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with a bookstore

책을 다루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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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ore

책을 다루는 마음

독일어로 서점은 부흐한드룽Buchhandlung, ‘책을 다루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들의 일상을 꼼꼼히 챙기고, 손님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준비하며,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한 권의 책을 전하는 서점 직원의 하루.

AM 10:00

나의 아침은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다. 서점의 오픈 시간은 12시. 알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자다가 눈을 뜨는 아침은 사소해 보여도 쉽게 누릴 수 없는 일상 속 작은 사치다. 이부자리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 어젯밤 읽다 만 책을 다시 편다. 그날 날씨와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자연빛 아래서 책을 읽는 여유로운 아침. 매일 누려도 지겹지 않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

PM 12:20

서점에 출근해 오픈 준비를 끝내고 메일함을 확인한다. 신간 안내 메일부터 입점 문의, 이벤트 제안, 갤러리 대관 등 하루에도 수십 통의 메일이 저마다의 목적을 지니고 날아온다. 흔히들 생각하는 손님에게 책을 찾아주거나 정리하는 일 외에도 할 일은 많다. 우리 서점은 카페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드는 것은 기본. 책 말고도 가게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상품들의 정보와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운영에 필요한 식자재나 비품 등이 떨어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조명을 교체하고 전동 드릴을 사용하는 간단한 일부터 다음 전시를 위해 벽에 난 못자국을 메우거나 페인트칠을 하고 시트지를 부착하는 것, 서점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 올릴 사진을 촬영하고 보정하는 것도 서점에서 하는 일 중 일부다. 서점은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PM 1:30

어제 판매된 도서 목록을 살펴본다. 하루 동안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재고가 많이 빠진 책들은 그간의 판매 데이터를 참고해 수량을 정하고 출판사에 주문을 넣는다. 이번 주에 많이 판매되었다고 해서 다음 주에도 많이 팔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이번 주엔 그다지 반응이 없던 책이 다음 주쯤엔 입소문이 나 찾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므로 판매 데이터가 없는 신간을 주문할 때는 수량을 정하는 일이 더욱 어렵다. 판매가 될까 의심스러웠던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고 반응이 좋을 거라고 확신했던 책이 외면당하기도 한다. 이럴 땐 나의 안목에 자괴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응원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의 신간을 넉넉히 주문한다. ‘계속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만들어 주세요’ 하는 바람을 담아서. 서점 직원이기 전에 나 역시 한 사람의 독자이기 때문에.

PM 3:00

택배 기사님이 다녀가면 서점 입구에 책 상자가 하나둘 쌓여간다. 상자를 열어 거래명세서를 보면서 책의 수량과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다. 이따금 배송 과정에서 상하거나 더러워진 책이 발견되기 때문인데, 여기서 통과하지 못한 책들은 서점에 얼굴을 내밀어 보지도 못하고 바로 반품 상자 행이다. 무사히 입고된 책들은 이런저런 요소를 고려해서 쇼윈도로, 매대로, 서가로 자리를 내어준다. 매대에 책을 진열할 땐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이 책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예를 들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진열할 때,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인 은행나무의 《월든》과 펭귄북스 오리지널 표지를 사용한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월든》 특별판을 함께 진열한다. 속(번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와 겉(북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 옆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주요 작품에서 골라 뽑은 명문장을 담은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함께 진열한다. 아직 그의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이 책이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하고 궁리해서 진열하려고 노력한다. 고민 없이 받은 책을 수동적으로 비치하거나 진열하는 데 그친다면 그건 서점이 아니라 책 창고일 테니까. 언제나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아 보이는 이 작은 서점은, 그날 날씨에 따라 계절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이 공간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알게 모르게 작은 변화들로 채워진다. 매일 오더라도 새로운 구석을 발견할 수 있는 서점을 만들고 싶다. 그러니 서점을 찾는 손님들도 한 권 한 권의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여기에 놓인 것인지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PM 4:00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입고되는 날. 책이 도착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상자를 열어 새 책을 품에 안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기쁨은 서점 직원으로 일하는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다. 서점에 입고된 모든 책은 간단하게라도 내용을 파악해둬야 하는데, 이럴 땐 사심을 듬뿍 담아 책을 읽는다. 보너스 같다고나 할까. 이번에 입고된 신간 《뭉클하면 안 되나요?》는 무심히 지나칠 사소한 몸짓과 말에 감동할 줄 아는 마스다 미리가 일상 속에서 포착한 뭉클의 순간들을 모아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 속 ‘뭉클’은 어떤 게 있을까 떠올려 봤다. 오후 4시, 큰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일렁이는 반짝임 속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 다음에는 또 어떤 ‘전하고 싶은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신간을 기다리며 이렇게 또 뭉클.

