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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As I Please
요 며칠 출근 전에 짧은 산책을 했다. 늘 타던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사무실과 멀지 않고 언젠가 몇 번 걸었던 길이 보여 벨을 눌렀다. 내키는 대로 걷다 보니 아는 길이 나와 ‘아, 이 길이 저 길과 이어져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무작정 걷다가 결국 아는 길을 만나는 것. 내 산책은 늘 이런 식이다.
성인이 되고 드문드문 써오던 일기장에 종종 이런 다짐을 적어 넣곤 했다. “내년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뭐든 대충 넘어가 버리는 성향이 늘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내 생각에 나는 정도가 심한 편이다. 예를 들어 한 카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면,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A카페는 B가 최고지.” “아니야. B는 C카페가 더 맛있어.” “하긴. C카페는 다 잘하니까.”라며 정확한 카페 이름과 메뉴명을 술술 읊는다. 나는 가만히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이런 말들을 끼워 넣는다. “아. 그 코코넛 맛 나는 거?” “아. 그 초록색 간판?” (말 앞에 꼭 ‘아’, ‘그’를 붙여야 자신감 없는 뉘앙스가 산다.) 보통은 카페 이름을 제대로 보지 않고 들어갈뿐더러 이름이 긴 메뉴 쪽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를 시키니, 머릿속에 남는 정보라곤 오감을 애매하게 스쳐간 것들뿐이다. 새로운 메뉴명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주문해 본 다음에야 외워지던데 다들 한 번 먹어보고 어찌나 상세히 기억하던지.
내가 하는 말에는 확실히 고유명사보다 대명사가, 정확한 정보보다 부정확한 정보가 더 많다. ‘만 팔천육백 원’ 대신 ‘만 팔천 얼마’, ‘뉴발란스 327’ 대신 ‘뉴발란스 요즘 많이 신는 로고 크게 박힌 거….’ 그건 새로운 정보를 자세히 보거나 알려고 들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만큼 모르는 채로 두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모든 걸 세세히 알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그런 습관이 굳어졌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선이라면 썩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내가 세상 만물에 무신경한 것처럼 남들도 내게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돼 마음이 편해졌고, 인간관계나 일이 틀어졌을 때 그러려니 넘길 수 있게 됐다. 이런 내가 운동을 한다면 무엇 하나 크게 신경 쓸 게 없는 종류여야 하지 않을까?
주말 오후에는 베란다 블라인드를 살짝 올려 하늘의 색을 확인한다.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고 휴대폰과 체크카드 한 장을 외투 양쪽 주머니에 나눠 넣음으로써 산책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 그 저번에 갔던 강아지 놀이터 어느 쪽이더라.’ 대책 없는 길치인 내가 혼자 나갔다가 놀이터까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집을 나서 돌아오는 길에 산책 나온 강아지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날의 산책은 성공인 셈이다. 저녁 외식을 하는 어떤 날엔 집까지 걸어갈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더 배불리 먹기도 한다. 망원역 근처에서 삼겹살 한 입, 소맥 한 모금씩 먹고 마시며 차근차근 배를 불린 뒤 월드컵경기장역까지 30분 정도를 걷는 것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배 속의 위가 아니라 손으로 만져지는 두 다리를 믿어야 한다. 다리가 움직이면 위도 같이 움직이고, 씩씩대며 걷다 집에 돌아오면 턱까지 차 있던 음식이 가라앉아 있다. 삼겹살이 소화되는 순간에 산책의 묘미를 느끼다니.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몸에 밴 바깥바람 냄새를 깊게 들이마신다.
시간과 장소, 방향과 속도에 정해 놓은 규칙이 없다는 점이 내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모르는 길 위에 놓여도 대충 맞는 것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그만이라는 점도 그렇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운동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운동. 몇 년 전까지는 걷는 행위보다 장소에 의미를 두었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를 거닐면 꽤 괜찮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큰 공원을 섭렵하겠다는 마음으로 주말마다 공원을 찾아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꼭 초록이 무성한 길이 아니더라도 산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나무가 아니라 네모반듯한 건물이 이어져 있어도 나름대로 구경하는 맛이 있는 법이니까. 점심을 얼른 먹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거나 저녁에 마트에 들렀다가 큰길로 빙 돌아가면 ‘산책 1회’를 완료한 것이다. 물론 이런 걷기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한다거나 대단한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 배가 불러서, 머리가 아파서 집을 나선다. 원하던 대로 정신이 맑아지고, 소화가 되고, 두통이 멎는 순간 찾아오는 작은 기쁨이 좋아서 나는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걷는다.
운 좋게도 직장 근처에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사무실이 있는 곳이 마포구 연남동과 서대문구 연희동의 경계여서 점심을 얼른 먹고 움직이면 두 동네 중 하나를 골라 30분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연트럴 파크와 동진시장 쪽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도 SNS에서 유명한 카페들 때문에 평일에도 골목이 북적인다.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려면 좀더 한산한 길을 찾아야 한다. 아늑해 보이는 서점도, 알록달록한 어린이 놀이터도, 왠지 침착한 데가 있는 나무들도 마치 처음부터 그 풍경을 위해 놓인 것처럼 조화로운, 연남동 주민센터 부근이 딱 그런 길이다.
불행하게도, 사무실에서 10분만 걸으면 나오는 그 쉬운 길을 나는 단번에 외지 못한다. 머릿속에 3D 지도를 작업해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껏 완성되는 건 허술하고 삐뚤삐뚤한 낙서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시각뿐이어서 ‘노란색 반미 건물까지 쭉 가다가 횡단보도 보이는 쪽’이라고 가는 법을 기억해 두고 자주 찾아가는 게 최선이다. 만약 산책의 출발 지점이 달라진다면 애써 친해진 길은 도로 초면이 되고 만다. 이렇게 목적지는 명확하고 가는 길은 혼란스러운 길 위에서는 주문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그 주문이 맞아떨어져 정말로 가고싶은 곳에 가 닿으면, 무작정 나아가는 걸음에도 조금씩 방향이 잡힌다.
종종 가는 카페 이름은커녕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신경함이, 그렇게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두는 열의 없음이 점점 삶 전체를 덮어버릴 만큼 커지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도 있다. 뭐든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닮고 싶다. 그건 아마 평생 끌어안고 지내야 할 숙제지만, 이 산책법만은 바꾸지 않고 가져가기로 한다. 내 방식 안에서 얻어지는 것도 분명 있을 테니까. 느긋함이나 인내심 같은 거 말이다.
글·사진 이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