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ato 감자

재료의 산책

감자는 누런 도화지 같은 색에 어울리는 조용한 맛을 낸다. 어떠한 조미료와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관대함도 지녔다. 게다가 바다 근처에서부터 고산지대, 사막, 심지어 얼음의 나라 그린란드에서도 재배된다. 이 정도면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놀라운 적응력까지 지닌 이 재료는 어쩌면 정해진(?) 운명을 지닌 채 전 세계 식탁 역사에 한 획을 그어왔는지도 모른다. 파스타의 일종인 이탈리아 요리 뇨끼의 재료에서부터 국민의 술 소주의 원료까지 그 쓰임새는 변화무쌍하다. 

지난 주말, 얼마 전부터 재배를 시작한 아버지의 작은 농장에서 감자를 캤다. 잎줄기를 한 아름 잡고 뽑아 올리면 마치 포도알처럼 감자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줄기를 걷어내어 이제 비어 있을 줄 알았던 땅을 호미로 헤집자 거짓말처럼 숨어있는 감자들의 이마가 빼꼼히 보였다.

서둘러 호미질을 하다가 감자를 다치게 하진 않을까, 행여나 무럭무럭 자라준감자를 외로이 땅속에 묻어둔 채 떠나진 않을까, 감자 캐기 작업은 쉬운 듯 어려웠다.

문득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땅에서 자라나고 있을 감자를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 세상에 감자를 싫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많은 이들이 감자를 먹으며 자랐을 것이다. 땅속의 감자알만큼이나 풍성한 세계 곳곳의 감자 레시피 덕분에 감자를 눈앞에 두고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떤 요리를 해볼까? 감자의 관대한 성품에 기댄 채로 일단 냉장고의 문을 여는 일부터 시작해본다.

RECIPE 01

감자를 삶아

베이컨의 향이 밴 기름에
머스터드로 볶다

간장이 명물인 한국에 알감자 조림이 있다면 베이컨과 소시지가 명물인 독일에는 독일식 감자볶음, ‘저먼 포테이토 샐러드German Potato Salad’가 있다. 마늘과 베이컨의 향이 밴 기름에 삶은 감자와 머스터드, 식초를 넣고 볶는 것이 전부다.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먹을 수 있다. 이 요리는 재미있게도 일본식 선술집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이기도 하다. 맥주 안주의 핵심인 간단함, 짭짤함, 푸짐함의 요소를 완벽히 갖춘 이 메뉴를 낳아준 독일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재 료

감자 4~5개, 베이컨 적당량, 마늘 2~3쪽, 홀그레인 머스터드 1ts, 사과식초 1ts, 올리브오일 1Ts, 소금/후추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TIP 독일에서는 캐러웨이Caraway라는 열매를 향신료로써 자주 사용한다. 자칫 씨처럼 보이는 이 식물은 가열하면 그 향을 살려낼 수 있는데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잘게 썬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드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에 사용하거나 호밀빵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호기심이 생긴다면 외국 식료품점이나 인터넷을 통해 캐러웨이를 찾아 베이컨과 함께 볶아 요리해보자.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감자의 평평한 맛을 캐러웨이와 베이컨의 오묘한 향으로 괴롭히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만드는 법

감자는 잘 씻어 껍질째 냄비에 넣고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삶는다. 물이 끓기 직전에 불을 줄여 80도 정도의 저온에서 익힌다. 감자가 다 익으면 껍질을 벗겨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마늘은 잘게 다지고 베이컨은 1~2센티미터 크기로 썬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베이컨을 넣어 향이 나도록 볶는다. 이때 베이컨을 바삭하게 먹고 싶다면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강한 불에 볶으면 된다. (베이컨을 건져낸 뒤 베이컨 향이 배어있는 오일에 마늘, 감자의 순으로 볶아내면 좋다.) 삶은 감자, 머스터드, 식초를 넣고 센불에서 잘 섞어가며 볶는다. 소시지가 있다면 넣어도 좋다.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RECIPE 02

감자를 큼직하게 튀겨

매콤하게 조린
토마토 소스를 올리다

스물두 살 때 스페인을 여행하며 타파스Tapas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식욕을 돋우어주는 애피타이져 정도의 소량이었지만, 메인 메뉴까지 먹기에는 여행자금이 부족했던 나에게 두세 가지의 타파스를 골라 맥주나 샹그리아와 함께 먹는 것이 꽤나 든든한 식사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탄수화물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주 시켰던 메뉴가 바로 빠따따스 브라바스Patatas Bravas(매콤한 소스를 얹은 감자튀김)였다. 큼직한 감자튀김 위에 매콤한 소스, 때로 갈릭 마요네즈소스가 얹어 나오는 빠따따스 브라바스의 뜻은 ‘용감한 감자들’이었다. “빠따따스 브라바스, 포르 파 보르!(빠따따스 브라바스 주세요)” 용감하게 주문하던 스페인에서의 내가 떠오른다.

