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GREEN BOAT

평화의 조각을 찾아서 피스 & 그린보트 여행기

피스&그린보트는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손을 잡고 기획한 열흘간의 평화 여객선 투어다. 부산에서 출발해 상하이와 오키나와,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8박 9일의 일정을 소화한다. 기항지마다 환경과 인권, 역사 등 테마별 투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고, 바다를 가로질러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동안은 배 안에서 다양한 강연이 이뤄진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과 교류를 위해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봉숭아 물들이기’나 ‘한국과 일본인 가족 만들기’, ‘함께 모여 트럼프를 합시다’ 같은 프로그램들이 여기에 속한다. 크게는 환경과 평화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자는 취지이고, 그 바탕에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있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한국과 일본. 교류의 사전적 정의는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른다.’이다.

짧지만
긴 여행의 시작

지난 4월, 2016 피스&그린보트에 타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출항까지는 3개월여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딱히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터라 선뜻 보트에 타겠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걱정이 하나 생겼다. ‘그 사이에 여자 친구를 사귀면 어떡하지? 9일이면 꽤 보고 싶어질 것 같은데.’ 당시로서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조금 울며 배낭을 꾸려야 했다.

작년에는 어라운드 에디터 전진우가 이 배를 탔는데, 이번에는 그 대신 내가 초대장을 받게 됐다. 기분은 좋았지만 어쩐지 열흘의 바다 여행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뱃멀미가 나면 어떻게 될까? 혹시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열흘 내내 객실에만 있게 된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바다의 적막함은 또 어떻고…. 여러 가지 두려움이 앞섰는데 바다로 나간 후에는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온화한 바람 속에서 한일 참가자 1,100여 명을 태운 배는 큰 고비 없이 바다를 유영했다. 무엇보다 이 배에는 오랜 경험을 가진 스태프가 상주해 있어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승객을 포기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눈 사이라면

나는 페이퍼 매거진의 신영배 기자와 함께 방을 썼다. 그는 허풍을 조금 떠는 성격이긴 했지만 눈이 맑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선뜻 침대 1층 자리를 내어준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발행되는 선상신문에 나온 스케줄 표에 따라 배 여기저기를 돌며 강연을 들었다. 한국어와 일본어 동시통역으로 진행되는 강연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여러 명사들의 토론으로 이뤄졌다. 시사 평론가 정관용 씨에게서는 소통의 기술을, 광고인 이제석 씨에게는 환경문제를 말하는 획기적인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요조 누나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았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도 강제로 체험해야 하는 건 아니어서 누군가는 갑판에 나가 파란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노인과 소년은 한 데 둘러앉아 마작을 즐겼다.

영배와 나는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동선을 가지고 움직였다. 우리는 함께 강연을 듣고, 어슬렁거리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끼니마다 두 번씩 밥을 먹었으며, 해가 지면 맥주를 마셨다. 술자리는 늘 소심하게 시작해 창대하게 끝나곤 했는데, 서로 다른 테이블에 있다가도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눈 사이라면 그것으로 친구가 됐다. 조용필 노래를 부르는 일본인 간짱 아저씨와 자이니치 정구 아저씨, 맨날 라면만 먹던 올라이즈 밴드의 우승민 씨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천천히 흔들리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나누고 안주를 먹여주고 통하지 않는 언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하려 애쓰는 일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풍경. 그때 처음 만난 간짱 아저씨는 고베에 놀러 오면 꼭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며 수첩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 후로 며칠간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저씨는 나를 안아주면서 “고베.”라고 힘주어 얘기했다. 사실 이전까지 내게는 고베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고베 대지진’에서 비롯된 공포와 안쓰러움이, 조금 더 큰 다음에는 ‘고베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더라.’라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고베를 생각하면 간짱 아저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 명의 사람,
더 깊은 목소리

배에서 만난 사람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세 개의 목소리가 있다. 나는 그들과 강연의 청자로, 투어의 참가자로, 술자리 친구로 만났다. 처음은 자이니치ざいにち의 목소리였다. 자이니치는 ‘재일在日’, 그러니까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을 지칭하는 일본식 발음으로,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방인이다. 김붕앙 씨와 신숙옥 씨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자이니치 운동가로 강연을 통해 자이니치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이 말하는 차별은 보다 가깝고 현실적인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걸스카우트의 일원으로 외국에 출국할 일이 있었는데, 혼자 한국인 여권을 가지고 있자 선생님께서 제 여권을 가려주며 ‘유카짱 괜찮아요.’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저는 어려서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전혀 몰랐어요. 그게 과연 상냥함일까요?” 게스트로 출연한 자이니치들은 애써 웃으며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했다. 각자 뉘앙스는 달랐지만 공통으로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낙인으로 묶어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다름에 대한 혐오라고 말했다.

