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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 소유의 공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내 소유의 공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곳이 조금은 누추하고 협소할지라도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가 육안으로 보일 만큼 볕이 잘 드는 다락방이나 옥탑방을 꿈꾸기도 하고, 반대로 뛰어다닐 수 있으리만치 넓은 마당 혹은 옥상처럼 탁 트인 공간을 소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련된 공간에서 사색을 즐기고 가까운 누군가를 초대해 우리만의 조촐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머릿속에 그리기만 했을 뿐인데 짜릿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상상 속의 공간은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완벽한 나만의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 로망을 실제로 실현하고자 모인 사람들이 있다. 버려진 ‘옥상’이라는 공간을 그들의 야심찬 계획을 펼칠 근거지로 가꾸고 있는 옥상연구회를 소개한다.
옥상연구회, 그 시작
연구회? 이름만 듣고서는 수많은 논문더미에 쌓여 학술적인 연구(옥상연구회니 옥상에 관한)를 하며 정기적으로 엄숙한 학회에 참석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그런 딱딱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을 떠올려버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옥상에서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즐거운 연구의 주제는 옥상에서 ‘함께’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이다. 옥상연구회는 홍대에 위치한 병원 겸 카페인 제너럴닥터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환경디자이너 정순구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하지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버려진 공간인 옥상을 활용해보고자 마음먹고, 친구였던 김승범(제너럴닥터의 원장)과 정혜진(꽃과 화초를 사랑하는 그녀의 별명은 ‘화덕花덕후’)에게 제안했다. 처음부터 정순구 디자이너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당시 그들에겐 주어진 일들만 해도 너무 벅차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옥상에서 기른 채소들로 샐러드를 만들어 카페에서 판매할 수 있다는 정순구 디자이너의 끈질긴 유혹(?)에 넘어갔고, 정혜진, 정순구, 트리니티(옥상연구회의 가드너Gardener이자 플로리스트Florist),이렇게 세 명의 구성원으로 옥상연구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옥상프로젝트의 시작은 텃밭이었다. 종이와 나무로 작업을 하는 환경디자이너 정순구씨가 목재 팔레트Pallet를 만들었고, 부모님께서 육묘장을 운영하시는 한회원으로부터 흙을 기증받아 고무 대야에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을 심었다.
첫 농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후 옥상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전부해 보고 싶다는 그들의 야심찬 계획하에 꽤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아,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다 같이 즐길만한 놀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밤에 다 같이 옥상 살롱Salon에 모여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옥상에서 기른 스피어민트와 애플민트로 만든 모히토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놀기도 했고, 상추와 바질을 수확한 날에는 고기를 잔뜩 사다가 맥주를 곁들여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회원들이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가지고 와 옆 건물에 빔 프로젝터로 영상을 띄워 옥상극장을 연 적도 있으며, 벼룩시장을 열어 그 수익금으로 길고양이들을 돕는 의미있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순구 디자이너가 제작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미니 실크스크린 기계를 이용하여 옥상에서 촬영한 식물들의 사진과 그림들로 엽서와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겨울이 오기 전벼룩시장과 옥상살롱이 한번 더 열릴 예정이라고.
현재 옥상연구회의 주된 활동이 되는 옥상 텃밭이 출발부터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화분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전부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화원에서 직접화분들을 사왔지만 또다시 대부분이 죽어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화분들은 어디서든 잘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산세베리아와 같은 식물들. 이 과정에서 화덕 정혜진씨는 어떻게 하면 식물을 잘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땅이 아닌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사람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분갈이’. 식물을 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갈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식물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식물의 줄기에서 잎사귀에 해당하는 부피에 해당하는 공간의 화분이 필요하다. 즉, 화원에서 구매하여 집으로 데려온 대부분의 식물들은 필히 분갈이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옥상농사를 시작했다. 첫해에는 토마토, 고추 등의 식용작물을 수확하여 먹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당시에는 화초와 식용작물이 자라는 환경은 또 다르다는 것과 비료의 필요성을 몰랐기에 결국 또 한번 식물들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아픔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그 다음해 식목일에 옥상화분에 패랭이꽃, 박꽃, 메밀, 바질 등을 심었다.
