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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보듬는 마음
홈가드닝 크리에이터 그랜트
생명이 많은 집에는 온정이 가득하다. 그랜트의 집과 그랜트라는 사람이 그렇다. 스스로를 ‘식덕’이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 식물과 함께 자라는 법을 배우며 매일을 살아간다.
식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죠.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식물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식덕(식물 덕후)이자 홈가드닝 크리에이터 그랜트입니다. 베란다가 없는 아파트에서 식물 300여 종을 키우고 있어요. 처음에 단순히 식물이 좋아 키우기 시작했던 취미가 지금은 제 삶에 큰 틀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정원’은 외부에서만 가꿀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저만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어요. ‘어떻게 하면 실내에서도 식물을 더 건강하고 예쁘게 기르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식물을 키우며 느끼는 행복과 소소한 실내 정원 가드닝 팁을 알리는 내용을 영상으로 담아 제 유튜브 채널 ‘그랜트의 감성’에서 콘텐츠로 만들고 있어요. 처음엔 실용적인 정보를 담아 소통했다면, 요즘은 다양한 식물 공간을 투어하면서 식물을 아끼는 또 다른 사람들의 공간과 철학, 그리고 마음을 담아 소개해요.
그랜트의 집은 정원을 넘어 정글에 가까워요. 많은 식물을 보살피려면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겠죠?
식물을 단순히 숫자로 생각하여 300개로 한정 짓는다면, 그 틀 안에서 느껴지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없지 않아 있을 거예요. 저보다 더 많은 식물을 키우는 분들도 많아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식물의 수, ‘욕심’이 아닌 ‘마음’으로 보듬으며 키울 수 있는 식물들이 곧 제 식구 수가 되는 것 같아요. 식물을 관리하며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그런 순간들이 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돼요. 식물에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잡념이 사라지기도 하고요. 그래도 정원 생활이 꼭 편하기만 하다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식물과의 삶이 아주 긴밀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네요. 그랜트의 하루 루틴이 궁금해져요.
제일 먼저 날씨부터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해요. 온도와 습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햇볕을 확인하죠. 식물을 키우면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자연적인 변화에 굉장히 민감해졌어요. 식물을 키우기 전의 삶은 달력에 적힌 12개월을 보았다면, 지금은 절기에 따라 정원을 대비해요. 정말 놀랍게도 절기에 맞춰 정원의 작은 변화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봄을 알리는 입춘, 가을을 알리는 입추에 맞춰 자연에서부터의 변화가 그대로 실내 정원에 옮겨오죠. 여름에 한참 더 성장할 것 같은 실내 식물들이 입춘, 입추 절기부터 원활하게 자라는 모습과 마주하기도 하거든요. 빛이 가장 풍부한 하지와 반대인 동지 때 실내 공간에서 햇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에 따라 식물을 적절히 배치해서 키우게 됐죠. 이 과정 속에서 식물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관리하는 모든 일이 제 일상의 당연한 생활로 녹아들게 됐어요. 따로 반복적인 ‘루틴’이라고 정하고 살지는 않아요.
자연과 가까운 생활이군요. 식물을 좋아한 계기가 있나요?
돌이켜봐도 왜 식물을 좋아하게 됐는지 알 수 없어요(웃음). 사실 식물보다 햇빛을 정말 좋아해서 빛을 사진으로 담는 걸 더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 제 곁에 초록 생명체들이 가득해졌는데, 오래 키우던 식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방을 채우면서 작은 선인장을 창가에 두고 키웠거든요. 관심과 애정을 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물을 주고 나서부터 흐물흐물하더니 맥없이 죽었어요. 미안하면서도 내가 뭘 잘못해서 식물이 죽었는지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호기심에 원데이 가드닝 클래스를 듣게 된 게 계기라고 할 수 있죠. 그때 제가 처음 직접 심고 데려온 식물이 ‘드라세나 마지나타’였어요. 식물에 물을 주고 난 뒤에 나는 특유의 흙 향기, 창을 타고 넘어오는 따스한 바람, 노란 햇볕까지. 식물을 둘러싼 주변에 속한 느낌이 좋아서 식물 세계에 빠져들게 된 거죠.