“우리 안에서도 태어난 배경과 사고방식,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자이니치’라는 말로 묶을 수 있나요? 이 행사장 안에 야마다 씨가 있다면 ‘아, 제 친구 중에도 야마다가 있습니다.’라면서 같은 사람으로 말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난 체구가 작은 백발노인이었다. 다카자네 야스노리 교수는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숨겨진 역사의 조각을 모으는 사람이었다. 나가사키는 일본 사람들에게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진 아픔의 도시였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02분, 나가사키 시 한가운데 떨어진 폭탄은 3만 5천 명의 사람을 죽이고 도시 전체를 무덤으로 만들었다. 원폭기념관에 방문해 전쟁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피해를 목격할 때 함께 투어를 나선 사람들의 표정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뒤에 방문한 평화자료관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전쟁 당시 일본군이 행한 끔찍한 일들을 목격한 것이다.

난징대학살, 무고한 사람들의 강제징용, 위안부, 군함도, 갱도에 갇혀 폭탄을 맞은 수많은 한국인. 차마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았고, 견디다 죽은 동족들의 찢긴 몸과 역사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눈을 돌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일본인 전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그 공간을 만든 사람 역시 불편한 역사를 바로 바라본 깨어있는 일본인들이었다. 

다만 우리가 분노한 것은 일본 정부가 전쟁으로 입은 피해만 간판으로 내걸고 정작 자신들이 행한 수많은 학살과 고문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는 사실이었다.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가해의 역사를 모르는 채 삽니다. 알지 못해서 반성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나이든 일본인 가이드는 땀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소수의 탐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전쟁이 벌어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로 죽어나가는 것, 그건 국경과 민족을 넘어선 모두의 비극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는 이 배에서 통역을 해주는 조은지 씨였다.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의 반달 웃음을 짓는 사람으로 어렸을 적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했고, 일본의 피스보트 소속으로 배를 탔다. 그녀와는 간간이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이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캔 맥주를 하나씩 사 들고 먼바다가 보이는 갑판 위에 올랐다. 가만히 바람이 불고, 선내 주점에서는 사람들의 웃음과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던 밤.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취기가 올랐는데, 어쩐지 그녀와 이야기할수록 우리가 이 배를 탄 이유들이 조금씩 더 명확해졌다. 

“평화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지금처럼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만드는 거예요. 단순히 나라와 이름으로만 그 사람을 아는 것과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라고 믿거든요.” 그녀가 말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였다. 배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함께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문득 이곳이 시끌벅적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이 억지로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트레킹과
소라구이

“영배야 우리는 어떻게 겹치는 기항지가 하나도 없냐?” 기항지 프로그램이란 배가 항구에 정박할 동안 육지에 내려 역사와 환경, 평화, 관광 등 하나의 테마를 골라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를 말하는데, 배에서 생활할 때와는 다르게 룸메이트 영배와는 한 번도 기항지에서 마주칠 수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는 늘 요조 누나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배에 돌아와 뭐가 좋았느냐고 물으면 어째서인지 영배는 실실 웃기만 했다. 그가 부럽기는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고 나 역시 꽤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투어는 후쿠오카에서 체험한 ‘가라쓰 올레’였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본 따 만든 가라쓰 올레는 규슈 지방에 마련된 17개 올레 코스 중 하나로 나고야 성터와 주상절리, 하도미사키라는 아름다운 해변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길이었다. 우리는 대나무를 하나씩 들고 휘휘 저으며 산길을 걸었다. 사실 제주도 같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아마도 제주만큼이나 아름답다는 뜻일 터였다. 모두가 땀을 한 바가지 정도는 흘린 다음에는 보란 듯이 해변이 나타났다. 조금 더 노랗고 진한 공기, 발바닥이 뜨거운 모래사장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그곳에서 소라구이와 맥주를 마셨다. “어, 이건 제가 쏠게요. 다음에 한국 들어가서 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함께 어울린 사람들의 소라구이를 계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없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뜨거운 목욕탕에서 몸을 씻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 안에서 한 꼬마가 “아빠, 이제 내일이면 부산 도착이야?” 하고 말했고, 소리는 벽을 튕겨 여기저기로 퍼졌다. 저녁이 오면 일본 사람들은 배에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거였다. 그럼 배 위의 소란도 절반이 되겠지. 어쩐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일까?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 웅성대는 목소리, 가이드가 문을 열고 시간이 다 되었다고 소리쳤다. 천장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톡, 머리에 떨어졌다.

앞서 너무 가볍게만 이야기를 다룬 것 같지만 사실 배를 타며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너무 엄중하고 커다란 문제여서 말로 옮기기에 용기가 필요한 그런 일들. 하지만 나는 이 여행기 안에서 그보다는 즐거운 일들을 먼저 말하고 싶었다. 선내 탁구대회에서 무심히 스매싱을 날리던 90대의 할머니를 비롯해 손톱 가득 봉숭아 물을 들이며 좋아하던 앳된 소녀들, 저녁마다 노을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로맨티시스트, 몇 개의 도시를 함께 여행한 갑판 위의 작은 새, 저녁 식사를 한층 낭만적으로 만들어준 백발의 피아니스트까지. 언뜻 생각하기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얼굴들을 말이다. 마치 아주 쓴 약을 먹기 위해서 사탕이 필요한 것처럼. 다행히도 배를 타며 한 번도 뱃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그날의 흔들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선명했던 얼굴들이 하나둘 흐려질 때마다 그게 나에게는 멀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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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