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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놈만 팬다

한 번에 한 놈만 팬다

ⓒ 박물관에서

“난 한 번에 한 놈만 패.”라는 대사가 유명한 영화가 있다. 싸움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주인공의 비결은 아무리 많은 적이 있어도 한 놈만 정해서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유난히 미술관이랑 박물관에 잘 따라다니는 걸로 유명했는데, 비결을 물어보는 이웃들에게 나도 늘 같은 대답을 했다. “한 번에 한 놈만 패면 돼.” 엄마는 모든 전시물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정작 아이는 얼마 안 가 온몸을 뒤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애가 크면 가야지 하기엔, 박물관 다니는 재미를 모르고 자라면, 나중에는 데리고 갈 수도 없을 텐데? 어쩔 수 없다. 좋은 것, 귀한 것 다 보여주고 싶은 엄마 욕심 버리고 딱 하나만 보고 온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일곱 살 꽃님이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갈 때, 우리의 목표는 드가가 만든 발레리나 소녀 조각을 보는 것이었다. “꽃님아. 지금부터 이 카메라로 드가의 발레리나 소녀 조각상을 찾아서 찍는 거야. 미션 성공하면? 박물관 아트숍에서 선물을 사줄게!” 아이는 열심히 조각상을 찾아다녔고, 그러느라 다른 것들도 몇 개 눈에 담았다. 내가 노린 게 이거였다. 미션 하나를 성공하는 재미에 지루하다 지겹다 타령을 조금이라도 덜 하는 것과 그 미션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이것저것 살펴보다 뭐라도 하나 눈에 더 담기! 꽃님이는 아트숍에서 미술관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비싼 퍼즐을 원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퍼즐은 초현실주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의 초상화였고, 몇 년 후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 갔을 때, 아이가 초현실주의 전시를 즐겁게 보게 만든 멋진 열쇠가 되어주었다. 물론 퐁피두에서도 그 초상화만 보았다. 우리는 한 번에 한 놈만 패니까!

꼬마 미술관

엮음 알랭 르 쏘, 그레고와르 솔로타레프|옮김 이경혜|파랑새어린이

《룰루》 시리즈로 프랑스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솔로타레프 작가가 고른 그림과 단어들. 왼쪽 페이지에는 단어가 있고, 오른쪽에는 그 단어가 나오는 세계 명화의 한 부분이 있다. 감자 옆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그림이 있고, 올빼미 옆엔 보쉬의 그림 ‘쾌락의 정원’ 속 올빼미가 그려져 있는 식이다. 이런 책이 아니라면 아이가 보쉬의 그림을 언제 보게 될까? 이 책을 사물인지책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사물도 인지하고, 세계 명화에도 익숙해진다니 얼마나 좋을까. 심지어 단어는 한글 영어 다 있다니! 

하지만 그렇게 글자를 가르치고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데 쓰기에는 그림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역시 한 번에 한 놈만 패면 좋겠다. 글자 가르치기는 내려놓고, 그림이 원래 어떤 그림의 부분인지 같이 구글 아트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숨은 그림 찾기 놀이가 될 수도 있겠다.

미술관의 초대 

글 수전 베르데|그림 피터 레이놀즈|옮김 서애경|문학동네

이 그림책에도 명화가 많이 나온다. “그림을 볼 때면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해요.”라며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 앞에서 발레리나 흉내를 내고, 고흐의 별밤 그림 앞에서 빙글빙글 돌던 아이가 지쳐 잠깐 앉아 생각에 잠겼는데, 눈앞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이 있는 식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명화를 기억하도록 이야기를 짜 맞춘 책은 아니어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그림을 그리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면지 그림들도 놓치지 말자. 앞 면지에는 모나리자 같은 명화들이 가득 차 있는 박물관의 한 벽면 같은 그림 액자들이 있고, 뒤쪽 면지에는 텅 빈 액자들이 걸려 있다. 이 빈 액자를 독자가 채워보라며 한껏 유혹 중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밤이 되면 미술관은 문을 닫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내 마음속 미술관은 여전히 열려 있으니까요.”

