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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무언가로 부를 때
WHEN I CALL YOU SOMETHING
내가 당신을
무언가로 부를 때
나는 항상 당신을 무언가로 불렀다. 그것은 이따금 당신의 이름이나 별명이 아니었고, 대부분 나와 당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 ‘명칭’의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걸까 궁금했다.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짧은 순간에도 서로를오롯이 떠올릴 수 있도록 나는 그 이름의 뿌리語源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을
정의하는 일
뜻 없는 괴성이 옹알이가 되고, 옹알이가 단어와 문장의 형태를 갖추는 과정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연습을 한다. 엄마 아빠거나, 혹은 아주 먼 관계의 누군가 이거나 하면서.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가 꽃이 된다면, 우리의 관계를 언어화하는 순간에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연대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감정이 관계를 언제나 쫓아다니는 탓이다. 그 명칭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때가 있고, 이따금 어떤 말을 빗대어도 그 ‘사이’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을 때 우리는 괜히 그 관계의 이름을 다시 곱씹어보곤 한다. 수도 없이 많은 관계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정의할 수 있었다.
이것은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복잡한 영역의 일이다. 나는 누구이고, 그대에게 나는 또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왔다. 사람이 사는 곳에 관계가 없을 리 만무하다. 그 시간을 휘감고 올라가 우리말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말의 뿌리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히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을 찾아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에 반영된 문화와 의식, 시대 정신부터 당대의 전통까지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조금 낯설고 어색할 수도 있겠다. 우리 세대는 원래의 것과 이미 거리가 멀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더듬는 일이 일상에서 많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생긴 역사를 마주하고 단어의 벌거숭이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입 밖으로 떠나는 모든 단어에 조심스러워지고 예를 갖추게 해준다.
서로를 명명하기가 너무 쉽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울타리 안으로 내 사람이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아무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 의미들을 모았다.
그 단어의 이야기
할머니·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중세어형은 ‘하나비’다. 할아버지는 ‘한[大]+아비’의 조어로 ‘하다[大]’가 ‘할’로 변하였다. ‘크다’는 뜻을 가진 ‘한’에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붙여진 것이다. 아버지/어머니 보다 큰 사람, 즉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를 뜻한다. ‘산타 하나비!’
마누라 본 어형인 ‘마노라’는 ‘만+오라’의 합성어이다.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만’, 그리고 중세어 ‘오래’는 집을 의미한다. 결국, 마누라는 가문 또는 집에서 우두머리인 여성을 의미한다.
영감 조선 시대에 종2품과 정3품의 벼슬을 이르던 말인데, 일반화되어 존칭 또는 나이 든 남편이나 늙은 남자를 부를 때 쓴다.
아버지 중세어형은 ‘아비, 아바’다. 어근이 아버지를 뜻하는 몽골어 aba(父)와 대응된다. 지아비는 ‘집+아비’로 집의 아버지, 즉 ‘가장’을 의미한다.
어머니 중세어형은 ‘어미’로 무엇이 생겨난 근본을 의미한다. 어근인 ‘엄’은 몽골어 eme(母)와 일치한다. 그래서 어멈은 ‘엄+엄’으로 분석된다는 사실! 유아어인 ‘엄마’는 ‘엄’에 호격 조사 ‘아’가 결합한 형태이다. 일본 오키나와 사투리 중 엄마를 ‘안마’, 할머니를 ‘아빠’, 할아버지를 ‘아부제’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말이 건너간 증거라고 한다.
아들 현대어 ‘아들’은 고려 시기의 ‘아달’과 발음이 일치한다. 남자아이를 뜻하던 고려어 ‘복(福)’은 신라어를 계승한 말인데 죽은 말이 되었다.
딸 우리말 ‘딸’은 ‘서로 다르게, 별도로’를 뜻하는 부사 ‘따로’와 같은 뿌리의 말이며, 혹은 ‘순종하고 복종한다’는 의미의 ‘따르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너무 슬퍼하지 마요, 21세기에는 ‘딸바보’라는 단어가 유행하니까요.
