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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공간을 걷는 사람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제껏 들었던 그의 음악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하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 서사무엘이 뮤지션을 넘어서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보았다.
혼자 작업실 공사를 하고 있잖아요.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을까요?
그냥 죽기 전에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같아요. 이미 만들어진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건 누구나 익숙한데 꼭 내가 그런 곳에서 시작해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해서, 가능하다면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결국 더 정 가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죠.
어느 정도 완성됐나요?
아직 20프로 정도에요. 완성은 올해 가을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실 사진에서 글이 빼곡히 적혀있는 종이들이 벽에 붙어 있는 걸 봤어요. 가사일까요?
가사는 아니고요. 작업할 때 까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어놓은 거예요. 공식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음식도 레시피가 있잖아요. 좋았던 악기 톤을 발견해도 한 번 만들고 나면 잊어버리니까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공식을 기록하는 거죠.
아주 많던데, 작업량이 상당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실제로 많이 하니까. 상대적인 거지만, 저보다 많이 하는 사람 찾기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작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루에 두 곡, 적으면 한 곡까지 해요. 모두 완곡으로 가사까지. 앨범 작업하겠다고 마음먹고 많이 하면 하루에 세곡까지 할 때도 있어요.
그 정도면 거의 작업실에 사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진지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음악을 업으로 받아들일 거라면 영감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영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 작업을 하다가 맥락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다음 순서들도 자연스럽게 잡히면 그때부터 구체적인 틀이 생기는 거고요. 영감은 이때 작용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작업인 거죠. 열심히 해야지 또 그만큼 나중에 돌아오니까요.
자주 가는 공간으로 카페 보스토크를 꼽으셨어요. 여기선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는 많이 못 봤는데, 일단 들어오면 사장님이 키우시는 강아지 라이카를 가장 처음 만나요. 그리고 주로 1층에 있는 탁구대에서 밴드 친구들이랑 탁구 치면서 놀았어요. 우리가 탁구를 치고 있으면 라이카가 중간에서 공을 계속 보며 심판처럼 서 있었고요. 그냥 이런 모든 것들이 좋아서 여길 자주 왔어요.
이전에 공연에서 밴드 멤버들을 본 적이 있어요. 소개해줄 수 있나요?
지금은 더 많아졌어요. 기타에 박상권이라는 친구는 ‘멋진 인생’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고, 아민이는 건반, 준영이는 베이스인데, 이 둘은 ‘키스누Kisnue’라는 밴드를 함께 하고 있어요. 드럼은 권한결이라는 친구가, 또 한민영이라는 친구가 이제 막 들어왔는데 퍼커션을 아주 잘해요. 지금은 밴드를 계속 넓혀가는 단계예요. 브라스 밴드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대규모로 관악기를 이용해서 공연해보고 싶은 거죠.
밴드 사람들도 각자 일을 하고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데, 밴드 이름을 ‘유니티Unity’라고 지은 것도 이유가 있어요. 다들 각자 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저 하나를 위해서 이 밴드만 하라는 건 말이 안 돼요. 너무 이기적인 거죠. 각자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잼Jam 하자.’라는 생각이었어요. 이런 흐름을 이어서 작년 말부터 시작한 게 있는데, ‘유니티 잼’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사람들만 추첨해서 공연을 여는 일이에요. 프라이빗 공연이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가끔씩, 갑자기 모아요. 평소에 제 인스타그램을 잘 주시하시면 참여할 수 있어요. 어느 날 라이브 방송으로 공고를 낼 수도 있는 거죠. 다음 공연은 규모를 조금 키워서 할 생각이에요.
다음 공연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연희동 어딘가. 비밀이에요. 제 인스타그램을 보세요. 많이는 안 할 것 같아요. 연간 2회만 진행할 예정이고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또 자주 가는 곳이 있나요? 있다면 추천 부탁드릴게요.
연희별밥이라는 한식집이 있어요. 저는 평소에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여기 사람들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한식이라고 하면 투박한 감정을 주기도 하잖아요. 연희별밥은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을 아주 예쁘게 담아서 내놓아요. 가장 좋은 건 먹을 만큼의 양이에요. 음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좋았죠. 또 소개를 드리자면, 연희커피라는 곳이 있어요.
