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SLOW RECIPE

그 남자의 평범한 하루

모델 휘황이 5년 전에 쓴 책을 보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책 속의 그는 느린 호흡으로 바쁜 서울의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요즘도 그렇게 지내고 있는지,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지 궁금한 마음에 그를 찾아갔다.

‘휘황’이란 이름은 본명인가요?
원래는 희황이에요. 윤희황. 부모님이 ‘물이 흐르는 듯이 밝게 흘러라’라는 뜻으로 만들어준 이름인데, 좀 더 부르기 쉬운 휘황으로 활동하고 있죠. 

한때, 여기저기서 휘황이란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소식이 뜸해요.
요즘은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비야 더 바Villa the bar’라는 이름의 작은 바를 운영하고 있어요. ‘비야’가 스페인 말로 ‘빌라’거든요. 이곳이 원래 빌라여서 그런 이름이 되었어요. 친구가 지어줬죠. 처음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노는 아지트처럼 사용하다가 지금은 모두에게 오픈했어요.

직접 운영해요?
거의 늘 이곳에 있어요. 요즘은 아니지만, 요리도 직접 했고요. 잘하진 않지만 간단한 요리를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겨울에는 홍합찜, 해산물찜, 파스타 같은 걸 했고 무화과 시즌에는 그걸로도 요리하고요. 혼자 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요즘은 가끔만 해요. 

가게 운영이 바빠서 모델 활동을 거의 안 하는 건가요?
글쎄요. 아무래도 모델로 활동하기엔 나이가 좀 있으니까요. 가끔 잡지 화보를 찍거나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패션쇼에 나가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불러주는 분들이 있을 땐 오히려 신기하더라고요.

96년에 데뷔를 했던데, 횟수로 치면 19년이에요.
와,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세어본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요.

종종 신인 모델들이 인터뷰에서 휘황을 ‘닮고 싶은 모델’로 꼽던데, 후배들에게 조언 같은 거 한 적 있어요?
아니요. 저 쑥스러움이 많아요. 그리고 그런 친구들은 이미 잘하고 있잖아요.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뚜렷하게 있는 친구들이고요. 고맙지만 역시 조언 같은 것은 좀 부끄럽네요(웃음).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일을 했잖아요. 모델부터 작가, 디제이를 거쳐 지금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있었나요?
아뇨. 계기는 항상 없었던 것 같아요. 모델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고, 책을 낸 것도 집을 이사하며 친구들과 사진 찍고 놀다가 “책으로 내볼래?” 해서 만든 거예요. 디제이도 친구들과 모여서 즐겁게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요. 지금 이곳도 친구가 “부동산에서 저쪽 골목에 싼 자리가 나왔대”라고 알려줘서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만든 거고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잠깐 사이에 ‘친구’란 단어가 여러 번 나왔어요. 늘 무언가를 시작할 땐 친구들이 곁에 있나 봐요.
맞아요. 전 서툰 부분이 많아서 늘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요.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한국에서 지낸 지도 벌써 11년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도와주고 보살펴주었죠. 그걸 통해 저는 늘 배우고 있고요. 그리고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요.

또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 일 있나요?
요즘은 향초나 가구,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몇 년째 계속하는 이야기인데 아직도 시작을 못 하고 있네요. 손재주는 없지만 뭔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여행도 자주 다니시는 것 같더라고요. 첫 여행의 기억이 남아있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즈음에 혼자 영국에 갔어요. 영어도 거의 못했는데, 신기하게 가니까 다 소통이 되더라고요. 소개받은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지내며 이탈리아나 파리 여행을 하기도 하고 그랬죠. 그때 그곳의 문화에 너무 놀랐어요. 즐거웠고요. 그래서인지 그 후로 여행을 자주 떠나게 되더라고요. 

많은 곳을 여행했겠네요.
아뇨. 저는 주로 갔던 곳을 또 가요. 한 번 갔던 곳이 좋으면 또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영국과 파리가 그래요. 20대에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요. 요즘은 동남아 쪽에 가서 쉬는 여행을 많이 해요. 휴대폰과 간단한 옷만 챙겨가서 쉬다가 와요.

여행은 혼자 하는 편이에요?
네. 여행은 주로 혼자 가는 것 같아요. 혼자 간다고 심심하진 않아요.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너무 잘 흐르더라고요. 잘 돌아다니고 나면 피곤해서 잠도 잘 오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2009년에 『슬로레시피』라는 책을 발간했어요. 그 책에서 보여주던 삶의 양식에서 변한 게 있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지내고 있는데, 크게 변한 게 있다면 ‘개 아빠’가 된 거예요. 책에 나온 강아지는 친구네 강아지인데, 지금은 제 강아지 두 마리가 있어요. 두 마리 다 입양을 했고 함께 산 지는 3년 정도 되어가요.

개와 함께 지내며 달라진 게 있나요?
나를 위해 쓰던 생활방식이 좀 더 녀석들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었어요. 예전엔 심심하면 밖에서 놀았는데, 이젠 집에서 아이들과 놀고 옥상이나 근처를 산책하고요. 개들한테 고마워요. 집에 들어갈 때 한결같이 반겨주는 모습을 볼 때, 참 기뻐요.

책을 보니 하늘을 자주 본다고 하던데.
하늘을 자주 보려고 해요. 달도 자주 보고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휴대전화 알람을 설정해놓고, 소리가 울리면 무슨 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하늘을 봐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누워있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많고요. 그럴 때, 어김없이 기분이 좋아져요. 밤하늘, 낮 하늘, 비 오는 하늘…하늘은 늘 좋아요.

『슬로레시피』 휘황 지음 | 나무수 | 237쪽 | 148x210mm

본문에 소개된 이 책은 2009년 여름에 나온 휘황의 것이다. 책의 이름에서부터 느껴지지만, 그가 살아가는 느릿한 일상이 담겨있다. 톱 모델의 평범한 하루를 사진과 함께 훔쳐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에게 예의 바르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책장을 덮고 ‘2009년의 내 하루는 어땠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그가 지금도 ‘비슷하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한 것이 그리 평범한 것은 아니란 걸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

비야 더 바 Villa the bar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58-167 지하1층
Tel 02 6478 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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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전진우·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