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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에밀리 그래빗
ⓒ늑대들
그림책이 비밀의 문을 여는 일이라면, 에밀리 그래빗의 책은 찾아야 할 단서가 많아 더 은밀한 세계다. 《늑대들》만 해도 그렇다. ‘신간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도서관의 메모가 궁금하다. 살금살금 안으로 발을 옮기다 보면 어느덧 우리 손에는 《늑대들》의 도서 대출 카드가 들려 있다. 이곳에서 어린 토끼가 이 책을 읽고 있다. 한 장 한 장 토끼의 호흡을 느끼며 함께 읽는다. 책을 보는 토끼와 토끼 곁에 점점 가까워지는 누군가를 살피느라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추측과 상상을 더 해 마지막 장의 암호까지 풀었다면 이제 문을 닫고 그 세계를 나오면 된다. 밖으로 나오자 꽉 쥐었던 손이 스르륵 풀린다. 온몸의 감각을 쏟았더니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 ‘근데, 잠깐만! 그 토끼는 도대체 집에도 안 돌아오고 어디로 간 거야?’ 이런! 내 옆의 작은 모험가는 또다시 그 문을 열자고 말한다.
영국 그림책 작가로, 독특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선물한다. 《늑대들》과 《작은 생쥐의 두려움에 관한 책》으로 두 번의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았다.지은 책으로는 《오리 아빠》, 《또 읽어 주세요!》, 《네가 좋아》, 《시릴 그 녀석은 너랑 달라!》 등이 있다.
우리는 그림책을 보면서 작가들이 머무는 환경을 상상하곤 해요. 작가님의 그림책에는 숲과 동물이 빈번히 나오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터전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삶의 대부분을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도시 브라이튼에서 보냈어요. 여기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예술가들의 번창하는 공동체가 있고, 매우 보헤미안적인 곳이에요. 편안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죠. 기차를 타면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예요. 대부분의 출판사와 연결도 쉬운 편이에요. 아, 그리고 미드웨일스에도 작은 별장을 가지고 있어요. 캄브리아 산맥 산기슭의 시골 한가운데 있는데, 정말 아름다워요. 두 집이 서로 다른 분위기라 더 좋아요. 미드 웨일스 집은 꽤 최근에 산 집이라 할 일이 많은데요, 다행히 제 남편 미크는 집을 개조하는 걸 좋아해요.
딸과 남편 외에 쥐 두 마리도 함께 살았다고 들었어요. 《겁쟁이 꼬마 생쥐 덜덜이》, 《시릴 그 녀석은 너랑 달라!》에도 쥐가 나와요.
맞아요. 제 딸이 쥐를 좋아해서 가까이 두고 키웠어요.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죽었죠. 이 쥐들은 리틀 마우스의 《겁쟁이 꼬마 생쥐 덜덜이》에서 페이지 속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감을 줬어요. 제 모든 책이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나 생각 중 주의를 끄는 것으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영감은 항상 다른 곳에서 오고, 언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알 수 없어요. 가끔 《원숭이랑 나랑》처럼 제가 아는 사람이 영감이 될 수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단어나 구절일 수도 있어요. 가끔은 제가 확장하고 싶은 낙서일 뿐이기도 하고요. 《이제 숲은 완벽해!》에 대한 생각은 제가 그린 오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지어보다가 나온 거예요.
《또 읽어 주세요!》는 제 아이가 정말 좋아한 책이에요. 마지막 장면에서 화가 난 아기 용의 입에서 불이 나와, 실제 책에도 구멍이 뻥 뚫려 있잖아요. 이 장면을 특히 좋아했어요. 구멍 안에 손을 넣어보고, 냄새도 맡아봤지요. 책의 물질성을 느끼면서 시각에 이어 촉각, 후각으로 책을 탐색하는 모습이 놀라웠어요.
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에요. 저는 촉각이 어린아이의 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린 시절 손가락을 찔러 넣을 수 있는 구멍 때문에, 에릭 칼의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어린아이들이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그림책 세계를 탐험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늑대들》을 보는 방식도 비슷했어요. 토끼가 책을 빌린 거처럼 아이도 도서 대출 카드를 손으로 뽑아서 확인해요. 토끼는 뒤에 나타난 늑대를 못 보지만 우리는 책과 토끼, 늑대까지 보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느끼죠. 특히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두가지 결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늑대들》은 대학 마지막 학년 프로젝트였어요. 작업 기간이 6주밖에 없어서 빠르게 진행해야 했어요. 출판에 적합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크랩 용지로 작은 더미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거의 다 써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만족스러운 결말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었어요. 항상 토끼가 도망쳐야 한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단어들을 출력하여 더미북에 붙이려고 잘라냈어요. 더미북에서 ‘아주 작은 동물들도 즐겨 먹어요. 비버와 들쥐, 그리고… 토끼.’라는 문장이 있는데, 그중 ‘토끼’를 다음 장에 넣었어요. 그 장치가 마치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딸아이에게도 보여주자 정말 그렇다며, 재미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대안적인 엔딩도 만들게 됐죠.
