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uration | 함께 사는 이름

고민에 잠겨 침잠할 때면 읊조리게 되는 마법 같은 문장이 있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삶의 지침이 되어주는 것들은 나에게 대개 노랫말이다. 동굴로 숨어드는 날이면 내게 내려지던 동아줄, 그 목소리를 만나러 제주에 왔다. 유랑 중인 재주소년 식구들과 마주한 건 어느 숲속. 연주되는 선율 틈새를 비집고 나온 와글와글 거침없는 숨소리, 거기 깃든 사랑의 문장을 듣는다. 이들을 만난 뒤로 비단 글자로 적힌 것만을 문장이라 생각지 않기로 했다. 다섯 식구와 뒤엉킨 무해한 여름 틈에서 재주소년의 7집 제목 ‘머물러 줄래’를 가만히 읊어 보는 날이다.

경환 씨 음악 에세이 《소년, 잘 지내》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이 노래가 된다. 초라한 순간의 기록에 멜로디를 입히는 노력을 몇 번 하다 보면 운 좋게 노래가 태어난다.”고요. 특별한 장면을 음악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사소한 데서 음악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경환 맞아요. 제 책의 핵심 문장이기도 한데, 그건 저한테 깨달음 같은 거였어요. 특별한 기억이 노래가 될 것 같잖아요. 근데 곰곰이 따져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서 마시는데 생강차 맛이 났다.’ 하는 후줄근한 일상이 음악이 돼요. 탁자의 얼룩 같은 걸 보면서 노래를 짓는 식이죠. 

 

[머물러 줄래]에 수록된 곡들은 어때요? 타이틀곡 ‘꽃, 나비’는 “아빠, 비 오는 날 나비랑 벌들은 어디로 가요?”라는 준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아이의 특별한 질문이 씨앗이 된 것 같아서요. 

경환 사실 그것도 굉장히 사소한 순간이었어요. 문장으로 적어놓으니 굵직한 사건처럼 느껴지는데 준희는 기억도 못 해요(웃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낮이었는데 준희가 밥 먹으면서 그러더라고요. “아빠, 비 오는 날 나비랑 벌들은 어디로 가요?” 충격받았어요. 지금껏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답도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사소한 장면이 만든 충격으로 노래를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문장엔 특유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찬희랑 얘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깜빡 졸았는데, 1.5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거든요. 근데 찬희가 그러더라고요.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요.” 그 말에 울림이 컸는데 두 분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고 지내실 것 같아요. 

사라 솔희가 한번은 “엄마, 튤립 같아.” 그런 적이 있어요. ‘예뻐.’도 아니고, ‘꽃 같아.’도 아니고. ‘튤립’이라는 구체적인 꽃 이름을 말한 게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는 매일 좋은 모습만 보이는 엄마도 아니고, 늘 아이들에게 더 잘 해줘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는 엄만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저희 애들은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편이거든요. 어느 날은 자기 전에 “엄마, 그런데,” 하더니 “사랑해.” 그러는 거예요. 제가 어떤 상태든 애정 어린 말을 해주는데 그런 말이 참 오래 남아요.

경환 아이들이 하는 생각이나 말은 지금 이 순간에만 나오는 것들이 많아서 그때그때 메모장에 적어둬요. 이른바 삼형제 어록(웃음). 한번 열어볼까요?

 · 애월 펜션에서 바다를 보며 피자를 먹으며 한 얘기. “밀려오는 파도 소리 좀 듣자.”

 

 · 할머니랑 뭔가를 하려는데 할머니가 대답을 제대로 못 한다. “긴장되는 건가, 할머니?”

 

 · 찬희가 준희에게 가위를 가져달라고 하자 준희가 “내가 형인데 심부름시키냐?” 하니까, 찬희가 “삼형제 중 내가 가운데니까 주인공은 나야.” 한다.

 

 · “근데 산은 어떻게 자라난 거예요? 엄청 잘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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