연희동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연희동이 진짜 좋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사실 연희커피 사장님도 제가 아는 형인데, 그 형은 연희동 토박이고 저는 여기에 살던 사람이 아니라서 나중에 알았어요. 연희동에서 자라면 계속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 부모의 딸과 아들이 이곳에 똑같이 가게를 차리기도 하면서 자리를 잡고 사는 거죠.
서울의 작은 시골 같은 느낌이네요.
시골이라기보다는 마을 같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한 공간에서 다 같이 뭉치는 느낌이 좋아요. 연희동 사람들만의 방식이 분명하게 있다는 말도 되잖아요. 연령대가 다양한 점도 좋죠. 제가 평소에 어떤 특정 계층만 느낄 수 있는, 향유물 같은 문화는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점을 더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살았다고 들었어요. 가장 고향이라고 꼽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요?
제가 신촌에서 태어나서 신촌이 고향 같아요. 그 이후로는 등촌동에서 살았어요. 중간엔 부모님 두 분 다 일본 기업에 다니셔서 일본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에 오게 됐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저를 미국으로보내셨죠.
그중 가장 마음에 남는 공간은 어디예요?
캐나다 빅토리아 섬마을이요. 사람이 별로 없고 도시에서 벗어난 곳을 좋아하는데 그곳은 일단 시골이에요. 학교 끝나면 매일 같이 보는 친구들과 스케이트보드 타면서 놀고, 헤어지면 각자 집에 가서 밥 먹는 평온한 일상의 반복이 있었어요. 그리고 항구 도시라서 조금 더 내려가면 관광지인데, 그런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죠. 어릴 때 빅토리아섬에서 자란 게 지금까지 도움이 많이 돼요.
그때가 몇 살이었어요?
중학생 때였어요. 거기서 중학교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왔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무언가 많이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뭐가 바뀌었나요?
원래 꿈은 변호사였는데 지금은 이 자리에 있잖아요. 아버지가 변호사가 되길 바라셔서 그때는 직업이 변호사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그게 제 꿈이라고 착각하고 산 거죠. 그리고 어릴 땐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이대로 가면 내가 정말 그렇게 살겠구나 싶었어요.
공부하는 걸 좋아했으면 잘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커리큘럼이 너무 달라요. 한국과 캐나다는 공부를 잘하고 말고의 기준이 아주 다르죠. 캐나다에서는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걸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역사를 배우더라도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줘요.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잖아요. 주입식이라는 게 아무래도 컸고요. 이유를 모르고 공부하는 것과 알고 하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죠.
1. 기획 앨범 [UNITY]
2. 정규 2집 [Ego Expand (100%)]
여러 공간을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있나요?
편안함이요. 저는 심적으로 편안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작업실에 네온 불빛을 두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눈이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약간 폐쇄적인 성향이 있어서 갇혀 있는 느낌도 아주 좋아해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새로운 작업실도 아늑한 느낌이었죠.
그 느낌이 좋아요. 장기적으로는 밴드 녹음 부스로 바꿀 예정이에요. 컨트롤룸, 보컬룸으로 공간을 나눠서 만들고 싶어요. 지금 작업실 위치도 마음에 들어요. 동네가 자연스럽고 인간미가 느껴져요. 무엇보다 배산임수 구조잖아요. 진짜 좋죠. 어떻게 보면 생각하지 못한 곳에 막상 들어가니 아늑한 작업실 공간이 있다는 게 또 좋은 점이죠.
서사무엘이 음악을 처음 떠올리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일단 저는 안 떠올려요. 공간과 맞물리는 가장 중요한 지점 같은데, 그냥 걷거나 사람 없는 곳을 찾아서 돌아다녀요. 뭔가를 떠올리려 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다섯시>라는 곡의 시작도 그런 맥락이었죠.
맞아요. 바로 이 앞 거리에서 생각했어요. 새벽 다섯 시에는 사람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도 편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찾아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이렇게 인터뷰 질문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웃음). 이건 그냥 직종의 문제죠.
자유롭게 찾아오는 것들을 일기로 남기기도 해요?