PM 5:30

한바탕 손님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발자국 대신 손자국이 남아 있다. 흐트러진 책을 정리하고 올라간 띠지를 바로잡고 판매가 된 책들의 재고를 채워놓는다. 최고 난이도는 원래 진열된 책 위에 다른 책 한 권이 교묘하게 얹혀 있을 때. 월리를 찾듯 꼼꼼히 살펴야만 잘못 놓인 책을 발견할 수 있다.

PM 8:00

며칠 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축구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 계획인데 그곳에 채울 책을 구매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현실적으로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축구 외에도 다양한 길이 있음을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고 하셨다. 축구부 아이들을 위한 도서 목록을 정리하며 내가 고른 책 한 권의 무게를 생각해본다. 이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서점은 그런 곳이다. 그것을 읽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PM 9:50

하루의 영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가방 속에는 새로 입고된 책 중 읽고 싶은 책 몇 권이 들어 있다. 내 삶 속에 책이 자리한 지는 오래되었다. 순수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고 지금은 책을 파는 서점 직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책을 읽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좋다고 생각한 책을 많은 사람이 읽게 하고 싶어졌다는 것.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그게 책을 다루는 나의 마음이다.

당신을 서점으로 안내하는 책들

땡스북스 THANKS Books
thanksbooks.com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 28 1층
Tel 02 325 0321

01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 이봄 | 192쪽 | 145x210mm

경력 10년의 서점 직원 쓰치다의 일기를 마스다 미리스럽게 풀어낸 만화. 책의 판매 순위를 알 수 있는 핸디터미널이라는 기계로 자신의 인생 순위를 생각한다거나, 다른 서점에 들러 진열을 살피는 와중에도 비뚤어진 띠지를 바로잡는 장면처럼 서점 직원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합격한 인생이란 어떤 걸까?’ 하고 고민하는 쓰치다를 보면서 어느새 내 삶을 마주 보고 싶게 만드는, 가볍게 읽히지만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 책이다.

02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페트라 하르틀리프 | 솔빛길 | 272쪽 | 115x185mm

남편과 휴가를 갔다가 우연히(!) 빈에 있는 폐업한 유서 깊은 서점을 인수하게 된 저자의 좌충우돌 서점 운영 이야기. 출판사 영업사원과의 미팅은 언뜻 보기엔 상쾌한 수다 같아 보이지만 상대방을 속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거절하는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다정한 손님들 덕에 몇몇 무뚝뚝하고 콧대 높은 손님들을 견딘다든지 하는 서점을 꾸려나가는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책이라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다. 서점 주인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꽤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

03 책방 주인
레지 드 사 모레이라 | 예담 | 188쪽 | 135x195mm

이 책은 부제를 더해 읽어야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에서 자신이 읽어본 책만 파는’ 책방주인. 제목 그대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책방이 이 책의 배경이다. 스물네 시간 열려 있고, 주인이 읽어본 책만 팔고, 실내는 사막같이 건조하고 덥다. 책방 주인은 손님 한 명에 허브차 한 잔을 마시며 책들의 일상을 꼼꼼히 챙긴다. 시적인 문장과 철학적 사유, 유연한 상상력이 더해져 이런 책방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꿈꾸게 만드는 프랑스 소설.

04 오래된 빛
앤 스콧 | 알마 | 204쪽 | 140x214mm

스코틀랜드 작가인 앤 스콧이 자신의 생에서 특별하게 느끼는 열여덟 곳의 서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오래된 빛》은 비블리오필bibliophil이라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책이다. 원서인 《18 Bookshops》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확인해보시길. 서점의 문장紋章은 고유 문장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이정호가 각 서점의 개성을 섬세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각화해 새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북디자이너 안지미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오래된 서점의 기억을 아름다운 물성으로 되살린 책이다.

05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 문학동네 | 296쪽 | 132x200mm

고등학생일 때부터 서점에서 일하기 위해 열심히 문을 두드렸지만 나이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점에 취직하여 10년을 서점 직원으로, 그 후 7년을 출판사 외판원 생활을 한 루이스 버즈비.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소박하고 평범한 일기처럼 시작되다가 책과 서점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출판의 탄생과 역사까지 해박하게 설명한다. 서점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전공기초 과목 같은 책.

06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 궁리 | 156쪽 | 133x218mm

1949년, 뉴욕의 가난한 희곡작가 헬렌은 잡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런던의 채링크로스 중고서점에 책을 구하기 위해 편지를 보낸다. 이 책은 그 후 20년간 헬렌과 마크스 서점 직원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찾아 바다 건너 멀리까지 편지를 보내는 독자와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한 무언가가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서간집은 1987년 앤 밴크로프트와 안소니 홉킨스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한국어판 제목은 ‘84번가의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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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글 정지혜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