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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다시 시작하는 기술
어떤 경험들은 무언가를 계속 원하게 하는 것 같다.
가끔은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질문을 하는 중에도 궁금한 게 없고 계속해서 같은 영화를 돌려 보는 기분.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 알고 싶은 지식도 없는 것 같은, 그런 내가 내 삶에 종종 등장한다. 예전의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며 여러 명이 돼 보는 일은 늘 낯설고 조금은 서글프다.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지?’ 삶 자체가 하나의 시작이었지만, 아무래도 그 안에서 또 시작과 시작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요즘 취미가 뭐예요?” 얼마 전에는 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하고 잠깐 동안 멀뚱히 앉아만 있었다. 없어서 그랬기도 했지만, 예전엔 분명히 있었던 게 떠올라서였다. 궁금함을 찾아내고 그걸 지니고 있던 기쁨과 실행하는 동안의 잃고 얻음,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달라진 내 모습. 취미라는 건 나와 세계를 간단히 연결하는 마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고르는 것보다 나는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도 어쨌든 달라지는 내 모습이 더 좋았다. ‘창문을 또 열어보고 싶다.’ 나는 질문에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앉아서 다행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삶에 창문이 여럿 있다고 한번 떠올려 본다. 창문은 열리기 위해 존재할까, 혹은 안과 밖을 분리하게 위해 존재할까. 그런 질문 속에서 창문은 불편함과 새로움, 편안함과 난처함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확신을 가지고 싶어.” 취미가 있냐는 그 질문을 받고 나서 며칠 뒤에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를 그냥 하고 있는 내가 그립다는 얘기였다. 틀린 것 같아도 괜찮고, 낭비인 것 같아도 즐거운 마음.
취미라고 말하기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확신을 가졌던 나를 잘 설명해 줄 만한 시기가 있다. 결혼하지 않은 채 개와 함께 살아가려면 집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걸 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는 완두를 부모님 댁에 3년간 맡겼다. 새로운 일도 배우고 1-2주에 한 번은 포천으로 가족들과 완두를 보러 다니며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포천 집에 가면 내 방이 아직도 따로 있었는데, 나는 매번 개집에 가서 완두랑 잤다. 넓고 깨끗해서 잘 만하기도 했고, 떨어져 있다 보니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거기서 자면 완두를 더 꼭 껴안는 기분이 들었다. “또 술 마셨냐!” 개집에서 자꾸 발견되니까 아침마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깨웠다. 나는 술을 안 마셨더라도 그냥 웃기만 했다. 엄마가 와서 자기 집을 뒤집는 와중에도 완두는 내 가랑이 사이에 몸을 꼭 끼우고 누워 있었다. 개집에 누워 있던 우리는 그렇게 담백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이야기들이 참 마음에 든다. 욕을 먹어도 좋고, 별다른 생각도 더 들지 않았던 날들. 우리는 창문을 가운데 두고 가끔 보던 사이에서 그때부터는 둘 다 안에 있거나 둘 다 밖에 있는 상태가 되었다.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끔찍하고도 편안한 이야기.
취미라는 건 삶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볼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지난 경험들이 떠오른다. 완두와의 관계뿐 아니라 소중했던 몇몇 관계도 떠오르고, 사람이 아닌 것 이를테면 선택 이후로 시간을 많이 들여야만 했던 사건들도 떠오른다. 체육과로 입학해 문예창작학과로 전과한 일, 잡지사에 다니다가 가구회사에 들어간 일, 결혼을 멀리 미뤄두고 연애 형태를 바꿔본 일, 사는 곳을 바꾸거나 여행을 떠났던 순간들.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후회는커녕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하고 싶을 뿐이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선택의 횟수로 가늠하자면, 조바심이 든다. 이게 다 완두 같은, 옛 연인 같은, 그러니까 사랑 때문이 아닐까. 꼭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어떤 경험은 무언가를 더 원하게 하는 것 같다. 마음과 시간을 들이던 지난 일들이 모두 아름답게 완성된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는 몇 번이나 더 경험할 수 있으려나, 하고 아쉬워하게 되는 것이다.
삶이 뭐인 것 같냐고 누가 물으면 요즘의 나는 ‘체험’이라고 단번에 말한다. 거기에 긍정과 부정의 개념은 없다. 그저 느껴보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우주고, 하찮다면 하찮은 먼지 아닌가. 모든 것은 변하는 중이니까 죽을 게 아니라면 나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싶다. 또다시 태어나려는 이유들은 사실 과거에 있다. 그러나 새롭게 경험하는 과거와 과거를 소중히 간직하려는 마음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모든 걸 자꾸만 잊어가는 중이어서 과거를 그때 그대로 간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망각하는 동물의 유일한 기억법은 또 새로운 일 속에서 과거의 존재들을 살아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취미를 찾아야겠다. 삶에 또 한 번 창문이 등장해 주길, 등장한다면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유리창에 손대 보고 안과 밖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들리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귀로 듣고, 문을 열고, 넘어가 볼 수도 있다면 한번 넘어가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냐면, 바로 내가 좋아했던 세상의 체험들이다. 몇몇 사람들과 몇몇 동물들, 내게 주어졌던 작은 영역의 세상, 그 안에서 일어났던 미스테리한 사건들. ‘그 모든 것을 한 번 더 경험하길.’ 나는 새로운 창문을 열며 들리지 않게 기도해 본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