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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바보의 여행
방황하던 바보의 여행
중학교 3학년 때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는 토마스 풀러의 글귀를 읽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에서는 잉카인들이 나왔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그들이 살던 곳에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꼬박 10년 뒤 나는 남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2012년 6월 30일, 날짜도 정확히 기억난다. 나의 퇴사 날. 그간 모아둔 월급을 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짐은 적당히 준비했지만, 기대하는 마음만큼은 완벽하게 꾸려진 상태였다.
있는 것과 없는 것
5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우유니 소금사막Sala de
Uyuni’이 생각난다. 아는 사람은 “와!” 하며 부러워하고, 모르는 사람은 ‘우유? 사막? 뭐라고?’라며 의아할 수도 있겠다. 우유니 사막은 남아메리카 중앙부 볼리비아Bolivia의 포토시주Potosi에 위치한 소금사막이다. ‘우유니 소금호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2만 년 전 빙하기를 거쳐 녹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사막.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거의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형성되었다.
12시간 동안, 야간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일행들은 남미여행의 꽃이라고 말하며 기대했지만, 사실 난 그다지 감흥이 없는 상태였다.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풍경은 익숙한 것이 되어버려 간절히 원했던 여행임을 잊기도 하는데, 우유니도 그런 장소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꼭 한 번 봐야 하는 곳이라니, 2박 3일간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여덟 명씩 짝을 이뤄 지프를 탔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니 하얀 사막이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하얀색. 태양이 그대로 흰 바닥에 반사되는 바람에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보기 힘들다. 아무리 끝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전라도 만하다고 했다. 감상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 묻는다. “물이 찬 곳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곳의 우기인 12월부터 3월까지는 약 30cm의 물이 고여 얕은 호수가 만들어진다. 그 모습이 보고 싶다는 여행자들의 말에 가이드 프레디는 기다렸다는 듯 “그럼 이제 물이 차 있는 곳으로 갈까요?”라고 답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공간을 달리고 또 달려서 물이 찬 우유니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떨리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저 땅으로만 보였던 소금사막에 균열이 있었고, 그 사이로 물이 차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자작하게 고인 물에 손을 넣어보았더니, 그 안에는 소금이 있었다. 마모된 부분 없이 정갈한 사각형 모양.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염도가 높아 깜짝 놀랐다. 프레디가 그냥 먹으면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래도 안 죽는걸!” 하며 씩 웃었더니, 죽은 사람이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소금사막에서는 날씨가 한눈에 보였다. 오른쪽을 보면 쨍쨍한 햇빛이 있었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먹구름에 번개가 치고 있었다. 번갈아가면서 그걸 보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 위에서 찰박거리며 놀다가 호텔로 들어갔다. 벽과 침대들이 모두 소금으로 되어 있는,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더 단단해진다는 소금 호텔. 아담하고 소박한 호텔(이라고 하기엔 그냥 여인숙 같은)에 짐을 풀었다. 숙소 안에서는 전깃불 대신 촛불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룸메이트들과 나는 마치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다며 아이처럼 신이 났다. 전기는 하루에 한 번 발전기를 돌려 두 시간만 쓸 수 있었다. 3일 동안 전기 없이, 뜨거운 샤워 없이, 와이파이 없이 살 수 있다니. 우유니를 기대하지 않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검은 도화지에
소금을 뿌리다니
특별한 사막에서의 삶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잠을 잤고, 비몽사몽 일어나 씻었다.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은 남달랐다. 로까 그란데Roca Grande 그러니까 큰 바위 뒤. 그런 곳에서 자연스레 볼일을 보다 보니, 여행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았다.
지프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렸는데, 갑자기 차가 멈추고 운전자들은 분주해졌다. 사연을 들어보니 오일이 없어 차가 멈췄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차들을 잡아 기름을 구했고, 그 모습마저 즐거웠다. 조금씩 얻은 오일로 차를 고쳤고, 그곳에서 지친 우리는 지프의 트렁크를 식탁 삼아 점심을 먹었다. 파스타, 치킨 가스, 삶은 완두콩 그리고 당근. 바람이 우리의 식사 위로 세차게 불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또다시 네 시간을 달려 사막에서만 볼 수 있다는 ‘버섯돌’을 봤다. 바람에 의한 침식 작용으로 버섯 모양이 된 암석이다. 점심을 먹을 때도 그랬지만, 바람이 세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버섯돌을 보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을 깎을 정도의 바람을 맞고 서 있었던 것이다.
바람을 어찌나 맞았는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사막 중간에 얼기설기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또 발전기를 겨우 돌려 저녁을 먹었 다. 어두침침하고 낯선 그곳에서 푸근하게 생긴 아줌마가 딸과 함께 저녁을 내어줬다. 식탁마다 비스킷과 차가 있어 야금야금 먹고 있으니, 곧 따뜻한 채소 수프에 삶은 닭고기가 나왔다. 그리고 와인까지. 내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 중 하나가 그 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뜻한 저녁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쌀쌀한 기운이 들었다. 그냥 방에 들어가려다 숙소 문을 열고 나갔다. 전깃불 하나 없는 캄캄한 사막의 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오지 않았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도화지에 입자 고운 소금을 뿌린 것 처럼 새까만 하늘에 하얀색 별이 빛나고 있었다. 살면서 가장 많은 별을 본 순간이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 순수한 작은 별빛 하나라도 놓칠까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 순간이 너무 벅차고 애틋한 마음에 눈물까지 나버렸다.
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이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