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CURIOUS

어느 주얼러의 만족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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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얼러의 만족하는 생활

 

길을 지나다 보면 유독 눈이 가는 공간들이 있다. 마음에 드는 창문, 매력적인 간판, 건물 앞에 있는 사람과 마치 하나처럼 어울리는 벽,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마음 편히 누워 있는 곳, 멋진 화단이 있는 마당. 가끔은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곳도 있다.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중간쯤에 있는 주얼리샵 ‘큐리어스큐리어스’는 그렇게 유리창 너머로 보다가 결국에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다.

궁금한 가게

이태원에 자주 오진 않지만, 나는 이곳을 정말 좋아한다. 외국인 친구를 여럿 뒀다거나 각국의 음식을 먹으며 희열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고 그저 평일 오후에 거리를 뱅뱅 돌며 천천히 구경하길 즐기는 쪽이다. 사람들의 겉모습, 가게들의 겉모습. 이곳에는 유독 다양한 겉모습이 있다. 이태원에만 있는 조금 어두운 ‘생기’ 때문에 예전에는 잔뜩 움츠린 채로 버티듯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좀 나아져서 어두운 골목도 잘 지나다닌다. 특히나 좋아하는 언덕길도 있다. 설명할 일이 없어서인지 길의 이름까지는 알지 못한다. ‘보통Botton’이라는 카페를 지나고 허름한 국수집을 지나고, ‘Tea22233’이라는 찻집을 지나는 언덕길.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도 그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그 길에는 국수집이나 카페 말고 핸드메이드 주얼리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하나 있다. 적당히 진열되어 있는 보석들과 작은 마네킹, 노란 불빛, 좀 더 안쪽의 허름한 미닫이문 뒤로 작업실로 보이는 공간이 있고, 조금만 다가가도 도망쳐 버리는 고양이들이 그 가게 앞을 항상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주얼리샵 앞에서 서성일 일이 평생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어쩌다 그렇게 훔쳐보고 있는 꼴이 되고 만 것일까. 안쪽에서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하던 여자가 나오려고 할 때면 나는 구경을 멈추고 다시 가던 길을 가곤 했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래도 말을 걸어 정식으로 공간을 소개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남겼다. 전화를 하기에 앞서 책을 보내줬는데 다행히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다시 찾았을 때는 내가 서성이기 전에 한 여자가 나와 문을 열어 줬다. 가게의 주인이었고, 류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우연의 자연스러운 진행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녀가 졸업과 동시에 주얼리를 만들게 된 사연은 조금 의외였다. 평소 <스핀Spin>이나 <록킹 온Rocking On>, <인록Inrock> 같은 잡지를 즐겨보던 그녀는 어느 날 영국 밴드 ‘블러Blur’의 보컬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이 늘 하고 다니던 구슬 목걸이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필요한 만큼의 재료만은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대량으로 재료를 구매했는데 그걸 이용해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주얼리 디자이너가 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교동에 동양화를 전공한 친구가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작은 계획들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재료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웃음).”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두 사람은 5년 동안이나 함께 일하게 된다.

처음 일을 시작한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꽤 인지도 있는 가게를 홍대 앞에서 운영한 적도 있었고, 꾸준히 일을 주던 클라이언트의 제안으로 회사의 정식 직원이 되어 5년간 일하기도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서 1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와 지금의 공간을 꾸리게 된 것이 또 5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작업을 알게 모르게 지켜봐주던 이들은 지금도 큐리어스큐리어스의 단골로 남아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바로 샵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동산을 찾았던 거죠. 그런데 첫날 소개받은 공간 한 가운데에 뜬금없이 미닫이 문이 하나 있는 거에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계약을 했어요. 문 바깥 쪽에 쇼룸을, 안쪽으로는 작업실을 두면 되겠다 싶었죠.”

내 방에 찾아와 주는 고마운 사람들

이태원은 주얼리샵을 열기에 좋은 조건을 가졌다. 동대문, 남대문, 종로 등 재료를 살 수 있는 곳과 가깝고 교통도 편하다. 패션(물론 패션 이외에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며, 어느 장소보다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고 말한다. 

