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M I DOING HERE?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남자는 축구선수 안정환을 쏙 빼닮았었다. 그는 인도 동부 폰디체리Pondi*cherry의 한 중국 식당에 혼자 앉아 있던 내게 합석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잘생긴 남자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도 남자였던 그는 미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는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히피 공동체 마을인 오로빌Auroville에 살고 있었고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는 건 물론 숙소도 구해주겠다고 했다. ‘이게 웬 횡재.’ 잠시 그가 사기꾼이나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근거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이렇게 멋진 기회(남자)를 놓쳐버린다면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할 게 분명했다. 나는 미친 척하고 그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차선을 무시하고 쌍방향에서 돌진하는 버스들과 사이드미러도 없는 차들과 비쩍 마른 소들과 인력거들이 카오스를 이루는 인도의 도로를 그의 오토바이는 무섭게 질주했다. 그러더니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커브를 돌던 오토바이가 옆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뜨거운 머플러에 깔린 내 발등이 레어 상태로 먹음직스럽게 익어버린 것이다. 

멋진 남자고 뭐고 패닉 상태에 빠진 나는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아픈 나를 집에서 치료해주겠다면서 숲으로, 숲으로 계속해서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적이 끊겼다. 보이는 거라곤 나무와 덤불뿐, 주위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오토바이에서 스턴트맨처럼 멋지게 뛰어내린다 해도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람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숲이었다.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가까운 미래가 눈앞에 훤히 보였다. 뉴스에 나와 딸을 찾아달라고(아니면 딸의 팔 한 짝이라도) 울부짖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결국 나는
여기 이렇게 사지가 멀쩡한 채로 살아있다. 그는 그저 미국 문화를 동경하고 히피를 꿈꾸는 제비족이었고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그거야말로 정말로 서글픈 일일까?) 내 발등에는 그때 입은 화상이 영광의 상처로 남아 있다.

아무튼, 그때가 내 여행의 최대 위기였다. 두 달째 남인도를 홀로 떠돌던 나는 40도가 넘는 기온에 더위를 먹었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발등의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며칠째 누워 진물이 흐르는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비싼 돈을 들여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밑에 붙는 S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Ø)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중에서

20대에 인도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진정한 나를 찾겠다거나 자유로워지겠다거나 하는 허황한 꿈 따위는 품지 않았다. 물론 잘생긴 남자 하나 정도는 만났으면 했다. 그걸 제외한다면 내 여행의 목적은 그저 궁금함이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세탁 후 건조된 옷에서 나오는 보풀이나 해열제 따위에 관한 글을 쓰더라도 우리를 깔깔 웃게 할’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인 빌 브라이슨이 여행을 하는 이유 역시 못 말리는 호기심 때문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은 중년의 나이에 홀로 유럽 일주를 감행한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다. 그는 오로라를 보러 한겨울에 노르웨이의 함메르페스트Hammerfest라는 오지까지 갔다가 보름 넘게 할 일이 없어 괴로워한다.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무질서함과 스위스 사람들의 융통성 없음, 프랑스 사람들의 새치기에 짜증을 낸다.

기차 안에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할머니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다며 농담을 하고 연달아 터지는 불운에 심통 섞인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여행은 종종 즐겁기도 하지만 대체로 짜증 나고 번거롭고 기가 막히고 속 터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이 불평 많은 아저씨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딜 가고 무얼 먹고 무얼 보고 무얼 사고 무얼 느꼈다는 식의, 한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판에 박힌 수많은 여행기와 달리, 그의 여행기는 솔직함과 활력 그리고 유머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담이 아니라 여행을 한 사람 자체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여행 중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자신이다. 히피처럼 자유로운 삶을 꿈꿨지만, 막상 여행을 다녀보니 나는 화장실을 엄청나게 가리는 여자였다. 근사한 외국인과의 멋진 하룻밤을 꿈꿨지만 실제로는 낯선 남자가 어깨에 손만 올려도 불국사 다보탑처럼 굳어버리는 여자가 나였다. 만약 나라는 사람을 끌고 몇 달씩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나는 남들에게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다는 둥 진정한 자유는 인도 빈민가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소똥에 있다는 둥 잘난 체를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빌 브라이슨처럼 낯선 도시를 빈둥대면서 상점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여행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면, 앨리스 스타인바흐식 여행이 대안이 될 것 같다. 그녀는 노년에 접어든 나이에 파리의 요리학교에 다니고 스코틀랜드에서 양치기 개 조련법을 배우고 교토에서는 전통춤과 다도를, 프라하에서는 글쓰기를 배운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여행자들처럼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강박에 휩싸이지 않는다.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원숙한 여인답게 사려 깊은 관찰자로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에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그녀가 인간적으로 반한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부부처럼.

