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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사람들도 아니거든요. 그냥 밝은 아이들이 있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요즘 가장 재미있게 일한다는 건축가들, 푸하하하 프렌즈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나는 뭔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너덜너덜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종류의 위기감이었다. 직접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미심장한 얘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커피에서 이상한 맛 느껴지지 않아요? 얼마 전에 세제를 쏟아서.”
우선 호칭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건축가라고 부르는 게 맞나요, 아니면 실내디자이너가 맞나요? 어디선가 보니까 건축사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한양규 저희는 건축가이기도 하고 건축사이기도 해요. 건축가는 영어로 ‘아키텍트Architect’라고 부르고 건축사는 면허License가 필요한 아키텍트를 말하는데, 저희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건축가이자, 시험에 통과한 건축사이기도 한 거죠. 이 두 개의 호칭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논란이 좀 있었어요. 면허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두고 승강이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라이센스를 땄기 때문에 저희랑은 상관없는 문제예요. 실내디자이너는 아니고요. 아, 잠시만요. (전화를 받으며, 어 한진아 얼른 와. 지금 승재는 택배 기사님이랑 통화하고 있고, 나랑 에디터님이랑 둘이 마주 보고 있는데 첫 번째 질문부터 어버버버하고 있거든? 지금 인테리어디자인 건축사 건축가 이런 질문을 받아서 버법법버 했단 말이야. 빨리 와.) 한진이도 금방 온대요. 아, 제가 원래 애드리브도 세고 말도 잘하는데, 한 번씩 버벅거려요. 그리고 기억상실증이 좀 있어서 이런 세부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조심하는 버릇이 있어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거든요.
한승재 (자리에 앉으며) 무슨 뜬금없이 건축사 얘기를 하고 있어?
한양규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물어본 거였어.
한승재 그래? 저희는 건축가라고 부르는 게 포괄적인 의미에서 맞는 말이죠.
셋 모두 이름에 ‘한’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잖아요. ‘FHHH’에도 알파벳 ‘H’가 세 개고요. 의도한 건가요?
한양규 승재가 처음 그 이름을 보여줬을 때만 해도 이니셜을 따온 줄 알았어요.
한승재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쉽고 재미있는 이름으로 정하자는 건 있었죠. 후보 중에는 ‘박장대소’나 ‘가슴 건축사무소’도 있었어요.
가슴이요?
한승재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재미있고 편한 이름으로 정하자고 했는데, ‘푸하하하’가 떠오르더라고요. ‘FHHH’라는 알파벳 배열이 안정감 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일단 그렇게 정해놓고 보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게 진짜 많았어요. 원래는 처음에 저희가 네 명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한 명이 도망갔고, 그 친구 이름에도 ‘환’ 자가 들어가니까 하나 남는 F를 ‘퐌’이라고 발음하기도 했고요. 사실 이름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어요.
한양규 아마 예전 인터뷰에도 이런 대답은 없었을 거예요.
있었던 거 같아요.
한양규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기억상실증이 있어서.
세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한승재 우리 이 질문 연습 많이 했잖아.
한양규 저희는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라고 하는, 당시에 제일 핫 한 설계사무소에서 만났어요. 제가 2기였고요. 승재와 한진이가 3기였어요. 거기서 같이 작업을 했던 건 아니었고, 3년 정도 쓸데 없는 얘기하면서 놀았던 거 같아요.
한승재 어쨌든 건축가는 독립을 해야 자기 일을 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는 겁대가리가 없어서 그 시기를 조금 빨리 잡게 되었어요. 3년만 채우고 나가자고 말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아까 ‘F’를 맡았던 친구가 “나 먼저 나갈게! 너희는 안 나와? 겁쟁이냐?” 하면서 회사를 나갔어요. 저희도 그걸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거예요. 당시에 저희가 냈던 사표에 사장님께서 ‘멋진 출사표로 성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써주시기도 했죠.
윤한진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우리는 건축가예요!
한승재 야, 한규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 줄 알아? 건축사 협회가 있고 건축가협회가 있고 5년 이상의 실무를 경험하지 않거나 유학을 다녀온 친구 어쩌고저쩌고 그런 경우에는 건축사라고. 건축사협회 건축가 협회.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앉았다. 기조 연설했어.
윤한진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 머리 안 말랐다?
한승재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래.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한양규 셋이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보셨어.
