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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친구 할래?
앞머리가 동그마니 귤을 닮은 소년에게 놀이라고는 이따금 혼잣말을 하거나 하늘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대도시에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없던 그는 자신의 따분함에 심심한 위로를 전할 무언가를 찾았다. 하지만 당장 눈에 닿는 것이라고는 풀, 나무, 밭, 바다, 들꽃, 돌부리가 전부다. 저녁이 오면 네온 불빛으로 어둠을 막아내는 도시와 달리, 이곳은 그대로 까만 밤이 밀려 들어오는 곳이다. 소년은 제주에 이사 왔다.
소년은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종잇장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고이 새겨 나가는 동안 입술은 더욱 뾰로통해진다. 그리움이 커지는 시간. 소년은 제주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변화를 수긍하고 적응해 나가느라 애쓰는 중이다. 열네 살은 낯선 것을 자신의 것으로 금세 소화하기에 어린 나이였고 따라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소년의 어머니는 저 멀리서 마른 볕이 신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불을 널고 있다. 소년의 속마음이 먹구름으로 벙벙한 것도 모르고, 즐거운 기색의 엄마가 마냥 얄밉다.
그때였다. 소년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고양이가 돌담을 겅중 뛰어넘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돌담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풀꽃에 다가가 코를 들이밀었다.
“너도 심심해서 여기로 온 거구나.”
소년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지 고양이는 소년을 피하지 않았다. 그를 쓰다듬고 꼬리를 만지고 콧등을 톡톡 건드려 보면서 친해지려고 했다. 온기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이가 되기 전에 치르는 하나의 작은 의식이므로.
“너도 혼자지, 맞지? 나도 혼잔데.”
소년의 손끝으로 얼굴을 비비며 고양이도 소년이 몹시 마음에 든 듯, 그르렁 소리를 작게 냈다.
“아가, 이리 와봐. 나비가 친구들 데리고 왔다.”
마당 끝에서 엄마는 두어 마리의 고양이를 가리켰다. 소년과 함께 있던 고양이는 단숨에 뛰어가 그들과 발을 차고 넘어뜨리며 장난을 쳤다. 소년의 손은 그대로 공중에 멀찍이 내버려져 있었다.
“나비가 친구들 만나서 기분 좋은가 보다. 그렇지?”
소년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는 왠지 모르게 콧등이 자꾸만 시큼시큼거리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이 녀석이 아까부터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지?”
아빠는 집수리를 아직 마치지 못했는지 두 손에 낀 목장갑을 벗지 않은 채 얼음이 동동 굴러다니는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마셨다. 아빠의 혼잣말에 소년은 시큰한 콧등을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동안 공기 중으로 퍼져있던 외로움이 타고 들어온다. 처음 맞이하는 감정들은 제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마음속에서 길을 헤매기 일쑤라, 그도 기분의 정체가 무언지 딱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촘촘히 메워 둔 마음의 벽에 자그만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감은 두 눈으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차갑지도 않고 딱히 뜨겁지도 않은 초가을 바람이 그의 머리에 엉겨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빠의 못질 소리가 귓가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일어나! 일어나 봐!” 매서움 사이로 그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나를 불러놓곤 언제까지 이렇게 자고만 있을 거야?”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뜨니 눈앞에 널따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풀들은 몸을 뉘었고, 그의 웃옷이 강하게 펄럭여 동그란 배꼽이 보이기도 했다.
“누구야?” 소년이 소리쳤다. 그때 수풀 사이로 자그만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바람결에 낙엽이나 작은 벌레들이 따라 나와 뱅글뱅글 돌아갔다. 소용돌이가 말을 했다.
“나는 바람이야. 나랑 친구 할래? 너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마을에 일파만파 퍼져 있다고. 네가 나를 부른 거나 다름이 없어. 안 그래?”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 적 없어.”
“거짓말 하지 마. 너희 동네 사는 고양이가 자귀나무에게 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면서 들었어. 네가 혼자여서 아주 슬퍼하고 있다고.”
“슬퍼한 적 없어.”
“그래. 외로운 게 마냥 슬픈 일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럼 넌 그때 행복했었어?”
소년은 말이 없다. 입을 꾹 다문 대신 양 주먹을 쥐었을 뿐.
