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tlement Under The Name Of Another Journey

정착이라는 또 다른 여행

모델 출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백제예술대학 모델과 학과장, 가족과 함께 버스로 파리와 서울을 왕복하고 아프리카를 여행한 여자, 제자 두 명과 함께 오토바이로 전국을 여행한 선생님, 그리고 여행의 기록을 네 권의 책으로 써내려 간 작가. 최미애는 그동안 참 많은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다. 행보를 항상 지켜보진 못했지만, 어디선가 그녀의 소식이 들려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눈과 귀를 열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제주의 조용한 마을에 집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 덕천리

제주는 여행자가 워낙 많은 곳이라 웬만한 곳은 길을 물어서 찾아갈 수 있다. 가령 함께 묵는 사람들에게 내 여정을 말하면, “마침 그쪽에서 오는 길이에요.” 혹은 “무조건 700번 버스를 타세요.” 하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곤 한다. 뭐랄까, 이 섬의 여행자들은 곳곳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덕천리까지 가는 길을 물으면 다들 머리를 긁었다. 불안한 마음에 조금 서둘러 출발해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다행히 얻어 탄 차가 나를 덕천리 한가운데 내려주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 본의 아니게 둘러본 동네는 할머니가 가꾸는 화단처럼 하얗고 깨끗했다. 조용하지만 생기도 있었다. 과연 이곳에 키가 큰 모델 출신의 여자가 살고 있을까, 의심이 드는 곳이었다.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받아주었다. 내가 초대받은 집은 (비록 서른아홉 가구뿐지만)동네에서 가장 멋진 집으로, 작년 8월 말부터 공사를 시작해 올해 3월에 완성된 것이었다.

혼자 지내고 있나요? 이곳에선 주로 무얼 하며 지내는지 궁금해요.

네. 혼자 지내고 있어요.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가 수업을 하고, 수요일 저녁 비행기로 다시 제주에 돌아와요. 이곳에선 고양이 화장실을 비워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요즘엔 뜨개질도 해보고 있어요. 그런데 보통은 꼼짝 않고 쉬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조용한 동네긴 하지만 재미있는 일도 있을 것 같아요. 

동네에서 제일 예쁜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골다공증 때문에 걷기가 불편하실 텐데 귤이나 고구마 같은 걸 자꾸 가져다주시는 거예요. “결혼해야지. 결혼해야지.” 그런 걱정도 계속 하시고(웃음). 일부러 숨긴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노처녀 취급을 받게 된 거죠. 그러다 언젠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 저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어요.” 이혼하게 된 얘기도 마저 했죠. 그랬더니 할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어요. 이혼했다는 말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눈물에는 먼저 말해준 걸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할머니한테는 두 딸이 있는데, 둘 다 행복하게 살고 있진 않았거든요. 제가 먼저 말을 하고, 할머니도 속 사정을 전부 얘기해 줬어요. 남자가 필요 없다는 얘기를 끝으로 할머니와 저는 동네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됐고요. 이곳에서 사귄 제 친구 대부분은 70대에요(웃음). 또래의 사람들은 무척 바빠 보이더라고요.

소식이 자주 들리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 새로 계획 중인 일이 있나요? 

덕천리에 하나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어요. 노인정이 있긴 한데 금요일 하루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물론 밭일 나가시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사정이 있어 혼자 지내야 하는 분들은 갈 데가 없어진 거예요. 예전에는 덕천슈퍼에 앉아서 막걸리도 드시고 담소도 나누시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공간이 없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슈퍼 옆에 있는 공간을 제가 빌렸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예쁘게 꾸며서 다시 어르신들이 모일 수 있게 만들어 보려고요. 그렇다고 제가 술을 판다는 얘기는 아니에요(웃음). 따뜻한 차를 드리고, 어르신들이 손재주를 키웠으면 좋겠어요. 만들어진 물건을 판매하거나 전시해도 좋고요. 종종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짜이와 커피를 팔 예정인데, 그렇게 수익금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거예요. 이곳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부양받지 않고 계시거든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자꾸 주려고 하네요. 항상 그렇게 지냈나요?’

전혀 아니에요. 저희 엄마는 아주 까칠한 분이셨어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분이기도 했고요. 여담인데, 어려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항상 신기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저 빼고 모두 책을 읽더라고요. 아버지는 항상 많이 베풀던 분이었는데, 문제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주로 베풀었다는 점이에요(웃음). 제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게 바뀌었죠.

크고 따듯한 목소리

오래전 버스여행을 기록한 책에서 나는 그녀의 솔직한 모습과 용감한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개조한 버스와 선택한 루트, 프랑스인 남편, 특별한 것들이 하도 많아서 정작 이야기는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정반대였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건 바로 여행 당시 그녀가 하루하루 적었던 글들이었다.

