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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컴퍼니 김지원
구태여 어떤 분위기나 감정을 꾸며내지 않아도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원스컴퍼니 김지원 대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교복을 입었을 때부터 바삐 뛰어다니던 사회 초년생 시절, 10년 차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만난 인연까지 단단하게 지켜오고 있다. 오랜 인연들과 봉평에서 캠핑을 즐기며, 누군가를 위한 이벤트를 일상의 행복이라 여긴다. 그에게 관계의 밀도를 두텁게 유지해온 비법을 물으니, 특별한 이유 없이 오랫동안 사귄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고 답한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그가 좋은 사람이기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 김지원 대표로부터 매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연의 가치를 느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먼저 소개를 듣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원스컴퍼니 대표 김지원입니다. 패션과 뷰티,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의 이벤트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 가족은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열두 살 아들 용비, 이렇게 셋이에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얼마 전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방학을 맞이해서 가족끼리 호주에 열흘 넘게 머물렀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즈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파리, 암스테르담 여행도 다녀왔고요. 가정을 꾸리면 혼자 해외에 다녀오기 힘들잖아요. 회사 일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친구들과의 시간을 가족들이 이해해 줘서 고마웠어요. 오랜만의 여행이라 돌아오자마자 포토북을 만들었는데, 한번 보실래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담긴 사진들이네요. 손글씨로 적은 코멘트도 있고요. 이런 앨범이 많은가 봐요.
여행이나 캠핑을 다녀오면 그 사진들로 포토북을 만들어요. 친구들에게 선물하거나 아이랑 가끔 들춰보려고요. 저희는 여행에서 ‘따로 또 같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각자 취향도 세대도 다르니 누구 한쪽에게 모든 걸 맞춰주긴 힘들잖아요. 아이들도 어릴 때는 엄마, 아빠를 그저 따라갔다면 자라면서 하고 싶은 게 분명해지고요. 같이 있지만 각자의 친구들과 노는 거죠. 아이 교육을 위해 미술관, 박물관 도는 것도 이제는 안 하려고 해요. 저는 아무래도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여러 브랜드를 살펴보는 게 재밌거든요.
마케터를 무려 20년 넘게 해오고 있죠.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전공이 의류학과였는데 옷 만드는 건 전혀 자신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땐 수업보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추억 만드는 일에 더 진심이었고요(웃음). 그래서 패션 디자인은 아니지만 배운 걸 활용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어요. 우연히 패션 홍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데크’라는 홍보 대행사에 입사했어요. 그곳에서 만난 선후배들, 동료들과는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죠.
디자인과 마케팅은 접점이 적어 보이는데 일을 배울 때 어땠어요?
어릴 때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야심 차게 뛰어들었어요. 그 후에는 삼성물산이랑 LF를 거치면서 패션 마케터로 자리 잡았죠. 일도 일이지만 회사에 속해 있던 20대 때 정말 재밌었어요. 동료들이랑 퇴근하면 저녁에 술 마시면서 떠들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에너지를 얻었거든요.
공적으로 만나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어렵진 않나요?
처음에는 같은 회사에서 자주 보니까 가까웠다면, 각자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에는 좀 다른 느낌으로 가깝게 지내요. 여전히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서로 진지한 고민을 나누고 응원도 해줄 수 있죠. 일로 만났으니 공통분모도 많고 함께 아는 사람들도 많고요. 우연으로 만나서 인연이 된 친구들이에요.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회포를 푸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없죠. 마케터는 상대방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결국에는 모든 일이 다 말로 이루어지잖아요. 말을 어떻게 잘하느냐, 어떤 부분에서 센스를 발휘하느냐가 중요하죠. 예를 들어 최근에 한 광고주가 인플루언서의 사진을 평가했어요. 그 피드백을 곧이곧대로 인플루언서에게 전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죠. 말 한마디 잘못 전한 걸로 서로 호감이었던 사람들이 어긋나기도 하고요. 본질은 정확히 전달하되 오해의 군더더기가 없는 말들로 잘 다듬어 소통을 주도해야 해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또 질 수도 있는 거네요.