“저기를 봐. 저 말들 보여? 내 친구들이야. 바람이 부니 기분이 좋아서 함께 노래 부르고 졸갱이도 따 먹었지.”
소년이 고개를 돌리니 갈기가 바람이 흩날리는 것이 기분이 좋아 홍홍 거리는 말 무리가 보였다.
“나는 이렇게 바람을 불어 기분 좋게 할 수 있어. 나랑 친구 하는 게 어때?”
“미안하지만 나는 너랑 친구가 될 수 없어. 우리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는데 너랑 친구가 된다면 이동하시기 불편해하실 거야.”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너랑 같이 바닷가에서 파도를 만들며 놀고 싶었는데. 그럼, 안녕.”
소용돌이는 자리를 박차 일어나 오름을 떠났고, 순식간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
“아야!”
바람이 불면서 무언가 소년의 다리를 쿡 찔렀다.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을 참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멩이 하나가 소년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으잇, 바람 자식! 항상 이렇게 자기 멋대로 바람을 불어대는 마당에 힘들어 죽겠어.”
“너는 누구니?”
“안녕? 나는 돌이야. 네 앞에 멋지게 등장하고 싶었지만 심술 궂은 바람 때문에 데굴데굴 굴러버렸지 뭐야. 마침 네 다리가 보이길래 냅다 잡았지. 덕분에 저 먼 곳으로 날아가지 않았어. 돌의 인생이란 게 그런 거거든.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가끔 가만히 있는데도 서러워서 눈물이 줄줄 난다니까? 지난번에는 있잖아…”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돌멩이는 좀처럼 말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잠깐만! 나를 만나러 온 거니? 왜?”
“아이참, 내가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네. 네가 외로워서 친구를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나랑 친구 할래?”
“도대체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전해 들은 거니?”
“억새에게 들었어. 억새는 이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고 했어. 참, 억새가 요즘 사춘기 같더라고. 아주 예민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 금빛 머리가 아주 예쁠 거야.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너도 억새를 보면 감탄하고 말 거야.”
“저기,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 적이 없어.”
“너도 사춘기구나. 부끄러워하지 마. 친구를 만드는 게 뭐 어때서? 외롭지 않아도 친구는 만들 수 있어. 나는 이곳저곳 굴러다녀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 네가 제주에서 가보지 않은 곳의 이야기까지 말이야. 나랑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나랑 친구 하는 게 어때?”
“너랑 친구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여기 내 상처를 봐. 너와 함께하면 아마 내 몸은 흉터투성이가 될 거야.”
“치, 친구는 원래 그런 것도 받아주는 거라고. 내가 마음에 안 드니? 혹시 너 그 애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애라니?”
“그 애 있잖아. 그 애. 너 지금 그 애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해. 나는 느낌이 정확하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갑자기 오름이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극심한 요동에 놀란 말들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고 풀들은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소년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이곳저곳을 바라보았다. 오름이 붕괴하고 있었다.
“얘, 무슨 잠을 이렇게 오래 자니. 마루에서 자다가 감기 걸리겠다. 어서 일어나.”
초가을에도 저녁 바람은 꽤 찼던지 소년의 얼굴에 닿은 엄마의 손이 뜨겁게 느껴졌다. 눈을 뜨고 일어나니 저도 모르게 뾰족한 초승달 같은 자세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년은 터무니 없는 꿈을 꾸었다는 생각에 겸연쩍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상하게 잠에서 깨었는데 아직도 바람과 돌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려 오름에 있는 것만 같다.
“엄마, 나 이상한 꿈을 꿨어요.”
“아가, 잠깐 나와 봐. 옆집 애가 너를 찾아 왔네.”
소년의 말을 잘 듣지 못한 듯 엄마는 어떠한 대답 없이 소년을 대문으로 불러냈다. 낮잠을 자고 난 뒤 몽롱한 정신에 얼굴 한 쪽을 잔뜩 찡그린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대문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 똑단발의 작은 여자애가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 몇 개가 들린 소쿠리를 건네 빙긋 웃었다.
“너 서울에서 이사 왔다며. 나도 얼마 전에 왔어. 나랑 친구 할래?”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어느 초저녁, 놀란 소년의 두 눈이 남산만 해졌을 때 하얀 낮달이 하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에디터 이자연
일러스트 한차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