위험한 순간들, 화가 나거나 뛸 듯이 기뻐하던 순간을 꾸밈없이 써내려 간 글을 읽으면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는 그녀가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천천히 종교를 가지던 모습도 꽤나 뚜렷이 남아있다.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모델 출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내 최미애와 사진작가인 당시의 남편 장 루이는 아들 이구름, 딸 릴라, 키우던 개 꼬꽂과 함께 318일 동안 버스를 개조해 여행을 떠난다. 아내의 고향인 서울과 남편의 고향 파리를 왕복하는 여정을 그린 책으로 2002년에 발행되었다. 이들은 3년 뒤 아프리카를 여행하고서 『미애와 루이 가족 45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펴내기도 했다.

 

당신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 책에 잘 담겨 있어요. 당시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갈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여행을 앞두고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무척 위험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매일매일 기도했죠. 성경 말씀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자신이 싫어하는 당의 국회의원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대로 교회를 빠져나왔어요. ‘교회가 이런 곳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됐죠. 왠지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그래도 기도를 멈추지는 않았어요.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잦아졌죠.

종교를 가지게 된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우리 여행은 하루하루가 위기였어요. 언젠가 티베트를 지날 때, 루이(당시 그녀의 남편)가 상대 운전사와 시비가 붙어 위협받은 적이 있어요. 해발 4천 미터쯤 되는 곳에서 남자 네 명에게 둘러싸여 절벽으로 내몰렸죠. 그들은 결국 쇠막대기로 루이를 때렸어요. 저는 그걸 말리려고 루이 앞에 서 있었고요. 위태롭게 절벽에 서 있는 루이와 그 앞에 서 있는 나, 그리고 우리를 위협하는 남자들, ‘가족 여행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주변에 우릴 구해줄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크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쓰러지라고, 그러면 가족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하늘이 닿을 듯이 가깝게 느껴지는 곳에서 저는 쇠막대기를 막으려고 손을 올리고 있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우리 차 운전석에 막대기를 들고 있던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리로 다가가 말했어요. 네가 우리한테 잘못한 거 알고 있느냐고, 사진을 다 찍어 놔서 널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했죠. 앞으로 육로 여행자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우리도 신고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우리는 헤어졌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나 해서 루이에게 아까 나던 소리를 들었냐고 물었더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구름이도 듣지 못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소리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항상 신과 동행하고 있다고 여겨 왔어요.

그 뒤로 루이에게도 신앙이 생겼나요?

루이의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목사였어요. 루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많이 아팠는데 그때 아마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거예요. 아픔이 있는 거죠. 그 기억 때문인지 루이는 종교를 가지게 된 제 모습을 보며 힘들어했어요.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 동양여자와 결혼했는데, 이 여자가 하나님을 알게 된 걸 믿을 수 없었던 거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종교의 차이, 뒤늦게 확신하게 된 성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는 헤어졌어요. 하지만 지금도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나요?

그럼요. 구름이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릴라는 아빠와 함께 베를린에 있어요. 스무 살이 된 구름이는 이제 키가 194센티미터나 돼요. 아빠를 닮아서인지 사진, 영상 쪽을 전공하고 있고요.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지내고 있는데, 작년에 6개월 정도 한국에 있다 돌아갔어요. 

릴라 소식도 궁금해요.

릴라는 12월 22일에 한국에 오기로 했어요. 구름이는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데 릴라는 공부를 아주 잘해요. 중학교 3학년인데 여태껏 2등을 두 번 하고, 전부 1등을 했어요. 최근에는 더 나은 환경이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 학교를 옮기기도 했어요. 릴라와는 네 살 때 헤어졌어요. 그때 분명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했을 텐데 함께 있어주지 못했죠. 제 생각이지만, 그래서 학교 선생님을 더 잘 따르는 것 같아요. 학교도 열심히 나가고. 

구름이나 릴라는 여행에 관해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여행이 끝나고 구름이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키르기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곳의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대요. 그때 구름이가 얘기를 해줬는데 다들 믿지 않는 눈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책이 나왔을 때 선생님에게 보내드려서 사실을 알게 됐죠.  

여행이 끝나고 나서 제가 구름이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죠. 다른 사람들, 특히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찮게 대해지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으니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길 원했는데, 다행히 구름이는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해줬어요.

제주에 온 이유 

얼마 전 10월에는 제주 구좌읍에서 처음으로 패션쇼가 열렸다.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백제예술대학교 학생들과 구좌읍 주민, 어린이들이 각자의 재능을 모아 ‘꿈꾸는 패션쇼’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연 것이다.

이곳에서 대안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들었어요.  

‘나이 오십이 되면 제주도로 내려가 예술가를 양성하는 작은 대안학교를 만들어야지.’ 마흔 살 생일 때 생각했던 꿈이었어요. 그래서 제주에 왔죠. 그런데 집수리가 끝난 여름에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월정리 바다에 나가 놀았어요(웃음). 그러다가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났죠.
저는 문제아에 관심이 많은데, 조금 알아봤더니 근처에서는 성산고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불량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학교의 교무주임 선생님을 찾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름다운 청소년 센터장을 만났어요. 제 생각을 얘기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해서 결국 매주 목요일 저녁 두 시간 동안 메이크업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여덟 명의 여고생들과 함께요.