그럼요. 대행사에 다닐 때 말 때문에 힘들었던 게 하나 떠오르는데요. 바로 빈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맨날 밥 한번 먹자고 하는데 실제로는 만나자고 하질 않아요. 그런 말이 좀 싫더라고요. 구체적이지 않고 가벼운 말이라도 한 번 내뱉은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요. 저도 가끔 외면하고 싶은 약속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지켜요. 그래서 요즘 친구들이 저랑 약속을 잘 안 하나 봐요(웃음).
이제는 하나의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해요. 어떤 이유로 대행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1년쯤 지나서 ‘원스컴퍼니’를 만들었어요. 회사는 특성상 연차가 오래될수록 실무보다는 사람들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잖아요. 저는 그게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이 분야를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조그마한 거 하나를 만들어도 내 마음대로 해보면서 즐거워지고 싶더라고요. 아이를 낳은 게 왠지 모를 용기를 줬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속해 있는 회사의 미래가 아닌 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죠.
어린 용비와 함께 회사를 키워야 했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너무 신기한 게,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 네 명 정도가 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어요. 한 친구는 저랑 출산 시기가 40일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요. 같은 시기를 함께 견디는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아기용품도 다 같이 왕창 사서 나눴어요. 다만 육아는 저희 시어머니가 참 많이 도와주셨죠. 일은 잘하는데 육아는 어렵더라고요. 도움을 청할 때마다 한 번도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어요. 일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가 아프면 어머니가 슈퍼맨처럼 나타나셨고요. 지금도 감사드려요.
일에 대한 애정도 무척 큰 것 같아요. 대표님의 성향과 잘 맞는 일인가 봐요.
성격이 디테일에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라 오프라인 행사에 쓰이는 포장지 하나, 꽃 한 송이, 케이터링 구성까지 작은 디테일을 더해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해요. 브랜드 네임과 연관된 쿠키나 초콜릿을 준비하거나 성냥갑 안에 캐러멜을 넣어 소장하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요. 초창기에는 패션 브랜드 위주였다면 뷰티, 라이프 스타일까지 분야를 확장했어요. 작년에는 입생로랑이나 발렌티노 뷰티 런칭같은 큰 행사도 진행했는데요. 저를 포함해서 팀원들이 열심히 애써준 작업이었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에 매력적인 공간으로 소개가 많이 되어서 뿌듯했죠.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감성을 곳곳에 배치하는 작업이 즐거워요. 오신 분들이 각각 다르게 행사를 조명하는 것도 흥미롭고요.
그렇게 키운 회사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어요.
10년 동안 패션 홍보 분야에서 굵직한 일을 많이 해왔어요. 클라이언트로부터 객관적인 지표로 봤을 때 좋은 이벤트였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히 회사가 10년 차가 되니, 대표로서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어요. 전에는 그냥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모든 직원이 만족할까, 어떤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싶거든요.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일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건 변함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거예요.
지금까지 들어보니 무척 바쁜 하루를 보낼 것 같은데요. 일과가 궁금해요.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여덟 시에 등교하면 그 후 한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예요. 뒹굴뒹굴하면서 여유를 만끽하다가 출근 준비하고 열 시쯤에는 회사로 가요. 퇴근은 보통 여섯 시 정도고 틈틈이 점심이나 저녁 미팅을 해요.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예요. 다들 아이도 키우다 보니 저한테 평일 저녁을 함께하자고는 안 하더라고요(웃음).
용비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어요. 학교생활에 대해 곧잘 이야기를 나누나요?
어릴 때부터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집에 혼자 있는 걸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자란 것 같아요. 혼자서 게임도 하고 잘 놀더라고요. 퇴근하고 와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대답을 잘 안 해요. 엄마를 찾긴 찾는데 유달리 살갑진 않고 무뚝뚝하죠. 불과 1년 전만 해도 손잡고 자고 걷고 했는데, 아이들은 어느 순간 독립하려는 때가 오나 봐요. 시원섭섭해요.
