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GHU ISLAND

우리가 몰랐던 대만의 어촌 마을

PENGHU
ISLAND

우리가 몰랐던
대만의 어촌 마을

여행자의 발길이 어색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가보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다. 도시에 길들여진 나는 용기도 계기도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대만의 작은 어촌 마을에 머무를 기회가 생겼다. 설레었던 첫 번째 대만 여행 때와는 다른 묘한 기분을 간직한 채 펑후제도로 떠났다.

아직은 외지인이
어색한 마을

‘펑후Penghu’라는 지역 이름을 들었을 땐 의아했다. 대만의 유명한 지역들은 웬만하면 다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대만은 중심지인 타이베이부터 탄산수 온천과 옛 정취를 경험할 수 있는 근교 도시까지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나라이기에, 세계인이 애중하는 여행지다. 펑후는 이런 대만의 잘 알려진 얼굴과는 또 다른 이면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을 이동한 뒤 국내선을 탈 수 있는 쑹산 공항에 가서, 펑후 마공 공항으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로 약 50여 분을 또 들어가야 한다. 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막상 펑후에 머무르면 그런 고단함은 잊혀진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에는 주인공이 하와이 북쪽의 한 외딴 마을, 호노카아에서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펑후가 나에게 준 느낌이 딱 그랬다. 아직은 휴양지로 발전되지 않은 작은 마을, 여행자들의 때가 묻지 않은 곳, 하지만 잔잔한 분위기에 마음이 안정되는 곳. 숙박시설이라곤 도시 몇몇 군데에 호텔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펑후였다.

호텔 방에 딸린 발코니에 나가면 작은 항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른 새벽, 항구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자 왠지 흥분되었다. 항구로 싱싱한 수산물을 들여오는 어부들, 반바지를 입고 조깅하는 사람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자동차보다는 걷기와 오토바이가 더 어울리는 동네였다. 사실 이 지역에서 특별히 할만한 일은 없다. 쇼핑이 특화된 지역도 아니고 미술관이나 문화단지가 조성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세련된 카페나 유명한 셰프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마냥 바다를 바라보고 멍하고 싶은 때에 찾아오면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질 것임은 분명했다. 

3박 4일의 일정 중 하루는 이 지역에서 전에 없던 고급스러운 호텔 안에서 뒹굴었다. 끈적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야외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보고, 저녁에는 풀사이드 와인을 곁들인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건·습식 사우나에 앉아 땀을 빼보지 못했다는 점. ‘이 더위에 무슨 사우나야.’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후회가 되었다. 밤에는 호텔 지하의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인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흥을 감추지 못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펑후의 속살을 보기 위해 나섰다.

또 정이 드네요,
떠나고 싶지 않게

펑후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십분만 걸어도 땀이 흐르는 날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들 현지를 느껴보는 여행에 대해서 동의했던 터였다. 예상했던 대로 무더웠다. 사람들에게서 장난 반 진심 반의 불평이 흘러나왔다(웃고 있었지만 모두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착한 곳곳마다 탄성이 일었다. 절벽이 파도에 깎여 고래 모양으로 뚫린 동굴은 신기했고, 3백 년이 넘은 나무의 굵은 가지들로 뒤덮인 공원은 경이로웠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한가로운 낮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에겐 정감이 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민박집 같은 곳에 들어갔다. 밥집은 아닌 것 같았고 몇 가지 음료 사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카페인가 했는데, 전문적인 카페는 또 아니었다. 웃기는 곳이었다. 그래도 벌개질 정도로 익은 피부를 식혀준 대찬 에어컨 바람에 마냥 살 것 같았다. 펑후의 특산물인 100퍼센트 선인장으로 만든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장이 손수 반죽한 밀가루로 만든 현지 음식을 내왔다. 꼭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했다. 지치고 허기가 진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었고, ‘한 그릇 더!’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난 뒤, 펑후의 옛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난리아오 마을Nanliao Village을 둘러보았다. 전통적인 문양이 새겨진 낮은 건물들을 지나 한 폐가에 장식해 놓은 부표들이 특이해서 물었더니, 이 나라 저 나라의 바다에서 떠내려 온 부표를 버리지 않고 모아 만든 것이라 했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서 들어간 어느 집에선 펑후 역사에 대한 동영상이 돌아가고 향이 피워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리에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지 않을 텐데, 역사와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에 뭉클함을 느꼈다.

펑후는 섬이기 때문에 곳곳에 해변이 참 많다. 여름이면 윈드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 모여드는 꽌인팅 해수욕장부터 빛나는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시리 해수욕장, 그리고 우리가 찾은 임투공원林投公園이 있다. 임투공원의 해안은 부드러운 모래를 따라 나무 데크가 길게 마련되어 있고 보기 드문 야생화들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데크를 걷다 보면 진짜 숨어있는 듯한 카페가 하나 나오는데, 우리는 나무숲에 가려진 이 카페에 앉아 잠시의 휴식을 즐겼다. 카페에 있다 나오는데, 저쪽에서 한국인인 것 같은 학생들이 물놀이 후 젖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여행 내내 한국인이라곤 우리 일행밖에 보지 못한 터라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몇 마디 나눈 후 우린 헤어졌다. 유명하지도 않은 여행지에서 뜻하지 않게 자국민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 불꽃놀이를 보며 먹는 저녁 식사였다. 매년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 정도에 펑후 제도의 명소 중 하나인 레인보우 브리지에서는 불꽃놀이가 열린다. 마침 우리가 펑후를 찾은 시기와 맞물려 선상 위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신청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우린 호텔에서 제공하는 선상 디너를 즐기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오징어잡이. 우리는 낚싯대를 하나씩 집어 들고 일렬로 배 난간에 서서 바다에 낚싯대를 던졌다. ‘한 마리는 잡히겠지’라는 들뜬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는데, 역시나 그 누구도 오징어를 잡아 올리지 못했다. 오징어잡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어댔다. 그러다 배 한 켠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렸는데, 선장이 오징어를 낚은 것이다. 우리는 꿈틀대는 산 오징어를 들고 선 선장의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꺅꺅 질러댔다. 그 이후엔 복어나 멍게 같은 살아있는 바다 생물들이 연달아 잡혀 우리 손을 한 번씩 거쳐 갔다. 

한바탕 자연학습을 하고 어둠이 내려 불꽃놀이를 시작할 시간이 되자, 작고 큰 배들이 불꽃이 터지는 장소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왠지 장난감 배를 모아놓은 것 같아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작한 불꽃놀이. 왁자지껄하던 선상이 조용해지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요한 밤바다 한가운데서 소리를 내지르며 터지는 화려한 불꽃은 내가 보았던 어떤 불꽃보다도 아름다웠다. 심심하다면 심심할 수 있는 동네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 일행들은 4일의 일정도 짧다며 진심으로 아쉬움을 토해냈다.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펑후 호텔
FOUR POINTS BY SHERATON PENGHU
H. fourpoints.com/peng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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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정혜미

취재협조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펑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