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of the Brands in Motherhood

매일 쓰는 건 아름다워야 해 : 구름바이에이치

하연지 이사는 일상의 물건이 가진 힘을 믿는다. 쓰임새와 기능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워야 곁에 두고 귀하게 여기는 법. 주변의 것들이 예뻐야 비로소 내 일상을 존중하게 된다. 그 믿음으로 구름바이에이치는 옷을 만든다.

INTERVIEW

하연지 | 구름바이에이치 이사

‘구름바이에이치’의 이름은 첫째 아이의 애칭인 구름에서 따온 거죠? 

맞아요. 저희 부부는 아이 이름을 구름으로 짓고 싶었는데 첫아이 이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짓고 싶다고 하셔서 호적에는 지안이라고 올리고 집에서는 구름이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저희 브랜드의 시작이 구름이 낳고 제가 아이를 위해 만든 것들을 판매하면서부터거든요. H는 제 이니셜이고요. 처음에는 거래처에서 브랜드 이름을 낯설어했어요. 택배 송장에 구름바위라고 쓰여 있기도 했어요(웃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레드힐’이라는 쇼핑몰을 만들었어요. 대학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제 성격이 회사생활에 안 맞을 거 같더라고요. 사업계획서를 써서 엄마한테 드리고 300만원만 투자해달라고 했어요. 그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언니가 메인으로 쇼핑몰을 맡고 제가 도와주면서 같이 일했어요. 그런데 첫째가 네 살이 좀 넘어서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곁에 있어야겠다 생각하고 일을 그만두고 2~3년 전업주부로만 지냈어요. 

 

일을 쉬면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제 관심사는 오직 육아였어요. 뭘 만드는 걸 좋아하는 데다 첫아이라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엄청난 극성 엄마였어요. 할로윈 때 옷을 다 만들어서 입히고 돌잔치 때 한복도 만들어서 입혔어요. 구름 쿠션도 만들고 이불도 만들고 음식도 예쁘게 차리고 집 안을 꾸몄죠. 결혼 전 싸이월드 하던 것처럼 제 일상을 블로그에 올렸어요. 그러다 제가 만드는 것들을 사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취미생활 삼아서 판매도 하게 됐죠. 그걸 보던 남편이 사업을 해보라고 부추겼어요. 제가 자꾸 뭘 만드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일을 크게 벌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계속 거절했는데, 경영은 본인이 할 테니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했어요. 거기에 코가 꿴 거죠. 

 

구름 쿠션의 인기가 대단했잖아요. 그런 안목과 감각은 어떻게 쌓아온 거예요?

유치원 때부터 벌써 옷이랑 집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크면서 수학이나 과학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시각적으로 인상 깊은 걸 좋아했어요. 그때는 만화도 정해진 시간에 티브이에서 했잖아요. 심심하니까 엄마가 보는 잡지에서 가구 잘라서 이렇게 놔보고 저렇게 놔보고, 책꽂이에 있던 그림 있는 책들을 많이 봤어요. 아빠가 친구 부탁으로 사두신 화가들 전집이 있었어요. 피카소 같은 거장의 그림이 담긴 책이었는데 그걸 자주 본 기억이 있어요. 엄마가 소소하게 집 꾸미는 걸 좋아하셔서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다락방에 있던 커다란 봉지를 가져와서 온 집을 다 같이 꾸몄어요. 젓가락 하나를 사도 저희는 가족이 함께 다녔거든요. 같이 가서 함께 보고 고르고 했어요.

 

공간을 꾸미거나 물건을 고를 때 나만의 기준이 있나요?

결혼한 뒤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어요. 일곱 번 정도 집을 옮겼죠. 보통 이사할 때 제일 변화를 많이 주잖아요. 돈 많이 주고 샀는데 이사 갈 집에 안 어울릴 거 같아서 누구한테 주거나 파는 일을 일곱 번 반복하고 나니까 끝까지 살아남는 물건이 있더라고요. 그 제품들의 공통점이 컬러나 디자인이 유행 타지 않는 거였어요. 실용성도 좋고요. 생각해보면 공간마다 특성이 있어요. 주방은 실용적인 물건이 많아요.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 도구도 많고요. 신혼 때 조셉조셉 조리도구가 예뻐서 산 적이 있어요. 물건 하나하나는 예쁜데, 주방이 너무 난잡해 보였어요. 이제는 물건을 살 때 우리 집에 어울릴까를 가장 먼저 고민해요. 저는 공간마다 색을 정해서 채워요. 주방은 그레이와 블랙으로 제한해요. 주방 건너편 벽은 화려하게 두 고요. 디자인이 다양해도 컬러 톤만 맞으면 정리되어 보이더라고요.