또래나 윗사람들보다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이 익숙해요. 모델학과 아이들, 성산고등학교 아이들. 아이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학생들을 너무 사랑해요. 학생들과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요. 아이들과는 언제나 많은 대화를 하게 되는데 어른들 사이에선 어느새 딱딱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제 모습을 봐요. 종종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고요.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게 되죠. 그런데 문제아로 여겨지는 많은 아이들은 모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걸 발견할 수 있게 돕고 싶고, 어떻게든 혜택을 주고 싶어요. 그런 일을 제가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에게 유독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 공부를 못했어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해야 좋을지도 몰랐고요. 그래서 조금은 불량한 아이들이 편하게 느껴져요. 그때의 저를 보는 것 같으니까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관심 가져 주고, 잔소리 많이 하지 않고. 

아이들도 미애 씨를 잘 따르는 것 같아요. 혹시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어떤 학생이 너무 독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조금 덜 독한 걸 권해줘요. 그건 사실 별거 아닌데, 그렇게 얘기해 주는 어른이 많이 없어요. 끊으라고 무섭게 말해도 절대 끊지 않거든요. 지금 방황하고 있는 아이에게 담배나 술이 유일한 행복이라면, 쉽게 끊을 리 없잖아요. 좀 줄여라, 너무 독한 건 피해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내가 겪었던 얘길 해주는 편이 나아요. 겪어보지 못하던 일이 생기면 다들 놀라잖아요. “담배를 피워. 그런데 좀 덜 독한 걸 피워. 내가 피워 봤는데…” 그렇게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 확 다가가는 거예요(웃음). 

아이들이 당신에게 주는 영향은 없나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긴 하지만 결국 많이 얻고, 배우고 있어요. 항상 주는 것보다 많은 걸 돌려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있어준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아이들끼리 있으면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서로 챙겨주고, 베풀어 주는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른들은 호의를 베풀어 줄수록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거든요.

조용한 생활

그녀는 제주에 고맙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게 하고, 행동하고 싶게 하고, 필요한 걸 만들어 보게 하고, 뜨개질하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노래를 부르게 해줘서. 그리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해줘서.

새로 배우고 있는 일, 취미가 있을 것 같아요.

따로 배우진 않지만, 평소에 관심 있던 걸 해보고 있어요. 그림도 그려보고 뜨개질도 하고.

취미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그림까지 그리시는 줄 몰랐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을 항상 부러워하고 존경해 왔어요. 아주 어릴 때 어린이 대공원 같은 곳에서 열리는 사생대회에 나간 적이 있어요. 언니 오빠가 쓰다 남은 작은 크레용을 가지고 갔는데 가작을 받은 거예요. 친구들처럼 긴 크레용이 있으면 더 잘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결국,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요즘 들어 다시 그려본 거예요.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한번 해봐’ 

학생들에게 항상 그렇게 말했거든요. 그 말이 저한테 되돌아온 거죠. 30년도 넘게 그리지 않다가 다시 그리고 있어요.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승무원의 낡은 구두를 그리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도 해요. 잘 그리지는 못해요. 

직접 만든 노래들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아요(웃음). 같은 코드로 주법을 바꿔가며 만든 노래가 많아요. ‘한강’이라는 노래는 처음으로 작사 작곡을 한 ‘대표곡’이에요. 루이랑 헤어지고 나서부터 7년 동안 저한테는 한강이 가장 좋은 친구였어요. 그때 거기서 자전거를 많이 탔어요.

그때 루이와 긴 여행을 했는데,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전혀요. 제주에서 여러 곳의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아직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는 생각도 들고, 돌담이나 집 모양이 유지되는 걸 보면 유럽 같기도 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루이가 모험심이 강해서 긴 여행을 하게 된 거예요. 

이곳에서 살며 가장 만족스러운 건 뭐예요? 

제주에 있다는 자체가 행복해요. 아침에 새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좋고,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무를 보는 것도 좋아요. 제주에는 바람이 많잖아요. 음악을 틀어 놓고 앉아 있는 것, 고양이랑 노는 시간도 좋아요. 저는 좋아하는 공간이 있으면 나가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어요(웃음).

제가 참 좋아하는 자리가 있어요. 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을 때 항상 앉는 자리요. 여기 앉으면 바깥이 잘 보여요. 이 집을 얻은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나무들이거든요. 가끔 친구들이 놀러 오면 제가 항상 앉는 자리를 내어주는데,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다가 다들 그만 울어버려요. 정말이에요. 실컷 울고,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돌아가곤 해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웃음). 하지만 아이들은 변해요.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에요.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요. 좋지 않은 상황이 있다면 도와주면서 어른에 관한 생각들도 좋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제주에 와서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아직은 종종 헷갈릴 때도 있지만요.

비록 작은 마을에 스스로 발을 묶고 있지만, 십여 년 전 화려한 여행에 견줘봐도 그녀의 생활은 허전해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차분한 모습의 제주에서 여전히 사람을 향해 있었고, 매일 기도하고 있었으며, 상대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해줬다. 난로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그녀의 정착이 마치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진다면, 아무래도 나는 버스 여행기를 너무 감명 깊게 읽었던 것일까? 그녀를 만나고 돌아와서는 여행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조금 새롭게 다가온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