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ace Cinema Milano Odeon

작년 12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더비 ‘엘 클라시코’(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매치로, 스페인의 정치 이슈까지 엮여 단순 축구 이상의 열기를 자랑한다)가 너무 보고 싶은 거다. 오랜 시간 꿈꿔 왔던 일이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축구는 계속되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늘 미뤄 왔다.근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꼭 가서 봐야할 것 같은마음이 들어 곧바로 티켓을 끊고 2019년 생일에 맞춰 밀라노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나경이가 또….”라며 내 SNS 계정에 갑자기 올라온 공항 라운지와 비행기 티켓 사진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나경이가 또….’ 밀라노를 시작으로 런던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마무리 짓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 밀라노.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패션 위크’와 ‘두오모 성당’으로 많이 알려진 지역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행선지가 밀라노였던 이유는 역시나 축구 때문인데, 엘 클라시코를 보기 전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인 FC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밀라노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평소 관심조차 가져본 적 없는 도시였기에, 구글 맵스에 그 흔하게 찍어둔 극장 별표 하나 없던 곳. 일단은 도착해서 32시간(한국과 이탈리아 사이 8시간의 시차 때문이다)동안 계속된 생일 즐기기에 앞서 원고 마감부터 시작한다.비행기 환승으로 공항에서 머문 시간을 제외하고선 이탈리아 자체가 처음이었고, 직전에 티켓을 발권하고 와서 밀라노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다는 나를 위해 성심성의껏 여러 곳을 소개해준 다정한 에어비앤비 호스트 나탈리아 덕분에 꽤 괜찮은 며칠을 보냈다. 물론 그중 가장 괜찮았던 그 날의 기록을 지금부터 전하려고 한다.

두오모 성당 옆 쇼핑몰 내에 자리 잡은 ‘스페이스 시네마’는 이탈리아의 전역에 36개의 극장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 브랜드 중 하나다. 이 코너를 통해 웬만해서 멀티플렉스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독특한 지점이 있는 극장이라 예외적으로이야기를 풀어본다. 그리고 앞서 암스테르담에서 잠시 이야기했던 더빙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고 싶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국가에선 여전히 더빙 버전의 영화가 상영된다. 전 세계에서 더빙 문화가 가장 발전한 나라로는 독일이 대표적인데, 이탈리아도 이에 못지않다. 제2차 세계대전(독일)과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이탈리아) 이후부터 두 나라의 더빙 문화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 밀라노의 극장을 소개하는 시간이니 이탈리아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겠다. 

1922년 집권을 시작한 무솔리니는 교육 영화협회인 ‘루체’(Luce: L’unione Cinematografica Educativa)를 국유화하고, 이를 통해 파시즘을 선전한다. 이후 1934년 이탈리아 영화 사무총국을 설립하며 이탈리아에서 상영하는 영화 산업 전반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영화를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법령에는 ‘이탈리아어로 더빙되지 않은 외화의 상영을 금지한다’라는 조항이 있을 정도였다. 영화의 주제가 국가 이념과 같은 맥락을 띌 수 있도록 산업 자체를 통제하며 대대적인 검열을 일삼던 시절의 산물 중 하나가 이탈리아의 더빙 문화라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겨울왕국 2>(한국은 11월 21일, 이탈리아는 11월 27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를 밀라노 한가운데서 만났다. 유럽의 더빙 문화에 대해 일정 부분 알고 있던 터라, 오리지널 버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걱정되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네 도레’ 편에서 소개했듯 마드리드에서 두 차례나 자막이 없는 상태로 생소했던 스페인 단편 영화들을 본 적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봤다. 하지만 <로마>의 경우 바로 넷플릭스를 켜서 한국어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물론 <겨울왕국>은 진작에 봤지만, 또 다른 결을 유지한다는 다음 시리즈를 낯선 언어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어 버전밖에 없는데 괜찮냐”는 극장 직원의 질문에 순간 망설이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나의 결론이 티켓 발권이라는 사실, 이 정도면 예상했으리라 믿는다.

무려 10개의 상영관에서 2,000여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스페이스 시네마 밀라노 오데온. 그중에서도 넓은 편인 2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상영관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름 아닌 스크린 옆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화장실의 존재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 개가 아니다. 그러니까 400석이 넘는 큰 규모의 원형 상영관 내부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다. 당연하게도 밀라노의 모든 극장이 이렇지는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는 일부의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스크린은 무대 위에 배치되어 있긴 했지만, 좌석 단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앞사람에 따라 영화 보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멀티플렉스라 그런지 15분 넘게 이어지던 광고 끝에 드디어 시작된 <겨울왕국 2>, 한참 몰입 중이던 중반부 갑자기 화면이 뚝 끊기고 불이 켜진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했는데(시간을 확인해보니 정확히 영화가 절반이 된 지점이다) 스크린에 ’휴식을 취하세요. 이 영화는 5분 후 재개됩니다’라는 멘트가 뜬다(물론 어림짐작할 수 있는 단어들만 보였고, 정확히 확인해보기 위해 번역기를 돌려 봤다). 몇몇 아이들은 스크린이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가 소리치며 잡기놀이하는데 여념이 없다.어느 꼬마는 텀블링까지 보여준다. ‘끊을 때 끊더라도 한 신이 끝난 뒤에 끊는 게 맞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영화 내내 숨죽여 집중하던 아이들이 이때다 싶어 한껏 신이 났음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띠어진다. 이런 예상 못한 이벤트(물론 내게만)도 마냥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겨울왕국 2>을 보며, 지금까지 유럽의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와 또 다른 생경한 두 가지 모습을 마주한 당일은 밀라노에 온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밀라노 시각으로 12월 13일, 눈 뜨자마자 본 바깥 풍경은 실로 놀라웠다. 북부에 위치해 이탈리아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에 속하지만, 겨울에도 대부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며 좀처럼 눈을 보기 힘들다는 밀라노에 함박눈이내리고 있던 것이다. 유럽에선 처음 본 눈이었고, 밀라노에서 몇십년을 사는 나탈리아조차 이런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그런 날, 때마침 스페이스 시네마 밀라노 오데온에서 본 영화가 <겨울왕국 2>다. 

영화 속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과 생활반경, 반복되는 특정 이미지와 사운드 효과, 때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나 멈춘 시간 속에서도 뚜렷해지는 이미지가 있다. 이들을 엮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영화 속 인물들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명확해진다. 물, 불, 땅, 바람의 4대 정령에게서부터 아델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엘사와 안나, <겨울왕국 2>는 ‘겨울 왕국’ 속에서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얼음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디즈니의 CG 기술 또한 압권이며, 한편의 뮤지컬 실황 공연을 본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다양한 음악 넘버를 들을 수 있어 황홀했다. 물론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흩날리는 눈 속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했던 밀라노의 모습과 지금 신이 났음을 ‘신나게’ 표현하는 아이들의 외침, 이 두 가지가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 또렷하다.고백건대, 한국에 돌아와서도 <겨울왕국 2>를 다시 보지 않았다.그렇다. 어떤 영화는 영화 속 세상을 뛰어 너머 나를 둘러싼 또 다른 풍경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The Space Cinema Milano Odeon

A. Via Santa Radegonda, 8, 20121, Milano MI, Italy

H. www.thespacecinema.it/al-cinema/milano-odeon

T. +39 02 892111

We Around Project

내가 사랑한 유럽의 극장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8년 5월,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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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