작가님은 두 결말 중 어느 결말을 믿나요?
제가 믿는 결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그 책이 아이 손에 넘어가면,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이들 몫이니까요.
다섯 살인 제 딸은 처음에는 토끼가 늑대와 샌드위치를 먹는 결말을 믿었어요. 그런데 뭔가 꺼림직했는지 다시 책을 펴서, 찾아가지 않은 ‘도서관 편지’를 읽어달라고 했어요. 그러곤 미간을 찌푸렸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요(웃음). 저도 아이들이랑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어린아이들은 잼 샌드위치 결말을 믿기로 마음먹는 걸 봤어요. 좀더 큰 아이들은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들의 주소와 편지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발휘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토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제 책이 이렇게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될 때 가장 행복해요. 독자는 저마다 독특해요. 인생 경험과 성격에 따라 책을 이해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러 감각을 쓰며 책을 읽다 보니 스토리가 더 생생하게 전해졌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저는 할 수 있다면 항상 유머를 넣으려고 해요. 《겁쟁이 꼬마 생쥐 덜덜이》처럼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지라도요. 유머가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유머는 심각한 상황을 흐려지게 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대처하는 훌륭한 매커니즘이에요. 저는 유머가 좋아요.
《늑대들》은 아이와 아날로그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엄마가 어릴 땐 책을 빌리는 데 이런 종이를 받았던 거야?’, ‘날짜 도장을 찍어 줬어?’ 하면서 무척 신선해 하더라고요. 저도 손으로 적은 도서관 카드를 사용하던 기억이 나서 애틋했고요.
제가 대학생 때 늑대 책을 만들다 보니,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어요. 그때도 대부분 디지털 방식이었지만 오래된 많은 책들이 있었고, 도서관 카드를 여전히 사용했었죠.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어서 어린 시절의 아날로그 시대에 관한 주관이 확고한 편이었어요. 저 역시 책 안에 도서관 카드를 추가하면서 편안함을 느꼈어요.
어쩌면 종이로 만들어진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책이요. 만드는 행위, 읽는 행위 모두 손을 거치기에 더욱 그렇죠. 책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을 믿나요?
우리는 전자 장치로는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책에 대한 소유 의식을 가져요. 스마트폰, 태블릿, 랩톱은 놀랍지만, 모든 것을 망라해요. 책은 실제로 전자 장치가 부서지듯이 망가지지 않아요. 책은 두드려지거나, 휘거나 젖을 수 있지만 여전히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죠. 우린 대부분 직접 태블릿을 만들어본다는 상상은 잘 안 할 거예요. 하지만 책을 만드는 우리 자신을 상상할 수는 있어요. 종이와 책은 촉각적인 경험을 쌓게 도와주죠.
글과 그림을 혼자 작업하는 게 더 쉽고 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가 있었죠. 그땐 제가 삽화 작업을 한 책이 단 한 권뿐이었어요. 이후 다양한 실험의 가치를 깨달았고, 제가 존경하는 작가들의 오래된 소설책들에 삽화를 그렸어요. A. F. 해럴드A. F. Harrold의 《The Imaginary(세상에 없지만 완벽한 상상 친구)》와 《The Afterwards》, 매트 헤이그Matt Haig의 《Evie and the Animals》, 그리고 지금은 조앤 롤링J.K. Rowling의 《Quiditch through the quidge through the quidge》를 작업하고 있어요. 저는 이 책들이 가져오는 규율의 변화가 즐거워요.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제 그림책에도 반영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부모님이 판화가, 미술 선생님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다양한 예술 매체를 접해봤을 거 같아요.
부모님은 학구적인 과목보다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그림 그리기와 창의력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죠. 두 분 모두 항상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3차원 작업을 매우 잘해요. 도자기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크로셰를 하고, 옷을 만들곤 했어요. 70세 생일에 돌을 조각했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하고 계세요. 아버지는 판화 작업이나 아이디어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매우 좌절하곤 해요. 엄청난 직업윤리를 가진 분이죠.
예술적인 재능 때문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받았을 텐데 열 여섯살에 집과 학교를 떠났어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저는 미술 대학에 갈 거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지만, ‘예술’은 전혀 좋아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죠. 저는 갤러리가 불편하다고 느꼈어요. 거기서 제가 보고 있는 예술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갤러리는 마치 저보다 더 지적인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는 곳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 예술이 저한테는 와닿지 않았고, 늘 저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술 교사인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평판이 좋은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종종 미술계에 좌절감을 느끼곤 했고요. 저는 아버지만큼 추진력이 없다 보니, 시도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십대잖아요. 자유로워지고 싶고, 어디론가 가서 즐겁게 놀고 싶었어요. 너무 어려서부터 어딘가에 메이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떠났죠.
집을 나와 어떻게 지냈어요?
