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ey is now over but will never be forgotten 못다 한 이야기

사사로운 어느 날의 여행 기록

못다 한 이야기

160일 동안 총 10개 나라, 30개 도시를 여행했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한 달 동안 한 도시에 머물렀고 여러가지 거주 방법과 이동 방법을 경험했다.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의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어쩐지 지금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까마득한 일로 느껴진다. 무척이나 신났던 날도, 지독히도 외로웠던 날도, 여행 슬럼프로 호스텔에서만 머무르던 날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못다 한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지도 따윈 넣어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많은 여행이 그렇듯 나의 여행 역시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수많은 경험을 조합해 이것저것 판단했다. 그런 내게 로마는 영화 속에 나오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었다. 오래된 유적지가 아니더라도 구경할 게 넘치는 곳이었다. 관심도 없는 내게 마치 다 봐야 한다고 강요하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잠시만 밖에 서 있어도 땀이 등을 다 적시는 날씨에 콜로세움Clolsseum 앞에 갔다. 콜로세움은 보수 공사 중이었는데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수백 명의 단체 관람객이 빨간색 단체 모자를 쓰고 한 줄로 걸어가는 모습도 보았는데, 그걸 멀리서 보니 흡사 불개미 떼 같아 보였다.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왔고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콜로세움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 막 도착한 271번 버스를 타고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버스에서 한숨 자다가 창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눈을 떴을 때 버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에 내려 돌아다니다가 작은 젤라토 가게를 발견했다. 다정한 부부가 운영하고 있던 그 가게는 로마의 유명한 젤라토 가게만큼 맛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실내를 채우는 음악만큼은 완벽히 내 취향이었다.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를 여행할 때 이런 방법을 자주 쓴다. 지도와 함께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강박도 가방에 넣어두고 아무 버스나 잡아탄다.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구경도 하고 그러다 다시 아무 버스나 타고 빠져나가는 것. 그러다 보면 버스 종점 터미널에 갈 때도 있고 좀처럼 할 수 있는 게 없는 곳에 내려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버스를 잡아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몇 개월 동안의 여행은 그렇게 확인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러 가는 것이었다.

오늘은 파업이지만
괜찮아

베니스에 갔을 때에는 모든 대중교통이 파업을 하던 시기였다. 아무리 파업이라지만 수상버스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그땐 정말로 모든 흐름이 멈춰 버렸다. 나는 얼떨결에 베니스를 걸어서 구경했다. 본섬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골목들과 길들을 느리게 여행했다. 본섬 중앙에는 나처럼 오늘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그들 무리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한 시간여를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공원에 닿았다. 그곳 벤치에서 햇살과 바다바람을 맞으며 한잠 늘어지게 잤다. ‘리도Lido섬에 못 가면 어때’ 나는 어느새 목적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돼 있었다.

밤에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양쪽에 촘촘히 켜진 불빛을 보며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내겐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있었다. 한번은 같은 호스텔을 쓰는 학생과 전역을 하고 여행 중인 친구와 함께 그 바다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니 누워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그곳의 벤치는 거의 누울 정도의 각도였다. 우리는 벤치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멀리서 들리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바로 앞에서 움직이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냥 다 좋았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표현할 수 있는 말의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좋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까운 순간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좋다는 감정이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구나, 하고 감정이 더욱 선명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그레브는
축제 중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는 내가 머무는 동안 축제 중이었다. 반옐라치치 광장Ban Jelai Square과 여러 거리에서 펼쳐지는 유럽 최고의 길거리 축제로 콘서트와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처음엔 급한 마음으로 더 많은 걸 보려 했던 나는 몇몇 퍼포먼스가 거리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여유를 부리며 놓치는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공연을 다 볼 수 있었다.