식물은 바라보는 자체로 만족이죠.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식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죠. 식물은 말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천천히 자신의 아픔을 잎이나 뿌리의 신호로 보여주기 때문에 보통 이상 증세를 알았을 때는 늦은 경우가 많아요.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정보도 찾아보지만, 확실히 경험적인 부분에서 해답을 찾을 때가 많고요. 아무리 조언을 듣고 정보를 찾아도 본인이 직접 행동하고 느끼는 게 가장 효과적이거든요. 해충이 생겼다면 그 해충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어도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 이게 해충의 피해인지 모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식물을 키우는 일도 어떻게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러네요. 각자가 살고 있는 공간의 조건에 따라 식물을 가꾸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죠. 공간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저는 더 다양하고 많은 식물을 접하고 직접 키워보고 싶은데 공간을 생각하면 쉽지 않거든요. 라일락, 코스모스, 클레마티스 같은 꽃 종류를 좋아해서 키우고 싶지만, 꽃들은 온전한 추위를 느껴야 하고 또 아주 풍부한 햇빛이 필요하기에 실내에서 키우는 건 정말 어려워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구조상 햇볕이 일편적으로 드는 편이기 때문에 다채롭게 들어올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원하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공간과 환경의 조건에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식물들을 배치하고 조화롭게 키워내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어요. 책을 보며 식물 공부를 하기도 하나요?
책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식물에 관한 이론적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주례민 가드너의《그린썸, 식물을 키우는 손》, 박원순 가드너의 《나는 가드너입니다》를 추천해 드려요.
정원사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이네요. 또 식물에 관해 추천할 공간이나 브랜드가 있나요?
저는 통인동에 있는 ‘노가든’에 자주 가요. 진심으로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리하는 곳이라서 좋아해요. 식물을 통해 알게 된 식물 친구들과도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강아지들 산책 시키면서 자주 다녀와요. 어느새 오랜 단골이 되었어요. 식물 소품은 저의 식물 친구가 운영하는 ‘패빗FABBIT’에서 구매하곤 해요. 작은 애니멀 플랜트나 귀엽지만 실용적인 플라스틱 화분을 판매하는 곳이에요. 또 ‘두갸르송’, ‘수지안’처럼 디자인 토분을 만드는 브랜드도 추천하고 싶어요. 조금 더 세련되고 따뜻한 정원의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답니다. 식물도 가끔은 옷이 날개죠(웃음). 서울식물원, 국립수목원, 여미지 식물원까지, 국내에 다양한 식물원이 많아요. 식물을 좋아한다면 꼭 가봐야겠죠!
그랜트의 집에는 식물만이 아니라 강아지들도 함께 자라고 있어요. 동물에 해로운 독성이 있는 식물들도 많아서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독성이 있는 식물을 키울 때 조심해서 다뤘어요. 강아지들이 닿을 수 없는 책상 위나 피아노 위, 선반에서 키우곤 했거든요. 다행히 저희 강아지들은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건들지 않더라고요. 딱 한 개 빼고요. 오래 키운 스파티필룸이 있는데 유독 그 화분에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어요(웃음).
상상이 되네요(웃음). 그랜트는 온정이 많은 사람 같아요. 돌봄이 필요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때요?
동식물과 함께하는 일상이 꼭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식물과 아끼는 동물, 그런 저만의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고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좋은 게 아닐까 싶어요. 멋진 말로 꾸미기는 어렵네요(웃음). 그저 식물과 동물이 좋아서 함께 지내다 보니 제 삶의 일부로 녹아들었어요.
일상을 잘 가꾸고 있네요. 식물을 키우며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회복’을 배웠어요. 제가 키우는 고사리 식물 중에 ‘아디안툼’이라는 식물이 있는데요. 구름같이 예쁜 은행잎들이 화려하게 펼쳐진 고사리 종의 식물이에요. 잎과 줄기가 굉장히 연약하고 처음 실내 환경에 적응하기 전까지 키우기가 어려운 식물이라 잎이 금방 갈색으로 타기도 해서 조금만 관심을 끊으면 화분에 흙만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꾸준히 따뜻한 햇볕과 물을 주면서 보살피면 금방 초록색의 생명을 볼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이에요. 어떤 식물이든 상처가 생기면 아물기 마련이고, 꽃이 떨어져도 다시 꽃이 피고 나아가 열매를 맺어요. 심지어 뿌리도 없이 줄기가 잘린 식물도 절단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식물처럼 저도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상처가 아물어 더 강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식물은 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존재예요.
사람은 식물에게 본받을 점이 많네요. 그랜트와 닮은 식물 하나를 꼽아볼까요?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숨’이요. 저와 닮은 식물이라기보다 제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식물이에요. 항상 정원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두고 중복 개체로도 키우는 식물이죠. 단순한 모양과 잎맥을 하고 있지만 굵직한 멋을 지녀서 닮고 싶은 식물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식물과 함께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기회가 되면 더 다양한 식물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국내 식물원뿐만 아니라 해외 식물원, 또 관련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요. 더 다양한 식물 공간과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궁극적으로 식물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식물이 왜 그렇게 좋은가요?
이유가 있나요. 그냥 너무 좋아요!
에디터 김지수
사진 그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