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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한 미술관 산책
봄이 무르익는지, 햇볕이 다정하다. 눈에 닿은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훌쩍 떠나버릴지 모를 봄을 찬찬히 느끼고 싶어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느리게 걸으며 시간을 보내기에 꽤나 보람차고 흥미로운 이곳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움직이는 눈과 깊은 호기심을 가진 오늘의 도슨트, 데이비드 호크니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 오크 판화에 유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우리는 먼저, 초상화 앞에 섰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본 적 있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다.
“사람을 그린 그림은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얼굴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우리 안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본능입니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될 것입니다.” 1
서서히 다가가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사랑의 설렘보다 엄숙함과 근엄함이 느껴지는 걸까. 중앙에 있는 볼록 거울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쑥 내밀고 보다 이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호크니가 들뜬 목소리로 그림을 요모조모 뜯어보기 시작한다.
“저는 어떠한 작품보다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높이 평가해왔으며 몇 번이나 진품을 보러 가곤 했습니다. 늘 샹들리에에 매료되었어요. 이것은 밑그림이나 수정 작업이 전혀 없이 그려졌는데, 이렇듯 복잡한 원근법적 형태를 그렇게 그린 것은 놀라운 솜씨입니다.
반 에이크는 구멍 옆에 화판을 거꾸로 걸어놓고 표면에 보이는 형상을 그대로 그렸을 것입니다. 샹들리에가 올려다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정면으로 보인다는 점을 눈여겨보세요. 이것은 거울–렌즈의 효과인데, 이렇게 하려면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수평으로 거울–렌즈를 맞추어야 합니다. 샹들리에는 그의 기량을 보여주기에 아주 좋은 주제였을 것입니다. 화가들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에요.” 2
얀 반 에이크가 거울–렌즈라는 광학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호크니의 가설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연구자로서의 그의 접근이 만족스럽다. 샹들리에를 유심히 보다가 혼자라면 놓치고 말았을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왼쪽 창에서 빛을 머금은 과일, 벗겨진 신발, 창문 밖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열매까지 시선이 옮겨졌다. 각 물건이 놓인 이유와 사연을 심각하게 추측해보다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두 사람의 평온한 얼굴 사이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강아지를 봤기 때문이다.
폴 세잔, 사과들, 1878~79,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은 처음으로 두 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3
이제 내 눈 앞에는 세잔의 사과가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세 번째 사과라 했던가. 비행기 안에서 폴 세잔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보수적인 아버지, 에밀 졸라와의 우정, 비교적 덜 알려진 그의 인물화만을 조명하던 미술관 큐레이터의 말까지, 화가의 여러 시도와 배경을 담담히 들려줬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누구는 죽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가지만 매일 같이 생트 빅투아르산을 오르고 사과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관찰하고, 아내나 지인, 자신의 초상을 계속해서 그렸다는 점이다.
“이 그림을 좀 멀리 떼어놓고 보세요. 멀어지는데도 묘하게 사과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선명해집니다. 세잔의 이미지는 감상자에게서 나오는 것, 감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죠. (중략)
세잔의 혁신은 그림의 대상이 자신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관해 스스로 의혹을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는 데 있어요. 그는 시점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물을 복수의 시점에서 때로는 모순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바로 두 눈을 지닌 인간의 두 시야입니다.” 4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호크니의 전시를 봤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몇몇 작품 속 사물들이 묘한 방식으로 나를 직접 그 장소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 것이다. 이제야 분명해졌다. 호크니의 작품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는 ‘보는 것’에 관한 시도다.
“눈은 항상 움직입니다. 눈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입니다. 보는 방식에 따라 관점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관점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지요.” 5
선명한 사과가 아직 마음에서 식지 않았는데, 호크니를 뒤따르다 보니 어느덧 피카소 그림이다.
