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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하지만 기억해. 언제든 밤은 준비되어 있고, 그 밤에 우리는 어둠이 깎이는 소리를 함께 듣고 있다고.
그의 이야기
공무원 생활을 했던 아버지는 문서를 늘 소중히 다루었고 글자를 쓸 때는 매번 정자로 쓰셨다. 그러한 태도는 자식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달력으로 교과서 표지를 꼼꼼히 싸주거나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필통 속에 넣어주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가 긴 달력 한 장을 찢어 날짜가 적힌 면의 뒤를 펼쳐놓고 문방구용 접는 칼로 연필을 신중하게 오래오래 깎아주던 모습을 기억한다. 신작로라고 불리던 시멘트길을 자전거로 퇴근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린 물로 손과 발과 얼굴을 대충 씻고 어머니가 내놓은 붉은 국물의 칼국수를 한 그릇 따듯하게 비우고 나서쯤이었을 것이다.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찢어진 달력의 흰 뒷면 위에 칼과 연필 서너 자루를 올려놓고 자리한 아버지가 마침내 연필 한 자루를 들어 칼로 그것의 외피를 밀어내 검은 심을 빼내는 모습을 어린 나는 조금은 심각하게 바라보며 검은 연필심이 어느 순간 똑 하고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를 했던 것도 같다. 특히나 아버지가 칼로 연필심을 다듬을 때는 칼날과 연필심이 마찰하며 부딪히는 소리에 온 감각을 기울였으리라. 나는 그것을 마치 저녁 너머의 어둠이 깎여나가는 소리처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칼로 깎은 연필은 연필심이 좀 기다랗고 끝은 뭉뚝한 편이었다. 나중에 연필깎이라는 걸 처음 접하면서 끝이 날렵하고 뾰족하게 된 연필을 보았을 때, 나는 왠지 그것이 진짜 연필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필심은 기다라면서 그 끝은 꼭 뭉툭해야만 할 것 같았고, 한편으로 그것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했다.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하면서 때론 그 말을 바른 사람이란 뜻으로 또 때로는 답답한 사람으로 평가하고는 했는데, 바른 것이 무엇이고 또 답답한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뭉툭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느낌이 나던 연필심을 떠올리곤 했다. 그 연필심은 글씨를 쓰는 동안에는 부러지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간혹 필통 속에서 돌연 연필과 완전 분리된 채, 소위 심이 빠진 모양으로 나타나 나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슬픈 것이 / 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가정> 중에서
영화 <벌새>(2018)를 봤다. 물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우들의 면면, 그들의 빛나는 연기력이었으나, 한편으로 내게 강력하게 각인된 것은 다른 특별한 장면들에 있었다. 은희가 친구와 필담을 주고받는 장면, 영지가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적는 장면, 은희가 영지에게 편지를 적는 장면 등. 노트의 여백에, 백지에, 칠판에. 그 위를 쓱싹거리며 움직이던 연필의 흑심, 유성펜의 작은 펜촉, 스칠 뿐만 아니라 두드리는 듯하며 움직이는 분필. 특히 은희가 영지에게 두 번 편지를 쓸 때마다 마치 카메라가 공들여 찍은 듯,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그 펜의 움직임은 두드러지게 마침표를 탁 하고 찍는데, 그때 펜촉이 종이와 탁, 만날 때 우리는 새삼 마침표 역시 하나의 독립된 글자이자 의미를 지닌 단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장면들에서 어떤 ‘실감’을 감각하는 데에는 나의 실제 경험이 한몫 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와 노트의 여백에 필담을 나누고, 수시로 쪽지와 편지를 주고받고, 그러고도 모자라 교환일기를 쓰면서 나는 친구를 만났다. 돌이켜보니 그 모든 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우리의 열정이었고, 그 열정에 대한 확인이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펼치고 움켜쥐고 접었던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우정과 애정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 시절,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던 큰 문구점을 기억한다. 바깥에 진열되어 있던 아이돌 사진엽서와 포스터 등에 우리는 자주 혹했으나, 그보다 나는 문구점에서 나던 특유의 냄새를 좋아했다. 그건 노트나 색지 같은 종이류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 같기도 하고, 색색의 잉크와 물감 같은 것이 뒤섞여 내는 냄새 같기도 했지만, 내게는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문구점의 냄새’였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놓여 있어야만 날 수 있는 냄새. 그것은 십대 특유의 열병을 앓던 내게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새것들의 냄새’이기도 했다. 예쁜 편지지와 노트, 미묘하게 다른 색을 내는 유성펜들은 가지고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물건들이었고, 그랬기에 그것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내게 결핍감을 안겨주는 것들의 냄새. 그렇기에 맡을수록 좋고 또 싫은 냄새. 우정과 애정을 표현하고 차지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의 냄새. 그렇기에 가지고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의 냄새.
한 시절이 종이와 펜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그 각각의 질감과 그들이 접촉할 때 내는 소리와 그 모든 것들이 뭉뚱그려서 만들어내는 냄새로 기억된다는 것은, 거듭 생각해볼 수록 이상하고 아름답다. 어쩌면 그것은 당시의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집약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아무것도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여겼던 그때, 하늘과 초록, 보라와 주황을 기분에 따라 골라 쓰면서, 내가 가진 펜과 종이가 다 마르고 닳도록 친구에게 시시콜콜 아무 것도 아닌 말들을 적어 보내면서, 그때의 나는 숨을 쉬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맞은편의 본관 건물에 무심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청소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분필 가루가 두껍게 압착된 칠판지우개를 들고 나와 터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흰 가루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허공을 덮었다. 학교 복도에서 저런 걸 입에 물고 벌을 받던 게 오래전의 일만 같았다.
그렇다고 멀리 떠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
– 은희경, 《빛의 과거》 중에서
제법 길게 인용한 이 소설에서 ‘나’는 1977년의 대학 신입생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래서 분필이나 칠판지우개 같은 구시대 유물 같은 소재가 문득문득 등장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요즘 대학 신입생의 것처럼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반드시 대학 신입생이 아니더라도 한때의 우리는 ‘그 궤도’를 통과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단락이 묘사하는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겠지만 또한 ‘나’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을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허공을” 뒤덮은 “흰 가루” 때문에 직시하게 되었음을 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칠판 한 가득 어떤 중요한 말들로 적혔을 분필 가루는 이제와 시야를 가리는 한낱 먼지처럼 날릴 뿐이지만, 또한 그 흩어짐으로 인해서 누군가에게는 언어화할 수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것이다.
문구文具는 칠판 위를 두드리며 지나가도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한 자루 분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남긴 자국을 모두 지운 뒤에 압착되어 쉽게 털리지 않는 가루의 형상과 운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저 소설 속 ‘나’는 말하지 않고도 말해준다. 청소 아줌마가 무심히 털어냈을 칠판지우개의 분필 가루에서 ‘나’는 쉽게 읽어낼 수 없던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비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어둠이라고 여겨지는 시간들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펜과 종이, 칠판과 분필, 뭐든 적고 지우고 그 지운 흔적을 다시 털어낼 수 있는 무엇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문구文具. 그것은 우리 앞에 놓인 암흑처럼 막막한 시간을 밝혀줄 문文을 통해 순식간에 새로운 문門을 열어 보여줄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문구점의 냄새를 맡았을 때, 너와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 그렇게 우리가 언젠가 한 번쯤 겪어봤을 그때처럼 말이다.
글 김나영, 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