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GROWN-UPS IN DISNEYLAND

나이 든 아이들만 있었다

LITTLE
GROWN-UPS
IN DISNEYLAND

나이 든 아이들만 있었다

머리카락이 두꺼워지고 옷 소매가 짧아지면서 어른이 된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고 카드값과 월세를 내는 날짜를 세면서 어른이 된다. 간밤에 어떤 일이 있든 출근을 해내고 조금은 의무적으로 가족을 챙기면서 어른이 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기에 어른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에 잊고 지낸 어느 빈 구석을 발견하면 하릴없이 어린 아이가 되고 만다. 마법 양탄자, 멧돼지와 미어캣과 친구가 된 아기 사자, 유리구두, 풍등을 띄우는 일, 얼음으로 만든 성. 아주 작은 빈틈이 있어 어른은 언제나 아이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WHEN YOU WISH
UPON A STAR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디즈니의 공주님들과 함께 자랐고, 수많은 영화를 통해 진정한 우정과 인내와 정의와 말의 무거움과 자연의 소중함 그리고 사랑을 배웠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랜 친구들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므로, 나는 LA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첫 번째 디즈니랜드는 1955년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 애너하임Anneheim에 건립되었다.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월트 디즈니는 회전목마를 타며 즐거워하는 딸들 모습 뒤로 아이들을 기다리며 따분해 하는 어른들을 보았다.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고 행복해하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디즈니랜드의 시초 모델이다.

긴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해온 디즈니랜드는 아이들의 환상을 이루고 어른들의 동심을 되찾는 것을 꾸준히 고수해왔다. 디즈니랜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들만의 세계로 진입하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Here you leave today and enter the world of yesterday, tomorrow, and fantasy(이곳에 오늘을 남겨두고, 어제와 내일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공주가 등장하면 디즈니랜드에서 새 공주를 환영하는 대관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란, 실제로 어느 왕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것뿐이다. 유치하지 않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해도 유치해지지 않는다. 

디즈니를 찾는 방문객의 70퍼센트는 성인이다. 어른들을 나이가 많은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곳의 힘은 아마 아이들의 마음, 즉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력과 전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여느 이야기들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순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들이 순수한 상상으로 여겨지도록,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철부지 어린 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말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디즈니랜드에서 겪은 각자의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스치듯 벌어져 작고 사소해도, 나의 동심을 지켜주려 하던 이들과 장소의 이야기이다.

A WHOLE NEW
WORLD

저 멀리서 미키가 보이는 거예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하거든요. 마음은 방방 뛰고 흥분되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구보다 제가 제일 답답했을 거예요. 말을 더듬으며 “I came here to see you(너 만나러 여기 왔어).”라고 했죠. 그러니까 미키가 제 손을 잡더니 말을 하더라고요. “I’ve been waiting only for you to come for a long time. I miss you a lot(내내 너만 기다렸어.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야).”라고 말이에요.
주소희(32)

저기서 천방지축 귀여운 팅커벨이 지나가더라고요. 많은 분이 알 테지만 디즈니랜드의 명물은 사실 피터 팬이잖아요. 그래서 심드렁하게 “Where is Peter Pan(피터 팬은 어딨어)?”하고 물었죠. 그러니까 팅커벨이 엉덩이를 마구 흔드는 시늉을 하면서 깜찍하게 말하더라고요. “I don’t know. He shook me to get magical flying powder. He might be with Indians now. Won’t you leave me alone, right(몰라. 아까 나 흔들어서 마법의 가루 털어가더니 인디언들이랑 같이 있겠지, 뭐. 넌 나랑 같이 있을 거지)?”
김민아(22)

사람들이 대로변에 앉아있길래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옆에 한 자리 차지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퍼레이드 시작 직전이었던 거예요. 안전을 위해서 직원들이 규칙사항들을 말해주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한 방문객이 퍼레이드가 정확하게 몇 시에 시작하느냐 물었죠. 직원이 말했어요. “Yes, you can call it a parade, but actually it isn’t. The characters live here, and they just pass by where they live(네, 이걸 퍼레이드라고 부를 순 있어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캐릭터들은 이곳에서 살고 있고, 그저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뿐이랍니다).”
이자연(28)

디즈니랜드의 캐스트 멤버(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직원을 일컫는 말)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철저하게 소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그 캐릭터의 배경, 친구들과의 관계, 성격 등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하더라고요. 제가 도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갔었을 때,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를 가져갔었어요. <미녀와 야수>의 벨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우와, 세상에 이런 게 다 있어? 나도 아빠한테 만들어달라고 해야지!”하는 거예요. 벨의 아버지는 발명가라는 거 아시죠?
최현진(26)

 

어떤 무리가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들을 전하더라고요. ‘생일을 디즈니랜드에서 맞이하는구나’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 생일 자의 가슴팍에는 ‘Happy Birthday’라고 쓰인 배지가 꽂혀 있었죠. 그녀가 지나가는 모든 길 위의 사람들이며 직원들이 그녀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요. 부럽지 않았냐고요? 저는 첫 방문을 기념하는 ‘First Visit’ 배지를 선물 받았어요. 저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디즈니 세계로의 첫 방문을 축하해주었죠.
이보나(28)

캐스트 멤버들은 활동하는 시간대가 전부 달라요. 그래서 꼭 보고 싶었던 공주님이나 캐릭터들을 만나고 올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들에게 캐릭터가 어딨느냐 물으면 절대 ‘없다’거나 혹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이거나 현실적인 답변을 하지 않아요. 제가 꼭 만나고 싶었던 공주를 찾자 다른 공주는 저에게 “She’s gone on a pic￾nic in the back yard(그 애는 지금 뒷마당으로 소풍 갔어).”라고 했죠.
최진희(23)

