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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임니콜라스 — 신촌문화관
신촌문화관 김수연, 니콜라스 대표는 일상의 작은 조각이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자연스럽게 즐겨온 순간들에 어울리는 옷을 입히고 이름표를 달아 세상에 나열한다. 이를테면 오후 세 시, 막걸리와 함께하는 느슨한 시간의 이름은 ‘레이지댄싱서클’이다.
두 분이 하는 일이 정말 많아 보여요.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수연 의식과 상황의 흐름대로 다양한 일을 전개하고 있어요. 먼저, 복합문화공간인 ‘신촌문화관’을 운영해요. 일상에 실용적이고 기분 좋은 리빙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행잉스터프’를 런칭했고, ‘림오리지널’을 통해 저의 바느질 작업을 소개하고 있어요.
니콜라스 지난 4월, 크래프트 막걸리를 선보이면서 ‘레이지댄싱서클’이 새로운 프로젝트로 더해졌어요. 앞서 소개한 여러 프로젝트는 수연과 제가 구성원인 ‘림더라이프LIMN the LIFE’라는 그룹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LIMN은 ‘그리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의 동사이기도, ‘그림’이라는 우리말에서 따온 음절이기도 한데요, 간결하게 말하자면 ‘그림 같은 일상’을 추구하는 두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 없이 재미있고 기능적인 걸 만드는 거죠. 명함에는 디렉터라고 써 있네요(웃음).
‘Naming Your Home’은 나다운 일을 하는 분들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집을 엿보는 기사인데요, 신촌문화관이 집보다 더 일상의 공간이라 하셔서 촬영 장소를 이곳으로 바꿨어요.
수연 신촌문화관에서 일도 하고 때론 잠도 자면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거든요. 신촌문화관은 여덟 개의 유닛이 모여 있는 문화 교류 공간이에요.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3실이 림더라이프 작업실이에요. 더불어 우리가 집처럼 쓰는 공간인 거죠.
잠자는 곳도 있군요. 일하는 곳, 먹는 곳, 쉬는 곳을 구분해둔 건가요?
수연 맞아요. 먼저 공간의 중간을 유리 파티션으로 나누었어요. 파티션을 경계로 우리 둘의 작업실과 거실에 해당하는 공용 공간이 있어요. 지금 저희가 앉은 공간은 공용 공간으로 오디오와 책, 긴 테이블을 두어 손님이 오거나 미팅이 있을 때 개방하기도 하죠. 파티션 안쪽은 저희의 개인적인 공간이에요. 일을 일찍 마치면 니콜라스를 기다리면서 목화솜을 채운 두툼한 보료에 누워 쉬거나 반려견 벤지와 놀아요. 책을 보면서 와인이나 막걸리를 마시고 작업이 늦어질 때는 잠을 자기도 하죠. 주방은 3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보이는 별채로 5실에 있어요. 거기서 음식을 먹고, 2층 벤치커피스튜디오에서 커피 한 잔 가져와서 3층 테라스에서 나무를 보면서 잠시 휴식을 갖곤 해요.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이름으로 불릴 때 따듯한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신촌문화관은 어떤 의미예요?
수연 ‘이름 따라간다’는 말에 공감해요. 저는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신촌은 젊음의 상징 같은 동네였다고나 할까요? 옷 가게나 액세서리 숍, 문구점, 음반 가게, 음식점, 술집 등이 즐비해 있고 와글와글한 지역이었죠. 시간이 지나 신촌은 파릇함보다는 황폐한 느낌의 동네가 되었어요.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니 다른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카페나 갤러리, 식당 같은 콘텐츠가 귀하고요. 가족 덕분에 오랜만에 신촌을 다시 찾으면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좋은 레퍼런스를 만들면 비슷한 환경에 있는 건물들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죠. 큰 고민 없이 신촌에 문화 콘텐츠를 채워보자는 마음으로 신촌문화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다목적 대여 공간인 1실, 2실 두 개의 갤러리를 만들었고, 2층에 신촌문화관의 로비라 할 수 있는 벤치커피스튜디오를 열었어요. 로컬 주민의 사랑방이자, 신촌문화관을 편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죠. 그 외 공간은 작업, 사무 공간으로 틀을 갖춘 뒤 입주사들을 모집했어요. 이름이 ‘문화관’이라 그런지, 현재 건축집단, 시나리오 작가, 아트 편집숍, 친환경 세제 브랜드, 독립 마케팅 회사 등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들이 입주해 지내고 있어요. 보통의 공유 오피스보다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오고 가며 테라스나 계단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라 우리는 이곳이 마을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저희를 호칭할 때도 신촌의 촌村을 따서 촌장이라 부르죠.
