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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조는 동네의 게으른 제빵사
소가 조는 동네의
게으른 제빵사
우면동牛眠洞은 마을의 모습이 소가 졸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번잡한 양재역 뒷골목에 보물처럼 숨어있는 동네는 소가 졸 법한 분위기다. 이름 탓인지 나른한 이곳에는 빵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제빵사가 있다.
INTERVIEW 베이커 권순석
반죽하지 않는 빵
무반죽법으로 빵을 만든다고 들었어요. 반죽하지 않고 빵을 만들 수가 있나요?
무반죽법은 밀가루에 효모와 물, 소금을 넣어 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섞어주고, 시간과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반죽을 효모화하도록 두는 방법이에요. 빵의 식감을 위해 반죽을 치대 강제적으로 글루텐을 형성시키는 대신 자연의 손에 맡기는 거죠.
찾아보니 무반죽법으로 빵을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하던데요.
무반죽법으로 빵을 만드는 홈베이커는 있지만 상업적인 베이커리는 없을 거예요. 제가 준비하면서 유튜브나 구글에서 참고할 해외 자료를 찾아볼 때도 그런 곳은 찾기 어려웠어요. 무반죽법에 대해 셰프들이 설명하는 정도죠.
베이커리에서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죠?
전에 무반죽법에 대한 책을 쓴 저자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땐 빵집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누군가 이걸 활용해서 빵집을 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맛과 풍미도 독특하고 건강에 좋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빵집에서 활용하기보다는 가정에서 가족들 건강을 위해 만들어 먹기 적합한 방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일반 빵보다 많이 부풀지 않고,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까도 깜파뉴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하시던데,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무반죽법은 일반 반죽법보다 시간도 다섯 배 이상 걸리고, 단계도 두 세배 이상 복잡해요. 다만 무반죽법에 대한 가능성만 열면 모양도 일반 빵 이상으로 나올 수가 있어요. 저도 아직 일정하게 굽진 못하지만 여러 가지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중이에요. 발효 타이밍을 놓쳐서 맨 마지막에 늦게 구웠는데 빵이 잘 나왔던 적이 있어요. 2차 발효를 충분히 해줘야 한다는 걸 발견한 거죠. 밀가루도 늘 쓰던 것이지만 가을, 겨울이 되면 풍미가 좀 떨어지고 계절별로 습도 때문에 수분율이 영향을 받아 달라지기도 하고요.
제빵사가 통제할 수 없는 맛과 성질을 가진 빵을 만드는 게 힘들진 않나요?
그건 그날 빵의 운명이니까요. 사실 통제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욕심인 것 같아요. 오늘처럼 반죽이 퍼지거나 빵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좌절감을 느끼기는 하죠. 이런 부분도 그날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아직 자유롭진 못해요.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진 반죽이어서 맛은 더 좋을 수 있거든요. 늘 일정한 맛보다 시간에 맡겼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맛도 꽤 매력적인 것 같고, 고객들이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요. 물론 제빵사는 최대한 오차를 줄이려고 노력하겠지만요.
차이가 있어서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빵의 상태에 관해 항상 얘기를 해줘요. 실수로 소금을 빼먹어서 그 빵을 시식용으로 내놓은 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빵을 만들 때 우리밀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밀은 온순하고 온건한 스타일에요. 성격이 느긋하지만 고집도 있고요. 밀에 맞는 빵 만드는 방식이 있다고 하면 우리밀과 무반죽법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재촉하듯 믹서기로 반죽하지 않고 시간을 주고 다독거리는 거죠. 사워종을 쓰면서 반죽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도 조화롭지 못한 것 같고요. 정신없이 돌리면 어지럽잖아요. 또 내버려 두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제빵사는 조용하게 살살 다뤄서 효모들이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아, 이러다가 모든 제빵사의 적이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천연발효종은 당분이 있는 과일들로도 만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물과 밀가루만 이용한 화이트 사워White sour* 효모를 사용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과일 액종은 효모만 추출하는 방식이지만 화이트 사워종은 밀가루에 있는 효모균과 젖산균인 박테리아를 같이 배양하는 방식이에요. 사실 박테리아는 효모보다 세고, 발효를 방해하는 녀석들이기도 해요. 박테리아들이 효모보다 먼저 당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효모가 힘을 뺏겨서 발효종이 잘 안 크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박테리아들이 빵의 풍미를 높여주고, 유기산을 만들어 내고, 발효종을 건강하고 안정적이게 만들어주기도 하죠. 사실 이스트라는 건 빵에 도움이 되는 제일 센 놈들만 모아서 배양한 거잖아요. 그런데 사워종은 빵에 필요한 효모뿐만 아니라 걸리적거리는 박테리아까지 기타 세균들 다 같이 끌고 가는 공동체예요. 그렇게 가면 열등해 보이는 녀석들이 나중에는 빵에 이상의 역할을 하는 거죠. 시간만 넉넉히 주면요. 시간이나 생산성만 따진다면 박테리아들은 쓸모없는 것들이 되죠.