한승재 아,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만뒀고요. 양규 같은 경우는 우리가 건축사 자격증이 필요했어요. 건축사가 되려면 아까 교육받으신 대로 5년의 실무 기간이 필요했고요. 그런데 마침 양규가 5년을 다 채우기도 했고, 건축사 시험도 한 번에 붙은 거예요. 보통은 서너 번 떨어지고 하거든요.
필요에 의해서 친구가 된 건가요?
한양규 푸하하하. 그거 되게 신선한 발상이네요.
윤한진 그런…셈이죠? 우리가 우정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지.
한양규 가만있어 봐. 그건 아니지. 우정으로 시작했지. 내가 건축사 못 땄으면 내쫓으려고 했어?
윤한진 그런 건 아니지만, 너의 능력이 분명히 필요했어. 그중 일부가 건축사라는 거지.
그럼 필요에 의해서 만났지만 우정은 나중에 찾은 걸로 이해하도록 할게요.
윤한진 우정은,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사무소 안에서 각 분야가 정해져 있는 건가요?
윤한진 원래는 두 명의 디자이너와 두 명의 경영팀으로 시작했는데 ‘경영 1’, 그러니까 아까 말한 F가 도망을 갔고요. 그나마 한 명 남은 양규마저 디자이너 선언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셋 모두 디자이너로서 똑같은 일을 해요. 사실 양규가 경영을 엄청 잘해서, 2만5천 원이던 월급을 250만 원으로 만들어줬거든요. 그런데 디자이너 역할을 하면서 다시 월급이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최근에는 전문 경영인 한 분을 따로 모셨죠. 그런데 아직 출근을 안 하셨네요.
세 명이 모두 디자이너라면 각자 그려내는 설계의 방향이 다를 것 같은데, 일이 들어오면 어떻게 의견조율을 하나요?
한승재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가요. 가령 어제는 누가 도면을 들고 와서, 텔레비전 놓을 자리와 소파 놓을 자리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저는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살도록 조언해 줬고요. 한진이는 한쪽에 돌아가는 벽을 치고 텔레비전을 붙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양규한테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뻔해요. “왜 거실에 텔레비전을 둬? 방에 둬.” 뭐 그런 얘기를 하겠죠.
한양규 틀렸어. 그냥 놔, 조그만 거 놔. 그랬을 거야.
한승재 아무튼 이런 건 각자 성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아요. 그러다 결국에는 셋 중 하나의 선택이 나오긴 해요. 클라이언트의 성향을 봐서 가장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일을 맡는 방법이 일반적이에요.
윤한진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에 했던 건 ‘슈퍼 위크 제도’예요. 각자 시안을 낸 다음 건축주가 선택하는 설계를 고르는 거죠. 패자부활전이나 슈퍼패스를 거쳐서 최종 진출자를 가리는데, 거기서 떨어진 사람은 잡무를 맡아야 해요.
요즘에는 누가 선택을 많이 받나요?
윤한진 그건 민감한 질문입니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저희도 슈퍼 위크 제도는 한 번밖에 안 해봐서 통계를 내기가 어렵네요. 일을 한 번 맡으면 그 일을 타고 또 다른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저 일을 타고 또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일은 다음 일을 못 받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한양규 다음 일을 못 받는다는 게 설마 내 얘기냐?
윤한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건축가라고 하면 커다란 프로젝트를 먼저 생각하기 마련일 텐데, 어디선가 ‘동네 건축가’라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죠? 동네 건축가가 뭔가요?
한승재 그거 금지어 됐어요(웃음). 저희가 회사에 다닐 때는 커다란 건축만 하다 보니 작은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건축이라고 함은 건축가나 행정가보다는 현장에서 나사 조이고 화장실 만들며 실질적인 공사를 책임지는 분들의 디테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도면을 멋있게 만들어도 공사하시는 분들이 그걸 어떻게 살려줄까 하는 문제가 더 큰 거고요. 그게 동네 건축가로서 역할이었죠. 하지만 언젠가 프로젝트 하나를 하면서 느낀 건, ‘건물은 클라이언트의 바람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작은 디테일이어도 건축이나 디자인에 큰 의식이 없는 분들은 ‘디자인 비용을 따로 줘? 이런 도둑놈들.’ 하는 생각을 하시거든요.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디자인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에요.
하긴 평생에 한 번 자신의 공간을 디자인할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 디자이너의 건축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도 같아요. 그게 건축가에게는 디자인적 요소를 발휘하기 힘든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인 거죠?