그 기준으로 구름바이에이치를 시작한 건가요?

맞아요. 저는 옷이나 생활용품을 살 때 한 번에 사는 경우가 없어요. 여러 차례 많이 고민해요. 제가 고민해서 샀고 만족스러운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더라고요. 구름바이에이치는 구름이가 잘 입고 쓴 걸 팔기 시작했어요. 옷이나 생활용품 중에 한국에 없는 것들도 많아서 수입을 하거나 바잉을 했어요.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사진 말고 제 스타일대로 따로 사진도 찍었어요. 이 물건이 보통의 가정에서 어떻게 보이고 활용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열심히 홍보했는데, 구경은 여기서 하고 최저가를 찾아 사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그 에너지를 우리 브랜드에 쏟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GBH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만들 때도 기준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과 실용성이에요. 샴푸나 스크럽 솝 같은 게 기능은 참 좋은데 패키지가 안 예뻐서 우리 집에 걸어놓기 꺼려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목욕탕에서 파는 때비누를 참 좋아하는데 집에 두고 싶은 디자인이 아니라 고민됐어요. 이런 기능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디자인하면 어떨까? 해서 스크럽 솝이랑 타월을 만들게 됐어요. 

 

코스메틱 제품들도 다양해지고 있던데요.

둘째 리안이가 가려움도 심하고 피부가 되게 예민해요. 로션 바르는 걸 싫어했거든요. 어떤 화장품도 다 냄새가 싫다고 했어요. 향이 강하지 않은 걸로 제가 직접 만들어 주려고 리안이한테 기준을 둬서 자극적이지 않은 향을 테스트해보고 만들어봤어요. 자기 의견이 들어간 것도 있지만 엄마가 만든 제품이라는 자부심이 있나 봐요. 열심히 발라서 정말 피부가 부드러워졌어요. 샴푸랑 트리트먼트는 지안이 때문에 만든 거예요. 4학년 되니까 두피에 성인보다 더 심한 기름이 생기더라고요. 아이 제품을 쓰기엔 세정력이 부족하고 제가 쓰는 건 너무 독할 거 같았어요. 저도 두피가 예민한 편이라서 그럼 나랑 애랑 같이 쓰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쓸 만한 샴푸를 만들면 어떨까 했어요. 나 같이 이런 게 필요한 사람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만들어요. 저희가 판매하는 제품은 전부 그렇게 시작됐어요. 곧 세제도 나올 거예요.

 

의류도 연지 씨가 입으려고 만들게 된 거예요?

맞아요. 아기 낳고 살이 쪄서 맞는 옷이 별로 없었어요. 사려고 보니까 오버사이즈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멋 부리면서 77-88 사이즈의 사람이 입을 만한 옷이 정말 없더라고요. 외국에 가야 그나마 살 수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들도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날씬한 고객이 많더라고요. 디자이너가 늘어나면서 사이즈를 넓혀 많은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서 지금은 여러 사이즈를 만들어요.

 

가장 잘 입은 옷은 뭐예요?

제일 첫 시즌에 만든 옷인데 조거팬츠예요. 판매도 많이 됐고, 그 옷을 한 번 입었던 분들은 계속 다시 찾으셔서 여름 버전으로도 나오고 겨울 버전으로도 나왔어요. 저도 그 옷이 좋아서 낡을까 봐 쟁여두기도 했어요. 시즌제로 하기 전에는 매 계절마다 나왔는데 지금은 그때랑 콘셉트가 달라서 안 만들고 있어요. 마지막에 만들 때 좀더 쟁여놨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있어요. 

 

콘셉트가 어떻게 바뀐 거예요?

처음에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가볍게 집 근처 외출하거나 어린이집 데려다줄 때 입는 옷,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어요. 근데 제가 워킹맘이라 미팅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외부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저희 옷만 입기엔 한계가 있더라고요. 갖춰 입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출근을 하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든 두루두루 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자, 해서 디자인이 좀더 넓어졌어요. 아동복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완전 실용성에 초점을 뒀다면 어린이집에도 가고 갖춰 입어야 할 때 예쁘게 입을 옷도 구상했어요. 

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처음엔 특정 기간에 미리 주문을 받고 제작하는 방식이었어요. 근데 홈쇼핑처럼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소비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방식이 우리랑 맞지 않더라고요. 매출면에서는 훨씬 나은 길이지만 길게 가지 못할 방법 같았어요. 한국에는 오래가는 토탈 브랜드가 많지 않잖아요. 패션 브랜드도 있고 리빙 브랜드도 있지만 이걸 다 어우르는 브랜드는 드문 거 같아서 제가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시즌제로 하고 상시 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지금은 그런 과도기예요.