우려와는 달리 다행히 식물들이 잘 자라주었고 그때 받아두었던 꽃씨들을 다시 심은 것이 지금 옥상 텃밭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중 바질은 지금까지 옥상연구회에서 수확한 것들 중 가장 성공적인 작물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카페에서 판매하는 메뉴에도 사용하고 있어 특히 의미가 깊다고.
옥상연구회의 취재를 하기로 한 9월 8일 일요일. 주말 내내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와 전날 밤 쏟아지는 폭우로 취재가 가능할까 걱정했었다. 오후 늦게 마신 카페인 음료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비가 쏟아지는 소리와 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대는 소리에 취재걱정이 더해져 잠을 설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취재 당일 아침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고 제너럴닥터를 찾아가는 길은 내리쬐는 햇빛에 덥기까지 했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들고 올라선 옥상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생각보다 좁은 규모에 나무 판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은 원래 알고 있던 제너럴 닥터 옥상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어라운드 취재팀을 반갑게 맞아 준 정순구씨와 정혜진씨는 간밤의 폭우가 옥상을 휩쓸고 지나가, 캐노피Canopy까지 날아가버려 지금까지 본 옥상의 모습 중 오늘이 가장 볼품없다며 미안해했다.
우리가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다시 각자 옥상에서 맡은 일을 말없이 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정순구 디자이너는 서울역에서 있을 옥상연구회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옥상에 가득한 목재들의 치수를 재고 재단하여 무엇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있었고, 정혜진씨는 화단을 돌보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의아스러운 것이 옥상 한켠에 자리잡은 하얀 욕조에서 잘 자라고 있는 수생식물들의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었다.
조용히 다가가 그녀에게 왜 잘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뿌리를 잘라 내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수생식물들은 뿌리로 번식을 하는데 이미 욕조가 가득 차버려 번식을 억제 시키기 위해 뿌리를 다듬는 것이라 답하고서 그녀는 욕조에 가득한 식물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알려주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부레옥잠의 보랏빛 꽃이었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공기주머니를 잘라내어 관찰하는 데에 희생되던 그 부레옥 잠이 예쁜 꽃도 피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에 한참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회원들이 한두 명씩 옥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회원들은 적당한 곳에 가방을 두고 인사를 나누고서 그들이 하던 일을 조용히 거들뿐이었다. 간간히 식물들의 사진들을 찍고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그래서 오히려 그 조용함 속에서 옥상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거미줄에 걸려 거미의 먹이가 된 방아깨비라던가 코 끝으로 꽃의 향을 맡는 고양이의 뒷모습과 같은 옥상 위 작은 자연의 모습에서부터, 페트병으로 만든 화분에 배추 모종을 옮겨 심고 기뻐하는 회원들의 표정과 같은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말이다. 나의 눈에 옥상에 모인 그들은 조용하지만 오히려 겉으로 소리내어 떠드는 사람들보다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며 가까운 데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이들이었다.