니콜라스 신촌이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은 아니지만 우리의 색을 찾고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붐비고 동네 색이 강한 곳이었다면 우리 방식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분위기에 맞춰 템포를 따라가야 했을 테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2019년 12월에 신촌문화관을 열었어요.
이런, 신촌문화관을 열자마자 코로나19가 발생한 거네요.
니콜라스 그렇죠. 2020년 1월부터 팬데믹으로 번졌으니까요. 신촌문화관 시작과 동시에 벤치커피스튜디오를 열었는데, 몇 달 동안 둘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어요. 준비했던 프로그램도 기약 없이 미뤘죠. 신촌문화관은 사람들을 모으는 곳인데 카페 운영도 하기 힘들고 전시도 열 수가 없어서 참 막막했던 기억이 나요.
수연 지나고 보니 이 동네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학생이나 관광객,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들이 방문해 줄 거라 예상했는데, 코로나19로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고 학생들도 2년 가까이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조용한 동네에 인적이 더 드물어졌어요. 그러자 우리가 집중하지 않은, 동네에 숨어 있던 창작자들이 조금씩 나타나더라고요.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소히 했고, 한계적인 상황에서 아기자기하게 생활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어요. ‘문화 공간 활성화’라는 초기 플랜은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썼어요. 만약 우리가 다른 지역에 문화 공간을 열었고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행잉스터프나 레이지댄싱서클 같은 브랜드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니콜라스 미국 실리콘밸리 IT 회사의 한국지사장으로 지냈어요. 회사원으로 오래 지내면서 어느 날 돌아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뀐 것을 깨달았어요. 미래 학자들이 얘기하던 열린 시대, 연결된 시대가 정말로 현실 세계로 온 거예요. 원래 많은 사람들이 하나와 다른 하나의 중간에서 일하고 있어요. 판매하는 이와 구매하는 이를 잇기 위해 홍보하고 배송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만드는 사람과 소비자가 직접 서로를 찾아 연결할 수 있는 거죠. 내가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시대인 거예요. 달라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해 보니, 스스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늦기 전에 크리에이터로서 살고 싶어서 그 길로 회사를 나왔죠.
수연 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매거진 기자와 마케터를 거쳐 디자인 브랜딩 회사 디렉터로 일했어요. 다른 회사나 브랜드가 요구한 일을 수행하는 데 오랜 시간 단련이 되었죠. 그 안에서 제 관심사를 발견하고 재미있는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의 일이 아님에 공허함도 있었죠. 어느 순간 조직이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니까 회사 운영을 위해 내키지 않는 일도 하게 되더라고요.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저는 니콜라스와 달리 바로 정리하진 못하고 일과 병행하면서 예전부터 하고 싶던 일을 경험해보기로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한국적인 소재와 아름다운 천을 다루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관심이 많아도 이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잖아요. 돌다리도 두드리는 성격이라 전문성 없이 브랜드를 만들 자신이 없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전통 한복과 규방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전국에 몇 곳 남지 않은 대학교의 전통 복식 학사를 이수했어요. 그 과정에서 꾸준히 공부하고 싶은 분야인 ‘누비’를 만났고요. 누비는 두 겹의 천 사이에 속을 넣고 골을 만든 뒤 간격을 매우 촘촘하게 바느질하는 전통 침선 기법이에요. 이런 과정과 시간을 거치면서야 하던 일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 후로는 한국의 패브릭을 다루며 정성스럽게 바느질한 작업을 림오리지널에 소개하고 있어요.
파티션 너머에 놓인 발이 인상적이에요.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평온하네요. 이것도 림오리지널 작품이죠?