그는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그가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는 인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부자연스럽거나 계산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마흔두 살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구석이 있었고, 지성과 재치를 타고 난 사람이었다. 오스카 와일드 식의 시니컬한 유머가 아니라 자연과 가까이, 양과 양치기 개와 가까이에서 자라난 사람 특유의 재치 말이다.
–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중에서 

비행기를 타고 배낭을 짊어지고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서야 우리는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조금 더 느긋하게 살아야겠다고, 현재의 삶을 사랑해야겠다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야겠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옷을 몇 벌씩 바꿔 입는 아침에는 편안한 바지에 슬리퍼 한 켤레만 신고 느긋하게 해변을 걷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잠만 자고 몸만 빠져나오는 내 방을 둘러보며 여행지에서 묵었던 숙소의 침실들을 떠올린다. 깨끗하고 쾌적한 침구에서 잠들고 깨어날 때마다 그간 작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편견과 두려움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을 때는 선뜻 들어가기 두려웠던 허름한 현지인 식당들을 떠올린다. 막상 낯섦과 고약한 냄새를 참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의 음식들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스스로 정한 한계를 넘어섰을 때의 쾌감이 어떠했었는지도. 또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는 태국 시골 마을의 인력거 운전사를 떠올린다. 엄청난 무게의 짐을 싣고 땡볕 아래에서 20분이 넘게 페달을 밟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삶에 대한 그의 의지를 말이다.

만족스럽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지난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느낀 감정, 이름을 뭐라고 붙여야 좋을지 모르겠던 그 감정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까지 ‘만족스러운’ 상태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내가 익숙했던 건, 늘 다음 단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챙기느라 바쁜 상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 다음 단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 머무는 동안에는 다음 단계를 계획하거나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감정이 내 안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중에서 

여행을 떠나 가장 서글퍼질 때는 저녁 무렵 공원의 벤치 같은 데 앉아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그때 거울로 내 얼굴을 비춰보면 유형지를 떠도는 죄수나 갈 데 없는 노숙자처럼 지치고 비참해 보인다.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은 고약한 냄새의 덮밥을 맛있게 떠먹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이나 울긋불긋한 책가방을 메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여학생, 버스에 올라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노동자들을 보면 질투가 치민다. 저들이 집에 돌아가 TV를 켜고 가족과 함께 익숙한 배우들과 익숙한 말이 나오는 드라마라도 볼 거라고 생각하면 배알이 뒤틀릴 정도다.

더위를 먹고 화상을 입은 채로 어두침침한 싸구려 숙소에 홀로 누워 있던 20대의 나는 어쩌면 여행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빌 브라이슨의 표현대로라면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 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돈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콜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오가는 페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시아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중에서

여행을 끝내는 데는 서글픈 쾌감이 있다. 나는 더 오래 여행할 수도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고향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 수 있다. 인도의 시골 마을에 한국 식당을 열 수도 있다. 근사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와 히피 가족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멋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매혹적인 자유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 무거운 일상에 굴복할 것을 선택한다. 나는 그런 내가 자랑스럽지만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도 드는 것이다.

인도의 침대 기차에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라오스의 강에서 튜브 래프팅을 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상으로 안전하게 복귀했을 때, 여행의 기억들은 종종 나를 현실에서 끄집어낸다.

인도의 기차에서 창 너머 검붉은 땅을 바라보던 순간에 불어오던 바람, 식당에서 그릇을 치우던 의젓한 소년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건넸을 때 그가 짓던 진심 어린 미소, 아프리카 유학생들의 방에 초대를 받아 온통 새까만 얼굴들 사이에 둘러싸여 왁자지껄 떠들며 웃던 시간, 며칠간 먹여주고 재워준 티베트 스님의 친절이 부담스러워 도망치기라도 하듯 버스에 올랐을 때 스님이 내 목에 황급히 둘러준 귀한 손님에게 선물하는 흰 스카프. 그건 대단한 기억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만한 것도 아니다. 그건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런 혼자만의 의미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지음 | 21세기북스 | 389쪽 | 148x210mm
『나를 부르는 숲』과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의 유럽 여행기. 그의 여행기는 조금 특이하다. ‘유럽은 아름다워요.’라는 얘기는 거의 없고, 그만의 시선과 유머로 유럽을 기웃거린다. 한없이 낭만에 젖은 여행기에 신물이 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솔직 담백한 여행 에세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411쪽 | 148x210mm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리스 스타인바흐. 그녀가 세계를 돌며 발견한 여행의 기쁨에는 ‘농익은’ 어떤 것들이 담겨 있다. ‘배우겠다’는 그녀의 각오가 굳이 ‘나는 배웠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각 여행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루는 솜씨와 유쾌한 입담이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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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글 한수희 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