“병원이 아닌 척하는 병원을 통해 의사와 환자가 완전히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
제너럴닥터가 처음 출발할 때 세운 모티브이다. 제너럴닥터는 병원과 카페가한 곳에 공존하고 있다. 물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휴식과 지인과의 친목도모의 공간이 되는 카페와 병의 예방 혹은 치료를 위해 찾는 병원의 공존이라니 신선하다. 사실 시작은 매우 엉뚱하고도 현실적이었다. 카페가 즐비한 거리를 걷던 김승범의 ‘카페에 병원이 더부살이를 한다면 월세는 꼬박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현실화한 적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카페의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었기에 준비과정이 길었고, 그래서 카페를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너럴닥터가 바라는 인간적 의료환경의 모습은 환자가 정말 많이 아플 때만 찾아와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주사 한 대를 맞고 처방전을 들고 나오기보다는, 아프지 않을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와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제너럴닥터에서는 ‘환자’나 ‘고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즉 일반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의료행위의 과정에서 단지 진단서의 내용란을 채우는 기록물 정도로만 취급받는 것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환자’ 대신 ‘(의료)이용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제너럴닥터는 의사가 증상을 묻고 이에 의료이용자가 대답하는, 둘 사이의 피상적인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의료이용자와 의사 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지난 몇년 간 제너럴닥터를 운영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그래서 정해진 진료시간 동안 최대한 꼼꼼하고 자세한 진료를 하고자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의료인과 이용자 간에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의료인이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나의 건강이 편안히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고, 올 4월부터는 “안녕하세요”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란 ‘진료’라는 용어 대신 ‘의료인과 이용자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이 관계 속에서 이용자가 자신의 안녕함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진료를 받고자 제너럴닥터를 찾았다면, “안녕하세요. 저 ‘안녕하세요’ 서비스를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의료이용자인 당신의 센스를 어필하면서 동시에 제너럴닥터에 대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너럴닥터의 유명묘사
제너럴닥터의 옥상에 올라섰을 때, 정순구씨와 정혜진씨 다음으로 우릴 맞아준 이가 애교 많은 고양이 나비였다. 아무 거리낌 없이 사뿐사뿐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비고, 손을 내밀자 코끝을 살짝 갖다대며 인사하던 나비는 보기 드물게 사교성 넘치는 고양이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나비를 한번 본 사람들은 모두 그 애교에 완전히 매료되어버렸다.
제너럴닥터에는 나비를 비롯하여 네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이들을 보러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네 마리의 고양이는 바둑이, 순이, 나비, 복실이. 제너럴닥터에 처음 고양이가 들어온 것은 정혜진씨가 제너럴닥터에 오게 된 2008년이었다. 그녀는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카페와 병원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인 제너럴닥터에 동물까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고양이를 데려와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라는 한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가입하여 하루종일 고양이 분양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고양이가 바둑이. 그녀는 처음 바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작고 가녀린,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이 며칠 동안 잊혀지지 않았고 그것이 운명이라 생각하여 동물병원을 찾아가 바둑이를 데려왔다. 그녀와 입사동기가 된 바둑이는 처음 데려왔을 때에는 0.25kg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고양이었으나, 현재는 사람들의 보살핌 덕분에 쉬지 않고 성장하여 7.5kg에 달하는 건강한 덩치를 자랑한다.
이후 본인이 고양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바둑이의 사회화를 위해 유일한 암컷 고양이인 나비를 데려왔고 복실이와 순이가 차례로 제너럴닥터의 식구가 되면서 제너럴닥터 고양이 4총사 멤버가 완성되었다. 이들은 전부 길고양이로, 버려지거나 아픈 고양이들이었지만 제너럴닥터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 지금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유명해지면서 간혹 제너럴닥터를 동물병원으로 알고 예방접종을 문의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현재 제너럴닥터의 옥상을 책임지고 돌보는 두 사람 정혜진씨와 정순구씨.
화창하게 개인 주말, 옥상에서 만난 그들로부터 옥상연구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왜 옥상이에요? 사실 주말 농장이나 마당과 같은 다른 공간도 있었을 텐데요.
서울에는 마당이 있는 집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마당은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는데 그에 비해 옥상은 소외된 공간이에요. 현대인은 실내생활에 익숙해요. 야외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낯설다고 느끼죠. 그래서 ‘버려져 죽어 있는 옥상을 활용하면 어떨까’ 로 출발해 ‘현대인이 햇빛과 바람과 식물 등의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해져 옥상 연구회를 기획하게 됐어요. 사실 제너럴닥터의 옥상도 원래는 버려진 공간이었죠.
