자. 어차피 그렇게 큰 민폐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소금을 치지 않은 걸로 주세요, 라고 돌려 말하면 된다.
하지만 짭짤한 맛이 빠진 프렌치프라이라니, 그냥 조금 기다릴 테니 갓 튀긴 걸로 달라고 하자.) 소문난 버거집들을 다녀보아도, 괜찮은 펍들을 돌아보아도 기름만 잔뜩 먹은 생감자를 튀겨놓고 신선한 감자를 금방 튀긴 거라고 하질 않나, 감자 튀김계의 숨기고 싶은 서자, 엄지손가락 굵기의 크링클 컷Crinkle Cut을 튀겨놓고 감자튀김이라고 한다. 감자 껍질 벗기고 써는 수고를 아무도 알아줄 리 없고, 또 굵어서 좋은 것들은 따로 있으니 제발 감자튀김만은 올바른 굵기로, 차라리 냉동으로 사다가 튀겨달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파는 감자튀김에 분개하던 나는 결국 튀김기까지 샀다. 와링 프로Waring Pro의 튀김기는 웬만한 전자레인지 크기만 하다. 이걸 해외 구매대행을 하고, 또 변압기까지 써가면서 사용하는 이유는,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튀김기를 살 때쯤, 세상에서 제일 길고 복잡한 감자튀김 레시피도 찾아냈다. 영국의 유명한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의 요리책에는 깨알 같은 크기의 글씨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불 앞과 냉동실을 오가는 흥미로운 감자튀김 레시피가 실려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감자튀김을 이렇게 만들고 싶어하겠는가?
감자튀김의 본질은 그거다. ‘감자를 튀긴다. 살이 찐다. 몸에 안 좋다. 맛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한다.’
헤스톤 블루멘탈처럼 만들다간 내일까지 감자를 붙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간단한 감자튀김 레시피를 덧붙인다. ‘뭐라고? 이제 와서 해 먹으라고? 그냥 사 먹으라며, 귀찮은 일을 하는 건 감자튀김이 아니라며?’ 하는 당신의 생각이 여기까지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 당신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감자튀김은 금방 튀긴 것을 먹어야 맛있다는 것. 5분만 지나도 눅눅하고 차가워진다. 그러니 한번 해보길 바란다. 우울함을 날리는데 이 정도 수고는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늘 그렇듯이, 요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완벽하다. 아마 어디선가 신이라는 존재도 숨어서 프렌치프라이를 튀기고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따뜻하고 바삭한 감자튀김이 필요하니까.
글쓴이 이주희
‘이기적 식탁’과 ‘이기적 고양이’를 쓴 작가이다. 두 권의 책을 통해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요리만큼 식탁 앞에 가기까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동물보호에도 관심이 많다.
에디터 이혜인
글 이혜인·김희은·이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