수연 맞아요. 공간을 나누거나 가리고, 오브제로 활용하는 발은 가볍고 단순한 형태에 비해 존재감이 크고 실용적이에요. 공간을 조화로이 구획하고 연결하는 것에서 그 매력이 드러나죠. 발은 림오리지널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작업인데요, 작업의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내가 하고 싶은 바느질의 모습을 찾게 되었어요. 전통적인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역으로 생기는 거죠. 전통 바느질에 기반을 두었지만, 시대나 표현 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그저 만들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전통적으로 보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대적으로 읽힌다는 말을 들을 때 만족스러워요. 현대의 미학을 표현하더라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고리와 치마를 만들어야 누빌 수가 있으니까요.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누비장 전승 교육사님에게 사사받고 있어요. 배움을 완결 짓고 싶은 마음인데, 가끔 그날이 멀게만 느껴져 답답해지면 니콜라스에게 하소연해요. 대학에서 전공하듯이 길게 바라보고 배우다 보면 완성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겠냐고 말해주더라고요. 매일매일 습관처럼 하다 보니 수련 같은 느낌이에요.
행잉스터프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거예요?
수연 신촌문화관의 리뉴얼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각 층과 룸마다 넣고 싶은 리빙 제품이 몇 가지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유용하고 쓸모 있는 유니버셜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덴마크 어느 카페에서 봤던 키친랙이나, 파리의 호텔 입구에 걸려 있던 코트와 모자 행어를 정말 열심히 찾았는데, 한 시대를 풍미하고 단종되었거나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제품들이라 아쉬웠죠. 현대인의 눈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디자인 제품이라, 그 원류를 찾아 공부했어요. 막연히 유럽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품은 사실 인도에서 범용적으로 쓰는 국민 키친랙이더라고요. 행어는 프랑스의 아르데코 디자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던 빈티지 제품들만 남아 있었고요. 더이상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생활하는 집이나 작업실을 둘러보았더니, 실제로 많은 가구와 소품을 행잉하고 있더라고요. 벽이나 천장에 행잉하는 제품은 색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공간의 스타일이나 쓰임에 따라 용도와 분위기가 달라지니까요.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고 필요한 제품을 만들면서 행잉스터프라는 브랜드가 시작되었어요. 걸어보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주변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것, 공간에 기분 좋은 리듬감을 선사해 주는 것 등을 발굴하고 제작, 소개하고 있어요.
브랜드에서 전개하는 제품들은 디렉터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해요. 만드는 이의 미감과 안목을 믿고 제품을 선택하는 이도 많을 거 같은데요.
수연 개인이 선택해 만든 브랜드나 제품은 결국 그 개인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라는 것을 투영하는 거라 생각해요. 우리 브랜드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매일 접하면서 즐거운 것, 니콜라스와 제가 둘 다 괜찮다고 동의하는 것을 소개하려고 해요. 결혼하고 함께하는 공간을 꾸릴 때 인테리어 원칙을 정한 적도 있는데요(웃음), 일명 BBGW. ‘블루, 블랙, 그레이, 화이트만 들일 것. 그 외 색을 들일 땐 상의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취향을 모아 보니 색뿐 아니라 디자인도 간결한 게 많았어요.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것은 피하고 너무 애쓰지 않은 형태를 선호해요. 애쓴 걸 좋아한 때도 있었죠. 저도 애쓰고 물건도 애쓰면 힘이 들어가요. 자연스럽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눈과 마음이 편안한 것에 마음이 갔어요. 지금 파티션 건너편에 있는 나무장은 조선시대에 갓을 보관하던 장이고, 카펫은 군타 슈퇼츨의 1920년대 바우하우스 디자인이에요. 중앙에 달린 발은 제가 만든 거고요. 우리에게 편한 것을 같이 두니 조화롭게 어우러지더라고요.
취향을 듣고 보니 신촌문화관이라는 네이밍과 입주 스튜디오를 1, 2, 3, 4실로 간결하게 부르는 이유가 이해돼요. 두 분이 단순하고 편안한 울타리를 만들면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채워가는 방식인 거네요.
