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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진득한 사람, 오래전부터
나는 당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엊그제는 길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손등에는 빨간 자국이 짙었고 엉덩이엔 온갖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수상한 행색이었다. 아무에게나 말을 거는 아이가 조금 무서운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는데, “계속, 계속 걷는 사람이 있는데요.”라는 말이 발길을 붙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이가 가리키는 큰 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가 일어나서 가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무척이나 빠르게 ‘계속해서 걷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의 말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내 머릿속엔 한 남자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말이 길어지면서 뿌연 안개 속의 형상이 선명해졌고, 나는 허벅지를 탁 때리며 “그렇지!” 하고 소릴 질렀다. 안개 속 그 사람은 동화책을 뗄 나이가 되었을 즈음 읽었던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였다. 세상에는 진득하게 무언가를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시간 한 가지에 매달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고, 의도한 건 아닌데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한 가지에만 매달려 있던 사람도 있다. 나는 좀머 씨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름이 페터 좀머인지 혹은 파울 좀머인지 아니면 하인리히 좀머인지 혹은 프란츠-크사버 좀머인지 알지 못했으며, 좀머 박사인지 혹은 좀머 교수인지 아니면 좀머 박사 교수인지도 모르는 채, 사람들은 그를 유일하게‘좀머 씨’라는 이름만으로 알고 있었다.”
좀머 씨는 그저 ‘좀머 씨’라고 불리던 남자다. 그가 살던 동네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좀머 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호수(그가 살던 마을 중심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를 중심으로 사방 60킬로미터 부근을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엊그제 만난 아이는 줄곧 걸어 다닌다던, 나로 하여금 좀머 씨를 떠올리게 했던 그 아저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볕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고. 아이가 말하는 아저씨는 혹시 좀머 씨가 아닐까? 몹시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좀머 씨가 맞는다면 무서울 것 같았고, 좀머 씨가 아니라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는 내내 걸었다. 한 번도 쉬지 않았고, 말을 하지도 않았으며, 사회생활이랄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좀머 씨는 호숫가 주변을 그 깡마른 몸으로 여름이나 겨울이나 배낭 하나를 메고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세 발로 걸어만 다녔는데, 이렇게 지독하리만큼 걷는 사람이라면 좀머 씨의 걷기는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폐 공포증… 밀폐 공포증… 좀머 아저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어… 그 말의 뜻은 아저씨가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밖에서 돌아다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밀폐 공포증’이 있으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고… ‘밀폐 공포증’이 ‘방 안에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말이고, ‘방 안에 있지 못하는 것’이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과 같다면,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 ‘밀폐 공포증’과 같은 말이지.”
어떤 가족은 좀머 씨가 밀폐 공포증 때문에 방 안에 있을 수 없어서 내내 걸어 다니는 거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방 안에 있을 수 없는 사람에게 방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호숫가 사방 60킬로미터의 그곳을 좀머 씨의 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좀머 씨는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을 방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엊그제 만난 아이는 줄기차게 걸어 다닌다던 아저씨를 두고 어디에 있더라도 쉽게 식별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다른 사람과 전혀 혼동되지 않으며, 우스꽝스럽도록 가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아이가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머 씨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하는 아이의 키가 《좀머 씨 이야기》의 ‘나’처럼 겨우 1미터를 빠듯하게 넘긴 정도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좀머 씨의 걷기 예술은 지독했다. 공처럼 커다란 우박이 사정없이 쏟아붓는 날에도 좀머 씨는 묵묵하게 걸었다. 검은색 우비를 쓰고 잰걸음으로 걷고, 또 걷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우박을 뚫고 차를 몰고 가던 동네 사람이 “차에 타세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을 거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때도 좀머 씨는 입도 뻥끗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멈춰 서지도 않고, 그의 말에는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마냥 걷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죽겠어요!” 외치는 소리를 듣고야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하고 소리쳤는데, 나는 그 순간 그의 걷기가 예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예술가는 예민한 법이다. 작업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말이라고는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좀머 씨가 그 순간 그렇게 소리친 이유는 예술가였기 때문일 테다. 그는 걷기라는 예술을 행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를 방해하는 이웃이 얼마나 성가시게 느껴졌겠는가. 우박이든 벼락이든 예술에 비하면 그게 뭐 별거라고….
엊그제 만난 아이는 한참 동안 ‘걷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근데, 걷는 사람은 지금 죽고 없어요.”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혹시나 싶어 “호수에 빠졌니?” 하고 물었는데, 아이는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게서 슬금슬금 멀어져 높이가 10미터쯤 되는 튼튼한 나무를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 높은 가지에 걸터앉아 먼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너무 높아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느다랗고 높은 목소리로 이런 말을 외치면서 공중에 뜬 두 다리를 번갈아 흔들었다. “여기에 오르면 보이는 저 호수에서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이 호수의 수심은 100미터고, 반대편 둑까지의 폭이 5킬로미터나 된다고요. 그 사람은 물이 어깨에서 목까지 차올랐는데도 물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그는 계속 호수를 가로질렀고….” 나는 아이의 말을 끊고 말했다. “밀짚모자만이 천천히 남서쪽을 향해 떠내려갔겠지.” 《좀머 씨 이야기》에서 읽은 문장 그대로였다. 아이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 좀머 아저씨를 알아요?” 틀림없었다. 이 아이는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가 호수 속으로 종적을 감출 때, 나무 위에서 “좀머 아저씨! 정지! 뒤로!”를 외치던 바로 그 아이였다. 이 아이가 도대체 왜 내 눈앞에 있는 건지, 좀체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