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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구구는 고양이다, 디센던트
MOVIE
<구구는 고양이다>, <디센던트 >
WHO CAN
GIVE A DEFINITION
OF LIFE?
규정할 수 없는 인생
내가 좋아하는 두 편의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와 <디센던트>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편안해진다. 왜 나는 이 밋밋하고 조금은 산만하기까지 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거지? 그건 아마도 이 영화들이 뭐라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자영업자라면 자영업자고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고 주부라면 주부고 백수라면 또 백수다. 어디 회원 가입을 할 때는 ‘주부’란에 동그라미를 치고 외국에 나갈 때는 출입국 신고서의 직업란에 ‘무직’ 또는 ‘NONE’이라고 쓴다.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별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착취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과 회사의 체계에 대한 냉소와 증오 같은 것들. 그들 중 대부분은 현재의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언가 다른 인생을 꿈꾼다. 그런 그들에게는 카페를 열고 글이나 쓰는 내 팔자가 편해 보이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부럽다. 회원 가입 신청서와 출입국 신고서의 직업란에 명확하게 써넣을 ‘직업’이 있다는 것이 제일 부럽다. 그들의 월급통장에 약속대로 매달 일정한 금액이 입금된다는 것도 부럽다. 나도 분명히 그런 인생을 살아본 적이 있는데도 그렇다. 그때는 나도 그들과 똑같았다. 내가 회사원이라는 것이 분하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건 어쩌면 ‘자기 삶을 개척할 용기 없음’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나 보다. 웃기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 회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장 신기한 것은 그들이 매사를 명확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되었다. 이렇게 하니까 저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 같다. 나는 그런 게 신기하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시절 친구 앞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랬다. “난 5년 후의 내 인생이 어떨지 다 보여.” 그때 직업이 없던 내 친구는 내 말을 무척 신기해했다. 어쩌면 내게 신이라도 들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웃겨 죽겠다. 지금은 5년 후는커녕, 50일 후의 인생도 모르겠단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회사에 다니면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체계의 세계다. 모든 것이 명확하다. 그리고 명확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일하는 곳이기에 명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명확하게, 체계에 맞춰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다. 신이라도 들린 듯 5년 후의 내 인생까지 눈앞에 훤히 펼쳐지는 것처럼. 그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인생은 규정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내가 이 정도의 노력을 투입하면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승진하고 연봉을 인상하고 이직을 하고 유학을 가고 학위를 따고 집을 사고 투자를 하고 노후에 대비하고 골프를 치고.
그런데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인생을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승진도 없고 연봉도 없고 이직도 없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인생은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노를 젓고 있는 기분이다. 50일 후의 일조차 예측하기 힘든 이런 인생에 적응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인생처럼 알쏭달쏭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될까.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상심한 만화가가 새로운 고양이를 만나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그렇게 말하기에 이 영화는 좋게 말하면 다채롭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처음에는 ‘이 영화,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어쩐지 한 번 더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어쩌면 당신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는 건 꼭 한적한 동네의 손님 없는 잡화점에 들른 기분이다. 거기에는 묵직한 것도 있고 가벼운 것도 있다.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다. 귀엽고 예쁜 것이 있고 촌스럽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도 있다.
이 영화에는 사실 흠이 많다. 오글거리는 건 질색인 나는 병원에 입원한 코지마를 위해 나오미가 공원의 불량여고생들을 동원해서는 병원 창밖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장면이 나올 때면 빨리 감기를 해버릴 정도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영화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기치조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서민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북적거리면서도 한적한, 살기 좋은 동네 기치조지. 어쩐지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장소. 등장인물들도 꼭 동네를 닮은 것만 같다. 이게 그냥 별 특색도, 향취도, 멋도 없는 동네에서 일어난 이야기였다면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치조지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들을 듬뿍 담고 있다.