박물관에서

글·그림 가브리엘 뱅상|옮김 김미선|시공주니어

작은 생쥐 셀레스틴느와 곰 아저씨 에르네스트 이야기 시리즈는 정말 좋다. 소풍을 가기로 한 날 비가 오자 ‘비가 안 오는 셈 치고’ 소풍을 즐기는 이야기는 많이들 아실 터. 이번에는 박물관에 간다. 구경을 하러 가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잃은 에르네스트 아저씨가 박물관에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러 면접을 보러 간 것이다. 결국 면접에서는 떨어지고 온 김에 박물관을 구경하려다가 둘은 그만 서로 잃어버리고 만다. 

서로를 찾아 뛰어다니는 동안, 독자는 마음을 졸인다. 방금 아저씨가 지나갔는데! 방금 셀레스틴느가 이 전시관에 있었는데! 같은 곳이란 건 벽에 걸린 명화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저 멋지고 귀한 것들이 가득해 잠깐 구경 가는 박물관이 누군가에게는 일자리이며,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어른들의 세계이기도 한 ‘생활 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이상 박물관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You Can’t Take a Balloon Into The Metropolitan Museum

저자 Jacqueline Preiss Weitzman, Robin Preiss-Glasser | Puffin Books

영어 그림책이지만, 글자는 하나도 없는 책이다. 주인공 여자아이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할머니랑 같이 구경을 갔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풍선은 들고 들어갈 수 없단다. 그래서 계단에 묶어놓고 들어갔는데, 그만 풍선이 날아가 버린다. 관리인 아저씨는 풍선을 잡으러 도시를 뛰어다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는 할머니랑 즐겁게 미술관 구경을 한다. 

아저씨가 뛰어다니는 도시에는 딱 그 순간 아이가 보는 미술관 작품과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아이가 티타임 여인의 그림 앞을 지날 땐 풍선도 티타임 중인 여인의 옆을 날아가고, 분수 그림을 보는 순간엔 분수 옆을 날아간다. 마침내 아이가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 아저씨도 무사히 풍선을 잡고 돌아온다. 아이는 과연 지난 시간 동안 아저씨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을까? 어휴. 아이들은 모르겠지. 

자기네들 키운다고 어른들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이 책을 보다 보면 예술 작품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상 속에 있고, 그 일상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포착하면, 그게 바로 예술이라는 깨달음이 생긴다.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외에 시카고 뮤지엄, 런던 내셔널 갤러리 편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리즈가 있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천사를 찾아서

글·그림 막스 뒤코스|옮김 길미향|국민서관

주인공 엘루아네 학교에서 미술관 견학을 간다. 아니나 다를까 지루해진 엘루아는 구석에 혼자 앉아 몰래 시간을 때우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꼬마야!” 부르는 소리. 그림 속의 아름다운 여인이 엘루아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천사를 잃고 슬퍼하는 그림 속 여인, 비너스에게 반드시 천사를 찾아주기로 한 엘루아. 천사를 찾는다고 미술관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느라 푸생, 피카소, 모리조, 몬드리안, 자코메티 등 거장들의 작품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박물관 보는 비결, ‘한 번에 한 놈만 패기’다! 천사를 찾느라 다른 작품들까지 보게 되는 것! 

사실 박물관에 갔더니 그림이 말을 걸어와서 아이가 그림 속 세상으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아이들에게 미술 작품을 자연스레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줄거리니까.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 속에서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막스 뒤코스의 책이기 때문이다. 막스 뒤코스는 《비밀의 집 볼뤼빌리스》, 《한밤의 왕국》 등을 통해서 현실 속의 명품과 명화 등을 자연스레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박물관에서 길을 잃었어요!

글·그림 로르 몽루부|옮김 박정연|재능출판

‘박물관’이라는 주제로 그림책을 고르다 보니 자꾸만 프랑스 책들을 꼽게 된다. 프랑스 책에는 박물관의 작품들을 설명하기보다 박물관에서 사건 사고를 치는, 그저 배경이 박물관일 뿐인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으며, 박물관이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고 예술 작품들에도 익숙해진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책을 읽으면 좋겠다. 유명 작품에 관한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니라,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부분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 

쥐스탱과 노에미는 박물관 견학을 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선생님이 길을 잃지 않도록 둘이 손을 꼭 잡고 있으라기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길을 잃어버린 걸까? 더 이상 박물관은 지루한 곳이 아니다. 친구와 손을 꼭 잡고 모험을 떠나는, 그런 신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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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