네. 일기도 거의 매일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장문으로는 조금 어렵고, 기억에 남는 걸 키워드로 남겨놓는 편이에요. 아니면 음성 메모를 남기기도 하죠. 그렇게 제목이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고요>가 그랬어요. 실제로 군대에서 친해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썼죠.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최근에 알렉스 카츠Alex Katz, 케니 샤프Kenny Scharf까지 전시 도슨트를 맡아 진행하셨어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화보 촬영을 하다가 한 에디터분께 도슨트 일을 제안받았어요. 당연히 좋다고 했죠. 그런데 보통은 조금 어렵게 생각해서 꺼리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누가 예술을 봤을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석하겠어요. 만약 실수를 하더라도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거죠. 더 나아가서 나처럼 모르는 사람, 나보다 비교적 덜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하는 일이 입문 과정 같은 게 될 수 있다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시라는 게 아직은 접근성이 어려운 면도 있어서, 이런 것들에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죠. 케니 샤프 전시 때는 작가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때 저한테 필요했던 게 나이가 들어서도 진취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확증이었는데, 케니 샤프가 살아 있는 확증처럼 보였어요. 저에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아요.
도슨트로서 작품을 볼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나요?
첫인상. 처음 받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다음엔 작가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봐요.
얼마 전에는 버버리 쇼에도 초청받아 다녀오셨잖아요. 인상적인 일이 있었나요?
본사 직원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버버리가 영국에서 시작됐잖아요. 그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고, 버버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선정한 장소가 재미있었어요. 그가 졸업 작품 쇼를 한 공간이었는데, 금의환향 느낌이었죠. 런던이 날씨가 어둡기로 유명한데 그날은 해가 잘 들었어요. 공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에 크게 쳐져 있는 암막이 걷히면서 햇빛이 들어오고 전체가 밝아지는 순간이 멋있었죠.
라디오 DJ도 하고 있잖아요. 혼자서 라디오 진행이라, 무척 어려울 것 같아요.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까 당연히 어려움이 따라요. 진행하는데 문제도 생기고, 애로 사항도 있고요. 그런데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요. 음악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뭘 해도 처음은 당연히 힘들어요. 그렇지만 라디오 진행도 경험이 쌓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향후 저의 라디오 DJ로서의 행보에 서사무엘도 이랬다, 처음엔 잘 못했다, 하면서 좋은 예로 여길 수 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런 기록들이 좋아요.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목수요. 지금도 작업실을 혼자서 공사 중이고, 나무 재단도 하고, 자재도 구하러 다니고, 설계도면 계산까지 하고 있어요. 물론 아마추어고 실제 종사자분들에게 견주어볼 수는 없겠지만 혼자 취미로 할 만큼은 될 것 같아요.
잘할 수 있게 되면 뭘 만들고 싶어요?
방이요. 전체 공간을 인테리어할 수 있는 능력이 이번 작업실을 꾸미면서 조금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로 요리를 말할 줄 알았어요. 요리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거든요.
요리는 작업실 공사 때문에 뒷전이에요. 약간 흥미를 잃었어요. 공간을 채워가는 게 더 재미있어서.
빵집 할 거라는 이야기 자주 하셨잖아요.
빵집은 사실 넉살 형이랑 같이 하려고 했죠. 1층은 넉살 형 빵 집, 2층은 제 카페를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그 형이 너무 슈퍼스타라서…. 그래도 40대에는 뭐라도 할 것 같아요. 취미로라도 가게를 열고 싶어요. 샐러드 가게도 하고 싶고, 그냥 제가 먹고 싶은 걸 만들고 싶어요.
요즘 새롭게 좋아진 사람이 있나요?
요즘은 오히려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누가 좋고 뭐가 좋고 이런 게 많았는데, 지금은 반대로 저 자신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더 ‘나’가 되는 거죠. 전 진짜 제가 소중해요
좋은 마인드 같아요.
원래는 자기애가 없었어요.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 있죠. 항상 나는 구리다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달라진 건 확실해요. 예전엔 스스로를 낮추는 것들에 사로잡혔다면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살자 동현아.’라는 말을 많이 하는 거죠. 저 자신에게.
그럼, 현재의 서사무엘이 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딱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한 명이라도 만나지 않다면 모든 게 틀어졌을 지도 모르죠. 사람이 아니라 어떤 계기라면 있어요.
