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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도시의 얼굴
다녀온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대개는그 언저리 풍경이 떠오른다. 사진 속에 있는 것들이 뭐였는지, 프레임 너머에 어떤 게 있었는지, 이걸 찍은 순간에 누구와 걷고 있었는지. 보통은 그렇지만, 드물게 사진 뒷면의 이야기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뉴욕은 내게 첫 서양이었다. 스물한 살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동양을 벗어나봤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이 눈앞에 있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낯설어 두리번거리기 바빴고 그만큼 카메라로 찍어두는 순간도 많았다. 필름 카메라 두 개, 디지털 카메라가 한 개, 총 세 대의 카메라를 가방에 이고 다녔다. 상황에 어울리는 카메라로 매 순간을 잡아두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도리어 아무것도 찍지 않던 순간이 떠오른다.
뉴욕에서 가장 빠져 있던 것은 사진집이었다. 서점이나 미술관에 속한 아트숍에 가서 사진집을 봤다. 그때는 영어를 잘 몰라서 사진집을 펼치면 앞뒤에 있는 말들은 건너뛰고 사진만 봤다. 사진집은 그렇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한자리에 서서 읽기도 하고 구석진 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읽었다. 유일하게 그 순간에 찍어둔 사진이 없다. 뉴욕에는 한 달 정도 머물렀는데 그 여행이 끝난 뒤에 나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11년이었고 그때는 카우치서핑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소파를 내어주면 여행 자는 그걸 이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의 어느 대학생이 여행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여행지의 대학생 1,500여 명에게 숙소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가 50명의 학생에게 답장을 받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비용은 무료였고 대신 작은 선물을 갖고 가는 게 예의였다. 모르는 사람 집에 가는 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모험으로 여기며 카우치서핑을 종종 시도했고, 덕분에 몇도시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한 도시 중에 에든버러가 있다. 이 도시에서 8월마다 열리는 예술 축제를 보러 갔었다. 내가 묵은 집은 축제가 벌어지는 도심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에 있었다. 그 집에서 나와 축제가 벌어지는 도심으로 걸어가려면 30분 정도가 걸렸다. 축제가 열리는 곳이 홍대 앞이라면 내가 묵었던 마을은 홍제동 정도랄까. 마을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이곳이 축제가 열리는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며칠간 지켜보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유행이 있었다. 처음에는 ‘저건 뭘까.’ 하고 지켜봤는데 며칠간 여러 사람을 같은 모양으로 지나치고 나서 이 동네만의 문화라는 걸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머그컵을 들고 돌아다녔다. 어느 도시에서도 본 적 없었다. 누군가는 빈 컵을 한 손에 들고 있고 어떤 이는 카페에서 그 컵에 커피를 받아 걸어 나오기도 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 들이 컵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그 도시에는 내 컵이 없었다. 소파(실제로는 이층 침대를 빌려주셨다) 를빌린 것도 미안한데 머그컵까지 빌려 나갈 수는 없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머그컵을 찍어두고 싶었지만, 서로의 걸음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마을 이라 그 적막을 깨고 싶지 않았다. 도심으로 나와 축제를 즐기느라 분주한 사람들을 찍으면서도 그 동네로 돌아가는 길을 상상하곤 했다. 좋은 연극이나 음악 공연, 책, 전시 등을 많이 봤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고, 그때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머그컵을 든 동네 사람들이 생각난다.
아일랜드의 브레이라는 마을에 1년 정도 살았었다. 아이폰3를 들고 갔으나 소매치기를 당했 고,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도 갖고 갔지만 거기서 찍은 게 몇 장 없다. 1년 동안 찍은 필름이 네 롤뿐이었다. 근처 다른 도시에 갈 때 필름을 더 쓰긴 했지만 그 숫자도 많지는 않다. 한국에서 사간 필름을 1년 동안 다 쓰지 못하고 갖고 돌아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에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의 낯선 화장실에서 순간적으로 아일랜드를 떠올렸었다. 뭐지, 뭐 때문이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찾아낸 것은 도브 비누였다.
처음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홈스테이를 할 때, 주인아주머니와 그의 아들과 셋이 지냈다. 외국 인들과 처음 살아보는 데다가 낯가림이 심한 나는 한동안 어색한 일상을 보냈다. 그들은 내게 친절했는데 번번이 어설프게 웃기만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자연스레 웃는 연습을 해보곤 했다. 한참 웃는 연습을 하다가 비누로 손을 씻고 나오면 손에서 좋은 향이 났다. 좋긴 하지만 뭔지 잘 모르고 있다가 주인아주머니와 친해지고 함께 마트에 갔다가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그 향을 맡은 거다. 반가웠지만 나눌 사람이 나뿐이라 아쉬웠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슈퍼에서 도브 비누 여섯 묶음을 샀다. 요즘 사서 쓰는 좋은 브랜드의 유기농 비누에 비해 도브 비누는 저렴했다. 그걸 화장실에 두고 손을 씻고 나온 뒤에 몇 안 되는 브레이 사진 들을 꺼내 봤다. 네 롤뿐이라 금방 볼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갔다. 친구는 한국인을 상대로 ‘가우디 투어’라는 걸 하며 그 도시에 살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손님들을 만나 버스를 타고 걸으며 가우디와 연관이 있는 곳들을 보여주고 설명했다. 나도 한 번 그 투어에 참석했다. 손님인 것처럼 무리 틈에 껴서 가이드인 친구의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중간에 만원 버스에 올랐다. 친구는 손님들에게 소매치 기를 조심할 것을 당부했고 모두 가방을 꼭 부여잡고 버스에 탔다. 누가 내 가방이나 휴대폰을 훔쳐갈까 긴장하며 가슴팍만 보고 있는데, 친구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선아, 저거 봐. 이도시 버스 운전기사들도 손 흔들어서 인사한다?” 뒤를 돌아 운전석을 봤다. 내가 탄 버스와 반대 차선의 버스 기사가 창을 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뒤로 다른 도시에 가도 버스만 타면 그 장면이 보인다. 세계의 모든 버스 기사들은 반대 차선의 동료들을 보고 인사를 하는 걸까. 버스를 타고 투어하는 신분으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이런 걸 발견할 줄 아는 친구를 서울에서 만난 것도, 그친구를 보러 바르셀로나까지 다녀온 것도 정말이지 기쁜 일이고.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