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People Left, Coal Mine

사람이 떠난 자리, 탄광촌

언제부턴가 연탄 보는 일이 생소해졌다. 지나온 어느 시간 속에서 온 집 안을 데워주던 연탄이, 

어떤 이유에서 식어버린 걸까.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따뜻함을 캐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건물의 외연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초연하게도, 연탄의 까만 재는 공간에 깊게 배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오래전 어렸던 이의 기억엔

강원도 태백에서 자란 나의 어린 기억 속,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오래된 건물들이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낡은 차를 타고 가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면 허름한 먹색 건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지금에서야 왜 그곳에 폐가가 많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땐 그 모습 그대로 당연한 풍경이라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한국의 탄광 산업 전성기에 강원도 태백은 활발한 산업 지역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지만 이젠 정적이 익숙한 고요한 마을이 됐다. 탄광촌의 화려한 과거는 어느 아버지의 무용담처럼 이어져 대단하고도 씁쓸한 역사로 남아 있었다. 석탄박물관은 태백산을 내려오면 바로 마주하는 곳에 있다. 내겐 무척 익숙한 공간이었고, 어린 마음에 박물관 속 체험장의 떨리는 바닥은 마냥 신기하며 설레기만 했다. 천진한 아이는 그곳에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흘려들은 이야기로 아주 오래전에 있던 일이라며 가늠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내가 탄광촌의 폐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됐다. 길을 걷다, 버스를 타다 나는 종종 옆 사람에게 오래된 폐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쩐지 계속 보고 싶다고. 어김없이 옆 사람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들은 대부분 폐허를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여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존재 앞에 ‘폐’ 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탄광촌이 ‘폐광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순간 얼마나 많은 집들이 사람을 떠나보냈을까. 남겨진 공간은 어떤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까. 탄광촌의 오래된 공간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름 속 까만 연탄재 

 

조금은 오래전, 대한민국 곳곳의 가정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주인공은 연탄이었다. 나를 포함해, 오늘날 어린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연탄으로 방을 데웠다. 지금도 연탄을 쓰는 집들이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연탄 파는 곳’부터 나오니, 사라져 가는 것의 명백한 징후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여러 경제적, 문화적 이해관계가 얽혀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 실행되고 많은 탄전이 문을 닫게 되었다. 새로움이 생겨나면 과거의 것들은 그만큼 자신의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걸까.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오래전 탄광촌의 아버지들은 날마다 큰 위험을 안고 일터로 나섰다. 땅속 깊은 곳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를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거라 감히 짐작한다. 철암탄광역사촌에는 집 앞에서 아이를 업고 남편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강 건너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며 출근길에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동상으로 남겨져 있다. 탄광촌 광부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며 소소하게 또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그저 이미 지나간 산업과 지역,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만 여기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지금의 청년들이 탄광촌의 지난 이야기를 부모님의 깊어진 주름으로 여기는 건 어떨까. 이 마음은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이 잊혔을 때, 우리가 기억되는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다.

 

그래서, 폐가가 소중한 이유는

 

어느 공간은 사람의 틀이 되고 바닥이 되며, 그들이 간직하던 마음이 배어든다. 그곳에서 있던 일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직접 밟고 기대며 누워 있던 공간은 사람이 떠나도 그 온기를 어디엔가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떠난 탄광촌의 공간들은 내가 폐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선명히 밝혀주었다. 그곳에 스며든 까만 연탄재가 비를 맞고 바람이 불어서 사라진다면 무척 마음 아플 것이다. 

나는 폐가가 을씨년스럽거나 흉물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곳에서 불을 켜고 밥을 짓고 사랑을 하고 병을 앓기도 하며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보냈다는 것. 

폐가는 자신과 함께 살던 사람의 시간을 풍장시키듯 서서히 기운다. 깨진 유리창과 반쯤 열린 대

문 사이로 바람을 마주 들이기도 하며.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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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사진 이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