모든 캐스트 멤버들에겐 사인이 있어요. 아이들은 사인북을 들고 다니며 내내 사인을 받으러 다니기도 해요. 저는 미키의 집에 놀러 가서 미키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려고 했어요. 노트를 꺼내 열었더니 그 안에 미니가 이미 해 주었던 사인이 보였죠. 그것을 보자마자 미키가 사인 위에 뽀뽀를 하더라고요. 달달한 커플이죠?
이수빈(30)

토이 스토리 캐릭터들이 보일 때, “Andy’s coming(앤디가 온다)!”이라고 외치면 모든 장난감 캐릭터들이 바닥에 드러누워요. 그런데 온라인 영상으로 이 장면이 널리 퍼지고 너무 많은 사람이 이를 외치니 캐스트 멤버들이 활동하기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건 이제 하지 않는대요. 대신 누군가 “앤디가 온다”라고 외치면 “Andy is in College(앤디 이제 대학 갔어).”라고 하더라고요. 재치 있는 응수죠?
김주영(27)

단순히 디즈니랜드의 직원들, 그곳의 환경, 디테일을 살린 건물 등이 우리의 동심을 살려주는 것은 아니에요. 디즈니랜드에 모인 사람들도 결국 이곳에 환상이 있고 공주님들을 만나고 싶고, 사람들의 환영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이들인 거잖아요. 같은 바람과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인 거예요. 이것 자체가 동심이지 않겠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오롯이 모이기 어찌나 힘든지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해요.
강소영(28)

디즈니랜드에 아이들이 공주님으로 변할 수 있는 미용실이 있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원하는 공주님으로 대변신할 수 있죠. 그 미용실의 이름은, ‘비비디바비디부띠끄!’
유희진(25)

디즈니랜드는 맨 마지막에 불꽃놀이로 마무리해요. 디즈니랜드에 찾아오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 불꽃놀이인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그중에서 ‘내가 진짜로 디즈니랜드에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냐면, 디즈니 영화가 시작할 때 성 뒤로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장면이 있죠? 그 모습 그대로, 성 뒤로 아치형의 불꽃이 지나가면서 디즈니 오프닝 노래가 나올 때예요. 영화 속의 디즈니 세상, 허구는 아니죠?
이두리(28)

그거 알아요? <101마리의 달마시안> 할머니를 만나서 말을 걸면 강아지 잡느라 바쁘다는 말밖에 안 해요.
김민희(25)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디즈니랜드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공주님들을 반가워 하면서 이유 모르게 계속해서 울컥했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찔끔찔끔 나왔다. 생각해보면 이런 부류의 경험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런던 극장에서 ‘라이온 킹’ 뮤지컬을 보며 이국 사람들과 함께 ‘하쿠나 마타타’ 떼창을 불렀을 때, 드라마 <응답하라1994>에서 ‘너에게’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한 후로 원곡자인 서태지 씨가 제작진에게 남긴 손편지를 봤을 때,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마술봉으로 허공을 가르며 행복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러니까 이건, 동시대를 함께 한 사람만이 아는 향수와 그를 완벽하게 충족해주는 감정의 충돌과 비슷하다. 그것(하쿠나 마타타든, 서태지의 노래든, 해리포터든 그리고 디즈니든)과 함께 자라 온 세대가 아울러 한 자리에 모여들었고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이다.

공주들과 나는 오랜 친구라고 했다. 그래 봤자 영화 속에서 공주들의 사정과 문제 발달, 해결책을 찾는 과정, 행복한 엔딩신만 관망해온 처지면서 ‘친구’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웃겨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포인트다. 내가 그녀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녀의 상황 속에서 끝내 내 이야기로 공감한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디즈니의 세계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이역만리 먼 곳으로부터 떠나왔다는 것. 이것 외에 끈끈한 친구 사이를 증명할 것이 과연 더 필요할까.

아이의 세계인 것처럼 보였지만 가장 어른다운 세계였던 디즈니랜드는 ‘어른다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 하나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것. 그러니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자기 정죄와 검열에 빠지던 시간은 그대로 공중으로 휘발되어 버린다. 그곳이 디즈니랜드다.

HAKUNA MATATA
디즈니랜드 방문을 위한 여섯 가지 조언

01 디즈니랜드에는 셀카봉을 반입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은 모두 수거된다.

02 입장 티켓을 출력해오라는 표기가 있지만, ‘Disney Land’ 앱을 다운 받으면 미리 구매한 티켓을 휴대폰에 저장해 가져갈 수 있다.

03 안내문에 특정 퍼레이드나 이벤트가 몇 시에 진행될 예정인지 확인할 수 있으므로 그에 맞추어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좋다.

04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는 ‘패스트 패스Fast Pass’권을 이용하면 된다. 이 예약권을 이용하면 주어진 시간 내에 입장 시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다.

05 혼자 온 사람들의 빠른 입장을 위해 ‘싱글라이더Single Rider’ 줄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입장할 수 있다.

06 혼자 가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놀이공원에 혼자 가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린다면 정답은 무조건 ‘가도 된다’. 디즈니랜드에 혼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혼자여도 아무런 문제 없이 공주님들과 캐릭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들은 늘 따뜻하고 다정하므로 ‘혼자’라는 것은 결코 문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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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