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상을 단단하게 이어나가는 힘

Love And Work, Work And Love

정승환 작가는 카페 주인이면서 동시에 카페 바로 옆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을 했고,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여름부터 2018년 가을까지 카페와 주유소에서 일을 하며 쓴 짧은 일기를 모아 《카페일기》라는 책을 독립 출판했다. 《카페일기》는 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었다.

‘카페 요츠바’님

“제주도의 어느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 ‘요츠바’를 운영하면서 썼던 일기들을 모았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일기를 쓰는 나, 아내인 쏭, 따님인 나무씨, 세 사람 입니다.”

– 《카페일기》, 서문 중에서

2015. 8. 27. 

카페를 인수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여름이 끝나가고 손님은 뜸하다. 유리창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안쪽을 쳐다본다. 들어오지는 않고 보기만 한다. 우리도 본다. 유리창 너머 세상을. 창이 얇은 줄 알았는데 참 두껍다.

 

2015. 8. 28. 

새로운 메뉴 출시를 위해 이것저것 장비도 재료도 늘어만 간다. 나가는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적다. 계절이 바뀌어간다. 버텨야 한다. 버텨야 산다.

 

2015. 9. 6. 

적어도 너와 나는 서로를 응원할 수 있겠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못마땅해 하더라도. 너와 나는 내일도 함께 마주 앉아 웃으며 커피 한 잔은 할 수 있겠지.

– 《카페일기》, 9쪽.

몇 번 ‘요츠바’에 손님으로 갔었다. 팥빙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와 나는 카페라는 공간 안에서 사장과 손님,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꽤 오래된 SNS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카페를 운영하며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SNS에 올렸다. 거친 주장이나 예민한 이야기, 뜬구름 잡는 글이 많은 곳에서 포장하지 않은 솔직한 글은 언제나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가 많은 SNS 친구 중에서도 그는 특히 응원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아, 직접 응원한 적은 거의 없다. 그도 나도 이른바 ‘인싸’와는 거리가 먼 내향인이고, 고단한 일상에 말을 얹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우며 남의 일기장에 댓글을 남기는 건 조금 쑥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가끔 서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대부분 고양이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함이었다. 생각해 보니, 대화의 대부분이 ‘카페 요츠바’ 님(SNS 아이디)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요츠바의 고양이 삼식이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삼식이 화이팅!” “삼식이 얼른 낫자.” “아유 삼식이 예뻐라.” 삼식이를 응원하며 요츠바 가족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 응원이 가족들 모두를 향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삼식이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인연으로 가족이 되었는지는 물론 요츠바에서 그간 밥을 먹은 고양이들의 계보까지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카페 요츠바 님 역시 몇 년 전 내 둘째 고양이와 셋째 고양이가 연달아 떠난 이야기부터 아끼던 강아지를 황망하게 잃고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 마당의 고양이를 구조해 입양 보낸 이야기까지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그가 매일매일 쓴 일기를 직접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SNS에 올렸다. 마치 오래 기다렸던 일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작가’ 정승환

그가 쓴 책 《카페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정승환 작가를 만나러 가던 길, 미리 준비한 질문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제주에는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카페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같은 아주 평범한 질문들을 되새기다, 오늘의 만남과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카페일기》는 현재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구구절절한 과거의 사연도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도 없는 현재의 글이라는 점이었다. 미리 준비한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2015. 9. 11. 

쏭은 종일 빵을 만들었고 난 팥을 삶았다. 저녁엔 쏭이 나무씨 저녁을 먹이고 씻기는 동안 난 손님을 받았고 자정쯤에 밥을 먹었다. 토요일 장터에 가져갈 재료를 준비했고 새벽까지 또 앙금을 만들었다. 하루가 참 길다. 내일은 또 얼마나 길까?

 

2015. 9. 16. 

오미자를 살 시기가 왔다. 일년 치 담글 오미자를 몇 킬로그램 사야하나 고민중이다. 우리는 이렇게 일년, 이년을 바라보며 카페를 생각하는데 우리를 걱정하는 주변사람들은 당장의 결과를 보고 조바심을 낸다. 그 조바심에 나도 조바심이 난다.

 

2015. 9. 19. 

한번 왔던 손님들이 다시 카페를 찾아오는 횟수가 조금씩 늘고있다. 눈에 익은 손님이 다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아,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건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얻는다.

 

2015. 9. 23. 

청귤청을 담글 때는 내가 채칼에 손가락을 베었고, 이번에 대추차를 만들 때는 쏭이 대추씨에 손가락을 찔렸다. 둘 다 피를 봤으니 맛이 좋을 것이다. 청귤청은 이미 반응이 좋다.

 

2015. 9. 25. 

카페를 한다는 건 매일매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구나. 살면서 이토록 많이 기다려 본적이 있었나? 오늘도 난 당신들을 기다린다.

– 《카페일기》, 10-11쪽.