어떤 계기일까요?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때, 썼던 데모 곡들이 몇 개 있었어요. 그때 한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음악으로 제 곡을 사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거절했어요. 만약에 아이돌 작곡가로서 데뷔했다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지금 잠깐 필요한 돈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라는 생각으로 거절했어요. 그 선택이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비어 있는 시간에는 뭘 하면서 보내나요? 매일 하는 작업도 멈출 때요.
사실 쉬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하는 게 있다면 명상인데,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삼십 분 동안 잠을 깨고 그다음에 명상을 해요. 화려한 건 아니고 생각 없애기 과정 같은 거예요. 생각을 비우고 싶은 건데 오히려 비우자고 마음을 먹으면 더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어떤 것 하나를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엔 핑크색 코끼리를 생각해요.
핑크색 코끼리요?
진짜 삼십 분 동안 앉아서 핑크색 코끼리만 생각해요. 생각을 비우는 건 너무 어려우니까 오히려 유쾌한 것들을 떠올리는 거죠. 핑크색 코끼리. 재밌잖아요.
서사무엘 님 공연을 자주 봤는데, 거의 대부분의 공연에서 무대 아래로 내려오시는 것 같아요.
사실 대규모 공연에서는 내려오면 안 되는데, 그냥 하고 나서관계자분들께 혼나죠. 돌발 행동이기도 하니까. 그분들에겐 정해진 규칙이라는 게 있을 테고, 안전상의 문제도 있으니까요. 뛰어내릴 거면 미리 말하고 사전에 양해를 구하죠. 아쉽지만 이제는 무대가 넓고 큰 공연에서 뛰어내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이 다쳤어요.
그런 위험을 뒤로하고 왜 계속 무대 아래로 내려왔던 걸까요?
제가 음악으로 만들고 싶은 궁극적인 가치관과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해요. 음악으로 벽이 없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어떤 한 대상에게 기립박수를 치는 것보다 그저 남녀노소 모두 모여서 함께하는 분위기를 응원해요. 이건 오히려 우러러보는 시선이 없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라는 사람 자체보다 그가 만들어내는 물건이나 하나의결과물에 더 집중하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이 더 가까워지고 평등해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단계를 원하고 있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사람들에 섞여서 함께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무대 위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아요.
공연장에서의 일을 좀 더 떠올려 보면, 소규모 공연이 더 좋다는 말을 하신 것도 기억에 남아요.
대규모 공연은 인기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큰 공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을 보고 싶어요. 지금은 아쉽게도 특정 연령대만 모여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소리가 좀 더 소리로서 들리길 바라는 거죠. 풀어서 말하면, 편견 없는 관점으로 시작해서 어떤 특정한 라인업을 보고 오는 공연이 아니었으면 해요. 그냥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는데 이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어도 소리와 음악은 좋아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기길 바라는 거죠.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최근에 이런 맥락과 잘 맞는 공연이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에선 까데호Cadejo 형들의 공연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김반장과 윈디시티. 저는 그냥 그들을 흉내 내는 거죠. 그만큼 나이를 먹어야 가능한 일 같아요.
이전 앨범 [유니티UNITY]가 상상마당과 함께한 기획 앨범이었고, 이제 3집이 나오는 거죠?
네. 지금은 3집 준비를 마친 단계예요. 앨범이 나오는 시기는 올해 10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콘셉트의 앨범인지 물어도 되나요?
비밀이에요. 말할 수 있는 건, 3집 기준으로 서사무엘이 나뉠 거라고 생각해요. 전후가 분명히 다를 거고, 이제 뭘 하고 싶은지 찾았어요. 이전까지는 ‘다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이것만 해도 괜찮겠다.’ 싶은 걸 찾았어요. 아마 이런 앨범을 다시 만들기는 힘들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국대중음악상도 다시 받고 싶어요.
서사무엘이 오랜 시간이 지나 자리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이건 아주 명확해요. 일단 집은 3층. 그리고 잔디로 된 마당이 있어야 해요. 차고는 SUV와 세단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하고, 주방은 통유리. 주변엔 마트도,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모든 건 콘크리트 말고 목조로요.
목조라면, 직접 만들 건가요?
안 돼요. 제가 만들면 죽을지도 몰라요. 사는 건 안전해야죠.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제가 스타보다는 심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삼십 년 뒤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장 반짝 유명한 건 오히려 원하지 않아요. 그냥 오래 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된 거죠.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