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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관찰기

그림책 관찰기

“훌륭한 그림책은 가정에서 미술관 역할을 한다. 주제, 그림, 디자인, 제작이 어우러져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즐겁게 만들고 상상력을 길러준다. ‘작은 연극’이라는 비유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마틴 솔즈베리, 모랙 스타일스, 《그림책의 모든 것》) 오랫동안 그림책을 연구해온 작가의 말이다. 오늘날 그림책은 북아트와 문학, 그래픽 작업의 경계를 넘나든다. 탐미의 대상, 그림책의 새로운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미로 찾기 그림책
바다를 찾아서
글 차은영, 그림 김다예|장차북스

강아지 바다가 사라졌다. 공원을 지나고 숲길을 헤쳐 겨우 발견한 바다는 과연 어디에 가고 싶었던 걸까? 주인공과 친구들이 강아지 바다를 찾으러 다니면서 시작된 여정은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바다와 닮은 꼴인 동물들과 복잡한 미로도 호기심 많은 꼬마들을 막을 수는 없다. 책장을 한가득 메운 미로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그 길을 직접 개척해야 한다. 고불고불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체험 그림책.

손으로 읽는 그림책
THE ANIMALS ON MY FINGERTIPS
글·그림 김민희|Needle&Brush

모두 잠든 밤,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창밖에서 속삭인다. 작지만 아름다운 소리에 이끌려 침대맡에서 작은 새를 그려본다. 오감을 여는 특별한 경험, 이렇듯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책의 주인공 꼬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A부터 Z까지 각 이니셜을 가진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점자로, 그림은 도드라지는 선으로 한 번 더 모양을 잡아 손끝으로 읽힌다. 고슴도치와 사자, 순록, 얼룩말 등 여러 동물의 모습을 만지는 동안 독자들은 더 오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시인이 쓴 그림책
준치 가시
글 백석, 그림 김세현|창비

가시 없는 물고기 준치는 늘 다른 물고기들의 가시를 부러워한다. 어느 날 이웃 물고기를 찾아가 가시를 꽂아달라고 부탁하는 준치. 너도나도 가시를 나눠준 덕분에 그의 몸은 온통 가시로 뒤덮인다. 모든 생명에게는 그만의 까닭과 사연이 있음을 유쾌하게 그려낸 이 책은, 시인 백석이 어린이를 위해 쓴 동화 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실린 작품이다. 시의 리듬과 어우러진 그림은 오랫동안 한국화를 그려온 김세현 작가의 솜씨다. 전통 민화 기법으로 자유로이 노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과 따뜻한 시선의 동시를 함께 만나보자.

극장이 숨어있는 그림책
레베카의 작은 극장
글·그림 레베카 도트르메르, 옮김 최정수|보림

“미리 계획하진 않았지만 이 한 권의 책에서 이들이 처음으로 모두 모이게 되었답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페이퍼 커팅으로 구현한 ‘작은 극장’에는 아흔여 명의 인물이 무대에 오른다. 모두 작가가 출간한 책들에 나온 적 있는 주인공들로 시인과 엄지 동자, 식인귀, 유니콘 등 그 종류만도 다양하다. “꿈꾸기만 하는 건 인생이 아니야.” 이들은 저마다 원래 책에서 주어진 대사를 말하는데, 엉뚱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는 이 책은, 겹겹이 쌓아 올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치밀하고 아름답다.

새기고 찍은 그림책
하이드와 나
글·그림 김지민|한솔수북

까만 표지, ‘Hyde&Seek’이라고 쓰여 있는 글귀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한 사람.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나는 너, 하지만 때로는 아니기도 해.”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책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모습들과 조우한 누군가 혹은 우리 자신의 내면 일기다. 아코디언처럼 길게 펼쳐지는 책장은 넘길 수도, 세울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자아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동판에 새기고 판화로 찍어내는 에칭Etching 기법으로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를 형성한다.

미술관에서 만든 그림책
마티스의 정원
글 사만사 프리드만, 그림 크리스티나 아모데어, 옮김 지혜연|주니어RHK

하얀 종이새를 얼룩진 벽에 붙이는 나이 지긋한 작가. 그는 한때 방문했던 섬의 풍경을 떠올리며 나뭇잎과 해조류 따위를 오렸다. 아주 작은 조각으로 시작한 종이 오리기는 어느새 벽 한쪽을 차지하고, 언제든지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을 이룬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제작한 이 책은 앙리 마티스의 <The Cut￾Outs> 전시를 기념하며 출간됐다. 마티스가 말년에 완성한 컷아웃(오려내기 기법) 작품과 그 과정을 재현했는데, 물감을 칠한 종이를 매만지며 즐거워하는 작가의 모습은 미술관에서보다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옴니버스 그림책
에릭 칼과 친구들의 친애하는 동물들
글·그림 에릭 칼과 13명의 친구들, 옮김 조은수|웅진주니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입니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이 하나의 물음에 열 네 명의 그림책 작가가 답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양이와 강아지부터 세상 곳곳에 살아가는 야생동물, 남몰래 숨어 있을 상상의 동물까지 저마다 흥미로운 답이 쏟아진다. 작가들은 달팽이의 집이 평생에 걸친 예술 작품임을 발견하는가 하면, 식탁에 오를 위기에 처한 잉어를 구출하고, 소가 좋아서 온통 소 그림만 그리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림책 작가들이 품은 동물에 대한 애정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담아낸 다양한 사연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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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혜진

포토그래퍼 안가람 일러스트 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