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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자의 시선으로
9와 숫자들을 만난 건 봄바람이 서늘하던 어느 초저녁. ‘선유도의 아침’을 흥얼거리며 우리는 선유도에서 만났고,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한강의 기적’을 되새기며 대화를 나눴다. 9와 숫자들의 서정적인 노래들은 수많은 도시로 우리를 초대한다. 서울, 제주, 인천부터 싱가포르, 투발루까지. 세계 곳곳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2019년에는 [서울시 여러분]으로 활동을 이어갈 성실한 숫자들, 9, 0, 3, 4를 만났다.
축하해요. 10주년! 소감이 어때요?
송재경(이하 ‘9’): 정말 오래됐구나…. 어느덧 중견 밴드네요(웃음).
유정목(이하 ‘0’): 밴드 이름이 9와 숫자들이어서 9주년에 의미가 컸어요. 작년 한 해 무척 바빴죠. 한 달에 한 번, 매달 9일에 ‘All 9 Party’라는 이름으로 자체 공연을 기획했고, 이 공연이 올해 1월에 마무리되었거든요. 끝남과 동시에 별다른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10주년이라는 실감이 잘 안 나요. 이 인터뷰가 10주년 첫 공식 활동인 셈이네요.
유병덕(이하 ‘3’): 10년이나 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평상시엔 실감할 일이 거의 없어요. 누군가 “9와 숫자들이 얼마나 됐지?” 하고 화제를 꺼낼 때야 헤아리게 되죠. 어릴 땐 10년 된 밴드라고 하면 굉장한 베테랑 같았는데, 제 얘기가 되니까 기분이 좀 묘해요. 하던 걸 해왔을 뿐인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꿀버섯(이하 ‘4’): 음악 활동을 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앨범이 쌓이면서 전과 다르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시간은 실감할 일이 잘 없더라고요. 매일이 신인 같아요.
9주년 공연을 끝으로 2019년엔 소식이 뜸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9: 9와 숫자들 작업엔 일종의 주기가 있어요. 언어를 정립하는 시기와 그 언어로 노래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시기로 나누어지죠. 사실 언어라는 건 한 번 습득만 해두면 활용하는 건어렵지 않아요. 가지고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거나 노래하는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이 주기를 한 바퀴 돌고 새로운 작업으로 넘어가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9주년까지는 한 번 습득한 언어를 비슷한 언어로 확장해나가며 작업해왔는데, 9주년 공연을 마치고 나니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싶더라고요. 결국 새로운 언어를 다시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게 무척 어렵게 느껴져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시 쓰기 숙제를 받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불어로 시를 써야하는 거예요. 시 쓰기에 앞서 언어를 익힐 때 스스로에게 한계를 느껴요. 그렇지만 이 고통을 딛고 무언가 해보려는 노력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극복하면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는 걸 경험해봐서 알고 있거든요. 생각해보면,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시작한 다른 밴드들이 잘할 수 있는 것에 깊이를 더할 때 우리는 저변을 넓히는 데집중한 것 같아요. 근데 10년이 되니까 넓혀온 세계조차 갑갑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최근엔 전혀 다른 층위를 꿈꿔요. 완전히 반대편으로 가는 것까지도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거네요?
9: 도약이면 좋지만, 이젠 꼭 도약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변화, 도전, 그런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예 새로운 걸 해보는 거죠. 헤비메탈 같은(웃음).
10주년 행보에 ‘성실’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꾸준히 곡 작업과 공연을 병행하면서 기획 공연에도 소홀한 적이 없죠.
9: 이른바 인디밴드가 살아가는 방식엔 여러가지가 있어요. 일생일대의 명반 만들기, 히트곡 만들기, 연예 활동에 집중하기 등등. 꾸준한 활동은 할 수 있는 많은 방식 중 저희가 찾은 하나의 방법이었어요. 밴드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 이를테면 스스로 앨범을 만들고, 홍보하고, 공연을 기획하는 일에 성실히 임하는 게 우리의 길인 걸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무조건 ‘열심히’ 했어요.
3: 혼자 하면 게을러지는 빈도가 확실히 많은데 함께할 땐 꾀를 부린 적이 거의 없어요. 멤버들과 함께 있으면 기댈 구석이 있다는 생각에 편안해져요. 태도부터가 달라지니까 게으름 피울 이유도 없어지는 거죠.
4: 고백하건대, 저는 갈수록 게을러지고 있어요(웃음). 혼자 있을 땐 연습하는 시간보다 넷플릭스 보고 고양이 은둥이랑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어릴 땐 록 스피릿으로 열 시간 이상씩 연습하곤 했는데 요새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돼요. 하지만 합주할 땐 달라요. 그동안 해온 방식과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함께이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성실하게 쌓아온 디스코그라피가 정말 많잖아요. 도시와 관련된 노래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 어떤 곡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3: ‘싱가포르’
0: ‘엘리스의 섬’
4: ‘서울 독수리’
9: ‘검은 돌’
노래 속에서 많은 지명, 도시, 장소를 찾았어요. 9와 숫자들 노래에 이렇게 많은 지명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9: 9와 숫자들 기획 공연 중에 음악을 읽는다는 콘셉트로 매년 진행하는 ‘읽는 콘서트’가 있어요. 문학과 영상, 그리고 음악이 결합된 스토리텔링형 공연이죠. 2018년 읽는 콘서트 테마가 여행이었거든요. 우리 노래 중에 여행과 엮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는데, 지역에 관한 게 유난히 많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삼청동, 선유도, 한강, 인천, 서울부터 싱가포르, 투발루까지. 의도한 건 아닌데 모으고 보니 수많은 지명이 눈에 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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