그래도 덕분에 대표님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여유도 생겼겠어요.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얼 하세요?
요즘 푹 빠진 건 넷플릭스예요. 티빙, 웨이브 등 온갖 OTT를 구독하는데 연말부터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정말 많이 봤어요. 영화나 드라마도 사랑을 다룬 행복한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요. 얼마 전엔 <미 비포 유>를 보면서 새벽에 엄청 울고, <조 블랙의 사랑>도 다시 봤어요. 옛날에 그 유명했던 배우들의 최근 사진도 찾아보다가 이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생각도 하고. 갈등 없는 해피엔딩이 조금 뻔하더라도 그냥 모두가 밝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요즘 세상에선 해피엔딩이 뻔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평화주의자인가 봐요.
넷플릭스 이야기 내내 대표님 표정이 행복해 보였어요(웃음). 이외에도 주말에는 가족들과 캠핑을 즐긴다고요.
올해로 3년 차인데 원래는 텐트를 세워두고 하다가 이제는 오두막을 새로 지어서 장박을 해요. 캠핑의 낭만은 좀 떨어졌지만 관리에 대한 고민을 덜었죠. 작은 별장처럼 만들어두니까 더 수시로 가게 되더라고요. 자주 가는 곳은 여기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봉평에 있는 캠핑장이에요. 하도 가니까 사장님이랑 아예 안면을 텄어요. 트루피알 앤 크리에이티브 정신지 실장이나 남주희 스타일리스트 등 지인들에게 소개해서 다들 틈날 때 이곳으로 모여요. 서로 약속을 하고 오는 게 아니라 각자 시간을 보내러 왔다가 “어, 왔어~?” 하면서 자연스레 만나는 식이죠. 서로 맛있는 거 잔뜩 나눠 먹고 새벽에 불 켜진 텐트 찾아가서 2차, 3차까지 놀곤 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 더 즐거울 것 같아요. 캠핑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어요?
저도 처음엔 친구한테 초대를 받아서 시작했어요. 그때는 캠핑을 잘 몰랐던 때라 기대가 크진 않았는데요. 바비큐처럼 맛있는 음식 해 먹으니까 기분 좋고, 장비만 있다면 준비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불편함도 감수할 만했고요. 그래서 그날 바로 빈자리 찾아서 장기 렌탈을 계약해 버렸어요.
답답한 생활이 이어졌던 팬데믹 시기와도 딱 맞는 여가네요.
쉬는 날마다 맨날 하는 고민이 ‘아, 오늘은 어디 가지?’였어요. 저는 우리 가족끼리 놀러 다니는 것보다 항상 친구 가족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해요. 어른들 친구도, 어린이 친구들도 있고 공동육아도 가능하니까요.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맘 놓고 만나기 어려워져서 고민이 컸어요. 그런데 아예 야외에서 즐기는 캠핑을 하니까 해결되더라고요. 자연과 가까우니 놀이 도구도 이것저것 더 많고요. 캠핑 덕분에 팬데믹에서 해방된 것처럼 자유로운 시기를 보냈어요.
가족들도 자연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캠핑을 좋아하나요?
남편은 여행과 사람을 좋아하는 점이 저랑 똑같아요. 어린 용비도 거기 가면 같이 놀 친구들이 많으니까 잘 따라나섰죠. 요즘은 조금 귀찮아 보이긴 하는데, 플리마켓 열자고 아들을 부추겨요. 플리마켓은 제가 용비를 위해서 캠핑장에 제안한 거예요.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물건을 팔면 다들 재밌을 것 같다면서 좋아해 주셨죠. 포켓몬 카드 팔고 상추 같은 야채를 따서 늘어놓기도 해요. 어쩌다 고구마 같은 거 한 상자 들어오면 아이들이 끌고 다니고 어른들은 귀엽다고 용돈 주듯 사주시고요. 용비와 어린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하다 보면 캠핑장이 하나의 마을처럼 느껴져요.