스물일곱 살의 봄에 혼자서 도쿄에 간 적이 있다. 우에노의 한 비즈니스호텔에 짐을 풀고 매일 다리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걸어 다녔다. 우에노 공원을 걸었고 야나기를 걸었고 시부야를 걸었고 신주쿠를 걸었고 하라주쿠를 걸었다. 내가 소설이나 영화나 잡지에서 읽고 보던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기치조지에도 갔다. 그곳에 가면 지브리 미술관이 있다고 했다. 지브리 미술관에는 가든 안 가든 별 상관이 없었는데, 그 동네가 참 예쁘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한적한 주택가에 나무가 우거지고 커다란 공원도 있는 동네라고 했다. 나는 한적한 주택가와 커다란 나무와 커다란 공원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동네는 정말로 예뻤다.
기치조지역을 나와서 지브리 미술관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유명한 고양이 버스가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길가의 자판기에서 페트병에 든 녹차를 뽑아 마시면서 걸었다. 작지만 귀엽고 볼 것이 많은 지브리 미술관을 나와 공원을 향해 다시 걸었다. 그곳이 집을 나간 고양이 구구를 찾던 코지마가 세이지라는 남자를 만난 이노카시라 공원이었다. 그땐 평일 한낮이었는데 짧은 러닝 팬츠를 입고 운동장을 달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들이 보였다. 대체 저 남자들의 직업은 뭔지 궁금했다.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숲이 나왔다. 나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고요한 숲 속에서는 새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숲이 끝난 곳에서 주택가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낮의 조용한 주택가를 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신기한 것은 창문에 까만 고양이 그림이 붙은 집이 많았다는 것이다.
<구구는 고양이다>의 만화가 코지마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강하게 끌린다. 그녀에게 있어 죽음이란 것은 모든 인간이 내밀한 장소에 숨긴 외로움이나 고독의 다른 이름인 건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만화를 그리고 고양이 사바를 키우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기쁨, 슬픔, 외로움을 함께했던 유일한 존재인 사바가 죽자 그녀는 한동안 만화를 그리지 못할 정도의 침체기를 겪는다. 한참 후에야 코지마는 다른 고양이를 들일 용기를 낸다. 그녀의 새로운 고양이 구구는 어느 날 집을 뛰쳐나가 이노카시라 공원을 활보하며 코지마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준다.
내가 이 영화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은 마감 날 이미 며칠씩 밤을 새운 코지마와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피곤함에 절은 채로 만화를 그리는 장면이다. 하품하고 졸기도 하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그들은 묵묵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일하는 동안 소파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 사바는 홀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또 공원으로 달아난 고양이 구구를 쫓던 코지마가 세이지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나오미가 굴다리 밑에서 이상한 두 할머니를 만나 점을 보는 장면도 좋아한다. 술에 취한 세이지가 코지마의 집에서 옷을 몽땅 벗어던진 채로 소파에 널브러져 자는 장면, 몸에 이상을 느낀 코지마가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서 상의를 벗고 있다가 의사인 세이지와 마주치는 장면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런 장면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딱히 의미도 없고 뭐라고 규정할 수도 없지만 따뜻하고 또 슬프다. A를 투입한다고 B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다고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밋밋하고 산만하고 또 예측할 수 없는 것. 그렇지만 다들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 그런 것들이 인생을 닮아서다.비슷한 이유에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들은 못 말릴 정도로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면서도 속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디센던트> 역시 마찬가지다.