“교통이나 주변 시설 등 기본적인 내용을 걷어내고 얘기하자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성향에 관해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공간을 이렇게 꾸며놔서 그런지,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요. 물론 아주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도 오죠. 잘은 모르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둘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요(웃음).

이 공간을 둘러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는 내게 그녀는 마치 자신의 ‘방’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쉬는 날에도 가끔 나와 앉아 있기도 하고, 날씨가 이상한 날엔 가게 문을 닫고, 불도 끄고서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녀에 관해서 아직 잘은 모르지만, 나 역시 이야기를 나누며 이 공간과 그녀의 느낌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질문은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주변을 둘러보면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직접 벽이나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을 해줄 때면 훨씬 빠르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공간에 누군가 찾아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사고, 기뻐하는 걸 보는 일은 어떤 기분일까. 작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없이 대단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가 반가워요. 남이 만든 물건을 좋아해주고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이곳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 직접 듣게 돼요. 장점 중 하나죠. ‘이런 걸 만들어 줄 수 없겠냐’며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서 만드는 경우도 많아요.”

오래전의 주얼리

“정성스럽게 만들고 싶어요.”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물었을 때, 곰곰이 생각하고서 그녀가 말했다. 

“전체적인 모양과 함께 작은 부분도 신경을 쓰고 싶어요. 주얼리 하나에 큰 감동을 받긴 힘들겠지만, 결국 사소한 부분 때문에 물건을 사게 되고, 사용하면서도 호감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러면 만든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돼요. 사실 제가 그래요(웃음).”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만들어온 사람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제작과 소비의 영역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물건을 사며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닐까. 큐리어스큐리어스의 주얼리는 그래서 빈티지 주얼리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처럼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지 않았을 때의 섬세함과 다양함, 정교함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귀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걸 만들고 싶어요. 지금 제가 완벽하게 그런 작업만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좀 더 나아져야 되겠죠(웃음).”

만족하는 생활

 

그녀는 매일 아침 재료를 사러 나가 한 시쯤 이곳에 도착한다. 일이 끝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근처에 새로 생긴 바에 찾아가 음악을 듣는다. 가끔은 좋아하는 밴드를 보러 홍대에 가기도 하고 도자기 수업, 불교 대학 등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기도 한다. 월요일엔 언제나 휴무이고, 가게 앞으로 모이는 고양이들과 녀석들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앞집 할머니 사이에서 매일 고민하며 조용히 일하다가 한 달이나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올해 초에는 혼자 인도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이전보다 모든 게 좋아졌어요.”


예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는 인도.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혼자 남겨졌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한 달의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세상에 다시는없을 나라에 다녀왔다고, 본분이 여행자였다는 듯이 말하는 걸 듣고 있을 때는 뜬금없이 이 가게의 운명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게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가게에 있던 물건들을 단골손님들에게 싸게 팔았어요. 평소에 그런 적이 없어서인지 다들 고마워하더라고요. 돌아와 보니 다들 더 자주 찾아와주세요. 이렇게 계속해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여유로워 보이는 그녀에게 조금 더 많은 일을 할 생각은 없는지 묻자, 이미 질문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차분히 대답했다. 

“이 일을 하며 가장 좋은 건, 제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에요.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제가 의상 일을 하지 않은 이유도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조금 적게 벌더라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큐리어스큐리어스라는 이름은 그녀가 예전에 로마를 여행할 때, <앨리스 인 원더랜드>라는 뮤지컬 영화를 보고 만든 이름이다. 앨리스의 노랫말 중 하나였던 것을 단지 어감이 마음에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골랐다는 얘기에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웃어 버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하는 일들이 꼭 잘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야만 하는 시기도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가진 작은 안락安樂이 내내 흔들리는 것은 슬픈 일 아닐까.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의 공간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이 있다면, 혼자서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 자신을 닮은 주얼리를 만드는 조금은 진지한 표정, 고양이들을 구경하며 잠시 웃는 모습, 늦은 시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문을 걸어 잠그고서 얘기하고 웃는 모습, 그런 것들이었다. 그 공간이라고 불만이 없을 리 없었겠지만 내게는 아주 작게, 보일 듯 말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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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