한승재 우선 디자인적 요소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지금 앉아있는 우리 사무실의 디자인이 엄청 잘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진심인가요?
한양규 푸하하하.
윤한진 핫핫핫핫.
한승재 단지 청소가 안 되어있을 뿐인 거예요.
윤한진 이 사무실은 이제껏 저희가 했던 디자인 중에 제일 힘들었어요. 셋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디자인이 쉽지 않거든요. 이사하면서 면적이 네 배나 넓어졌는데 책상 사이즈는 똑같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왜 한 거지? 아, 저는 큰 책상이 갖고 싶어요.
한승재 지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 건축가의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게 서지 않은 분들은 눈에 띄는 요소들이 곧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세요. 어딘가에 포인트 주는 걸 좋아하고 가시적인 디자인을 많이 추구하시죠. 실제로 “뭐 한 거야 도대체?” 그런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푸하하하 프렌즈가 건축을 하며 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철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윤한진 너희들 그거 알아? 이번 인터뷰 진짜 어렵다. 얘들아 조심하면서 대답하자.
한승재 건물은 따뜻해야 하고, 편리해야 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면들, 그러니까 건축가의 기본적인 소양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되 각자가 추구하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요. 각각의 철학이라면…. 그건 한진이가 먼저 얘기해볼까?
윤한진 어?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럼 양규 먼저 얘기해볼래?
한양규 콜록콜록.
한승재 이거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임자 같아.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상적인 것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항상 조금 앞을 내다보며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그건 사회적인 건축가로서 역할이에요. 단순히 작은 주택으로 한정 지어 생각해보자면 공간의 동선마다 시놉시스를 생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거예요. 못 느끼셨겠지만 이 사무실은 회의실을 지나고 음악 감상실을 지나서 사무실로 가잖아요? 어, 저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윤한진 그럼 이쯤에서 제가 한번 도전해볼게요. 사실 뭔가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을 누군가에게 제시한다는 것은 배려와 오만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게 클라이언트를 위한 배려인 건지, 정말 내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의 결과물인지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아직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끊임없이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고 훌륭한 어른이나 건축가가 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자 양규가 그다음을 이어가 봐.
한양규 건축은 삶을 다루거든요.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잖아요. 때문에 공간의 만듦새에 따라서 사람들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공간을 “네모로 해주세요.”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획일화된 네모로 디자인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한 네모가 될 수 있을까, 한 번 더 생각을 하는 거죠.
윤한진 물론 예쁘고 아름답게 공간을 그려주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우리는 단지 기반을 다져줄 뿐이고 그 안을 채우는 건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겠죠.
하나의 목적만 고집하는 게 아닌 거네요.
한양규 땅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까 매번 목적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연출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받는 편인가요?
한양규 저는 이 두 친구에게 영감을 받아요. 유일하게 인정하는 친구들이거든요.
윤한진 영감이라는 것은 무엇을 새로 만들기 위해 산에 들어가거나 어떤 특별한 일을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동안에 살아온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일 같아요. 양규의 디자인을 보면 우직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고, 승재는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많이 들어요. 우리가 살아온 과정을 솔직한 우리만의 어휘로 표현하는 셈인 거죠.
한승재 영감을 어떤 식으로 얻는지는 다만 추측해볼 뿐인데요. 양규는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를 통해 주로 얻는 것 같고요. 한진이는 건축 도면 그 자체에서 받는 것 같아요. 어때? 맞아? 나 잘하고 있나?
한양규 나는 너희 둘한테 받는다니까.
한승재 아니야, 너는 건축주한테 받는 걸로 쓰자.
윤한진 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패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주로 원초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원초적이라는 것은 순수한 기하학과 관련이 있어요. 무게와 질량의 관계라든지, 속도와 속력, 원초적인 힘에 대한 고민, 순수한 도형 같은 것에 끌리죠. 평면을 그리더라도 완벽한 질서라던가 비례에 대해 늘 고민해요. 도면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드러났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거죠.
한승재 아, 생각났다. 저는 매번 바뀌는 거 같아요. 예전에 ‘오프레’라는 레스토랑을 디자인했을 때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분위기를 떠올려봤어요. 그림의 밀도와 질감을 구현해보고 싶었던 거죠. 디저트 카페 ‘옹느세자메’의 경우는 음악으로 통했던 거 같아요. 펑키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루브 타기 좋은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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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