그는 오늘 일어난 일을 오늘 썼다. 짧은 일기를 읽으며 우리는 하나씩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작가는 ‘쏭’과 ‘나무씨’와 함께 살고 있구나. 공항 근처 동네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는 팥빙수, 메론빙수, 그리고 청귤차, 대추차, 단팥빵, 팥죽을 판매하는구나. 그리고 이 일기는 카페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썼겠구나.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책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무대가 된 카페 요츠바는 아쉽게도 올해 봄이 오기 전 문을 닫았다. 하지만 공간은 아직 그대로 있어, 우리는 요츠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해 조금 멀찍이 주차를 하고 한적한 마을 골목길을 돌아 도착한 요츠바는 마치 지금도 순항 중인 여객선처럼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 요츠바를 등대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순간 나에게 요츠바는 여객선 같았다. 얼른 배에 올라탔다. 배에는 정승환 작가와 그의 아내 쏭이 있었다.

2017. 8. 14. 

밤에 대추차를 끓였다. 망에 물컹해진 대추를 담아 물을 조금씩 부으며 손으로 으깨다 보면 씨와 껍질만 남는다. 씨는 뽀족하고 날카로워 할 때마다 몇 번을 찔렸었다. 그리고 다시 뭉근하게 끓이다 보면 익숙한 차 냄새가 난다. 가을이 오는 기분이 들었다.새벽엔 비가 많이 왔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부었고 잠결에 카페는 괜찮을지 걱정했다. 나무씨가 폭우소리에 깨서 방으로 왔다. 다시 빗소리가 잠잠해지자 호우경보 문자가 왔다.

 

2017. 8. 20.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보여 카페 뒤쪽에 사료와 물을 놔두었고 잠시 후에 확인해보니 반 이상을 먹었다. 고양이는 주차장에 누워 쉬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도망갔다.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 왔는데 비가 쏟아진다. 그 전에 마저 다 먹었기를.

 

2017. 9. 2. 

길고양이에게 본격적으로 밥을 주기 시작했다. 이름은 얼큰이로 정했다. 얼굴이 정말 컸다.

 

2017. 9. 14. 

누가 얼큰이 밥그릇에 담배꽁초를 버렸다. 나쁜 인간들. 이웃이 안쓰는 밥그릇을 기증해줬다. 맘에 들어 하는 것 같다. 태풍이 오고 있다. 걱정이다.

– 《카페일기》, 94-95쪽.

쏭과 나무씨

작년 초 《카페일기》가 출간되자마자 주문해서 읽고 SNS에 이렇게 썼다. “어떤 마음인지 다 알겠는데. 내가 그렇고 우리 다 그렇듯 투덜거리지 않고, 그 대신 꾹꾹 눌러 쓴 다음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늘을 사는 사람. 카페일기라는 제목처럼 더없이 담백하지만 나는 한 장 한 장 눈물을 삼키며 읽어내고 있다. 한 해의 시작에 읽어 기쁘다. 고맙습니다.” 결국 이 책은 일터가 배경인 일에 대한 이야기이고, 관광지인 제주도에 있는 카페와 주유소라는 공간에서 일을 하며 생기는 수많은 일과 스트레스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나라면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늘어놓으며 투덜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는 대신, 다만 “그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썼다.

그에게 이 얘기를 하자 그는 “‘오늘은 이러저러해 손님과 싸웠다. 비참했다.’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과장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금 느끼는 감정을 과장하기 위해 SNS에 글을 쓴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매일이 고단한 때는 더욱 그렇다. 그는 이 일기를 그 시절을 견디는 느낌으로 썼다고 말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를 몇 줄로 줄여 적으며 하루씩 보내는 동안 그의 삶도, 작가와 쏭님, 나무씨의 관계도 단단해졌을 것이다.

정승환 작가와 쏭 님과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하교한 나무씨가 자연스럽게 카페로 들어왔다.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퍽 다정했다. 가족이라기보다 친구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셋이 함께 있으니 공간이 더욱 따뜻해졌다.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평범한 나는 결국 못 참고 질문했다. “왜 카페를 하게 되신 거예요?” 그들은 대답했다.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카페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였나 보다. 《카페일기》가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아내 ‘쏭’과 딸 ‘나무씨’에게 보내는 고백으로 읽히기도 했던 게.

일과 사랑,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어디서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담담하게 쓰여진 《카페일기》를 읽다 보면 믿게 된다. 일과 사랑에 대한 믿음. 귀한 일이다.

《카페일기》 판매 서점

🎈서울: 스토리지북앤필름, 헬로인디북스, 이후북스, 프루스트의서재, 순정책방, 부비프, 책방비엥, 지구불시착

🎈일산: 너의작업실

🎈춘천: 책방마실

🎈전주: 책방토닥토닥

🎈순천: 책방심다

🎈포항: 달팽이책방

🎈부산: 샵메이커즈

🎈제주: 무명서점, 미래책방, 라바북스, 언제라도북스, 돈키호테북스, 책방소리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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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