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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문화비축기지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모래성을 만들던 풍경이 이제는 키즈카페 볼풀에 뛰어든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놀 만한 공간은 더 많아졌지만, 자연과 문화와 놀이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한 번에 떠오르는 공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예전 석유비축기지로 사용되던 곳을 개조한 문화비축기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놀이터다.

공원과
공원 사이

미세먼지가 조금 걷히니 가족, 친구, 연인이 공원으로 모여든다. 10여 년 전, 마포구 상암동에 쓰레기처리장 또는 황무지였던 곳을 공원으로 재탄생시켜 화제가 된 하늘공원,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등은 이제 서울 시내 공원의 성지가 되었다. 공원과 공원 사이에 최근 또 다른 문화 공원이 생겼다. 문화비축기지에서는 커다란 운동장에서 흙으로 놀이를 하고, 공연을 즐기고, 다양한 강의를 듣거나 산책길을 그저 걸어도 좋다. 개조된 석유 탱크 곳곳을 둘러보면 세월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구조물에서 웅장함이 느껴진다. 석유비축기지였던 커다란 부지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어른과 아이, 누구나 가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었다.

모습을 드러낸
다섯 개의 석유 탱크

석유비축기지는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비상 사태를 대비해 생긴 시설이다. 1976년부터 다섯 개의 탱크를 건설해 당시 서울 시민이 한 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약 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했다. 건설 이후에는 1급 보안 시설로 분류되어 시민들에게는 통제되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2002년 한국 월드컵이 열리기 전, 상암동에 유치될 월드컵경기장과 너무 가까워 안전상의 문제로 2000년 폐쇄되었고, 그 이후 방치되던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15년이 지나고 서울시는 이 공간의 활용 방안을 놓고 공모전을 개최했다. 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이후 국제 현상 공모 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을 바탕으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신인 건축가들은 다섯 개의 탱크를 공연장, 전시장 등으로 새롭게 만들었고, 기존 탱크에서 떼어낸 건축 폐기물로 탱크 한 개가 더 생겼다. 그리하여 지금의 ‘문화비축기지’가 탄생한 것이다.

파빌리온 T1

문화비축기지의 각 탱크에는 1부터 6까지 번호가 붙어있는데, 차례대로 T1~T6라 부른다. T1은 석유비축기지 탱크 중 가장 작은 탱크다.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는 지형을 활용해 입구가 터널처럼 되어 있는데, 탱크 해체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 안에 통유리를 활용해 벽체와 지붕을 만들어놓아 비밀스런 온실 분위기가 난다. 다목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활용되는 T1 파빌리온은 개인이 대관할 수도 있어 가족 행사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공연장 T2

진입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큰 원형 야외 공연장이 나온다. 기존 탱크를 감싸고 있던 전면 옹벽을 어느 정도 보존한 채 만들어진 원형 공연장은 유산으로 남겨진 고대 유물 같다.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재생사업이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있지만, 자국민을 비롯해 외국인까지 모두 함께 공유하고 문화를 즐길 만한 공간은 많지 않다. 이곳에선 주말에 음악 공연이 열리고, 날이 풀리는 계절에는 야간 영화 상영회도 개최한다. 남겨놓은 벽은 음악이나 영상의 음성을 웅장하게 전달하는 울림통 구실을 한다. 공연이 없는 날에도 언제든지 누구나 둘러볼 수 있다. 야외 공연장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또 하나의 지하 공연장을 만날 수 있다.

탱크원형 T3

T3는 유일하게 원형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석유비축기지가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과 상황을 생각하며 탱크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와 탱크 구조물이 몇 십 년간 비와 바람, 눈을 맞으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었다. 이끼가 낀 모습 그대로. 이곳은 입구까지만 가볼 수 있다. 철 골조 등이 위험하기도 하고,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입구부터는 자물쇠로 잠겨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T3의 모습은 미래에 남겨진 과거 같기도 하고, 과거에서 바라본 미래 도시 같기도 하다.

복합문화공간 T4

기존 탱크 내부의 독특한 형태를 그대로 살린 T4는 전시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내부에는 특별한 조형물을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전시가 없는 어두운 탱크는 고요하다. 큰 기둥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전시 같다.

이야기관 T5

‘이야기관’이란 이름이 붙은 T5는 석유비축기지와 문화비축기지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로 지어졌다. 말 그대로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바뀌는 과정을 연도별 이야기로 담아 전시 형태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커뮤니티센터 T6

외부만 보면 본래 가장 큰 탱크를 개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T1과 T2에서 나온 철 폐기물을 재활용해 신축한 건물이 T6다. T6는 커뮤니티센터로 이용된다.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다양한 강의와 마켓 등이 열린다. 하반기 중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오픈할 예정인데, 커뮤니티센터에 방문하면 앞으로의 프로그램 일정과 대관 등을 문의할 수 있다. T6 내부는 통유리를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강의실, 웅장함이 느껴지는 원형 회의실, 카페테리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원형의 이 건물은 원기둥 모양대로 나선형 복도로 되어 있는데, 작년 겨울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실내 썰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는 후문이다. 또한 하늘을 볼 수 있는 하늘정원은 날이 좋은 날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다.

모두의 놀이터

사실 문화비축기지의 첫 모습은 흙이 있는 운동장, 놀이터다. 광장 중앙에는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수 있도록 흙이 쌓여있고, 언덕 위로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곤충을 위한 호텔을 만들어놓았다. ‘곤충호텔’이란 이름 아래 ‘빈 방 있습니다’란 문구가 귀엽다. 어른과 아이, 가족, 연인, 노부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비축기지는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자 지금의 놀이터다.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02 376 8410
parks.seoul.go.kr/culturet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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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