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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초콜릿 상자
길에 널브러진 학원 전단지를 하나 주워들었다. 울퉁불퉁 아스팔트 자국이 묻은 전단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OO 학원 입시설명회! 교과, 비교과, 생기부, 수리논술….” 어른이 되어도 알 수 없는 글자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아니 그 후로도 계속 그랬지만 최신 정보는 항상 내 머리 위 안테나가 닿지 않는 곳에서만 오가곤 했다. 학교 앞 트럭에서 닭꼬치를 먹다가 독서실 아이들이 노량진으로 몰려가는 것을 발견하고 난 반사적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은 노량진에 수강 신청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디서 알고 이 많은 사람이 모여든 건지, 추운 겨울 노량진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늘 밤부터 줄 서지 않으면 놓치고 만다는 인기 수업을 등록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만큼의 열정으로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지금은 강사 이름도, 과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던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때 줄지어 밤을 새우던 수많은 사람 중 그날을 회상하며 정말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학창 시절 이후에도 많은 정보가 나의 안테나를 스쳐 가며 조바심을 키웠다. 실비보험, 비과세, 청약, ‘스드메1)’…. 모르고 살면 손해고, 알고 나면 불편한 것들의 목록이다. 모두들 어딘가로 가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이 닭꼬치 같은 느낌을 언제까지 가져야 할까? 어느 날엔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모여 삼베 수의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저세상 갈 때는 몇 월에 나오는 대마 수의를 입어야 좋다며…. 모르면 손해보는 것 같은 기분은 아마 죽을 때까지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작더라도 마음에 끌리는 집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 집은 관리비 포함, 풀 옵션이고요.” “이 집은 역세권에 10년 미만, 이번에 올 수리했고요.” 부동산 중개업자는 우리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여러 집을 소개해줬다. 수고비 한 푼 받지 않고 수고해주신 중개업자분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풀 옵션이니 올 수리니 하는 말들이 학원 전단지에 적힌 입시 용어처럼 숨 가쁘게만 들렸다. 친구의 얼굴에서 신혼의 단꿈이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1) 스튜디어, 드레스, 메이크업을 묶어 부르는 웨딩 업계 신조어.
‘건폐율’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지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수평 투영 면적 비율을 나타낸 숫자다.
‘용적률’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지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 비율을 나타낸 숫자다.
‘전용률’이라는 단어가 있다. 건물 면적에서 공용공간을 뺀 나머지 부분의 면적 비율을 말한다.
용어의 정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건축법에 적힌 용어를 그대로 옮겨 놓으면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을 것 같아 풀어 적은 것이다. 세 가지 용어를 대학 입시에 비유하자면,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존재라는 것. 그 사실만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치 점수를 매기듯 사람들은 저 세 가지 숫자만 보고 건물을 판가름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평수가 늘어난다는(=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올라가는 계단이 넓고 밝았으면 좋겠는데…, 집 안에 중정을 만들어 개방감을 느끼게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렇게 하면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좋은 건물을 설계하고자 할 때 마주하는 가장 곤란한 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줄어드는 점수에 대해 건축가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뿐이다. “집 안에 중정이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아이가 장난감을 살 때도 부모를 이런 식으로 설득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누나의 서랍에는 작은 상자가 한 개 있었다.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박한 그림이 그려진 철제 상자인데, 난 그 상자가 무척 탐이 났다. 상자에 특별히 넣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누나가 없을 땐 자꾸 그걸 꺼내서 만져보고, 누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다시 집어넣곤 했다. 그 상자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건 20대가 훌쩍 넘어 누나가 결혼을 하고 난 후였다. 상자는 누나가 놔두고 간 책상 서랍 속에 깨끗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상자 속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도장과 플라스틱 집게가 들어 있었다. 언젠가 톰과 제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이 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난 오랜 세월이 지나 상자를 얻게 되었지만,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채워 넣지 않았다. 하지만 상자는 그곳에 무엇을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에서는 두 주인공이 평생 동안 작은 사탕 상자 하나를 두고 내기를 벌인다. 단순한 내기가 아닌, 위험한 내기다. 우락부락한 사람의 뺨을 때리고 도망가기, 상대방의 결혼식 망쳐놓기 등 그들의 내기는 심지어 인생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상자는 그런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무엇을 집어넣을지 알 수 없어 즐거운 것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셈할 수 없는 인생의 재미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소중함이다. 그런 것에 대해 너무 정확히 말하려고 하는 건 인생에 있어서 별로 효력이 없는 일이다. ‘스드메’가 평생의 행복을 보장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살면서 버리기 아까운 상자를 하나씩은 만나게 된다. 보통, 상자가 크고 높아서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기억이 담겼거나, 닫히는 느낌이 좋거나, 귀엽거나…. 버리기 아까운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을 구하는 건 마음에 드는 상자를 하나 구하는 일이다. 어려운 용어와 숫자에 쫓기기 전에 작은 창을 보고, 현관의 타일을 보고, 집에 들어오는 한 줌 햇빛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만일 작은 상자를 하나 구했다면, 그다음부터 일어날 일은 뭐가 될지 모른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