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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반대말
1970년에 ‘우리에 갇힌 쥐’ 실험이 있었다. 작고 사방이 막힌 우리에 쥐 한 마리를 가두고 물병 두 개를 놓아두는데, 한 병에는 그냥 물이 들어 있고 다른 한 병에는 헤로인이나 코카인이 들어 있다. 우리의 예상대로 쥐들은 헤로인이 든 물을 마시고 빠르게 죽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던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 교수는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우리 안의 환경이 너무 제약적이라는 실험의 허점을 발견한 것이다. 만약 충분한 양의 치즈와 가지고 놀 만한 색색의 공들, 수많은 터널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함께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 물병 두 개는 그대로 둔 채로. (요한 하리Johann Hari의 테드Ted 강연을 듣고.)
부모님이 사는 포천 집에 가끔 찾을 때면 나는 늘 커피를 사 간다. 오랜만에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나면 엄마가 늘 내게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커피콩을 잘게 부술 때마다 엄마는 향기에 감탄한다. 별말 없이 그 곁에서 커피를 만드는 시간은 귀하다. 혼자서 그랬던 것처럼, 잠깐 동안 가족과의 시간도 한껏 편안해진다. 늘 하던 일을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의 힘이랄까.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서 커피는 늘 어느 정도의 고마운 익숙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서울로 돌아가며 엄마를 위해 커피콩을 병에 담아두지만 다시 돌아와서 보면 커피콩은 늘 그대로 남아 있고, 찻잔도 내가 마지막에 넣어 놓은 모양 그대로 찻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커피를 어쩔 수 없이 매번 사 가는 것도 그렇지만, 커피 말고 무얼 사가야 할지 몰라서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엄마는 술도 전혀 마시지 않는다. 언젠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본 것 같은데, 아주 먼 일이라 그게 사실에 기반한 기억인지 내 착각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술 취한 모습 중에는 아름다운 얼굴도 더러 있는데, 엄마는 어떨까.
술과 커피. 내가 늘 기댄 채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엄마는 전혀 기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세계는 결코 허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가 많이 없어도, 커피나 술을 즐기지 않아도 담담하게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내 경우에는 그런 키워드들이 ‘요즘 잘 지내는지’ 알아보는 지표가 될지 모르지만, 엄마를 알아가는 일에는 그저 맞지 않는 열쇠 꾸러미에 불과한 것이다. 과연 엄마의 세계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언젠가 그걸 깨닫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완두가 태어난 지 다섯 달 정도가 됐을 때 완두를 낳아준 개 진주가 죽었다. 2014년이었고, 떠날 거라는 걸 아직 상상해본 적 없던, 진주가 열 살이 되는 해였다. 며칠 째 밥을 잘 먹지 않아서 병원에 데려가던 도중에 엄마 품에서 조용히 그렇게 됐다. 서울 자취방에서 나와 함께 있던 강아지 완두가 포천 집에서 지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진주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주가 죽기 전까지는 엄마 자신도, 가족들도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진주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에도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엄마는 무엇으로 버티나. 갱년기까지 찾아온 엄마 옆에서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세계에 무엇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진주를 잃은 엄마는 마치 하얀 방에 물병 두 개와 함께 홀로 남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독의 반대말은 단지 맑은 정신이 아닙니다. 중독의 반대말은 관계입니다.” 요한 하리는 그의 강연 말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먹을 것과 가지고 놀 것, 친구들이 함께 있는 실험 환경에서 쥐들은 더 이상 헤로인이 든 물을 마시지 않았고, 모두가 관계 맺고 살아가며 목이 마를 때마다 깨끗한 물을 마시러 왔다는 얘기와 함께.
엄마가 무너져 있을 때도 완두는 마당을 뛰어다녔다. 무릎에 갑자기 오르기도 하고, 마당 한가운데 누워서 잠이 들기도 하고. 엄마는 강아지를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다고, 완두를 얼른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마당에 나가서 진주 이름을 부르며 울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는 계속 안기려는 완두를 밀어내는 일이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품을 조금 내주었다. 손으로 목덜미를 쓰다듬거나 등에다가 볼을 대보기도 했다. 가끔 진주야, 하고 부르길래 내가 완두라고 말해줘도 엄마는 그냥 진주라고 불렀다.
막막한 마음에 가족들조차 쉽게 엄마의 방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완두가 철없이 뛰어다녀 주었다. 작고 사방이 막혀 있던 방에 또다시 누군가 드나들게 된 것이다. 엄마는 이제 매일 아침 완두가 잘 잤는지 밖으로 나가서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완두가 진주처럼 문 앞에 앉아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눈물이 멎었던 그 무렵에 엄마가 식탁 위 달력에 적어놓은 일기다. 조용히 변하던 엄마의 세계가 그 문장에 담겨 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긴 편지로, 혹은 마음으로 적은 시처럼 기억하고 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