 

이번 시즌 아동복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면서 특별히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요?

지금까지는 성인 옷과 아이들 옷의 톤이 달랐는데, 이번부터 같은 콘셉트로 가려고 해요. 성인 옷과 키 컬러를 맞추되 소재는 조금 달라요. 애들 옷은 좀더 신축성이 있고, 고무줄 밴드가 필요해요. 아동복은 핏감이 어른이랑 너무 달라요. 둘째한테 입혀보고 편한지 불편한지 묻고 피팅을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시즌마다 소재와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하는지 궁금해요.

콘셉트 자체는 제가 정하고 언니가 디자이너들을 디렉팅해서 구체화하고 있어요. 그 작업을 보고 저나 언니가 우리 브랜드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발전시켜요. 이번 시즌 주제는 마요르카예요. 마요르카에서 입을 만한 옷이라기보다는 마요르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의 색감이에요. 땅이랑 풀이랑 하늘의 색을 담고자 했어요. 마요르카 콘셉트에서 가장 아이스러운 컬러를 정하고 그 톤으로 아동복도 어우러지게 하려고 했어요.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변화가 많은 시기일 텐데요.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을 거 같아요.

작게 했을 땐 제가 기획과 디자인, 홍보도 하다 보니까 제 안에서 컨트롤이 되어서 조화로웠던 거 같아요. 조금 커지니까 모든 파트가 나뉘고 사람도 많아져서 내부적으로도 브랜드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도대체 GBH란 무엇일까를 잘 정리해서 말로 설득하는 일이 힘들더라고요. GBH는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곁에 두고 싶은 물건, 시간이 지나 낡고 더러워지더라도 내가 보듬어가면서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브랜드예요. 여기에 초점을 맞춰 조화롭게 하나로 잘 이끌어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옷을 신중하게 만들었는데 홍보할 때 너무 상업적으로 하는 것도 이질적이고, 유통할 때도 만드는 사람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조화롭게 만드는 것. 그게 제일 힘들고 그걸 해내야 좋은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가족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구름이가 어릴 때 극성 엄마였다고 했어요.

중학교 때 장래 희망이 현모양처였어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어릴 때부터 했는데 엄마가 된 거예요. 그것도 스물여섯에요. 정말 극성이었어요. 천 기저귀를 쓰고 모유수유도 열심히 완모를 했어요. 맨날 유기농 찾아 먹이고 옷도 직접 지어 입혔고요. 근데 아이는 분리불안이 있고 울고 떼를 많이 쓰는 거예요. 그래서 일도 그만두고 애한테 더 잘해줬어요. 일을 안 하고 애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집착을 했어요. 유기농 재료를 사서 열심히 요리하고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밥을 차렸는데, 애가 안 먹더라고요. 하루 종일 뭘 해 먹일까 고민하다 영양을 따져서 만든 건데, 자괴감이 들었어요. 오버할 때는 ‘내가 엄마로서 자격이 없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옷을 예쁘게 입히고 싶어서 할로윈 날 팅커벨 옷을 만들었어요. 제가 일주일 동안 만든 거니까 저도 모르게 애한테 “이거 입어야 해.” 하면서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6시간씩 놀아줬어요. 티브이도 안 보여주고 아이폰도 안 주고, 오로지 올바르게 키우는 것만 생각했어요.

 

육아를 정말 열심히 했네요.

맞아요. 저는 정성을 다했는데 아이는 더 떼를 부렸어요. 고민하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이가 엄마를 이렇게 생각한대요. ‘우리 엄마는 나한테 너무 잘해주고 좋은 엄마고 뭐든지 잘하는데 좀 이상해.’ 애도 엄마가 너무 애쓰는 걸 아는 거예요. ‘내가 이만큼 공들였는데 네가 이만큼 받쳐줘야지.’ 하는 걸 말은 안 했지만 애가 느꼈나 봐요. 엄마의 인형이 된 거 같고, 엄마가 부담스럽고. 선생님이 아이한테 솔직해지라고 하셨어요. 그땐 어떻게 해야 솔직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걸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원래의 나대로 육아를 하는 거였어요. 아이가 좋은 엄마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제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거였어요. 아이가 말 안 들으면 최대한 다정하게 말로 타일렀는데 상담 선생님이 그건 엄마 역할이 아니래요. 선생님 같대요. 아이가 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산다고 생각해보라며 얼마나 힘들겠냐고 하셨어요. 아이가 말 안 들으면 “아이쿠.” 하면서 엉덩이를 찰싹 때려도 된대요. 저는 때리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가 맞아서 상처를 받는 거보다 ‘우리 엄마 인간적인 사람이구나.’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걸로 엄마가 나한테 악의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대요. 그거와 별개로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애들은 이해한대요. 그동안 아이는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야.’라는 건 알겠지만 ‘엄마가 정말로 날 사랑해.’라는 건 몰랐을 거래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해지셨나요?

