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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Rose of Sharon
무궁화
눈보라, 새빛, 새아침, 한누리, 내사랑, 파랑새, 한마음, 아랑…. 언뜻 보면 무작위로 나열된 우리말 같지만, 이 단어들은 모두 무궁화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국화로 늘 가깝게 느끼고 있지만, 도심의 가로수와 정원수로 심겨 있는 모습을 봐도 무심결에 지나치기만 했던 무궁화. 어쩌면 무궁화는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식물이 아닐까.
어느 여름날에
만난 나무
나의 첫 직장, 국립수목원에는 무궁화 정원이 있었다. 거대하고 푸른 바늘잎나무들 사이에서 어린 무궁화 나무들은 매해 7월이면 하얗고, 파랗고, 붉은 꽃을 다발처럼 피우곤 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다양한 색의 무궁화 꽃을 들여다보는 건 한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호사였다. 무더위에 해가 하늘 꼭대기에 닿을 즈음 점심을 먹고 산책하러 나가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이 무궁화 때문이었다.
무궁화는 멀리에서 보면 같은 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놓은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나무마다 모두 다른 색과 형태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의 색, 꽃잎의 모양과 길이, 수술의 색이 모두 달랐다. 게다가 나무에 걸린 이름표에는 ‘아사달’, ‘눈보라’, ‘새아침’, ‘파랑새’와 같은 귀여운 우리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무궁화에 관한 관심이 생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궁화에 관해 기록한 책과 논문, 무궁화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과 세미나를 챙겨 다녔고, 무궁화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면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무궁화 품종들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이다. 히비스커스Hibiscus는 이집트의 신 ‘히비스Hibis’를 닮았다는 뜻이고, 시리아쿠스Syriacus는 무궁화를 처음 발견한 명명자가 무궁화를 시리아 원산이라 생각해서 종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궁화는 시리아가 아닌 중국이 원산지이다.
무궁화는 7월에서 9월 무렵, 대부분 식물이 꽃을 피웠다 지기 시작하는 초여름부터 꽃을 피운다. 나팔꽃처럼 이른 아침에 피어 저녁에 꽃송이가 진 채로 땅에 떨어지는데, 약 백 일 동안 한 나무에서 여러 꽃송이가 번갈아 꽃을 피운다. 현재 세계적으로 오십여 개 국가에서 무궁화를 심고 가꾸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정원수와 가로수로 많이 볼 수 있다. 무궁화는 꽃의 색이 다양하고 품종도 많다. 색에 따라 새하얀 꽃의 배달계, 흰 꽃잎에 안쪽은 붉은 백단심계, 분홍빛이 도는 아사달계, 붉은색의 적단심계와 자단심계, 청색 꽃을 피우는 청단심계 등 여섯 종류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꽃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다. 그런데 무궁화가 국화란 사실 말고 우리는 무궁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산이나 들에서 무궁화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무궁화는 소나무나 잣나무와 같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닌, 오래전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식물이기 때문이다. 언제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서인 《양화소록》에 우리나라가 ‘무궁화의 나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아주 먼 옛날부터 무궁화를 심어왔던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무궁화가 한국의 국화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893년 민족운동의 상징으로서 무궁화를 국화로 정하자는 운동을 하면서부터다.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상징과 같은 나무였기에 수백 년 정도 된 크고 오래된 무궁화 나무가 우리나라에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 나무의 나이는 백삼십 살 정도다. 이는 일본강점기를 겪으며 일본이 우리나라의 상징인 무궁화 나무를 무자비로 베었기 때문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원산의 식물이 아니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은 놀라겠지만,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상징이자 국화인 튤립은 터키 원산이며,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인 장미는 서아시아 원산의 식물이다. 식물의 원산지란 식물학적으로 중요한 재료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원산의 식물이 아님에도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져 왔다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궁화에 얼마나 각별한 애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무궁화를 국화로 정한 후부터 무궁화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궁화를 연구한 류달영 박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본강점기 이후 각지에 남아있는 무궁화를 수집하고 외국 품종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잘 살 수 있는 품종의 무궁화를 육성했다. 후에 많은 식물학자와 육종학자가 백여 품종의 무궁화를 육성하였는데, 현재 우리나라 도심 속에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겨있는 무궁화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품종이다.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식물
무궁화는 상징적으로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우리는 무궁화를 꽃꽂이나 꽃다발 장식, 화분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꽃집에도, 꽃 시장에도 무궁화는 없다.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관공서 주변의 가로수나 공원, 식물원의 무궁화 정원이 대부분이다. 늘 새로운 이미지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무궁화는 이미 너무나 친근한 식물인 데다, 병해충과 진드기가 많다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해충과 진드기는 가장 대표적인 가로수인 벚나무와 크게 차이가 없고, 일반 가로수처럼 살충제로 관리할 수 있다.
얼마 전엔 텔레비전을 보다가 무궁화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화장품 광고를 보았다. 식물에 역할과 기능을 쥐여준다는 건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식물의 존재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무궁화 원료 화장품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반갑고도 기쁜 소식이었다. 지난 몇 번의 잡지와 신문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내게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활동 방향, 어떤 식물을 그리고 싶은지를 물으셨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언젠간 무궁화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내년 여름엔 무궁화를 꼭 그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무궁화
무궁화 ‘월산176호’Hibiscus syriacus ‘Weolsan176’
충남 공주의 월산 농장에서 육종되어 ‘월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무궁화로 흰색의 홑꽃잎을 가진다.
무궁화 ‘동해’Hibiscus syriacus ‘Donghae’
푸른 동해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지었다. 푸른 꽃의 무궁화 중 가장 인기 있는 품종 중 하나다.
무궁화 ‘남원’Hibiscus syriacus ‘Namwon’
전북 남원에서 육종된 대표 품종으로 옅은 분홍색 꽃이다. 이 ‘남원’과 안동에서 육종한 ‘안동’이란 품종을 교배해 ‘삼천리’란 신품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무궁화 ‘님보라’Hibiscus syriacus ‘Nimbora’
분홍색의 겹꽃 무궁화로 색이 화려하고 예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품종 중 하나다. 공원이나 식물원의 무궁화 정원에서 님보라를 꼭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