“나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뉴욕에서 그것을 보고 나는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것은 놀라운 픽쳐입니다. 이것은 형상과 배경이 완전히 얽혀있는 것입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작업실에만 두고 거의 10년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 이 그림을 공개했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저 끔찍하다고만 생각했어요.” 6
그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호크니 전시에서 본 ‘나와 내 우상’이 떠올랐다. 벌거벗은 채로 피카소 앞에 겸손한 자세로앉아 있는 모습은 피카소를 향한 경외심이 전해졌다. 이후 피카소의 ‘나이 든 기타리스트’를 오마주한 그림을 자신의 판화 시리즈 ‘푸른 기타’에 추가하기도 했다. 피카소의 방식과 그림은 그가 다양한 각도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데 큰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다.
“나도 피카소처럼 네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작품들에 모두 부제를 붙이고 각기 다른 이집트 양식, 환영적 양식, 평면적 양식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작품들을 보았을 때 근본적으로 태도가 동일하며 거기서 내 자신을 얼마나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7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907,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이제 호크니는 반 고흐의 초기 드로잉으로 나를 이끌었다. 고흐의 드로잉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요동친다. 그 사람의 피부결과 입고 있는 옷의 질감, 들고 있는 사물의 부피까지 생생하게 와 닿아서 마치 그 사람을 잘 알게 된 거 같은 착각이 든다. 고흐의 드로잉을 보는 호크니의 표정 역시 아주 들떠 보인다. 그는 고흐가 편지에 그린 작은 스케치 앞으로 가 안경을 고쳐 쓴다.
“그것들은 당시 그가 그리고 있던 큰 그림들을 응축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편지를 보낸 테오와 다른 사람들이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이라면 아이폰으로 그 스케치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고,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8
호크니가 반 고흐에 깊은 애정을 쏟는 이유는 존경 외에 유대감 같은 게 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 고흐가 지방의 소도시인 아를에서 작업을 했듯이 호크니 역시 외딴 요크셔의 풍경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반 고흐가 그와 같이 고립되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렇게 멀리 그리고 그렇게 빨리 나아갈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9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듯 담담한 어투다. 이어 호크니는 강력한 공감을 형성하는 데는 렘브란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절로 끄덕이고 만다. 머릿속에 있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고흐의 그림 옆에 같이 포개졌다.
“정말로 뛰어난 소묘화가에게는 공식이 없습니다. 각각의 이미지가 새롭습니다. 렘브란트와 프란시스코 고야, 피카소, 반 고흐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작품에서는 같은 얼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작품에는 항상 개개인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10
빈센트 반 고흐,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6, 페이지 5,
종이에 펜,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
빈센트 반 고흐,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7, 페이지 2,
종이에 펜,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2007, 50개의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 미술관
호크니가 안내하는 마지막 그림은 그가 그린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열심히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정원을 바라보는 모네다.
“모네는 나는 이것을 보겠다고 결심했을 겁니다. 물에 반사되는 그림을 실제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말이지요. 그 후 10~15분동안 기억력이 아주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이른 아침 모네가 한 일은 수련이 핀 연못으로 걸어 내려가 담배 몇 대를 피우며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돌아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11
호크니 역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재발견한다. 와터 근처의 거대한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니 숲 앞에 서 있는 듯 나무 내음이 나고, 끝에서 끝으로 걸으니 마치 숲길을 걷고 있는 착각도 든다. 순간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호크니가 고개를 젓는다.
“이것은 그저 환영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신을 감싸 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작품 앞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회화입니다. 이렇게 큰 회화는 많지 않습니다.” 12
호크니는 자연에서 건져낸 진정한 회화의 힘이 나에게 와 닿기를 바랐다. 거대한 그림은 큰 숨을 몰아쉬듯 긴 호흡이 필요했다. 허공을 향해 가지를 뻗은 나무들, 아름다운 색감의 근원지, 나뭇잎이 돋아나기 전 민낯의 나뭇가지 사이에 보이는 여백까지. 풍경 속에서 황홀감을 느끼는 동안 오늘의 도슨트는 이렇게 말하며 조금씩 멀어져 갔다.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림이 없다면, 누가 무엇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봅니다.” 13
* 해당 기사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창작 세계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저서를 참고하여 가상 인터뷰로 작성했습니다.
에디터 김현지
일러스트레이터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