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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들여다보는 미술사
빈 센트 반 고흐, Montmartre Path with Sunflower, 1887
요즘 어디를 가나 ‘인문학’이 인기다. 미술 관련 책을 쓰고 미술교육과 미술사를 전공한 나에게도 인문학 강연 제안이 자주 들어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쩌다 사회 전체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인문학 관련 클래스를 열고 있는 것일까? 문득 이 상황에 대해 사건의 시작점으로 올라가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교육학 용어사전》¹에 따르면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의 의미를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自然科學에 대립되는 영역으로,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반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해한 인문학은 한 학문이 사람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내 강의를 듣는 이 중 누군가는 미술 작품과 대면하며 정신적, 정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문장 뒤에 ‘단, 인문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내가 운영하는 ‘소통하는 그림연구소’에서는 미술과 인문학을 주제로 많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꽃으로 들여다보는 미술사’는 꽃과 미술사를 결합한 수업이다.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꽃을 감상한 후, 꽃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강의를 기획했다.
¹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2011, 《교육학 용어사전》, 하우동설.
올여름에는 해바라기 꽃병을 만들며 해바라기를 그린 수많은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콘텐츠로 삼았다. 흔히 해바라기를 생각하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떠올린다. 고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꽃병의 형태가 아닌 마당에 핀 해바라기를 그리기도 했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주제로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 시기는 1888년 프랑스 파리에서 남부 아를로 거처를 옮긴 후지만, 처음 그린 해바라기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본 것이었다. 그리고 고흐는 훗날 아를에서 폴 고갱과 함께 작업하기를 기대하면서 고갱을 위해 집을 빌렸다. 집을 노란색 페인트로 칠하고, 해바라기 꽃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까지 했다.
빈센트 반 고흐,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 91x72cm, 1888~89, 캔버스에 유채
“거칠거나 깨진 노란색과 오렌지 납을 얇게 펴 바른 화폭 위에 가장 옅은 베로나 블루부터 진한 로얄 블루까지 이 파란색이 어우러지게 그릴 거야!”
–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1888.8.21
나는 고흐만큼 해바라기를 열심히 그린 화가를 본 적이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해바라기가 다소 시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비밀은 고흐가 쓰던 크로뮴 옐로Chrome yellow 물감에 있다. 이 물감은 크롬산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노랑 염료의 색으로 순 노랑에 가까우며 유황과 접촉하게 되면 검정으로 변한다. 납 성분이 있어 시간이 흐르면 색이 변색된다. 상상해보자. 고흐가 그렸을 당시 이 해바라기는 더 샛노랬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갈색 곰처럼 갈색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중에서는 복슬복슬 곰돌이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자체가 ‘테디 베어’인 것도 있다.
고흐뿐만 아니라 고흐의 동료인 폴 고갱Paul Gauguin도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다. 폴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는 신비롭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해바라기 꽃에 대한 자기소개서 같은 그림이라면, 고갱의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가 꾸는 꿈 같다. 실제 그림 속 여인도 해바라기 앞에서 꿈을 꾸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고갱이라는 화가가 상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그림을 자주 그린데다,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을 좋아했고,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인 페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나는 고갱의 그림을 볼 때면 늘 그림에서 꿈의 맛을 느낀다. 그리고 흙의 맛도 함께 느낀다. 아주 오래전부터 원시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는 흙 냄새 말이다. 해바라기를 그린 이유를 나는 고갱에게 묻지 못했지만 고갱의 고향 같은 나라인 페루의 국화가 해바라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가 좀 다르게 보인다. 감상은 이럴 때 개인적으로 더 깊어진다.
폴 고갱, Redheaded woman and sunflowers, 1890
구스타브 클림트, 키스, 1.8×1.8m, 1907~08, 벨베데레 궁전
구스타브 클림트, 해바라기, 110x110cm, 1906~07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가 그린 <해바라기>는 어떤가? 이 해바라기 그림만 보고 있으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가 그린 <키스>라는 그림과 비교해보자. 구도와 구성이 묘하게 닮았다. 클림트가 그린 해바라기는 단순히 정물이나 풍경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의 초상화 같다. 목이 긴 여자가 들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해바라기의 꽃말은 무엇일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해바라기의 꽃말은 ‘기다림’과 ‘숭배’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를 사랑한 물의 요정 클리티아는 헬리오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헬리오스가 사랑하는 페르시아의 공주 레우코테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리고, 그 소문을 들은 페르시아의 왕 오르카모스는 자신의 딸 레우코테아를 산 채로 매장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벌을 준다. 레우코테아가 죽자, 클리티아는 헬리오스가 이제 자신을 바라봐줄 거라고 기대하지만, 헬리오스는 사랑하는 여자를 죽게 한 원인인 클리티아를 더 원망할 뿐이다. 어리석은 클리티아는 헬리오스를 매일 바라보지만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고, 9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하늘의 헬리오스만 바라보다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려 해바라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헬리오스가 이끄는 태양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클리티아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해를 쫓는 것이다. 긴 목을 빼고….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그래서 해바라기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클리티아로 표현했다. 여기까지가 신화적 이야기다. 플로리스트를 초청한 이 강의에서 우리는 해바라기와 관련된 미술 작품을 오랫동안 감상하고, 해바라기를 직접 손질하며 플라워 레슨을 받았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Clytie Grieving, 15.6×14.8cm, 1636, Oil on marouflaged panel
이런 인문학적 수업은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많은 것을 탐구해야 하며, 나 자신에게도 계속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 그 과정 끝에 내린 나만의 견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강의를 듣는 이들이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며 소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문학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일상 속 아주 작은 지식도 앎이 되면 깊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 생기며, 내가 늘 보던 것도 새롭게 보게 된다. 지식만 전달하는 강의보다는 내가 찾고 느낀 지식과 지식의 연결고리에서 오는 감동을 서로 공유한다면, 우리 내면의 지름은 둘레가 더 커질 것이다. 나에게 해바라기는 더 이상 그냥 해바라기가 아니라, 고흐의, 고갱의, 클림트의 해바라기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