그러게요. 동네 이웃들과 교류하는 법을 체득하고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에너지도 얻고요.
그런 ‘마을 문화’가 있는 곳이라 더 즐겨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용비가 먼저 인사도 잘 안 하고 예의가 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 다니면서 주변 분들이 아이가 많이 밝아졌다고 말씀하세요. 캠핑장에서 만난 아이들끼리 자전거 타고 읍내 나가서 편의점 다녀오고, 여름에는 근처 계곡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눈썰매도 타요.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시골 마을의 친근한 분위기를 경험하는 거죠.
플리마켓 외에도 캠핑장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고 들었어요.
어린이날에는 운동회나 체육대회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게임을 해요. 한쪽에서는 훌라후프 돌리다 보물찾기 하고 있고요. 핼러윈 때는 엄마, 아빠,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했어요. 남편한테 피카츄 옷을 줬는데 끈기 없이 금방 벗어버려서 제가 입고 다녔죠(웃음). 사탕 주는 것도 그냥 받는 게 아니라 가위바위보나 멀리 던지기 같은 게임을 해서 얻어야 하고. 저번에는 피자집 하시는 분이 화덕을 가지고 와서 갓 구운 피자를 나눠준 적도 있어요.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벤트가 한가득인데요. 그걸 누가 준비하는 거예요?
자치위원회가 앞장서죠. 이 캠핑장에 장박 고객이 많아서 위원회가 꾸려져 있거든요. 저도 그중 하나고요. 한 명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면 모두가 흔쾌히 해보자고 하면서 서로 적극적으로 도와요.
왠지 대표님이 먼저 아이디어를 낸 적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렇기도 하지만 핼러윈 퍼레이드 문화가 지금처럼 재미있고 화려해진 건 모두의 덕분이에요. 게스트들 초대해서 함께 놀면서 사진 올리고 하니까, 그게 인스타그램에 퍼지면서 캠핑장에 오신 많은 분이 즐기게 됐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했다고 하지만 하다 보면 어른들이 더 재밌어요. 그게 제가 이벤트를 기획하는 이유이자 제 일을 애정 하는 이유예요. 누군가를 위해서 해주지만 준비하는 사람도 즐거워지니까요.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든 거네요.
저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 노는 것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인생은 이벤트의 연속이라 현재를 재미있게 보내고 싶어요. 둘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작은 이벤트가 있으면 그 시간이 온전한 우리 것으로 느껴지잖아요. 생일 파티도 단순히 케이크 하나만 살짝 신경 쓰면 그 시간이 무르익고 초 하나, 풍선 하나 디테일만 신경 쓰면 잊지 못할 순간이 돼요. 상대방이 이런 걸 좋아하겠지, 저런 접시를 좋아하겠지, 하면서 느껴지는 설렘이 제 일상에 가장 큰 행복을 선물하는 것 같아요.
이쯤에서 문득 대표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는데요. 대표님은 어떤 아이였어요?
엄마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죠(웃음).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20대 때 ‘다마고치’가 처음 나왔어요. 그 작은 기계에서 캐릭터 키우고 밥도 주고 하는 게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 다마고치 한 개가 1~2만 원 정도였는데, 용돈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열심히 모아서 여섯 개씩 사서 친구들 나눠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저랑 똑같은 스타일이었네요. 김치 하나를 담가도 열 통씩 만들어서 여기저기 나눠줬거든요. 엄마부터 이어져 온 성향인가 봐요. 맞아, 그렇네!
따뜻하고 기분 좋은 유산이네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왜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을까요?
