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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주는 위로
집이 주는
위로
프랑스로 유학을 온 첫해에 나는 불어로 된 책을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고, 밤이면 홀로 가보지 못한 먼 이국땅을 상상했으며 날이 서늘해질 때면 해 질 녘 거리를 산책하곤 했다. 하지만 무엇에도 쉬이 만족하지 못했고 가슴속 헛헛한 마음은 도무지 채워질 줄 몰랐다. 그럴 때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 아득히 먼 곳,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나의 고향 집을 생각하곤 했다. 눈을 감고 그곳을 한참 생각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이곳에도 저곳에도 없는 사람, 이곳에나 저곳에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따금 고향 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집 생각이 주는 위로를 받으며 프랑스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 다섯 평 남짓한 이곳의 집들에도 내가 사랑한 시절,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이 지척에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아닉Annick 아주머니의 집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 한 허름한 건물 다락에 짐을 풀었다. 침실에는 하늘로 난 창이 있어 침대에 누우면 늘 달이 커다랗게 보였다. 그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밤이면 알 수 없는 소리에 공포를 느꼈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한 나는 그 어여쁜 창이 있는 다락에서 나오기로 했다.
얼마 후,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고 어학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집엔 프랑스 아주머니 아닉이 혼자 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돌아와 아주머니의 저녁상 차림을 도와드린 후, 식탁에 마주앉아 느린 저녁 식사를 했다. 주말이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 아래 강가로 나가거나 가까운 산에 오르며 서로에게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당시 그런 삶의 리듬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이따금 외로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그럴 때면 한국어로 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창으로 난 밤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아주 소박했고 따뜻했으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뭉클하기까지 했다.
두 번의 이사
파리Paris로 거처를 옮긴 후, 이 도시에서만 두 번의 이사를 했다. 마레지구Le Marais에 2년 남짓 살다가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 martin 근처로 처음 집을 옮겼고, 그곳에서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뱅센Vincennes 숲 옆으로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레 집에서 나는 파리에 첫눈이 내리는 것을 목도하였다. 하얀 눈덩이가 폴폴 나리던 날, 안과 밖에 나 있는 창을 모조리 열어두고 방방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집에 살 적에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먹고 마실 것을 내어주었으며 술도 자주 마셨다. 또 3일 동안 빛 막이 창Volet을 닫아놓고 밤낮이 바뀌는 것도 모른 채 영화만 본 일도 있었다. 밖보다 기온이 몇 도쯤은 낮았던 이 작은 원룸에서는 10월이 오면 연거푸 물을 끓여 차를 우려 마셔야 했고 두꺼운 담요를 항상 몸에 걸치고 있어야 했다. 계절이 두 번씩 지나가는 걸 겪으면서도 나는 이 지독한 추위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마침내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친구들과 함께 살기로 하고 운하 근처의 커다란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이었는데 살면서 여러 사람을 모아 홈파티를 하거나 거실에서 소규모 플리마켓Flea market을 여는 등 집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곤 했다. 자주 동네를 산책했고 모두 모여 베를린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남짓 살았을까, 한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나와 다른 친구들도 자연스레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사를 간 곳이 뱅센 숲 근처에 있는 작은 원룸이었다.
뱅센에 살 때는 집 근처 작은 호수와 여기저기 나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이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숲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호수 근처에서 피크닉을 하는 일이 잦아졌고 동네를 자주 걷다 보니 집 앞에 단골가게도 생겼다. 이곳에 살면서 주말이면 집 앞에 열리는 장에서 시장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빛이 가득 들어오도록 창을 활짝 열어두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먼 나라에서 온 식물들을 방 곳곳에 놓아두었고 계절이 바뀌면 꽃을 사다 책상 위에 놓았다. 나는 이곳에서 지난 유학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신경 써서 청소하고, 꼭 필요한 짐들만 천천히 한국으로 보내는 일을 한 달을 넘게 했다. 5년 동안의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는 기분은 퍽 이상했고 아직도 적은 돈을 받고 팔아버린 나의 정든 기타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열흘간의 동거
파리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벨기에행 기차표를 알아보는 중에 덴마크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 씬Signe이 자신의 집에서 며칠간 함께 지내자고 했다. 그 친구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동거Collocation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친구가 2주간 스위스에 가 있게 되어 방이 빈다는 것이었다. 이방인의 몸으로 낯선 도시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우리는 이제 곧 헤어질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서둘러 짐을 싸 들고 씬이 사는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씬과 나의 열흘짜리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 푹 끓인 오트밀에 과일을 넣어 아침을 먹었고 거실에 오래된 턴테이블을 켜 놓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도 읽고 낮잠도 자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친구들을 불러 작은 파티를 열었고 또 다른 날은 우리만을 위한 근사한 저녁상을 차리기도 했다. 조개껍데기를 비누그릇으로 사용하고, 식물을 이곳저곳 가지 쳐 놓고, 오랜 세월을 담은 나무 가구들이 합을 이루는, 그리고 화장실엔 어느 먼 곳의 섬 지도를 척 붙여 둔 사랑스러운 내 친구의 집. 나는 그곳에서 매일 밤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 다락으로 향했다.
그리고 헤어짐
현재 지내고 있는 집은 벨기에의 작은 시골 마을 투비즈Tubize에 있는 옥탑이다. 사정이 생겨 한국에 들어가기 전 두 달여간 이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선 침실 천장에 난 비스듬한 창 사이로 마을 성당의 종탑이 보이고, 아침이면 그곳의 종소리가 잠을 깨운다. 비가 내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나는 곧 이 모든 것을 남겨둔 채 여기를 떠날 것이다. 그래서 그저 침대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려지는 지난날의 나의 흔적, 벌써 이 사소한 몸짓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집이란, 나의, 나를 향한 그리고 나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그림자가 여기저기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한 시절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가 그 언젠가 사라져버릴, 멀어지고 나면 다시는 맡을 수 없을 향과 같은 것. 영영 돌아오지 않을, 그래서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 그 모든 조각을 집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오랜 시간 몸을 뉘었던 집들과 헤어질 때마다 나는 깊게 슬퍼지고 만다. 떠남과 동시에 반 토막이 나버릴 내 초라한 기억력은 나를 금세 무력하게 만들고, 그 무력함을 그저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테니까.
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강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