모두가 ‘쓰레기장’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쓰레기장에서 시작해 제너럴닥터의 회식장소가 되기도 하는 지금의 모습으로까지 바뀌는 걸 본 지인들이 본인들의 옥상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물론 저희는 다른 옥상들도 침범할 계획이 충분히 있어요!
현재 옥상연구회원의 수는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모임은 언제 가지나요?
제너럴닥터의 생활협동조합원들이 가입되어 있어 조금 형식적이긴 하지만 현재100명 정도의 회원 분들이 있어요. 정기적인 모임은 일주일에 한번씩 주말에 가져요. 아, 물론 평일에도 옥상을 개방하는 경우가 있어요. 다들 바쁘시기 때문에 시간이 되는 분들이 번갈아 오시는데 적게는 5~6명 정도 오시고, 많게 오실 때는 2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의 분담이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고 상황에 따라 달라요. 오늘 같은 경우는 어젯밤에 날아가버린 캐노피 복구작업과 지난 주말에 다 심지 못한 배추 모종을 옮겨 심는 일을 해야 해요.
회원들끼리 정기 모임이 아닌 급만남 같은 것도 하시나요?
네. 가끔씩 꽃시장이나 화훼단지 등에 가서 화분과 꽃을 사기도 해요. 얼마 전에 양주 화훼단지에 갔는데 규모가 매우 크더라구요.
자주 참여하지 못하는 회원들에 대한 제재 같은 것은 없는지요.
저희는 ‘매일 매일 내 집 드나들 듯이 옥상에 드나들며 내 작물들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관리할 의지가 있는 분부터 가끔 드나들며 어깨 너머로 슬쩍슬쩍 구경하고 흙도 잠깐 만져보다가 작물이 나오면 잘 먹어주실 분들까지 다양한 레벨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어요. 단지 ‘즐기러’ 옥상에 와주시길 바라기 때문에 제재는 전혀 없어요. 물론 수확한 작물을 가져가시는 것에 대한 제재도 없구요.
모임 당일에 비나 눈이 오면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한번은 일기예보를 보고 모임을 미뤄야 하나, 그대로 진행해야 하나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당일이 되어 그대로 모이게 되었는데 비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다같이 옆 건물의 고깃집에 가서 고기 먹고 놀았어요.
옥상연구회의 초창기에는 회원들이 직접 목공작업도 했다고 하던데, 목공 작업을 전혀 해보지 않은 회원들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제가(정순구 디자이너) 미리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드렸어요. 간단한 교육 후에는 다들 잘 하시더라구요. 지금 저 뒤에 보이는 나무 팔레트들이 당시 같이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그때는 방수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 지금 많이 삭아 있어요. 조만간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하우스’를 작업 할 생각이에요. 여름에는 그늘막으로 사용하고 겨울에는 천을 덧대어 온실로 사용할 수 있는 하우스요.
고양이들이 식물을 좋아해 잘 먹는다고 알고 있어요. 제너럴닥터에는 고양이가네 마리나 살고 있는데 이들이 옥상의 식물들을 먹지는 않나요?
옥상 텃밭을 가꾸면서 알게 된 건데, 고양이가 좋아하는 식물은 따로 있어요. 쌍떡잎식물은 절대 먹지 않고 외떡잎식물 중에서도 잎이 길다랗게 자라는 식물들만 먹어요. 그래서 벼농사는 전부 망했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고양이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몰래 심기도 했는데, 벽을 타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먹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고양이들의 안전을 위해 벼 농사는 포기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잡초들 중에 외떡잎식물이 많아요.
그래서 저희가 제초 작업하는 시간은 고양이들 간식 시간이에요.
집에서 화분을 기르다 보면 작은 벌레들이 많이 생길텐데, 옥상 텃밭은 벌레로 인한 피해가 없나요?