수연 맞아요. 코로나19가 잠시 잠잠했던 시기 입주사들과 여러 작은 이벤트를 조심스럽게 연 적이 있어요. 공간 프로젝트 듀오 ‘콩과하’가 입주하면서 자신들의 독립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고, 지하층을 와인 셀러와 사무실로 사용하던 와인 수입사 ‘부포와인’과 3층 테라스에서 디너 이벤트도 진행했고요. 1:1 대면 콘서트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원래 해외에서 활동하던 연주자들이 코로나19로 입국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연주 기회가 없어서 당시 상황에 맞게 기획된 공연이었어요. 한 명의 아티스트가 관객 한 명을 두고 연주하였고, 서로 마주 앉아 조용히 첫 눈인사를 나눌 때는 큰 감동이 있었어요. 이런 행사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제안을 해왔을 때 열린 마음으로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면 재미있는 일이 펼쳐지더라고요.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꿔가고 싶어요.
직접 기획하는 전시도 연 걸로 알아요.
수연 2021년 초에 진행한 <Books In Lieu: 여행 대신 책을>은 저희가 기획한 전시예요.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여행이 어려워진 코로나19 시대에 책으로 여행을 떠나보자는 기획이었고, 신촌문화관의 38명의 친구들에게 ‘여행 대신 책’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대여해 달라고 했어요. 친구들 모두 ‘여행’에 대한 의미를 담은 소중한 책을 사연과 함께 보내줬고, 이를 가지고 약 한 달간 전시를 열었죠. 전시에 온 사람들이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듯이 몇 시간씩 앉아서 여행 대신 책을 보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재방문이 유독 많던 전시예요. 모두에게 여행 같은 시간이 절실했던 터라 많은 사랑을 받았죠.
다양한 카테고리의 일을 하는 분의 하루는 얼마나 촘촘할까 궁금해요.
수연 둘 다 잠이 보약인 사람이라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 충분히 수면한 후 남은 열여섯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고 놀아요. 보통 8시 정도에 일어나서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신촌으로 출근해요. 오전의 시작은 신촌문화관, 행잉스터프의 데일리 업무예요. 림더라이프 안의 모든 일은 저희 둘이 분담하거든요. 신촌문화관의 대관 및 관리, 운영 등은 주로 니콜라스 몫이고, 행잉스터프의 판매나 커뮤니케이션 업무는 제가 담당하죠. 이후 적당한 시간에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부터 퇴근까지는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해요. 저는 림오리지널 작업을 하고, 니콜라스는 행잉스터프 제품 개발, 내추럴 막걸리인 레이지댄싱서클의 개발 및 제조 업무를 해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저녁 8시 이후에 퇴근하는 나날이에요.
니콜라스 수연과 저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잘 때까지 거의 같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일과 놀이를 해요. 둘 다 회사 생활을 오래해 왔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니 처음엔 업무와 일상의 구분도 어려웠고 자잘한 충돌이 생겼지만, 이제는 놀이든 일이든 서로의 영역과 방식을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일이 단둘의 결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의 속도가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것이 큰 장점이죠. 하지만, 물리적으로 일이 많으니까 시간이 부족하긴 해요. 예를 들면, 제품 포장에서 나사 하나가 빠졌다고 구매자에게 연락이 오면 나사를 구하고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배송하는 일도 다 직접 해야 하거든요. 코로나19로 자연스럽게 외부 일정이 줄어서 일에 푹 빠져 지냈어요. 가끔 친구나 지인이 방문하는 날에는 기쁜 마음으로 일을 쉬기도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일하고 놀고 놀다가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그래도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는 않습니다(웃음).
일상의 공간이 재미있어야 재미있는 시간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좋아하는 공간과 즐거운 시간이 있나요?
수연 파티션 건너 보료 위를 좋아해요. 눕는 걸 좋아해서 덜 눕고자 작업실에 있던 소파를 없앴는데, 결국은 관상용으로 마련해 둔 보료에 슬그머니 가서 눕게 되네요. 바짝 긴장해서 일하다가 반려견 벤지랑 목화솜 가득 채운 보료에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어요. 또 테라스에 나가서 나무들을 관찰하며 멍하니 쉬는 시간도 좋아해요. 엘리베이터나 복도를 지나지 않아도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다른 세상이 펼쳐지거든요. 늘 기획하고 만드는 작업을 하는 일상에 환기가 되는 환경이라 감사해요. 식물들을 보살필 자신이 없어 정원 꾸미는 걸 주저했는데, 무럭무럭 잘 자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니콜라스 저는 제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좋아요. 주말이 가까워지고 여유가 있을 때는 서너 시쯤 일하는 중간 막걸리에 얼음 몇알 넣고 한잔 하는 것도 즐겨요. 막걸리 마시면서 잠시 느슨해지는 시간을 갖죠.