누이 보통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여자에 대하여 쓴다. 중세어형은 ‘누위/누의’다. 누나는 ‘누니’에 호격조사인 ‘아’가 붙어 변형되었다. 누이의 호칭어는 ‘누나’, 높임말은 ‘누님’이다. 누이 내 여자니까.
막내 18세기 문헌에 ‘막나이’가 등장하는데, ‘막낳이’로 분석된다. ‘막’은 폐쇄 개념어 ‘막다’의 어근으로, ‘낳이’는 ‘나다[出]’와 같다. 즉,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를 말한다.
돌 어린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한 해가 되는 날. ‘돌’은 회전 개념어 ‘돌다’의 어근을 두고 있어, 지구가 해를 돌아 제자리에 온 것을 의미한다. 순환과 생명의 사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단어.
사위 힘이 장정인 남자를 뜻하던 ‘샤옹’이라는 말이 음운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추측된다. 문헌에 ‘싸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사위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값이 있다’의 뜻도 갖고 있다.
며느리 중세어형인 ‘메나리’의 ‘메’는 ‘밥, 진지’를 의미하며, ‘나리’는 동사 ‘나르다’, ‘이’는 사람을 뜻한다. 어원적 의미는 ‘뫼(진지)를 나르는 사람’이다.
또 다른 이야기
사랑 생각하다(思)의 뜻이 있던 ‘사랑하다’가 어떤 대상에 애정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사랑하다(愛)로 바뀌었다. ‘사랑’은 ‘사람, 삶, 살다’ 등 단어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아기 ‘아기’의 선행 어형은 ‘알지’로 어원은 ‘알’이다. ‘알지’는 ‘–아지(짐승의 새끼)’, ‘-아리(새의 새끼)’와 같은 어원을 두고 있다.
어부바 어린아이에게 등에 업히라고 할 때 이르는 말로, 어원적 의미는 ‘업어 봐’다.
배냇짓 갓난아기가 자면서 웃거나 눈, 코, 입 등을 쫑긋거리는 행동을 의미한다. 어원적 의미는 ‘어미의 배 안에 있을 때부터 하는 행동’이다.
태어나다 중세어형은 ‘타낳다’로 ‘태’는 ‘시초, 초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탯줄은 태아와 태반을 이어 영양을 공급하는 ‘생명의 줄’이다. 어원의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태에서 운명을 나고 나오다’다.
터울 터울의 어원적 의미는 ‘한 터에서의 울타리’로 경계나 간격, 차이를 뜻한다. 나무의 자란 햇수를 이르는 ‘나이테’에서 ‘테’도 ‘터, 터울’과 같은 어원을 나타낸다.
조카 17세기 문헌에 ‘족하’가 나오는데, ‘足下’ 즉 친족 중의 아랫사람을 의미한다.
알뜰하다 검소하고 낭비하지 않으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지극한 것을 의미한다. ‘알뜰하다’의 어원적 의미는 ‘알이 들다’, 그래서 ‘실속이 있다’이다. ‘알뜰살뜰’에서 ‘살뜰’은 마음씨가 다정하다는 ‘살갑다’가 변한 말이다.
후레자식 작은 말은 ‘호래자식’이다. 원래의 뜻은 ‘홀의 자식’으로 부모의 부재로 엄하게 교육을 받지 못해 예의가 없는 아이라고 이르는 말이다.
총각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성을 이르는 말로, 한자어 ‘總角(총각)’에서 ‘總(총)’은 ‘묶다’를, ‘角(각)’은 머리를 의미한다. 즉, 머리를 땋아 묶는 것을 말한다. 총각김치, 총각무, 총각미역 등 또한 총각의 머리 모양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예상한 대로의 이야기 혹은 반대로 생각도 못 했던 이야기가 명칭 뒤에 어떤 얼개를 가지고 서려 있었는지 보았다. 말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서 비롯한다. 말은 단순히 혀와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을 이용하여 입 밖으로 소리 내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신념과 시선과 가치관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세상의 무게를 느끼며 우리는 관계를 신중하게 명명해야 한다. 내가 당신을 무언가로 부를 때, 그로써 우리는 그 의미를 담은 관계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자연
일러스트 배중열 참고문헌 우리말 어원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