음, 단순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즐거운 게 좋으니까요. 하나의 재미를 공유하면 같이 뭔가를 사기도 하고 어딜 가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기분 좋아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도 제가 알게 된 정보들을 팔로워분들에게 아낌없이 공유해요. 얼리어답터처럼 새로 나온 상품이든 공간이든 빠르게 경험해 보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얻는 정보가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맘껏 알려드리고 싶어요. 성향 자체가 워낙 베푸는 걸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제가 먼저 무언가를 나누어주면 결국은 더 많이 돌아오던데요. 주변에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사람을 세심하게 대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저에게 자꾸만 과일 접시를 밀어주시잖아요(웃음).
좀 드시면서 하세요(웃음). 저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려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을 때, 사소하게는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배려가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그 사람의 취향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존중해 주니까요. 친구뿐만이 아니라 가족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용비 생일 파티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데, 아이를 잘 관찰하면서 ‘작년에는 레고를 좋아했는데 올해는 마인크래프트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머릿속에 저장해 놔요. 기억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취향에 관해서는 잘 기억해두려고 노력해요.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들이니까요.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는데,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져요.
제가 되게 친절한 스타일은 아니에요. 무언가 부탁받으면 해주면서도 ‘틱틱 대기도’ 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의 기분이 상하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항상 시뮬레이션을 해요. 사람과 있을 때 마냥 에너지를 얻는다기보다 오래된 인연들과 있을 때 온 힘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많아 보여도 전부 오랫동안 마음을 나눈 사이고요. 저도 아무나가 아닌 좋은 사람들이랑 지내는 걸 좋아해요.
대표님이 다정하고 유쾌한 분이라 주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아요. 가끔씩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어요?
일에서든 일상에서든 상대방이 나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 스트레스 받죠. 세상에는 무례한 사람들도 많잖아요. 근데 그걸 계속 곱씹고 속상해하기보다 ‘나는 앞으로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해요. 나이가 들수록 자주 자신을 돌아보고 더 좋은 말만 하고 싶거든요. 누구를 막 가르치고 싶거나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상대방에게 귀찮게 들릴 충고가 하고 싶을 땐 꾹 참아요. 차라리 조금 덜 말하는 게 나아요.
닮고 싶은 사람의 모양도 그런 걸까요?
맞아요. 주변에 말을 참 듣기 좋게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때문에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걸면 “어, 지원아~.” 하면서 예쁜 말투로 받아요. 그럼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죠. 20대 때는 그런 애들이 소개팅하면 항상 애프터를 받더라고요(웃음). 사람마다 취향이나 성향이 다 다르니까 저와 비슷하지 않아도 가까워질 수 있어요. 나와 똑같은 친구들은 일심동체처럼 행동하니까 신기한 기분이 들고, 나와 반대인 친구들에게도 인사이트를 얻을 때가 많거든요. 저는 책을 잘 안 읽는데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틈날 때마다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좋은 문구 보내주는 게 정말 소중해요.
이외에도 다양한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꾸려오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을 텐데요.
20대 때 한 번은 제 생일 파티에 서른 명이 모인 적이 있어요. 한 명씩 폴라로이드 사진 찍고 생일 축하 코멘트 받고 지인들이 서로 섞여 어울리는 자리를 만든 거죠. 근데 하루 종일 주변만 살피게 되더라고요. 축하받을 사람은 나인데 저 사람이 여기서 즐거운지 아닌지를 살피게 되는 거예요. 그걸 계기로 주어진 순간에 집중할 수 없는 자리는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즐거워지려고 사람들을 모으고 기꺼이 나누는 거니까 나 자신을 불편한 상황에 밀어 넣지 말자고요. 지금도 친한 친구들 무리가 여러 개인데 구태여 섞거나 이어지게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대로, 그 모양대로 즐거우면 충분해요.
앞으로는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궁금해요.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어바웃 타임>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듣자마자 제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삶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가족들과 오래된 친구들한테 항상 잘해야겠다고 다짐해요.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삶이라는 여행을 즐기고 싶어요.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에디터 이명주
사진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