그래서 막걸리를 개발한 거군요.
니콜라스 내추럴와인을 마시며 여유를 찾는 편인데, 어떤 기회에 쌀로 빚은 술이 와인 마시는 듯한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쌀을 발효해 술을 만들었는데 널리 알려진 막걸리 맛이 아니라 와인과 비슷한 향미를 낸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막걸리 만드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와인의 즐거움을 막걸리에 담고 싶어서, 막걸리 제조에 관한 책을 구해서 읽고 교육기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들으며 관련 지식을 습득했죠. ‘와인 같은 막걸리를 만들자’가 목표였기 때문에 보통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어요. 공부하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를 익히기 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졌어요.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고 나면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볼 수 있거든요.
레이지댄싱서클의 알코올 도수가 12도인데요. 막걸리는 편하고 쉽게 마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높은 도수로 잘 만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입 안에서 향미를 느끼려면 알코올 도수가 아주 중요해요. 와인의 도수는 대략 11-14도로 다양하지만 제 입에 와인의 향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건 12도여서 그렇게 개발했어요. 레이지댄싱서클이 맥주병에 담긴 막걸리라는 점도 신선하게 봐주시는데요, 처음에 막걸리를 맥주병에 넣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플라스틱 페트병을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었거든요. 그 이유를 오래 고민해 보면서 유리병에 담아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막걸리는 전통주라는 고정화,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고 싶어서 레이지댄싱서클을 ‘크래프트 막걸리’라 분류했고,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는 ‘크래프트 라이스 와인’이라 표시했어요. 그럼 테라스로 나가 같이 드셔 보실래요?
정말 와인과 풍미가 비슷해요. 첫맛은 싱그러운데 끝에 묵직한 알코올 기운이 느껴지네요. 해변이나 캠핑장에서 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니콜라스 해변이나 캠핑장에서 먹고 싶다는 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디저트를 찾는 이유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조금 느슨해지고 싶을 때, 느슨한 즐거움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을 영어로 표현해 보니 레이지댄싱서클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어요.
막걸리도 디저트가 될 수 있네요. 벤치커피스튜디오에도 디저트가 다양하던데요. 좋아하는 메뉴가 궁금해요.
수연 최근까지도 제가 몇몇 디저트 메뉴를 만들었어요. 현재는 벤치커피스튜디오의 메뉴가 개편되어 더이상 만들진 않지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저희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바나나 브레드예요. 종종 엄마가 직접 카페로 와서 베이킹을 해주시기도 하는데, 어릴 때부터 먹던 엄마의 손맛으로 스테디셀러 메뉴가 탄생해 엄마도 보람을 느끼시죠. 고마운 디저트예요.
가치관을 교류할 수 있는 이들을 모으고, 그들이 쉬어가도록 커피와 막걸리 같은 즐길 거리를 마련해요. 손으로 아름다운 오브제를 만들며 공간에 오래 쓰일 가구도 만들죠. ‘나’의 즐거움뿐 아니라 타인의 기쁨도 헤아려야 할 텐데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일 거라 짐작돼요.
수연 니콜라스와 저 둘 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니콜라스는 타인과의 거리가 중요한 사람이에요. 가깝고 멀고를 떠나 서로 불편하지 않을 최적의 거리를 마련하는 거예요. 그에 반해 저는 관계의 깊이가 중요해요. 낯을 가리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깊어져요. 대체로 기쁨이 크지만 그 안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도 존재하고, 타인의 감정을 살피느라 피곤하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사람과의 거리를 잘 설정하는 니콜라스가 부러울 때도 있어요.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관계가 참 담백하더라고요. 같이 일하다 보니 니콜라스가 사람과의 거리를 적절히 조율해 놓으면 그 안에서 깊이를 쌓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니콜라스 저는 관계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우리가 속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라는 관계로 묶여 있지만 개인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행동이 꼭 필요하다 여겨요. 센스있는 배려가 기본이지만, 필요한 경우 거절을 할 수도 있고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두 분의 성향이 꽤 다른데요, 좋아하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궁금해요.