항아리에 담긴 물은 뭔가요?
물은 발효종에 주면 활성화가 잘 되는 물이 있어서 정수기마다 비교해서 효모들이 좋아하는 걸 골랐죠. 저는 거의 발효종의 종이에요(웃음). 지금은 이온수기로 정수한 물을 수정이 든 항아리에 넣어서 하루 지난 다음에 써요. 그냥 마셨을 때도 목 넘김이 좋고 입자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요. 수정수로 발효종을 키웠을 때는 종이 넘칠 정도로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무반죽 빵이기 때문에 다른 재료들로 효모들에게 힘을 주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화이트 사워
물과 밀가루 혹은 호밀가루를 섞어 가루에 붙어있는 야생 효모를 길러내어 이스트 대신 사용하는 천연 효모. 이름처럼 시큼한 맛을 내며 천연 발효종 특유의 촉촉함을 만들어 낸다.
빵집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집에서 새벽 네 시에 나오면 네 시 반에 도착해요. 도착하자마자 전날 발효해둔 반죽을 꺼내서 가볍게 10초 정도 가볍게 접어줘요. 5도에서 저온 숙성시킨 반죽을 실온화하고, 다섯 시부터 다음 날 만들 빵 반죽에 들어가죠. 그렇게 빵 가짓수에 맞는 반죽을 만든 뒤 다시 가볍게 접어줘요. 발효기에 넣어서 25도에서 일곱 시간 정도 1차 발효를 하고, 저온 숙성으로 넘어가서 다음날 실온 발효를 하는 거죠. 스물네 시간 정도 걸리죠. 아홉 시부터는 빵을 성형하고요. 그다음 2차 발효, 실온화, 3차 발효를 거쳐 오븐에서 구워내요. 빵이 만들어지면 판매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저녁 여덟 시에 퇴근해요. 그리고 다음 날 4시에 나와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죠.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네요.
무반죽법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하루만 일찍 하면 돼요. 첫 하루만 당겨 쓰는 거고, 당일반죽 해서 빵을 못 만들 뿐이죠. 무반죽법이 상업용 베이커리에 맞지 않는다는 건 이스트 회사나 믹서 회사의 음모가 아닐까(웃음).
지켜보다 보니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꽤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정성껏 만드는 빵 맛을 알아줘야 할 텐데요.
고객들은 사실 이런 것보단 맛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죠. 사실 진짜 자신의 미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10%~30%밖에 되지 않는대요. 문화적인 요소나 정보, 광고에 소구되어 자기도 모르게 ‘이게 제일 맛있어’라고 믿는 거죠. 그런데 저는 사람들에게 원초적인 맛에 대한 기억과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화장하지 않은 맛의 빵으로 이 동네에서 사람들의 입맛을 천천히 길들여 가는 중이죠(웃음)
흐르는 대로 두는 삶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대학 다닐 때 《빵장수 야곱》이란 책을 읽었어요. 야곱이 새벽에 혼자 빵을 구우면서 적은 메모가 우연히 빵 속에 섞여 들어가는데, 그 메모를 동네 사람들이 발견하고 야곱에게 지혜를 구하게 되는 내용이에요. 조용한 데서 빵을 굽고, 묵상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그래서 제빵 자격증을 땄는데 서울에 있는 선배가 잡지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잠깐 왔다가 발목이 묶여서 20년 정도를 출판일을 했네요. 작년 5월까지 일하다 운영하던 잡지사를 정리했어요.
오랜 시간 글을 쓰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취미로 하던 제빵이 직업이 되리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삶의 변곡점에 무반죽법을 만난 거죠. 전에는 목표를 세우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짜면서 살았거든요. 잡지에서도 성공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었고요. 늘 그런 글 속에 묻혀있었는데 그 무렵엔 회의가 있었어요.
잡지사를 정리한 건 빵집을 열기 위해서였나요?