물론 벌레가 많아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이 진딧물이에요. 처음 한두 마리는 ‘쟤네도 먹고사는 건데, 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런데 유독 코스모스에 진딧물이 정말 많이 들러붙더라구요. 하루는 진딧물이 보이지 않길래 다 없어졌나 보다 하고 꽃을 살피는데 꽃대랑 잎사귀 전부를 진딧물들이 덮고 있어 없어진 걸로 착각한 거였어요. 정말 경악했어요. 진딧물 때문에 마요네즈, 계란부터 시작해 친환경 살충제까지 사용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진딧물에 가장 좋은 방법이 무당벌레더라구요. 무당벌레는 점의 수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요. 이 점의 수에 따라 익충益蟲 무당벌레가 있고 해충害蟲 무당벌레가 있어요. 운좋게도 익충성 무당벌레인 남생이무당벌레와 칠성무당벌레가 옥상에 날아와 번식하면서 진딧물이 많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올해에는 진딧물 약을 전혀 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약을 사용하기는 해요. 대신 동물이나 사람에게 무해한 친환경으로요.
배추농사를 시작하면서는 배추에 치명적인 배추흰나비애벌레가 생겼어요. 통통한 것이 귀여워 차마 약을 칠 수가 없어 따로 배추밭을 만들어줬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네요. 자주 날아오는 새들한테 먹힌 것 같아요.
가정에서 옥상 혹은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 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스티로폼 박스나 빨간 고무대야예요. 제닥의 옥상에는 빨간 고무대야가 주로 보이던데 추천하시는 화분이 따로 있나요?
가장 좋은 것은 땅에서 직접 기르는 거죠. 대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화분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화분의 공간이에요. 식물의 전체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공간이 필요해요. 가정에서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고무대야, 고무화분 이고 최근에는 천원샵에서 펠트지 화분도 판매하더라구요. 사실 공간만 충분하다면 용기의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스티로폼 박스는 보온성이 뛰어나 식물들의 겨울나기에 좋지만 깊이가 얕기 때문에 뿌리가 깊게 파고 드는 식물을 기르기는 어려워요. 대신 비료를 잘 활용한다면 가정에서도 식물들을 손쉽게 기를 수 있어요. 가장 좋은 비료는 지렁이 토분이에요. 음식물 쓰레기를 퇴 비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렁이는 친환경적이고 돈도 들지 않는 비료에요.
하지만 저희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어 아쉽지만 지렁이 토분을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화분과 공간의 분양을 계획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원래는 텃밭을 구획화하고 회원들에게 할당하여 주인을 지정하고 지속적으로 본인이 관리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다들 직장생활을 하시다 보니 꾸준히 텃밭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해서 무산됐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배추농사로 재미있는 게임 같은 것을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회원들을 몇개의 팀으로 나누어 배추 밭의 일정량을 할당하고 어느 팀이 배추를 가장 크게 기르는가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수확한 배추는 각자 김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구요.
각자에게 옥상의 개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정혜진 처음 제너럴닥터에 오고 나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꼈어요. 의료서비스를 하다보니 일방적이고 제한된 관계가 많았죠.
그런데 옥상연구회를 하면서 인간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형성됐어요. 사람들과 ‘같이’ 놀면서요. 조합원들뿐만이 아닌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 계기가 됐고 개인적으로 많이 밝아졌어요. 식물을 가꾸면서 채식을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기도 했구요. 최근에는 정혜진 대신 정농심 이라 불리기도 해요. 농부의 마음이란 뜻으로요. 새로운 별명이 마음에 들어요!
정순구 사람들마다 옥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요. 생태학자가 바라보는 옥상, 농부가 바라보는 옥상, 건물주가 바라보는 옥상이 서로 다른 거죠. 의미도 각기 다르구요. 저는 옥상에서 생물이 서식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서울이라는 도시의 옥상에 어떤 식물이 혹은 어떤 구조물(가령 목재 팔레트 같은)이 가장 적합한지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팔레의 경우에는 두 개의 팔레트를 마주보게 하니 화분이 탄생한 거였거든요. 이처럼 옥상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또 사람과 옥상이 마주 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공간이기도 하구요.
글 여수정 사진 니나안
장소 제너럴 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