수연 저는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해요. 주변 여건이나 상황에 떠밀려서 움직이지는 않아요. 엄마에게 듣기로 다른 형제들은 공부하라고 하면 잔소리를 듣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열심히 하는데, 저는 그 순간 손을 딱 털고 아예 보지도 않았대요(웃음). 대신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집중해서 열심히 했어요. 잘하는 건 끝을 보고 싶어 하고 인정 욕구도 있는 성격이죠. 반면 자신 없는 건 금세 포기하기도 해요. 브랜드를 운영하며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다 보니 자승자박, 결자해지의 상황에 놓여 있네요.
니콜라스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의 과정 안에서 재미를 느껴요. 만약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상당히 힘들어 했을 거예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커서 매번 새로운 걸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는 편이거든요. 세상에 없던 걸 발명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미 누군가가 잘하고 있는 일을 또 하기 보다 내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려 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과의 많은 부분이 반복적이고, 같은 업무이긴 해요(웃음). 되풀이되는 일과도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려 노력해요.
재미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막막하고 불안할 때도 있을 텐데요.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해요.
수연 저는 매일 고민과 걱정이 가득해요. 30분도 얘기할 수 있어요(웃음). 니콜라스가 처음 막걸리를 개발했을 때 유통기한이 있는데 남으면 어떡할 거냐고, 트럭 몰고 다니면서 친구들 집마다 내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잉스터프에서 새로 출시 준비 중인 제품이 과연 시장에 필요한 제품인지, 레이지댄싱서클이 과연 언제까지 사랑받을지도 걱정이에요. 태풍이 오면 신촌문화관에 비는 안 샐지, 코로나19의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진 않을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다행인 점은 수많은 걱정을 들어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니콜라스가 옆에 있다는
거예요.
니콜라스 긍정의 마음 전도사가 되어야 해요(웃음). 우리가 같이 운영하는 브랜드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어요.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좀더 차가운 마음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답을 찾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니 서로를 위로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요. 감사하게도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인 레이지댄싱서클이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서 조금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좋은 흐름을 타고 2배, 3배 더 생산해 낸다면 모두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미래를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많은 부분을 운에 맡기면서 새로운 투자에 대한 결정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나를 설레게 하는 일 한 가지만 있어도 일상이 충만해지는데, 두 분은 일을 놀이처럼 하고 있어서인지 지금의 삶에 만족도가 높아 보여요.
수연 저에게 일이자 놀이는 바느질이에요. 덕업일치의 삶을 살면서 차츰 결과를 얻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해보자 했는데 잘되는 것이 있잖아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몇 년 사이에 많이 느꼈어요. 성실히 노력은 다하되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 거라 마음먹으니 잘되는 게 있으면 너무 감사하고 신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기쁘죠.
니콜라스 삶의 만족도라는 질문의 크기와 무게감이 느껴지네요. 일의 과정 안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고 있어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기획하여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어렵지만 삶을 신나게 해주거든요. 거기에 결과물이 성공적이라면 더욱 신이 나겠지요. 레이지댄싱서클이 나온 이후로 맥주병에 담긴 막걸리들이 생기고 있고 비슷한 라벨 디자인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도 재미있어요. 앞선 사례가 없어서 내가 고민해서 결정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위로와 힘을 얻어요. 덕분에 새롭게 하고 싶은 걸 또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처음이 잘 통했다고 다음도 통할까, 다음은 어떻게 다르게 하지, 라는 불안감도 있지만 즐거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려고 해요.
수연 20년 가까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정해진 일정 안에서 프로젝트를 완수해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는 일을 해왔어요. 분기별 평가를 받는 결과 중심적인 삶을 살았는데,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서 제가 시간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이는 과정을 밟고 내공을 단련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죠. 빠르게 얻은 성취가 좋지만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없잖아요. 그저 내 템포대로 레이어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과정을 거치고 거기서 얻은 결과의 귀함을 알게 되니, 우리가 70-80세가 되어도 어디에서건 의미 있는 과정 안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