쉽게 말하면 부도가 난 거라, 앞일에 대한 계획 없이 그냥 빵을 해야겠다는 마음만 있었어요. 사실 그땐 빚밖에 없었는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 했을 일이죠.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날 때마다 가게를 보러 다녔어요. 그러다 전세금으로 빚 갚고 약간 남은 돈으로 가게를 연 거에요. 외진 우면동에 들어온 것도 삶에 대해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였어요. ‘내가 어떤 의도나 목표를 세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했을 때 삶은 어떻게 바뀔까? 10년 정도만 그렇게 살아보자.’ 그게 계획이라면 유일한 계획이었어요.
예전에 하던 일과 다른 지점이 많잖아요.
매체가 종이에서 빵으로 바뀐 것뿐이지 사실 똑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가 나름 행복하다는 사람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어요. 이야기는 그럴듯하지만, 기자 생활 오래 하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글로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미화되는 부분이 있었죠. 어느 순간 그게 견디기 힘들고 스스로 글쓰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그게 잡지를 접게 된 계기 중의 하나였죠. 지금도 여전히 페이스북을 하고, 블로그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글이 안 써져요. 불과 일 년 전에는 그게 일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빵을 만들다 보니까 글 한 줄 쓰기가 너무 힘든 거에요. 아내가 진열할 빵 앞에 두겠다고 소개 글 몇 줄 적어달라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저는 어쩐지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 이렇게 바보가 되어가고 있구나(웃음).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혼자 일하는 긴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빵만 만들어요. 항상 창을 바라보면서 반죽 작업을 하거든요. 앞으로는 운동장이 펼쳐져서 시야가 확 트여요.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보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단순 육체노동을 하니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고요. 음악도 틀지 않는 편이에요. 가게에서도 작업대에만 불 켜놓고 일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제빵사의 삶을 수도자의 삶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사실 개인 빵집의 제빵사는 빵장수 야곱처럼 살 수는 없어요. 막상 시작하면 심적 부담과 육체적 노동 강도가 세죠. 어떻게 보면 이것만큼 피폐해지는 삶도 없어요. 제빵사는 하루를 이틀처럼 사니까요. 새벽 4시부터 12시까지 빵을 만들고, 12시부터는 서비스업으로 바뀌고요. 빵이 잘 팔리면 그런 피로가 없지만 빵이 안 팔리면, 중압감이 밀려오죠. 안 팔리는 빵을 등 뒤에 지고 다음 날 빵을 만들어요. 그래서 새벽에 그런 고민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일어나죠.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서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것보다 더 번잡해질 수 있는 삶인 거예요. 그런 꼬투리를 주지 않으려고 새벽에 나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빵 만드는 즐거움에 심취해서 만들고자 애쓰는 편이에요. 반죽과 내가 일대일로 마주하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요. 그리고 그렇게 매일 이어지죠.
이렇게 흘러가는 삶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나요?
다른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어느 시절보다도 삶이 안정적이고 좋아요. 일하면서 세상에서 만들어낸 원칙을 일하면서 숱하게 정리했어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 사회적 잣대, 자금은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주입된 나를 반죽하면서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 아닐까요. 제가 만드는 빵도 그런 걸 닮아갔으면 좋겠어요.
소울 브레드의
느리게 만든 빵
01앉은뱅이 통밀 블루베리 콩&콩
앉은뱅이 통밀에 블루베리와 병아리콩, 서리태를 넣어서 건강의 맛을 더한 깜파뉴. 콩의 단백질까지 먹을 수 있어 식사 대용으로 먹기 좋다.
02멀티그레인 루스틱
맑고 담백한 맛을 지닌 빵으로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언뜻 밋밋하면서도 구수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 샌드위치를 만들 때 많이 쓰인다.
03허브롤치즈
바질, 오레가노, 로즈마리 허브와 부드럽고 고소한 롤치즈가 어우러져 깊은 맛이 난다. 다른 것을 곁들이기보다 그냥 먹기 좋다.
04앉은뱅이 통밀 크림치즈
크림치즈, 호두, 레몬필, 해바라기 씨가 어우러져 맛이 풍부하다. 거친 통밀과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조화를 이루는 빵이다.
‘저는 하나의 효모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일할 땐 효모에게 힘을 줘서 빵을 굽고, 집에선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요. 특별히 제 주장을 펼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저 빵 몇 개 구워놓고 멋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죠.’
그는 아무 맛도 없는 맛을 칭찬으로 여기고, 새벽 4시부터 나와 일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참 게으른 제빵사네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쩐지 그는 그 말을 들으면 바보처럼 허허 웃을 것 같다.
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