재 료

감자 적당량, 식용유 적당량, 토마토 홀 통조림 150~200g 혹은 토마토소스, 마늘 2~3쪽, 파프리카 가루 1Ts, 고춧가루 1ts 혹은 타바스코 1ts, 식초 1ts, 올리브오일2Ts, 소금/설탕 적당량, 물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TIP 감자를 삶는 과정을 생략하고 싶다면 물에 담가둔 감자의 물기를 잘 제거한 뒤 160도 정도도 달궈진 기름에서 천천히 속까지 익도록 튀긴다. 건져낸 뒤 기름의 온도를 올려 한 번 더 튀기면 보다 바삭해진다.

만드는 법 

감자튀김 겉딱딱한 감자를 썰어서 바로 고온에 튀겨내면 겉은 바삭할지 몰라도 속은 진득하게 되기 십상이다. 맛있는 감자튀김이 먹고 싶다면 귀찮음을 감수하자. 먼저 감자를 큼직이 썰어 물에 10분 정도 담가 여분의 전분을 빼낸다. 그 다음 냄비에 물과 감자를 담아 80도의 저온에서 10~15분 가량 삶는다. 이 과정에서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고 감자는 이제 달콤함을 품게 된다. 익은 감자는 건져내어 물기를 잘 닦아준 뒤 180도의 고온의 기름에서 바삭하게 튀겨준다.

토마토소스 마늘은 잘게 썬다. 냄비에 올리브오일과 마늘을 넣고 약불에서 볶는다. 토마토 홀이나 소스, 파프리카 가루, 고춧가루, 타바스코, 식초를 넣고 점성이 생길 정도로 잘 저어가며 졸인다.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한다. 토마토 홀 통조림을 쓸 경우 토마토를 잘 으깬 뒤 졸인다. 물을 추가로 넣거나 토마토의 양을 조절해 기호대로 농도를 조절한다. 양파를 함께 넣고 볶은 뒤 레드와인을 약간 넣고 조린다. 완성된 소스를 믹서기에 갈아주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RECIPE 03

삶은 감자를 부숴
연근 조림을 감싸 튀기다

어느 날 한 일본친구가 치킨 가라아게唐揚げ(밑간 한 닭고기나 생선에 밀가루 혹은 녹말가루를 묻혀 튀겨낸 일본음식)를 해먹자며 집에 초대했다. 이 기회에 가라아게의 핵심이라 생각되는 밑간의 황금비율을 엿볼 수 있겠다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에 도착하니 친구는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샐러드드레싱을 꺼내 닭고기에 버무리고 있었다. 심지어 대단할 것이라 기대됐던 마리네이드 과정은 위생 백 안에 닭과 드레싱을 넣은 채 조물조물 버무려서 그대로 다시 냉장고에서 잠시 재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음식은 내게 ‘인생은 요령’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고, 지금 소개하는 이 감자고로케가 그 교훈의 연장선에 있다. 음식의 맛과 일상의 행복이 어쩌면 얼마나 재미있게 요령을 피우는가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재 료

감자 8~9개, 생크림50~100ml(우유로 대체가능), 연근조림(우엉조림, 장조림 등의 반찬으로 대체 가능) 적당량, 튀김옷(박력분, 물, 튀김가루, 파슬리 적당량), 소금/후추 적당량, 식용유

TIP 감자 조리의 승패는 전분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에 달렸다. 감자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두면 여분의 전분이 빠져나가 아삭한 맛을 살릴 수 있고, 반대 경우에는 진득한 식감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겉은 바삭하고 안은 폭신한 해쉬브라운을 만들고 싶다면 감자를 얇게 채썰어 전분을 머금은 채로 겉만 바삭하게 굽고, 감자의 아삭아삭한 식감을 살린 감자야채볶음 요리를 원한다면 물에 10분 정도 담가두어 전분을 빼내자.

만드는 법 

감자는 삶아도 되고 쪄도 되지만 찌는 편이 수분이 적고 골고루 익기 때문에 보슬보슬한 고로케 속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찜기에 물을 받아 잘 씻은 감자를 껍질째 올리고 15~20분 가량 속까지 익도록 쪄준다. 연근조림은 잘게 썰어둔다. 익은 감자는 껍질을 벗겨 볼에 넣고 포크나 감자매셔로 잘 부셔준다. 잘게 썬 연근조림을 넣고 감자의 수분 상태를 보아가며 생크림을 넣어 뭉쳐질 정도의 반죽으로 농도를 맞춘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완성된 속을 손으로 꼭꼭 눌러가며 적당한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빚는다. 박력분과 물을 섞어 부침개 반죽의 농도로 튀김옷을 만든다. 빚은 감자 반죽에 튀김옷을 얆게 바른 뒤 튀김가루와 파슬리를 묻혀 180도로 달군 기름에 노릇하게 튀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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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