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A PHOTOGRAPHER

잠든 방

잠든 방

I AM NOT A PHOTOGRAPHER

방 안에서 잠자는 이를 들여다보곤 한다.눈을 마주할 수 없는 얼굴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얼굴을
빤히 볼 수 있는 기회

다른 사람의 눈을 오래 보지 못하는 편이다.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면 쑥스러워서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주 앉으면 커피잔이나 상대의 옷깃 정도를 보고 얘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보는 것도 어려울 때가 있어서 눈 보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아빠도 그런다고 했다. 유전인가. 그러고 보니 아빠와 눈을 보며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다. 아빠와 얘기를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데 내 것도 그런 모양이 아닐까 싶다. 애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누구 할 것 없이 눈을 마주하는 일은 매번 수줍다. 그렇기에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일종의 기회다.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하던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반질반질한 이마, 가지런한 눈썹이나 두툼한 눈두덩이, 코끝의 굴곡이나 그 근처의 사소한 상처, 코와 입술이 이어지는 골,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잘 알고 있어야 할 얼굴이 아주 낯설다. 얼굴뿐만 아니라 발가락이나 배꼽, 귓바퀴처럼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몸의 구석을 관찰하기에도 좋다.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타인의 몸을 보다가 근처에 카메라가 있으면 조심스레 카메라를 갖고 와서 사진을 찍는다. 바스락거리지 않게, 발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성공할 때도 있지만 그 소리에 상대가 일어나는 일도 적지 않다.

눈을 뒤집는
오후

어릴 적에는 오후에 한 번씩 낮잠을 잤다. 깨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엄마가 잠들어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의 눈 감은 모습은 매번 낯설었다. 그때마다 두 손가락으로 그녀의 한쪽 눈을 열어봤다. 엄지와 검지로 감긴 눈을 벌리면 그 안에서 검은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 기억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미간을 찌푸린다. “네가 눈 까뒤집는 건 정말 끔찍했지.” 나를 재워놓고 잠시 눈을 붙이는 일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을까. 그때마다 어린 딸에게 억지로 눈이 뒤집혀 깨는 건 또 어떤 고통이었을지.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하다 보면 두려움이 어렴풋하다. 자다 깼는데 엄마가 눈을 감고 있으면 얄팍한 공포 같은 게 생겼다.

‘왜 가만히 있지? 움직이지 않는 거지?’ 눈을 열어보고 눈동자가 움직이고 그러다 엄마가 깨어나야 불안이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건 슬픔에 가까운 일이란 걸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굳이 눈을 벌리지 않고도 자는 사람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억지로 깨우는 대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익숙한 얼굴의 낯섦을 발견하기도 하고, 모르던 부분을 찾게 되기도 하는 거다. 운이 좋으면 상대의 꼬마 시절이 보이기도 한다. 본 적 없는 엄마와 아빠의 어린 모습을 자는 얼굴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아마 그건 자는 이는 알 수 없는 얼굴일 거다.

우리 둘이 사는 방
원룸

지금은 원룸에 산다. 방과 방의 구분이 없고 작은 베란다와 비좁은 화장실이 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본 잠자는 얼굴은 고양이의 것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온 어린 고양이의 표정은 이상했다. 무서운 걸까, 신기한 걸까, 두려운 걸까. 그의 감정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도 그 고양이가 내 방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서로가 낯설던 우리는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동안 고양이는 깊게 자지 못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고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숨어 자기 일쑤였다. 고양이는 원래 그런 동물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에게 서로의 있음이 익숙해지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내 발밑으로, 옆구리 틈으로, 얼굴 옆으로, 잠자리를 바꾸었다. 그렇게 잠자리를 바꾸던 즈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잤다.

아무리 배를 찌르고 앞발을 들어봐도 한없이 자기만 했다. 그런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아주 대단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마냥 기쁜 것은 아니다. 안전하고 자유롭지 않은 내 방이 녀석이 원하던 장소인지 나는 알 길이 없으니까, 기쁘다가 슬퍼지고 또 슬프다가 기뻐하길 반복한다. 가끔 자다 깨면 고양이가 내 얼굴을 보고 있는데, 그때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는 이들을 빤히 본다. 자는 모습은 저마다 다른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언제나 비슷하다. 낯설고 편안하다. ‘동생의 코는 이렇게 생겼구나.’, ‘친구는 눈썹이 별로 없네.’, ‘엄마는 입술이 예쁘네.’, ‘아빠의 눈가엔 주름이 많다.’, ‘애인은 코털도 멋지구나.’, ‘모찌는 긴 수염이 아홉 개네.’ 자는 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얼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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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