낙원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주인공 맷 킹은 낙원에 산다. 바로 하와이에. 그런데 초장부터 그는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여기에도 아픈 사람이 있고 여기에도 돈 없는 사람이 있고 여기에도 가족 간의 불화가 있고 여기에도 고통이 있다. 하와이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이가 좋지 않던 그의 아내는 수상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다. 일에 바빠 소홀했던 10대 딸 둘과는 도대체 어떻게 지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 심지어 알고 보니 아내는 웬 남자와 바람을 피우며 그와 이혼할 작정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그의 아내에게는 소생 가능성이 없으니 이제 보내주자고 말하고, 맷은 분노를 억누른 채 아내의 내연남을 찾으러 간다. 아내가 죽기 전에 작별인사라도 하라고 말이다. 맷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의 고조할머니는 하와이 군도 중의 하나인 카우아이 섬의 공주였다. 그녀는 후손들에게 그 땅을 남겼고, 그의 유산으로 그들 가족은 오랫동안 부를 누려왔다. 이제 그들은 마지막 남은 카우아이의 미개발 토지를 하와이 출신의 개발업자에게 팔기로 거의 결정한 상태다. 그런데 그와 딸들이 아내의 내연남을 찾아간 섬이 바로 카우아이다. 맷은 섬에 온 김에 자신의 땅을 둘러본다. 땅은 원시 그대로다. 이제 이 땅에 리조트와 주거단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딸들은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캠핑하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기치조지가 <구구는 고양이다>의 배경이자 주인공 중 하나라면, 하와이는 이 영화의 배경이자 주인공 중 하나다. 영화 속에선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분다. 창밖에서도, 거리에서도, 해변에서도. 언젠가 하와이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바람은 정말로 말도 못하게 시원하다고 한다. 아무리 더워도 그 바람 때문에 살 수 있다고 한다. 그 바람은 어떤 바람과도 다른 하와이의 바람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하와이의 바람이 좋아서 하와이에 살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런 바람이 부는 하와이의 아름다운 군도에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죽음과 삶과 미움과 불화와 불륜과 배신과 싸움과 후회 같은 것들. 이곳은 낙원이 아니다. 여기에도 인생은 있다. 고심 끝에 땅을 팔지 않기로 한 맷은 아내의 사고 후에야 자신이 무엇을 상속받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돈이 될 부동산이 아니라,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오고 자신이 나고 자랐으며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땅이다. 그들의 땅 하와이와 그들의 인생은 별개가 아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구구는 고양이다>와 <디센던트>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이 이야기들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들에는 삶에 대한 찬양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겸손함도 있다. 나는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이 마음에 든다. 삶만이 아니라 죽음까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고독하고 또 유한한 것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바로 그 이유로 인생을 예측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올해 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를 화장터에서 태우던 날, 3일 밤낮을 슬퍼하느라 지친 가족들은 화장터 앞 주차장에서 봄날의 볕을 쬐고 있었다.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멀찍이 떨어져 앉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얼굴조차 비치지 않은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의 처사에 분개해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큰 외삼촌은 입이 거친 동료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은 연신 담배를 태우고 욕설을 섞어가며 떠들었다. 이혼하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던 작은 외삼촌과 외숙모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어쨌든 함께 앉아 있었다. 어릴 때는 가까웠으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떨어져 살며 어색한 사이가 된 외사촌 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다.
그때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노랑머리의 막내 외사촌 동생이 장례식 내내 차에 갇혀 있던 새끼강아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신이 난 듯 강아지는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뛰게 된 지도 얼마 안 되는 진짜 새끼라 폼이 영 어색했다.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작은 강아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넘어질 듯 폴짝폴짝 껑충껑충 뛰는 강아지의 모습에 더러는 웃기도 했다. 날씨는 따뜻했고 세상에 난 지 몇 주 안 된 강아지는 귀엽기만 했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 뿌리를 잃고 며칠을 내리 울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곧 장례지도사가 우리를 불렀다. 할머니를 정말로 보내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울기 위해 화장장으로 돌아갔다.
그 날 그 시간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규정할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이 함께하는 것, 힘들고 복잡한 서로의 사정들이 얽히고 얽힌 것,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것,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가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 그런 것이 인생이었다.
구구는 고양이다 Gou Gou, The Cat
이누도 잇신 감독 | 드라마 | 일본 | 115분
이야기는 유명한 순정만화가 아사코가 13년을 함께한 고양이 사바를 잃으며 시작된다. 큰 슬픔에 빠진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구구’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고양이. 호기심 많은 구구는 집 밖으로 아사코를 이끌고 그녀에게는 새로운 일상이 찾아든다.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알렉산더 페인 감독 | 드라마 | 미국 | 115분
잘 나가는 변호사 맷의 인생은 순조롭다. 아내가 보트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내의 사고, 조상들이 관리하던 하와이 땅의 매각 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딸들. 맷이 이 문제들과 화해하는 과정속에서 그는 조상에게 받은 유산(디센던트)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윤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