둘째를 낳고 구름바이에이치를 시작하면서 부모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아이도 안정감을 느끼는구나를 알았어요. 제 생활이 있고 제가 즐거우면 아이에게 집착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사랑을 진실로 표현하는 건 제가 뭘 해주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약간 부족한 듯 육아를 하고 제 일을 열심히 했어요. 둘째는 제가 회사생활로 바쁘니까 이모님이 돌봐주셨어요. 애랑 하루 종일 같이 못 있으니까 눈만 마주치면 너무 예쁜 거예요. 밥도 잘 못 해주고 놀아주는 것도 부족하지만 집에 있을 때마다 많이 안고 물고 빨고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날 너무 좋아해.’를 느끼더라고요. 정서적으로 좀 안정된 느낌이고요. 

전업주부였을 땐 남편 올 때만 기다리고, 오늘 밥 뭐 하지, 그러면서 상을 열심히 차렸어요. 그런데 “나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 하면 막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거예요. 남편도 예전에 제가 음식 차려놓고 “맛있어?” 하는 게 두려웠대요(웃음). 지금은 ‘엄마니까 이런 거 해야지. 엄마는 이래야 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땐 저는 없고 엄마, 아내만 있었다면, 지금의 전 엄마이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해요. 이것도 조화잖아요. 조화가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의 모든 걸 엄마가 채워줄 필요는 없더라고요.

맞아요. 지금은 아침에 아이들 등원, 등교시키고 저는 저녁 6~7쯤 퇴근해요. 하루 중 3~4시간 애들이랑 같이 있는데 이게 알맞은 조화 같아요. 전업주부처럼 세세한 건 못 해주지만, “엄마가 안 나갔으면 좋겠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이럴 때는 아이 요구를 들어주려고 해요. 안정되면 “엄마는 일해야 해.” 하면서 나가고요. 대신 회사와 쇼룸을 일부러 집 근처에 뒀어요. 혹시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항상 주변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요. 

 

두 아이의 개성이 달라요. 취향도 다르죠?

둘은 성격이 많이 달라요. 리안이는 전형적인 아이라면 지안이는 어릴 때부터 독특했어요. 제가 어릴 때 극성 엄마여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고집이 엄청 세요. 수줍음이 많지만 주관이 있고 심지가 강하다고 느껴요. 둘 다 옷을 좋아하는데 지안이는 특히 꾸미는 거와 옷에 관심이 많아요. 예술 쪽에 소질이 있어 보여요. 제가 <응답하라 1988> 같은 예스러운 무드를 좋아하는데 지안이도 좋아하더라고요. 리안이는 관심 없고요.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시대라도 확실히 끌리는 취향이라는 게 있구나 느껴요. 리안이는 시크릿쥬쥬를 좋아해요. 장난감이 집에 너무 많아요. 예전에는 그게 싫었는데 그게 이 아이인 걸 어쩌겠어요. 아이임은 부정할 수 없잖아요. 

어떤 집에서는 아이에게 좋은 취향을 알려주기 위해 캐릭터 제품 안 사주고 좋은 디자인의 제품이나 가구를 사준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건 좀 의미 없다 여겨요. 그건 부모 욕심 같아요. 엄마가 사둔 가구를 옆에서 지켜볼 순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한테 강요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저도 어릴 적 캐릭터 장난감이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 사주셨어요. 그때는 또래 심리라는 게 있어요. 엄마의 의지와 다르더라도 애한테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표현을 잘하게 해줘야 자기만의 취향도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살면서 보니까 자기주장 없는 사람은 취향도 없어요. 유행을 좇고 남이 좋다니까 좋은 걸로 생각하게 되죠.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취향인 걸 떠나서 자기주장이 확실한 사람이라야 취향도 있는 거 같아요. 여자아이들은 대개 핑크와 시크릿쥬쥬에 확 꽂히더라고요. 그건 아이들 세계니까 어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아이들과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평일에는 같이 저녁 먹고 잘 때까지 애들 위주로 같이 있어줘요. 봄여름, 가을엔 주말마다 농사를 짓고요. 겨울에는 할 게 없어서 좀 힘든데 방학마다 한 달씩 미국에서 살아보고 있어요. 매년 똑같은 곳에 가는데 사실 그건 저희 부부의 계획이 깔린 거예요. 저희는 한국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이렇게 공부만 하고 살아야 하나 싶거든요. 유치원도 그런데 학교는 더하더라고요. 이 시간을 다른 데 쓰면 훨씬 더 좋을 거란 생각이 좀 확고한 편이에요. 그렇다고 억지로 ‘여기가 좋아.’ 하면서 유학을 보내고 싶진 않아서 그냥 가보고 느끼다가 언젠가 뜻이 있다면 외국에서 공부해 볼 기회도 생기겠지, 하면서 갔어요. 지안이는 한 번 두 번 가보더니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유학을 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지안이 꿈이 무대의상 디자이너예요. 거기서 공부하면서 한국은 5년에 한 번씩 여행하러 올 거래요.