당시 영국에는 높은 실업률에 염증을 느끼고, 미래는 없다고 예견하는 젊은이들의 대규모 반문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마을과 도시를 떠나 낡은 버스, 캐러밴, 트럭으로 이동하며 사는 무리가 있었죠. 언론은 그들을 ‘뉴에이지 여행자’라고 불렀고, 어린 소녀로서 그 삶은 매우 흥미진진해 보였어요. 그들은 사회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고, 원하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어요. 처음에 저는 벤더(방수천으로 덮인 개암나무로 만든 피난처)에서 살았고, 그다음에는 작은 캐러밴, 이후에는 미크와 30피트 버스에서 살았어요. 미크는 지금의 제 남편인데, 제가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났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았어요. 그 일원이 되는 건 신나는 일이었어요. 저는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요. 그때 경험한 독특한 삶의 방식이 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하지만 몇 가지 심각한 단점이 있었어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우리를 싫어했고 부정적인 면으로 봤어요. 그래서 많은 차별을 받았죠. 길거리에서 가끔 우리에게 침을 뱉기도 했고, 종종 가게 출입도 거부당하고, 우리 창문에 벽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와 생각이 비슷했어요. 사회에 환멸을 느끼거나 정신, 건강 등 여러 이유로 사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집을 나와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나요?
길에서 사는 내내 그림을 그렸지만, 다른 창의적인 일도 많이 했어요. 일년 내내 여러 농장에서 일을 하며 일상생활을 하거나, 버스킹도 했어요. 매년 여름이면 전국에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일을 했고요. 길에서 산 세월은 제 삶의 기술 대부분을 배운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뭐가 고장 났다면 고치면서요. 하지만 전기와 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시간이 더 걸렸어요. 나무를 나르고, 자르고, 요리를 하고, 청소하고, 옷을 빠는 일이 매일의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본격적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딸을 낳고 웨스트웨일스의 시골집으로 이사했어요. 그때 저는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처음엔 집을 꾸미고 음식을 만들고 꽃을 기르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길에서 살아온 공동체가 그리웠어요.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갔고, 저는 어린아이와 지내면서 제가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아이를 돌보면서 제 관심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창의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 딸과 함께 많은 그림책을 읽었는데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림책이라는 예술은 제가 접근하고 싶은 흥미로운 영역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즈음 남편은 건축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도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애썼고, 난방 기술자로서 교육을 받기로 결심했어요. 남편이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집에 전단지를 가져왔어요. 미술 기초 강좌 광고였어요. 영국에서는 모든 미술 학위 과정에 1년 미술 기초 강좌가 선행되거든요. 저는 그 강좌에 등록했고, 첫 주에 알았죠.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아이와 함께 많은 그림책을 읽어봤을 텐데요. 모녀에게 그림책이 위로가 되어 주던가요?
제 딸은 매우 불안정한 아기였어요. 태어난 첫해 대부분을 울면서 보냈을 거예요(웃음).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파에서 꼭 껴안고 책을 읽어주는 거였어요. 아이를 위해 책을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저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요. 저는 독서가 아이를 안정시킨다는 걸 알았거든요. 거의 명상처럼요. 그림책은 걱정의 마음을 맑게 하는 신기한 매체예요. 마음에 드는 책을 계속해서 다시 읽으면 아이는 편안해지곤 했어요.
딸이 가장 좋아한 그림책이 궁금해요.
딸은 어린 시절 좋아하는 그림책이 정말 많았어요. 그중에서 아이가 오랜 시간 좋아한 그림책으로 기억나는 게, 제즈 앨버로우Jez Alborough의 《It’s The Bear!》예요. 그 이야기는 리듬이 있고, 재미있고, 삽화가 정말 매력적이에요. 스스로 읽기 전까지 수년 동안 그 책을 찾아오곤 했어요.
지금도 책을 좋아하나요?
그럼요. 딸이 3개월쯤이었나? 기억에 남는 사진이 하나 있어요. 제 친구가 자기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걸 제 딸이 옆에서 듣고 있어요. 아이 눈은 책 페이지에 고정되어 있고요. 아이는 책을 진실로 대하며 자랐어요. 저처럼 독서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요. 성인이 된 지금도 화가 나고 우울해지면 책꽂이로 향하곤 해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한 책도 궁금해요.
저는 아이의 닥터 수스 책을 매우 좋아했어요. 특히 Tongue twisters(잰말놀이) 책들을 즐겨 읽었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브라이튼 집 선반에 아직도 있어요. 기운을 좀 내고 싶으면, 큰 소리로 읽으려고 하나를 가져가곤 하죠. 제 딸이 곁에 있으면 들으러 올지도 몰라요(웃음).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 건가요?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10년 전에 만들 수 있던 책이 오늘 만들 수 있는 책은 아니죠. 저는 항상 변하고 있어요. 다만 기준이 있다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독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가든 상관하지 않지만, 그것이 관용과 감정이입이기를 항상 바라고 있어요. 또 제 책들이 아이들이 소유물이라고 느낄 아름다운 물건이면 좋겠어요. 아이들 손에서 오래되어 낡고, 남용되고, 일그러지는 것이 행복해요. 그건 주인이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는 증거니까요.
에디터 김현지
사진 에밀리 그래빗, 자료 협조 비룡소, Macmillan Children’s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