거리 곳곳마다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도 연주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가 있었다. 보통 여행자들은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나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에서 하루 정도를 머문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자그레브에서 오래 머문다고 말했을 때 다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렇게 아무 기대도 없이 이곳에 왔다. 그런데 때마침 열린 축제의 한가운데 내가 있게 되었다. 여행은 종종 그런 식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럴 때마다 선물을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얀첸과 함께한
런던에서의 일주일

얀첸Yan Chen은 내가 터키 사프란볼루Safranbolu 호스텔에 있을 때 같은 방을 쓴 친구이다. 그녀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나의 여행 일정을 보고 런던에 오면 자신의 집에 묵어도 좋다고 했다. 스물한 살의 중국인인 그녀는 런던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고 눈에 띄는 당찬 성격 때문에 나는 얀첸을 종종 언니처럼 느끼곤 했다. 그런 얀첸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평소 그녀가 베풀어준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매일 밤 한국어 선생님을 자처하며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한국인 남자와 매일 주고받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지금은 영어로만 주고받는데, 아무래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아테네에서 멜리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되살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주입식 교육을 시작했다. 그녀의 발음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가르치는 기쁨도 나날이 늘어났다. 가끔 내가 얀첸 대신 그 남자에게 한글로 카톡을 보내주면 영어를 잘 못하는 그 남자는 얀첸이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며 좋아했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에 가서 파티를 했다. 서울로 따지면 광장시장 격인 런던의 유명한 먹거리 시장이었는데 그날은 떡볶이나 막걸리 대신 치즈케이크가 손에 들려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왔지만, 우리 즐거움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런던 아이London Eye, 빅 벤Big Ben,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등 런던에는 화려하고 멋진 볼거리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내겐 얀첸이 먼저 떠오른다.

오래된 여행자

여행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내게는 몇 가지 반복되는 과정 같은 게 생겼다. 이를테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를 찾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물과 샐러드 재료를 샀다. 또 호스텔에서 조식을 주더라도 웬만하면 시리얼과 우유를 샀다. 시리얼은 견과류가 들어있어서 샐러드 위에 뿌려 먹기에도 좋았다. 우유는 따로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종이 팩에 든 저지방 우유가 저렴했다. 과일과 파스타 소스도 샀는데, 특히 나의 파스타 솜씨는 날이 갈수록 나아져 지금은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자취생활 7년 동안 매일 배달음식을 먹거나 라면만 먹었지 요리는 거의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내가 만든 파스타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정도가 된 것이다.

한번은 바르셀로나 호스텔에서 버섯을 좀 넣어 봤는데 믿을 수 없는 맛이었다. 마늘도 넣고 싶었지만 근처에서 구하질 못했다. 사실 마늘인 줄 알고 뭘 좀 샀는데 껍질을 벗겨 보니 희한한 모양의 양파였다. 이제 점점 실수는 줄고, 곧 ‘평범한 파스타’의 경지에 도달하리라. 매번 그렇지 않았지만, 장을 잔뜩 봐도 레스토랑 한 끼 식사비가 안 되던 때가 많았다. 오래 여행하다 보니 ‘그 지역 음식은 딱 한 끼만 먹어주면 된다’는 나름의 룰이 생기기도 했고. 장바구니에 먹을 식량을 담다 보면 스트레스도 좀 풀렸던 것 같다. 왠지 장기 여행자가 된 것을 체감할 수 있어서 더 자주 마트에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여행자의 배낭에 가지각색의 파스타 소스와 샐러드 소스가 들어있겠는가.

여행을 떠나기 전 사람들은 ‘돌아와서 무얼 할 것인지’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 삼아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여행 후의 나를 계획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생활에 지쳐 떠난 여행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활에 미련이 없었다. 내가 가는 곳 중에는 위험한 게 확실한 지역도 있었는데 혼자 떠나는 내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나는 살아서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다. 긴 여행이 끝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고 나는 서울에서 여전히 방황 중이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돌이켜 보면 여행의 날들은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그 순간들 덕분에 나는 두터워졌을 것이다. 스물 아홉의 철없는 객기였든, 시간을 상대로 한 발악이었든, 나는 무언가에 홀로 부딪혔다. 160일간 핸드폰과 선글라스, 바람막이, 립밤 그리고 약간의 돈을 잃어버렸지만 어쨌든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한다. 2014년 여름, 뜨거웠던 내 여행이 끝났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전진우

글·그림·사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