 

벌써요? 독립이 꽤 빠른 편 같아요. 

네. 지안이가 13살이니까 친구들에 비해 빠른 편이에요. 제가 “회사 그만두고 지안이 따라갈까?” 물었는데 지안이가 싫대요(웃음). 거기 가면 일도 없고 친구도 없을 텐데 엄마가 하루 종일 저만 기다리며 사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여기서 엄마대로 살아.”라고 하던데요. 처음엔 지안이가 걱정됐는데 지금은 리안이가 걱정돼요. 언니가 있다가 없어서 상실감이 클까 봐요. 작년까지만 해도 저도 많이 아쉬웠는데 올해 사춘기가 되니까 이런 시기가 필요하겠다 싶어요. 같이 붙어 있으면 관계가 더 안 좋아질 수 있겠더라고요. 엄마 품을 떠날 때가 된 거 같아요.

 

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던가요?

수줍은 성격이라 한국에서는 철봉에 매달리는 것도 창피당할까 봐 못 하겠다고 했어요. 떨어지면 친구들이 “너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할까 봐요. 미국에서는 친구들이 지안이가 뭘 하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대요.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대요. 그러다가 지안이가 잘하면 “우와 너 잘한다.” 하면서 칭찬해준다는 거예요. “여기서는 내가 더 해보고 싶고, 할 수 있을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일과 육아로 바쁜 나날이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시간도 마련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는 어디 나가서 뭔가를 찾기보다 주말에 애들 보면서 집에 있고 애들이랑 밥 먹고 아침에 준비시키는 데서 더 영감을 얻어요. 사람마다 집에서 보내는 하루의 루틴이 있잖아요. 평범한 일상이요. 제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건이 많고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수요일마다 언니랑 집이나 회사가 아닌 곳에 나가서 다른 숍도 구경하고 전시를 보며 시간을 보내요. 그런 경험이 저한테 특별히 영감을 주진 않아요. 저랑 잘 맞지 않는 것도 있고, 잘하는 걸 보면서 이거 꼭 해봐야겠다 싶은 생각도 잘 안 들거든요. 그런데 끝나고 나서 언니와 얘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회사에 있으면 매일 일한다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 작은 거 하나를 보더라도 서로 무슨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니까 좋아요. “오늘은 어디 가서 뭐 좀 보자.” 하고 막상 가서는 보는 건 잠깐이고 얘기만 실컷 하다가 와요. 결국 가족과 육아 얘기로 넘어가면서요. 우리 일이 육아와 가족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구나를 느끼죠.

 

오늘 인터뷰도 그래요. 구름바이에이치를 이야기하다 보니 연지 씨 취향, 가족, 육아를 넘나들었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세계 안에서 어떻게 나이 먹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제가 꿈이 큰 사람인 줄 아는데 저는 뚜렷한 목표와 꿈이 없는 사람이에요. 물 흐르듯이 팔자려니 하고 현실에 충실한 유형이에요. 남편은 ‘어떻게 해서 어떻게 살 거야.’라는 목표가 확실하고 미래를 넓게 보지만 저는 뭐가 되고 싶어지질 않더라고요. 이건 남편의 욕심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제가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어요. 전 그저 앞에 있는 일을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생긴 대로 열심히 살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상담받기 전까지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보단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어 했던 거 같아요.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내 취향은 이렇고 이래.’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옷을 입고 애티튜드도 그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를 모르면서 뭐 했지 싶어요. 이제는 갈등이 생겨 화가 날 때면 ‘내가 왜 화가 나지? 왜 그럴까?’ 자꾸 생각해보고 저를 받아들여요. 저를 인정하면서 좋아하는 일 하고 아이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면서 늙고 싶어요. 놔줄 수 있을 때 놔주고 찾아올 때 받아줄 수 있는 엄마로요.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만족하며 늙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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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